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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36화 (136/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36화 >

“흐음···”

엘리펀트 인더스트리의 회장인 타르빈 마르케시.

아까 전부터 서울의 여의도 공원 인근을 배회하고 있던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 나지막하게 침음을 한 차례 삼켰다.

‘오랜만에 여행분위기를 낸 건 좋았는데 말이지.’

손으로 끌고 다니고 있는 작은 크기의 캐리어.

평소라면 이런 짐을 직접 들고 다닐 일이 없겠지만.

지금의 그는 혼자였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혼자 돌아다니고 싶었으니까.

사실상 쉬고 싶은 마음에 결정한 출장이기도 했기에, 기왕 오기로 한 거 학생 시절마냥 여행 다니는 기분도 좀 내고 싶었던 것이다.

수행원이나 직원들은 정해진 날 오라고 하고, 본인은 사흘 먼저 도착해 여행을 즐기다가 합류한다.

그리 바람직한 계획이 아닌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못할 짓도 아니지 않은가. 밀려있던 업무와 스케줄도 미리 앞당겨 해결해놓고 왔으니, 딱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여긴 어디지?’

길을 찾지 못하겠다는 것.

마르케시는 한 손에는 캐리어를 끌고,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 지도를 켜놓은 채로 여의도 안을 계속 배회하고 있었다.

그나마 스마트폰 지도도 방금 킨 참이다.

그 전까지는 ‘길을 찾는 것도 여행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걸어왔기 때문. 그러다 슬슬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에 지도를 꺼낸 것이다.

“이 길 찾기 어플, 제대로 된 거 맞아?”

허나 이미 갈피를 잃은 탓인지, 뒤늦게 지도를 꺼내들었음에도 계속 길을 헤매고 있는 상황. 마르케시는 애꿎은 어플리케이션을 탓하며 주변의 지형지물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그렇게 상가처럼 보이는 곳을 지나고 있었을 쯤.

누군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느낌의 영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딱 봐도 인상이 좋아 보이는 남자가 한 명 서있었다.

* * *

“길을 헤매고 계신 것처럼 보이는데.”

“예. 맞습니다.”

딱히 나쁜 의도로 접근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르케시는 약간의 경계심이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진짜로 마르케시 본인이잖아.’

한편 그에게 말을 걸은 남자, 최 비서는, 가까이에서 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내심 놀란 기색을 감췄다.

그래도 ‘설마 본인이겠어.’ 하는 생각이 남아있었는데, 이렇게 바로 앞에서 보니 그냥 빼도 박도 못하는 본인이었던 것이다.

“괜찮다면 제가 길을 좀 찾아드릴까 하는데요.”

최 비서는 굳이 자신이 대청그룹의 직원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는 편이 좀 더 마르케시에게 접근하기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만약 마르케시가 귀빈대접을 받기를 원했다면.

진즉에 그룹차원으로 연락을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대청그룹 쪽에서 식사부터 숙박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최고 수준으로 준비를 해놨을 테니까.

당연한 일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수 천 억의 프로젝트 수주가 달려있는 안건이었으니까. 행여 그게 아니었더라도, 엘리펀트 인더스트리의 회장님이라면 언제든지 귀빈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전에 연락도 없이, 기존에 예정되어 있던 방문일보다 일찍 찾아와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다른 걸 원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게 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허나 기업 차원에서 깍듯하게 모시는, 그런 귀빈대접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최 비서는 그렇게 판단했고, 그래서 아직 회사에도 보고를 올리지 않았다.

“으음··· 라이너 호텔로 가고 있던 중입니다만, 길이 조금 헷갈리는군요.”

최 비서의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던 마르케시.

어찌됐거나 길을 잃어버려 곤란한 상황인 것은 사실이었기에, 그는 조심스레 목적지를 말했다.

“···라이너 호텔 말입니까?”

그 말에 최 비서는 의외라는 기색을 보였다.

라이너 호텔이라고 한다면, 알고 있는 곳이다.

물론 거기서 묵은 적은 없지만, 호텔이 있는 라이너 빌딩에는 요 근래 두어 번 다녀온 적이 있었으니까.

“혹시 천마안마에도 가시는 건지···”

“오, 맞습니다!”

최 비서의 말에 손뼉까지 치며 반응하는 마르케시.

낯선 사람의 입에서 자기가 아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인지, 그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나타나는 동시에 약간 남아있던 경계심이 스르륵 허물어졌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거 신기하네요!”

“하하··· 저도 조금 인연이 있는 곳이라.”

천마안마라는 단어 하나로 확 바뀐 모습에, 최 비서는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췄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꺼낸 말이었는데, 생각 이상의 반응이 나온 것이다.

‘거기 원장님은 무슨 마약인가?’

천마안마. 다름이 아니라 그가 보좌하고 있는 장태현 회장이 요 근래 매우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안마원의 이름이다.

