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133화 >
“흐음···”
마르케시는 왼손으로 턱을 괸 체, 침음을 삼키며 마우스의 스크롤을 슥슥 내렸다. 화면에는 대청건설에서 제출한 포트폴리오와 기타 세부사항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확실히 나쁘지는 않아.’
기존 설비를 대폭 확장하고 대규모 플랜트를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 최소 몇 천 억 단위가 움직이는 대형 프로젝트고, 그렇다보니 수주를 따내기 위해 각국의 쟁쟁한 기업들이 참가했었다.
그리고 지금 이 문서의 명단에 올라와 있는 건 그 쟁쟁한 기업들 사이에서 최종적으로 남은 기업들.
이 후보들 사이에서 대청건설이 최고는 아니었지만··· 협상의 여지에 따라선 얼마든지 순위가 뒤바뀔 수 있는 수준이다. 솔직히 서로 엇비슷하여 어느 선택지를 골라도 크게 문제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야···’
대청건설 쪽과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따로 협상을 진행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가 아닌가? 좀 변덕스럽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본인이 직접 방문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비즈니스에서 소통은 굉장히 중요하니까.”
마르케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스스로 납득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설령 계약은 다른 곳과 맺는다고 하더라도, 대청건설과 개별적으로 만남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다른 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자극하는 요소가 될 테니까.
“기왕 한국으로 가는 김에··· 마스터에게 안마도 받을 수 있을 테고 말이지.”
그러면서 슬쩍 튀어나오는 본심.
결국 대청건설로 눈길이 가는 건, 이 지극히 사적인 욕망 때문이었다.
물론 플랜트 건설 프로젝트도 대단히 중요하고, 업체들과의 소통도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고 싶다는 것이 메인이다.
일전, 마스터 강은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기존 예약을 무시하고 따로 손님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개인적인 손님의 경우에는 퇴근시간 이후에 시간을 내서 봐드릴 수 있다고.
그러니까 한국에 오게 되면 한 번쯤 들러달라고.
‘그렇다면 안 들를 수가 없지.’
후보군에 올라와있는 업체 중 어느 업체를 골라도 크게 문제는 없다. 계약을 체결하는 게 아니라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기왕 해외로 출장을 나가는 거, 사적인 욕심까지 챙길 수 있는 쪽이 더 좋지 않겠는가? 그야말로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턱 부근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마르케시.
생각은 길지 않았다. 평형을 이뤘던 저울대에 무게추가 더해지면, 저울은 바로 기울어지는 법이니까.
그는 곧바로 결심을 마친 얼굴로 한 차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테이블 위의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응, 나야.”
[예. 듣고 있습니다, 회장님.]
“대청건설 쪽이랑 약속 좀 잡아줘. 이번 플랜트 프로젝트 건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일정이랑 장소는 어디로 할까요?]
“기존 스케줄이랑 겹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빠르게. 장소는 대청건설 쪽에서 정해달라고 해야겠지.”
[······]
비서의 대답이 잠깐 늦었다.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다른 부분이 좀 있어, 말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혹시 회장님께서 직접, 한국까지 가셔서 대청건설 쪽과 이야기를 나누시겠다는 겁니까?]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상대방에게 어지간한 수준의 메리트가 있지 않는 한, 대부분의 비즈니스 상황에서는 돈을 주는 쪽이 돈을 받는 쪽보다 우위에 선다.
이번 프로젝트 같은 경우에는 당연히 이쪽이 전자고 대청건설은 후자, 그 중에서도 후보일 뿐이다. 그런데 마르케시가 직접 상대방을 만나겠다는 것.
솔직히 말해 일반적인 경우와는 살짝 거리가 떨어져 있는 일이었기에, 비서가 되묻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준비해줘.”
다만 비서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하나는 마르케시가 출장을 핑계로 당당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것과, 한국에는 마사지 마스터, 강태한의 가게가 있다는 것이었다.
* * *
“하하, 원장님께는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라이너 호텔의 총지배인을 맡고 있는 곽상영.
호텔 내 이태리 레스토랑에 앉아있던 그는, 조그맣게 웃음을 터트리며 새삼스레 감사를 표했다.
“사실 반쯤 포기할까 했었는데, 원장님 덕분에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네요.”
“별 말씀을. 저는 그냥 소개만 시켜드렸는데요.”
그 말에 강태한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라이너 호텔은 빌딩을 설계할 때부터 꼭대기 층의 사우나와 그 아래층의 피트니스 센터를 염두하며 힐링적인 부분을 강조한 곳이었다.
통유리 너머로 시티뷰와 리버뷰를 보며 즐길 수 있는 사우나와 피트니스 센터를 주요 세일즈 포인트 중에 하나로 삼았던 것.
