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129화 >
생활 가전제품으로 유명한 회사, 바디케어.
그곳에서 이번에 새로 나온 안마의자, 더 마이스터는, 그야말로 안마의자 시장에 새로운 한 획을 긋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이거 지금 사면 언제쯤 받을 수 있나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지금 전국적으로 품절 현상이 있어서··· 어림잡아 한 달 정도는 지나야 배송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인기는 품귀현상으로 매물이 부족할 지경!
각지에서 팔려나가는 속도가,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속도를 따라잡아버린 것이다.
처음 발매되었을 때는 적극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앞서가던 경쟁사, 릴렉스홈을 앞서나갈 만큼의 관심을 받진 못했으나···
[더 마이스터, 이거 진짜 장난 아닙니다.]
[역대급 만족도의 안마의자, 내돈내산 리얼후기]
[백화점에서 체험하자마자 바로 일시불로 긁어버리기?! 본격 안마의자로 힐링하는 V로그]
한 명 두명 체험을 해보고, 실제 구매 후 올리는 사용후기가 하나둘씩 화제가 되기 시작하더니, 한 유명 유튜버의 V로그를 기점으로 갑작스레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고객이 직접 체험을 해보고 난 뒤의 계약, 혹은 구매 비율은 역대급으로 높은 수준.
해당 통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평균치와 계산을 해봐도 두 배는 거뜬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런 반응들 덕분인가.
“저기요, 이거 지금 바로 앉아볼 수 있나요?”
“아··· 죄송한데 지금 고객님들이 좀 밀려계셔서요. 일단은 여기 키오스크에 대기 등록해두시고, 잠시 후에 다시 와주시겠어요?”
“안마의자 체험으로 번호표도 뽑아요?”
“예. 요 며칠 동안 줄이 너무 길어져서, 백화점 이용에 방해가 된다는 말이 나와서요. 양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객님.”
백화점에 마련되어 있는 안마의자 체험 코너는 물론이거니와, 전국 곳곳에 있는 바디케어 매장에도 사람들이 몰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이 태반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줄을 서는 것도 한계가 있어 번호표를 배부할 정도. 뿐만 아니라, 백화점 같은 곳에서는 한 사람당 체험 시간을 최대 10분으로 제한해놓았을 정도였다.
“후후후.”
그리고 이런 현재 상황을 확인한 대청그룹의 회장, 장태현. 바디케어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방금 막 훑어본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안마의자는 예전부터 시장이 꾸준히 성장해오고 있는 아이템 중에 하나다. 원래도 수요가 꽤 있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건강과 힐링 쪽으로 쏠리면서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
특히 ‘부모님이 받고 싶은 선물’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던 현금을 밀어냈을 정도로, 효도상품으로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허나 그런 상황에서 시장 점유율은 점점 떨어지고 매출마저도 시원찮은 상황이었기에, 괜히 속이 쓰려오고 있었는데···
“엄청나구만. 기대 이상이야!”
보고서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보아하니, 바디케어의 안마의자 사업이 부활한 것으로도 모자라 완전히 시장에서 대세가 될 모양이었다.
단순히 분위기가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 숫자로 나와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 자체가 그랬다.
“강 선생님에게 감사표현을 좀 해야겠는데.”
원래도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기는 했다.
중요한 기술고문이라고는 해도, 그룹의 회장이 직접 영입을 나서는 건 평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 정도로 강태한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인데.
이건 그가 기대하고 있던 것, 그 이상의 결과였다.
시장의 선두를 되찾은 것으로도 모자라 몇 세대를 앞서나간 수준이었으니까.
“사업적으로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말이지.”
장태현은 잠시 머리 위로 손을 올리더니, 정수리 쪽을 톡톡 두드렸다. 두피를 타고 전해지는 자연스러운 머리카락의 촉감. 오랫동안 황폐했던 그곳은 풀이 자라나는 풍요로운 땅이 되어있었다.
아직 숱이 좀 모자라긴 하지만··· 그래도 순조롭게 머리카락이 자라나더니, 이젠 가발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까지 도달한 것.
오래간만에 가발을 쓰지 않고 출근을 했을 때, 정수리에 느껴지는 산뜻한 공기에 얼마나 감격을 했었던가. 장태현은 흐뭇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렇지.”
그러다 문득 뭔가 떠오른 듯, 그는 가볍게 손뼉을 치며 의자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혹시 강 선생님의 부모님들에게 따로 선물을 보내드리는 건 어떻겠나? 선생님이라면 그 쪽을 더 좋아하실 수도 있겠는데.”
원래 본인보다 주변 사람들을 챙겨줄 때에 더 큰 감동을 느낄 때도 있는 법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쪽이 훨씬 효과적일 수도 있는 방법.