최근에 알아서 아직 방문 횟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바쁜 일정 중에도 꼭 예약을 잡아두고 꾸준히 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향후 오랜 단골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근데 인도에서 어떻게 알고 온 건지···’

본래 소문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빠르게,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것이라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국경과 바다를 넘어 인도까지 닿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수준이 아닌가. 지금이 글로벌 시대라고는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최 비서는 한 차례 목을 가다듬고는, 조심스레 마르케시에게 물었다.

“근데, 천마안마는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아, 제가 거기 마스터··· 아니, 선생님이랑은 개인적인 친분이 좀 있어서 말이죠. 한국에 온 김에 들렀다가 가려고 합니다. 하하하!”

이어진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인도 재벌과의 개인적인 친분이라니.

대체 어떻게 생긴 친분이란 말인가.

‘생각 이상의 거물인 건가···?’

뭔가 따로 인연이 있었던 걸까.

국내 기업들과 접점이 딱히 없는 인물이라 정보수집조차도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최 비서였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저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좀 들어서요.”

넌지시 말을 건네는 마르케시.

그 말에 최 비서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지금의 상황이었지, 마르케시와 강태한 사이의 인연을 추측해보는 것이 아니었다.

“어찌됐거나, 잘 됐군요.”

최 비서는 자연스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마침 사우나나 갈까 하던 참이었거든요.”

“사우나··· 말입니까?”

“예. 그곳 빌딩 꼭대기에 사우나가 하나 있는데, 한강이랑 도시풍경을 보면서 목욕을 할 수 있거든요.”

“오··· 그게 정말입니까?!”

생각대로의 반응을 보이는 마르케시.

곧바로 흥미를 느꼈는지, 최 비서에게 되묻는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같은 빌딩이니까, 가는 김에 안내해드리죠.”

“좋습니다! 크흐, 정말 친절하시군요!”

먼저 앞장서듯 걸음을 내미는 최 비서.

처음 갖고 있던 경계심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진 모습으로, 마르케시는 그 옆을 따라 같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 * *

“···어때?”

“음··· 처음에 약간 느낌이 오는 것 같긴 했는데.”

진중한 목소리로 물어보는 남자.

그 질문에 또 다른 남자, 바트 포스터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다소 시큰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이것도 뭔가 좀 아쉽네.”

“좀 그렇지?”

이곳은 에버튼FC 훈련센터의 휴게실.

그리고 바트 포스터가 앉아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안마의자였다. 몇몇 선수들의 제안과 추천으로 이번에 새로 들여온 물건.

“뭐랄까··· 내 몸이 꿰뚫리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결정적인 자극이 없어.”

허나 선수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뭔가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마사지 마스터의 솜씨와 비교하자면 아예 비슷한 느낌도 들지 않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역시 마스터의 손길을 다시 느껴보려면 한국에 다녀오는 수밖에 없는 건가.”

강태한이 영국에 직접 찾아와 안마를 해줬던 이후.

선수들 모두가 효능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고, 곧이어 자연스럽게 그 손길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선수로서 더 좋은 컨디션으로 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당시에 척추를 타고 흘러드는 게 느껴졌었던, 소위 시원함이라 불리는 그 강렬한 자극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허나 그러려면 한국에 다녀오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요 근래 경기 일정도 빡빡하게 잡혀있는데다, 구단 내부에서의 스케줄도 많은지라 아무도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나름의 대체품을 찾기 위해 영국 내 다른 마사지샵들도 다녀보고, 이렇게 안마의자를 사서 사용해보기도 했지만···

“이런 걸로는 날 만족시킬 수 없다고.”

기준이 너무 높아진 탓에, 만족을 할 수가 없다.

영국에선 파는 곳이 별로 없어 나름 힘들게 구한 물건이지만, 결국 애물단지가 되어버릴 모양이었다.

“···심호흡이 답인건가?”

바트 포스터와 함께 있던 선수는, 휴게실의 구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

거기엔 요가매트를 깔고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이보르와, 그 옆에 횡대로 주르륵 앉아 똑같은 자세를 하고 있는 다른 선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가부좌인가 뭔가 하는 딱 봐도 불편한 자세로 앉아있는데, 본인들은 저게 편하다나. 하루 일과처럼 매일 훈련이 끝나면 저렇게 앉아 삼십 분 가량의 시간을 보낸다.

원래는 이보르를 따라서 한 서너 명 정도만 저러고 있었는데, 요즘은 꾸준히 하는 녀석들만 열 명이 넘는 수준.

“하··· 혹시 마스터 강이 만드는 안마의자는 없나.”

“있으면 무조건 구매해와야지.”

바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이듯 말했다.

“나는 열 개 살 거다.”

“···뭐하러 열 개나 사냐?”

“일단 여기에다가 개인용으로 하나 놓고, 집에도 하나 놓고, 별장에도 하나 놓고··· 부모님 드리고··· 할아버지랑 할머니도 드리고···”

손가락을 세며 후보를 하나씩 말하던 바트.

