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131화 >
“그래.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안마나 한 번 받고 온다는 생각으로 다녀오자고. 안 그래도 너 요새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느라고 피로도 좀 쌓였잖아.”
백미러로 박시준의 반응을 살펴본 매니저가 털털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대결절도 나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은, 일부러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솔직히··· 본인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아무리 솜씨가 뛰어나다고 해도, 어디 팔다리나 두통이면 모를까, 안마로 성대를 치료하는 모습은 상상으로도 잘 떠오르질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심정.
그저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일단은 예약을 잡아뒀을 뿐이다.
“한동안은 스케줄도 없겠다, 이참에 안마도 받고 머리도 식히고, 며칠 푹 쉬자고. 알았지?”
그렇기에 무턱대고 희망적인 말은 할 수 없다.
박시준은 이미 반쯤 포기하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한 번 더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가 다시 실패하게 되면··· 오히려 동생한테 몹쓸 짓을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식이면 나보다 형이 받아야하지 않아? 여기저기 다니는 거 다 따라다니고, 운전까지 했잖아.”
“하하, 야 임마. 누굴 걱정하냐? 형은 너 일하는 동안 알아서 잘 쉬고 다녀. 틈틈이 사우나도 가고, 공기 좋은 데서 산책도 좀 하고.”
그 말에 박시준은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말은 그렇게 해도 뒤에서 이것저것 봐주느라 맨날 바쁘게 돌아다닌다는 걸 알고 있는 박시준이다. 그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동안 이어지는 침묵.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났을까.
“···다 잘 될 거다, 시준아.”
매니저는 아까 전과 다르게 조금 진중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박시준은 턱을 괸 채로 매니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싱긋 미소를 지었다.
“형이 그 말하는 거 되게 오랜만이네.”
“엉? 내가 예전에도 이런 말을 했었나?”
“나 무명시절에 주구장창 했었던 말이잖아.”
“어···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 말에 매니저는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긴, 그때는 잘 돼야만했지. 격려가 아니라 세뇌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땐 우리 차 기름 값도 아껴 써야하던 판이었잖아.”
한참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
옛날이야기에 미소를 짓고 있던 박시준은, 다시 창가에 머리를 기대며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좀 잘 풀렸으면 좋겠는데.”
반쯤 포기하고 있는 심정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계속 시큰둥한 반응만 보이던 박시준은, 저도 모르게 본심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 * *
“태한 씨도 참 대단한 사람이란 말이지.”
천마안마의 안쪽에 위치한 사무실.
잠시 작업을 멈추고 신문을 읽고 있던 황 실장은, 새삼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가요?”
한편 반대편 쇼파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강태한. 그는 양쪽 눈을 천천히 뜨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뭐라고 해야 되나, 한결 같다고 해야 하나? 사람이 잘 되면 좀 느슨해지고 게을러질 수도 있을 텐데, 태한 씨는 처음 만났을 때랑 바뀐 게 별로 없잖아.”
황 실장은 천마안마의 사무적인 부분을 대부분 담당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가게의 매출도, 거기서 어느 정도 수익이 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천마안마는 가게의 위치도 좋고, 게다가 본인이 소유한 가게이기 때문에 임대료의 부담도 없다.
게다가 강태한의 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요즘엔 장인코스부터 일반코스까지 모든 안마사들의 실력이 출중해져 항상 손님들의 예약이 끊이지 않는 수준.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장사가 매우, 아주 잘 되는 가게고,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강태한에게 들어가는 수익도 상당한 편이다.
그러면 원래 긴장이 좀 풀어지고, 예전보다 쉬엄쉬엄 일하고 싶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다. 실제로 대다수의 사장들이 가게에 안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딱 이때쯤의 일이기도 하고.
허나 그럼에도 강태한은 황 실장이 처음 봤을 때랑 똑같이, 꼬박꼬박 아침에 나와서 저녁까지 손님을 받고 나서 퇴근할 뿐이었다.
“참 신기하고 대단해.”
게다가 이번에는 바디케어의 신제품 개발에 기술고문으로 참가했고, 게다가 그 제품이 품귀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진 못했지만, 그래도 일단 대기업과 진행한 일이고, 거기에다 로열티까지 나온다고 했으니 아마 억 단위의 액수일 것이다.
스스로 자만하기에는 충분한 금액.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이십대의 나이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성실하게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 황 실장으로서는 새삼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실의 극치라고 할까.
“글쎄요···”
반면, 강태한은 쇼파에 등을 기대앉으며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성실해서 그러는 건 아닌데.”