허나 그 말에 최 비서가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태블릿PC에서 어떤 문서를 찾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바디케어 복지팀 쪽에서 기획 하나를 진행했었는데··· 그때 강태한 기술고문의 아버지께도 연락을 드렸었다고 합니다.”
“오··· 그래?”
“예. 근데 아버지께서 깔끔하게 거절하셨답니다.”
최 비서의 말에 장태현은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납득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께서도 비범하신 분인 모양이군.”
가끔 가다 보면 그런 경우가 있다.
본인은 조심하며 잘 살아왔는데, 친족이나 측근이 생각 없이 선물을 받았다가 나중에 그것 때문에 발이 묶여버리는 경우.
물론 그런 의도로 선물을 보내려던 건 아니고, 애당초 강 선생님이 딱히 공인(共人)의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기에 아무 문제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을 방지하겠다는 아버지의 마음. 그 마음이 어렴풋이 느껴지고 있었다.
“여기, 관련 내용입니다.”
“으음···”
최 비서에게 태블릿PC를 건네받고 가볍게 문서를 훑어보고 있던 장태현. 그런데 어느 부분에서 작은 의문 하나가 생겼다.
보다 정확히는, 문서에 나온 담당자의 이름이다.
“···혹시 이 이름이 문제가 되진 않았을까?”
“어떤 거요?”
“여기··· 실행 담당자의 이름말이야.”
거기에 나와있는 이름은 김미영 대리.
당연히 동일인물은 아니겠지만··· 장태현도 이 사람의 이름이 적힌 스팸 문자를 몇 번 받아봤을 정도로 그쪽에선 수상한 인물의 대명사 같은 이름이다.
“스팸인줄 알고 끊으셨다든가.”
“···에이, 설마 그렇겠습니까.”
“그렇겠지?”
천천히 고개를 젓는 최 비서와, 그에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장태현.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음에 안마 받으러 갈 때 선생님에게 슬쩍 물어봐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는 장태현이었다.
* * *
“역시 별다른 건 없구만···”
북한산에 조성되어있는 산책로.
그곳에서 한참 사진을 찍고 있던 남자는, 들고 있던 카메라를 슬쩍 내려놓으며 조그마한 한숨과 함께 탄식을 뱉었다.
“나도 특종 같은 것 좀 찍어야하는데.”
천지일보에서 촬영기자로 일하고 있는 정찬형.
그는 지금 남선공원의 산책로 풍경을 찍기 위해 이곳에 와있었다.
슬슬 날이 풀리면서 따스해지는 날씨.
봄이 오고 있다는 느낌이 확연히 느껴지고, 그래서 그런지 공원의 풍경도 한결 산뜻한 분위기다.
이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 봄소식을 알리는 기사에 같이 올리는 것이 그가 맡은 업무인데···
이 업무가 마음에 드는가, 하면 솔직히 아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이러면 평생 말단일 텐데.’
뭐라도 좋으니 눈에 띌만한 게 필요하다.
인터넷 뉴스의 메인에 한 줄이라도 띄울만한, 그런 내용이. 그런 고민을 하면서 산책로를 터덜터덜 내려오고 있던 와중.
‘···음?’
길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남녀.
남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여성 쪽은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많이 봤다고 해야 할까···
‘배우 유세아!’
그는 이윽고 기시감의 정체를 떠올렸다.
바로 배우 유세아.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쓰고 있어서 알아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보면 볼수록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건.
옆에 어떤 남자와 함께 있다는 것.
‘딱 봐도 연인 사이 같은 느낌인데?’
유명 여배우의 남자친구라.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한 기사거리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맞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일단은 사진으로 남겨두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는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응?”
헌데, 갑자기 렌즈가 뿌예서 잘 보이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정 기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렌즈를 이리저리 살피다,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여전히 뿌연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에이, 그럼 이거로라도···”
급한 대로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을 꺼내드는 정 기자. 하지만 스마트폰을 들어올리는 순간.
“억?!”
뭔가가 쭉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더니, 스마트폰이 손바닥에서 미끄러지듯 땅바닥에 떨어졌다.
“으아아악!”
아직 할부도 다 끝나지 않은 스마트폰!
화들짝 놀라 집어 들어보니, 액정이 죄다 깨져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문제가 생겼는지 화면에 불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 이거···”
그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서글픈 탄식.
그렇게 한참동안 이리저리 스마트폰을 살피던 그는 뒤늦게 산책로 쪽을 살폈는데··· 거기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한 번 봐줬을 때 좀 그만두지.’
한편, 유세아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던 강태한.
그는 슬쩍 뒤쪽을 쳐다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멀쩡했던 카메라 렌즈가 갑자기 뿌예지고, 스마트폰이 땅으로 떨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걸로 세 번째인가?’
같이 있다 보면 종종 까먹을 때가 있긴 하지만, 유세아는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 유명 배우다.