그러다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지,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 다섯 개만 사야겠다.”

“다섯 개도 많다고.”

동료의 핀잔에 바트는 어깨를 으쓱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쨌거나, 그런 거라도 좀 있으면 참 좋겠네.”

“그러게··· 혹시 한국 걸 사보면 좀 다를까?”

“이거랑 비슷하겠지, 뭐. 한국 거라고 해서 마스터 강이 개발하는 건 아니잖아?”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만.

만날 수 없기에 더욱 간절해지는 것도 있는 법이다. 바트는 다음 달에나 잡혀있는 천마 예약을 생각하면서, 안타까움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원하는 물건은 이미 세상에 나와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 * *

“워허허, 한국은 예의에 엄격한 문화라 들었는데.”

이제 막 사우나에 들어온 마르케시.

안쪽을 돌아보던 마르케시는, 의외라는 듯한 얼굴로 털털한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보다 개방적이기도 하군요!”

모두가 시원하게 벗고 다니는 사우나의 모습!

다른 국가에서도 이런 대규모 목욕시설은 몇 번 이용해봤지만, 대부분 수건이라도 감싸고 다니기에 이런 건 나름 생소한 광경이었다.

“뭐 저희 목욕탕 문화는 이런 게 기본이니까요. 근데,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습니다?”

“타국에 가서 색다른 문화를 즐기는 것! 그게 여행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물론 좀 신기하긴 합니다만.”

최 비서의 말에 마르케시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마르케시는 눈치껏 알아서 샤워를 먼저 한 다음, 최 비서가 들어가 있는 온탕에 조심스레 몸을 담갔다.

“으하아아···”

그리고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탄성.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국경과 문화를 넘어선 인류의 공통점이다. 마르케시는 노곤한 표정으로 한동안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렇게 좀 있었을까.

문득 생각이 나 정면의 통유리를 쳐다보니, 드넓은 강과 함께 맞은편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좋군.’

높은 고층 빌딩에서 즐기는 목욕, 혹은 물놀이.

그 자체는 마르케시도 몇 번 즐겨본 컨텐츠였지만, 그래도 언제 해봐도 각별한 맛이 있다.

게다가 여행 중이라 그런지 좀 더 색다른 느낌.

생각보다 높은 만족도에, 마르케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사우나를 마치고 난 후.

“이거, 드시겠어요?”

이제 막 옷을 입고 나온 마르케시에게, 최 비서가 특이하게 생긴 음료수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한 번 드셔보시죠.”

마름모꼴로 생긴 플라스틱 통에 담긴 노란 음료.

위에 덮인 마개를 뜯고, 조심스레 한 모금 마시니.

“···오?”

한 마디 탄성을 터트리더니, 순식간에 한 병을 비워냈다.

“흐아아!”

목욕을 마치고 나면, 겉으로는 언뜻 촉촉해 보이지만 몸속의 수분이 빠져나가 속으로는 갈증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흘러들어오는 차가운 당분의 물결.

뜨겁게 달궈져있던 몸이 식혀지는 동시에, 달달한 당분이 몸 곳곳으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진다.

“이게 무슨 음료입니까?”

“바나나 우유라고 하는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목욕탕에 오면 꼭 마시는 음료에요.”

“···그렇군요. 꼭 마실만합니다.”

이걸 어디서 살 수 있는 걸까.

한 병 더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마르케시.

“···저건 뭡니까?”

그러던 와중, 바나나 우유를 파는 곳은 찾지 못했지만 흥미로워 보이는 뭔가를 찾아냈다.

구석에 놓여있는, 무슨 우주선 조종석처럼 생긴 큼지막한 의자. 거기에 앉아있는 남자는 세상 노곤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중간마다 몸이 꿀렁 움직이고 있었다.

“아··· 저건 안마의자입니다.”

최 비서가 저걸 몰라볼 리가 없었다.

그 안마의자는 다름 아닌 바디케어의 신제품, 안마의자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더 마이스터’였으니까.

“제가 알고 있는 안마의자보다 훨씬 화려한데요?”

“이번에 한국에서 굉장히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최신 모델인데··· 아마 체험을 해볼 수 있도록 따로 배치를 해놓은 모양이네요.

본인도 이게 왜 여기 있나 싶기는 했지만.

안마의자 옆에 세워진 팻말을 읽고 이내 상황을 파악한 최 비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흐음.”

요 근래 들어 마사지라는 것에 큰 관심이 생긴 마르케시. 때마침 이용시간이 끝났는지, 앞서 이용하던 남자가 자리를 비웠다.

‘뭐 그렇다고 다른 안마의자랑 엄청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번 체험해봐서 나쁠 건 없겠지.

마르케시는 흥미로워하는 얼굴로 천천히 다가가, 비어있는 안마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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