“그럼 뭔데?”
“그냥 직원들이 열심히 해줬으면 해서 그런 거죠.”
강태한은 어깨를 으쓱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지시하기 위해선, 자기 자신부터가 모범을 보여야한다. 자기 일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의 지시엔, 아무래도 힘이 실릴 수가 없는 법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강태한이 직원들에게 자주 지시를 내리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본래 우두머리가 평소 보여주는 모습 자체가, 그룹에 속한 다른 이들에게는 암묵적으로 따라가야 할 지표처럼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하긴, 실제로 그런 효과가 좀 있기는 하지.”
안마원은 기본적으로 살짝 느슨한 분위기가 있다.
일단 안마사 자체가 고용이 아니라 계약 관계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조건에 따라 다른 가게로 옮기는 경우도 잦기에 자연스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일을 하는 틈틈이 쉬어줘야 하기에, 업무와 휴식의 경계선이 약간 모호해질 수밖에 없는 편.
헌데··· 천마안마에서는 딱히 그런 분위기가 없었다.
일단 강태한이라는 안마사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느낌에다, 주기적으로 수업까지 진행하다보니 자연스레 안마사들 사이에 소속감이 형성된 듯하다.
그렇다보니 업무에도 다들 진지한 느낌.
휴게실에서는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하지만, 휴게실 문 밖으로 나설 때는 기어를 바꾸고 나서는 것처럼, 다들 긴장을 조이고 진지하게 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거 자체가 태한 씨가 성실하다는 뜻이 아니겠어?”
윗사람일수록 모범을 보여야한다.
이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단지 알고만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실제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인 것이다.
“원래 사람이 성공했을 때 보여주는 모습이 그 사람의 본모습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말이야.”
황 실장도 그런 사람을 몇몇 알고 있다.
힘들 때는 세상 착한 척은 다 하더니, 돈 좀 만지고 나서는 갑자기 태도가 싹 바뀌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실제로 봐왔었기에, 강태한이 더욱 신기해 보이는 것이다.
“흠··· 실장님 말대로라면 아직 모르는 거죠.”
반면, 황 실장의 말에 강태한은 공감을 못하겠다는 듯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성공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어···?”
그런가?
강태한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말한 탓일까, 황 실장은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에 강태한은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손님 오실 시간이니, 먼저 나가볼게요.”
“아? 아, 그렇지. 이따가 보자고.”
“예. 고생하세요, 실장님.”
살짝 목 인사를 건네고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강태한. 사무실에 혼자 남은 황 실장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성실한 게 아니라··· 그냥 그릇이 큰 거였나?”
새롭게 떠올린 생각에, 황 실장은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노트북을 펼치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장의 생각이 그렇다면야, 자신도 거기에 맞춰나갈 필요가 있었다.
* * *
“···깔끔하고 좋기는 하네.”
영등포 당산동에 위치한 라이너 빌딩.
그곳의 천마안마에서 안마사를 기다리고 있던 박시준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짤막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근데 소문난 장인 같은 느낌은 아니지 않나?”
그가 막연하게 떠올렸던 인상은 시골의 오래된 침집처럼 조금 낡았어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약간 은둔고수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보다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에 가까웠다.
“···하긴 수상해 보이는 것보단 이게 낫겠다.”
적어도 만병통치약이라며 이상한 생수를 마시라고 하거나, 조상님 제사를 소홀히 지낸 탓이라는 헛소리는 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일단은 편안한 마음으로 침대에 좀 누워있었을까. 시간이 좀 지나자, 방문이 열리며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어··· 아, 안녕하세요.”
겉보기로는 그냥 건장해보일 뿐, 별다른 특색이 없었지만.
‘좀··· 뭔가 다른 것 같기도.’
직접 눈을 마주치는 순간, 박시준은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고 말았다. 뭐라 딱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비범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흐음···”
한편, 잠시 물끄러미 박시준을 쳐다보던 강태한.
“오늘 날씨가 좋네요.”
“예, 그러게요. 슬슬 봄이 오나봅니다.”
괜스레 한 번 더 말을 걸어본 강태한은, 박시준의 대답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에 문제가 있으신 모양이네요.”
“···예?”
목소리 중간에서 미세하게 들려오는 거친 음색.
한 번 더 들어보고 확신을 가진 강태한은, 박시준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그렇게 말했다.
‘그걸 어떻게 바로 알았··· 아.’
순간 당황했다가 다른 가능성을 떠올린 박시준.