실제로 이런 시설들이 SNS에서 조명을 받고, 예상치 못했던 대박요소인 천마안마도 화제가 되면서, 라이너 호텔은 요 근래 힐링과 호캉스의 대명사 같은 곳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런 힐링적인 부분을 더욱 강조하고자, 스위트룸 이상의 프리미엄 객실에 힐링스페이스라는 컨셉 공간을 조성해두자는 기획이 통과되었는데···
막상 기획을 실행에 옮기려고 하니, 시작부터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힐링스페이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안마의자를 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기획을 짤 때만 해도, 품귀현상이 이렇게까지 심한 줄은 몰랐었거든요.”
요즘 안마의자 열풍을 이끌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바디케어의 신제품, ‘더 마이스터.’
부모님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고, 오죽하면 백화점의 체험 코너에서도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하는 수준이라는 모양이다.
그렇기에 이번 기획의 핵심이라 해도 무방했는데, 정작 그 알맹이를 구할 수가 없었던 것.
‘으음··· 한 번 소개라도 드려볼까요.’
그런 상황에서 도움을 준 것이 강태한이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면서, 바디케어의 윗사람들과 직접 연결을 시켜줬던 것.
덕분에 홍보기획 차원에서의 대여개념으로, 라이너 호텔 쪽은 원래 생각해두고 있었던 예산보다 훨씬 저렴한 수준으로 기획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뭐 구체적으로 도움을 준 건 바디케어 쪽 분들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만, 결국 강 원장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중간하게 끝날 기획이었던 것도 사실이죠.”
곽상영은 강조하듯이 덧붙여 말했다. 딱히 빈 말로 꺼낸 것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리고, 저희를 도와주신다고 해서 원장님이 얻으시는 이득이 딱히 없는 상황이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고마워할 수밖에요.”
“뭐,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 말에 강태한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로열티를 받고 있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예. 홍보가 되고 잘 팔리게 된다면야, 저도 크게 나쁠 건 없지 않겠습니까. 바디케어 쪽도 그런 생각으로 기획에 도움을 준 걸 테고요.”
물론 어쩌면 이번 기획으로 호텔에서 천마안마를 찾아오는 손님이 조금은 줄어들지도 모르겠으나··· 그건 정말 새 발의 피에 불과한 수준이니까.
애당초 요즘에는 일반코스에서도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손님들이 몰리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직원들에게는 오히려 반길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하, 원장님에게 그렇게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하군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곽상영.
“그래도 나중에라도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십시오.”
하지만 그것과 자기가 느끼는 감사는 별개다.
곽상영은 깍지 낀 손을 테이블 위에 올리며,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 *
한편, 그렇게 강태한과 점심식사를 마치고 난 후.
“어떻습니까? 매니저님.”
“생각했던 것보다도 괜찮은데?”
그는 호텔의 스위트룸 중 한 곳에서 정리가 끝난 힐링스페이스를 직접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객실들 중에서 가장 먼저 완성된 곳이었다.
“딱히 겉도는 느낌도 아니고.”
가까이에서 한 번 살펴봤다가, 멀리 떨어져서 다시 유심히 살펴보는 곽상영.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안마의자의 크기가 있는 만큼 기존 객실 인테리어와 잘 어울릴까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제품 자체의 디자인이 나쁘지 않은 덕분인지 어색하거나 겉도는 느낌은 딱히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이게 그 화제의 안마의자인가···”
기존 분위기와 어울리는지 확인을 하고 난 이후.
그의 관심은 자연스레 안마의자로 옮겨졌다. 지금 이 안마의자가 얼마나 인기 있는 몸인지는 품귀현상과 직접 맞닥뜨리면서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솜씨가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지?”
“저도 저번에 백화점 갈 일이 있었는데, 한번 체험이라도 해볼까 해서 가봤더니 번호표가 한참 밀려있더라고요.”
옆에 서있던 직원이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체험은 해봤어?”
“아뇨. 그냥 집으로 돌아왔죠.”
“그렇구만···”
그렇게까지 줄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호기심과 기대차기 있다는 것이다. 품귀현상으로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니 더더욱 그렇겠지.
“어쩌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성공적인 기획이 될 수도 있겠는데.”
그런 안마의자를 객실에 도입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홍보효과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실제로 SNS에 이 사실을 게시하자마자 문의전화가 쉴 새 없이 들어왔다는 모양이고 말이다.
“읏차.”
그러면서 곽상영은 자연스레 안마의자에 앉았다. 과연, 고급스러운 시착감이 등 뿐만 아니라 온몸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한 번 해보시게요?”