그렇기에 이렇게 다른 사람과 마주칠 수 있는 곳에선 선글라스와 모자를 착용하고 다니지만··· 그래도 가끔 가다 유세아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알아보기만 하는 거면 상관이 없다.
문제는 허락도 받지 않고 몰래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본인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유세아에게는 피해가 될 수도 있는 상황.
그렇기에 강태한은 유세아와 있을 땐 평소보다 기감을 더 넓게 펼치고··· 그런 사람이 있을 경우엔 방금 전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해왔다.
자주 있는 경우는 아니고, 이번으로 세 번째.
시야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망가진 스마트폰을 살펴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는 남자의 모습이 강태한에게는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자업자득이지, 뭐.’
조금 안쓰럽기는 하지만, 애초에 나쁜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강태한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오, 태한 씨! 저기 봉오리 같은 게 올라와있어요!”
“어디요?”
“저기요, 저기!”
한편, 강태한의 옆에서 생글생글한 얼굴로 길을 걷던 유세아는 신기해하는 목소리와 함께 자기가 발견한 것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보니, 확실히 봉오리처럼 보이는 것이 봉긋 솟아올라 있었다.
“그렇네요.”
“이제 진짜 봄이 오려나 봐요.”
환한 미소를 짓는 유세아. 그런 유세아의 모습에 강태한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봄을 좋아하시나 봐요?”
“그렇기도 한데··· 남자친구랑 꽃구경 가는 거, 한 번쯤 해보고 싶었거든요. 후후후.”
그녀의 말에 강태한은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옆으로 조용히 내미는 손.
유세아는 잠시 그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조심스레 그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은 맞은편에서 사람이 올 때까지, 한동안 그 상태로 조용히 걸었다.
* * *
“하하하하!”
파티장이 떠나가도록 울리는 시원한 웃음소리.
고급스럽게 꾸며진 홀 분위기에 살짝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 그 웃음소리는, 다름이 아니라 에버튼FC의 구단주, 마르케시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후후, 이것 참, 이게 제 팀이 잘난 거지 제가 잘난 건 아닙니다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들뜰 수밖에 없단 말이죠!”
이 자리는 프리미어 리그의 관계자들이 초대되는 소소한 친목회. 딱히 공적인 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리그의 몇몇 구단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개최되는 모임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 모임의 중심이 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에버튼FC의 구단주 마르케시.
요 근래 에버튼이 워낙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다 보니 대화의 주제로도 자주 오르내리고, 그럴수록 마르케시는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머지사이드 더비는 정말 충격이었죠.”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번에도 리버풀 쪽이 이길 줄 알았습니다. 언젠가부터 당연한 일이었지 않습니까.”
“원래 축구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번에는 운이 아니라 우리 선수들의 실력이 뛰어났던 것 같지만 말입니다. 우하하!”
기업의 홍보도 있지만, 그보단 단지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구단주가 되었던 마르케시.
그렇기에 요즘 그는 하루하루를 정말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꿈을 이뤄낸 기분이라고 할까. 원래 약팀이었던 팀이 대활약을 펼치고 주목을 받는 기분은, 그야말로 짜릿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마스터 강에게 감사할 뿐이지!’
팀의 구단주가 되는 건 돈만으로 가능한 일이다.
허나 잘 나가는 팀의 구단주가 되는 건,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걸 가능케 해준 강태한이 마르케시로서는 고마울 수밖에.
구단의 재정팀에서는 고작 마사지사 한 명 섭외하는 데 지출이 너무 크지 않냐는 말도 했었는데··· 그 말을 들었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뻔했다. 그랬다면 이 짜릿함은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혹시, 뭔가 비결이 따로 있습니까?”
그러던 와중, 그의 주변에 있던 누군가가 슬쩍 질문을 던졌다. 이번 시즌에서 특히 부진한 성적을 보이고 있는, 사우스햄튼FC의 구단주였다.
“저희 팀도 에버튼을 본받고 싶어서 말입니다.”
“아, 따로 비결이 있다면 꼭 좀 알려주시죠!”
“후후, 다들 그렇게 원하시면 알려드릴까요?”
살짝 취한 듯, 한껏 흥이 올라 보이는 마르케시.
그가 뭐든지 말해줄 것 같은 표정으로 운을 던지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건 바로! 선수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입니다!”
허나 아무리 기분 좋게 취했다고 해도, 그런 것까지 술술 말해버릴 마르케시가 아니다.
그는 잔을 들어 올리며 외치듯이 말했고, 주변 사람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잔을 들어 올렸다. 그가 말한 내용은 너무나도 기초적인 부분이기에 말해주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어? 진짭니다? 으하핫!”
다만 마르케시는 강태한에게 마사지를 받고 싶다는 선수들의 말을 듣고 초청했던 것이니, 마냥 없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