하긴, 자길 알아봤다면야 성대결절이 있다는 사실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저 아시나 봐요?”
“···차수원 씨셨죠, 아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하는 강태한. 그 말에 박시준은 순간 멈칫했다. 차수원은 여기에 예약을 한 매니저 형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크흠, 저 모르세요? 에이원이라고···”
“아··· 그렇네요.”
그제야 알아본 듯, 강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듣고 보니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럼 일단은 좀 엎드려보시겠어요?”
“아··· 네!”
허나 강태한의 반응은 거기서 끝이었다. 안마를 하는 데에 그가 차수원인지 에이원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으니까.
‘아이씨··· 괜히 나서가지고.’
강태한의 말에 얌전히 엎드리는 박시준. 그러는 동시에 그의 얼굴은 눈에 띄게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괜히 연예인병에 걸린 것처럼 행동한 꼴이 된 탓이다.
‘그럼 어떻게 알아낸··· 어?’
헌데 자길 알아본 게 아니라면, 목이 안 좋다는 걸 어떻게 알아낸 걸까. 그런 의문을 품던 와중에.
박시준은 순간 생각을 멈추고, 갑자기 등에서부터 흘러들어오는 따스한 온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치 등에서부터 따뜻한 온수가 흘러들어오는 듯한 느낌. 저도 모르는 사이에 노곤하게 몸이 풀어지는 그 감각에, 박시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흐음.”
한편, 그의 몸 상태를 살피고 있던 강태한.
기감을 펼쳐 한 차례 몸을 훑어본 그는 평소와 다르게 왼손을 뻗었다. 그러곤, 박시준의 목 부근에 마치 맥을 짚는 것처럼 조심스레 손가락을 댔다.
‘확실히 콘서트를 할 만한 상황은 아니군.’
뒷목의 중심에 위치한 아문(啞門)혈에서부터 목 아래의 대추(大椎)혈까지 이어지는 여러 갈래의 혈도.
얼핏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갈래의 혈도들에 중간에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진 흔적들이 있었다.
어쨌거나 혈도가 다시 이어진 만큼 생명활동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겠지만··· 그게 목이고, 더군다나 노래를 업으로 삼는 이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혈도 쪽 문제는 잘 아물었지만, 정작 목 안쪽의 성대가 왜곡된 상태로 회복되어버린 모양이야.’
성대는 목 안쪽에 위치한 굉장히 얇은 근육으로, 목소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기관이다.
다른 부위라면 아무런 이상이 없을 정도의, 그냥 살짝 베였다가 아물면서 생긴 흉터정도의 흔적이지만, 성대 같은 경우에는 그것만으로도 목소리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흐음. 조금 까다로울지도 모르겠어.”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강태한.
그 말에, 얌전히 엎드려있던 박시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말은··· 나을 수 있다는 겁니까?”
까다로울지도 모르겠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어쨌거나 회복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냥 빈말로 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물론이지.”
왜일까. 이 선생님이 없는 말을 지어냈을 것 같지는 않다. 괜히 믿음이 가는 분위기라고 할까.
“한 번 맡겨보겠나?”
“···예.”
그렇기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박시준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젠 더 이상 시도해볼 것도 없었던 것이다.
“좋아.”
강태한은 그렇게 말하며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자의 목 아래에 위치한 혈자리 하나를 가볍게 쿡 찔렀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던 박시준. 헌데.
‘···어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목소리가 이상해졌다든가, 말이 안 나온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숨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어어어!’
저도 모르게 목을 더듬는 박시준!
그걸 본 강태한은 슬쩍 경추 쪽 혈을 하나 더 짚더니, 깜짝 놀라 목을 더듬던 박시준의 손도 스르륵 힘을 잃고 떨어졌다.
“진정하게.”
그러면서, 강태한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성대를 손봐야하는 만큼 도중에 비명을 지르거나 소리를 내면 곤란한 상황이라 말일세. 잠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조치를 취해뒀지.”
충격적인 말을 담담하게 건네는 강태한!
그 말을 듣는 박시준의 눈이 휘동그래졌으나, 방금 말했듯 목소리는 나오질 않고, 목 아래의 힘도 풀려있어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그럼, 슬슬 시작하지.”
그 말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는 강태한의 두 손.
그 손이 박시준의 척추를 짚고, 꼬리뼈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자극이 흘러들어오는 순간.
‘끄흐으으으윽?!’
박시준은 발버둥이라도 쳐야한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린 채, 머릿속에만 울려퍼지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