“어느 정도인지 확인은 해봐야하지 않겠어?”
총지배인으로서 각 시설의 만족도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두는 것은 필수적이다.
물론 거기에다가 개인적인 호기심까지. 곽상영은 싱글거리는 얼굴로 옆에 놓인 리모콘을 들고, 전원버튼과 실행버튼을 차례대로 눌렀다.
“야, 첫 느낌부터가 뭔가 다르긴···”
시작과 함께 가볍게 아래에서부터 위로 척추를 훑고 지나가는 볼 센서. 뭔가 본격적인 그 느낌에 한참 미소를 짓고 있던 곽상영이었으나.
“···어흑?!”
안마가 시작되고, 곧바로 굳어있던 곳을 단단한 롤러가 문대는 순간, 그의 입에선 당혹감이 잔뜩 서려있는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어허, 어허허!”
어깨와 등 곳곳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자극!
자기도 모르고 있던 뭉쳐있는 근육들을 일일이 찾아내고 짚어내, 풀어헤치고 있는 느낌이다.
이 느낌.
어딘가에서 느껴본 적이 있다.
다름 아닌 강태한 선생님의 느낌이다.
물론 마치 신경을 꿰뚫는 듯한 솜씨나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어버릴 정도의 강렬한 자극은 없고, 강 선생님의 손길에 비하면 한참 밋밋했지만···
기본적인 부분에서 미묘하게 그 느낌이 배어나오는 것 같다고 할까.
‘약간··· 강 선생님의 순한맛 같은 느낌.’
아주 많이 순하긴 하지만.
그 덕분인지 고통보다는 편안함이 훨씬 더 크다.
차근차근 느슨하게 풀어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아아아···”
시간이 좀 지나니 팔다리와 발바닥에까지 지압이 들어가고 있는 상황. 이젠 전신에서 느껴지는 안락함에, 곽상영은 노곤하게 늘어진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좀 쉬고 싶은 기분.
허나 그렇게 늘어져있던 찰나.
“매니저님, 이제 슬슬 움직이셔야죠.”
“···엉?”
옆에 있던 직원의 말에, 곽상영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괜히 방해를 받은 듯한 기분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왜. 한 시간 정도 여유 있잖아.”
“그··· 지금 사십 분이 지났습니다.”
“···엉? 뭔 소리야.”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끽해야 십 분이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곽상영.
허나 그의 눈은 곧 동그랗게 뜨였다.
“진짜네?!”
곽상영은 화들짝 놀라며 허겁지겁 안마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빨리 지나가있었던 것이다.
“와··· 이거 물건이네, 물건.”
급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그는 감탄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왜 사람들의 체험 후기가 그렇게 좋았는지.
그리고 체험 코너에서 왜 굳이 한 사람 당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해뒀는지 알 것 같았다.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겠어.’
그리고 왜 구매율이 높은지도.
곽상영은 곧바로 ‘나도 집에 한 대 사둘까’하는 생각과 함께 ‘할부금은 한 달에 얼마씩 내면 되지’를 떠올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에이원, 은퇴는 의혹일 뿐? 콘서트 예매 재시작]
[‘기다려준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에이원의 성대결절 의혹과 고난,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야기.]
“에이원 씨, 성대결절은 잘 회복한 모양이네요.”
강태한이 읽고 있던 인터넷 기사를 슬쩍 쳐다본 유세아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예. 그런가 봐요.”
그 말에 강태한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개인적인 뿌듯함도 함께 섞여있는 미소였다.
“지난번에 취소됐던 콘서트도 다시 진행하나 봐요. 취소되고 이틀인가 만에 다시 문자가 왔었거든요.”
“잘 됐네요.”
“그러니까요. 환불절차도 계속 진행한다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다 유세아는 뒤늦게 떠올랐다는 듯 강태한을 보며 덧붙이듯이 말했다.
“아! 물론 집들이도 갈 거예요. 콘서트 끝나고 가도 되고, 다음 날 가도 되고··· 하하하.”
하지만 말하면서 괜히 쑥스러워졌는지, 유세아는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녀를 지켜보던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긴 한데, 표는 환불해도 될 것 같아요.”
“어··· 혹시 콘서트, 가기 싫으세요?”
“그건 아니고 따로 받은 게 좀 있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 강태한은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더니, 곧 유세아 쪽으로 화면을 돌렸다. 화면에는 예매 내역 같은 것이 나와 있었다.
“에이원 초봄 콘서트 VVIP석···이요?”
담담한 목소리로 읽던 유세아의 목소리가 뒤늦게 당황의 기색을 띄었다. 그녀의 반응에 강태한은 미소 띈 얼굴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