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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28화 (128/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28화 >

[이대로 경기 마무리 됩니다!]

[에버튼, 오랫동안 일방적인 게임이라 평가받았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오래간만의 승리를, 그것도 더블 스코어 차이로 거둡니다!]

환호하는 관중석과 흥분한 해설진들의 목소리.

그 열기와 함께, 머지사이드 더비는 에버튼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것도 4:2의 더블 스코어로.

리버풀도 후반에 기세를 올리며 3:2까지 따라왔지만, 게임이 끝나기 4분 전에 고드윈이 추가골을 하나 더 넣으면서 그대로 경기는 마무리되었다.

[에버튼이 전통있는 팀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그동안 강팀이라는 인상은 주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확실하게 이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은 연승을 거뒀던 지난 경기들과 비교해 봐도 굉장히 색다른 느낌이 있었죠?]

[그렇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팀의 투 탑, 고드윈 선수와 주완 선수가 팀을 이끌어간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었습니다만, 적어도 오늘 경기에서는 그런 말들이 쏙 들어갈 것 같군요.]

[예. 팀 모두가 활약하는, 훌륭한 경기였습니다.]

중계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호평.

리버풀이라는 강팀을 더블 스코어로 이긴 것 자체로도 큰 성과였지만, 그 뿐만 아니라 에버튼이라는 팀의 실력 자체를 보여준 경기라 할 수 있었다.

“어때?”

한편, 최성현의 스마트폰을 통해 해당 영상을 보고 있었던 강태한. 하이라이트 영상의 소감을 묻는 최성현의 물음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했네.”

“···뭐야, 그걸로 끝이야?”

담백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최성현은 김이 샌 표정을 지었다. 물론 강태한이 딱히 축구 팬인 건 아니었고, 그 성격상 격한 반응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너무 심심한 반응이었던 것이다.

“정이 없네, 이 녀석.”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강태한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고 해야 되나.”

자기 손을 거쳐 간 팀이 쾌거를 거둔 것.

그 자체는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만··· 그게 이미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라면, 무슨 일이건 간에 어느 정도 감동이 상쇄되기 마련이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비록 프리미어 리그에 관해선 별로 아는 게 없고, 리버풀FC라는 팀에 대해서도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본인의 손을 거쳐 간 에버튼의 선수들이 어디서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건 강태한의 자만 같은 게 아니라, 선수들의 컨디션과 몸 상태를 보고 내린 지극히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그래도 내심 뿌듯하긴 해.”

아마 팬으로서의 뿌듯함보단, 한하 선수들을 안마해줬을 때처럼 감독이나 코치에 가까운 느낌이겠지만··· 어쨌거나 마냥 없는 말도 아니었다.

“···우리 원장님이 아주 킹메이커네, 킹메이커.”

강태한의 말을 들은 최성현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스마트폰이 넘어지지 않도록 거치해놓고는 쇼파에다 등을 기대앉았다.

“하··· 근데 진짜 꿈이었던 것 같은 기분이네.”

그 상태로 지난 날 리조트에서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보는 최성현. 새삼스럽지만, 다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비현실적인 기억이다.

전용기를 타서 영국으로 가고, 에버튼 선수들과 직접 만나 사인을 받고··· 특히 자기가 직접 선수들에게 안마를 해줬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뭐랄까··· 단순히 팬의 영역을 떠나서 실제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줬다고 할까. 어찌 보면 이 승리에 기여를 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네가 무슨 느낌으로 뿌듯하다고 하는 건지 좀 알 것 같다.”

“그렇다니까.”

최성현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강태한.

테이블 위에 거치해놓은 스마트폰에선, 마침 에버튼의 주장, 이보르 깁슨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팀이 이토록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나요?]

[그동안 모두가 열심히 노력해온 결실을 거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결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거둘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을 뿐입니다.]

평소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팀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낸 이보르.

그 덕분인지, 인터뷰에 나오는 그의 얼굴에는 시종 환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게 어떤 도움이었죠?]

[자세히 말씀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마음의 스승 같은 분이다, 그렇게 말해두겠습니다.]

“···그렇다는데?”

“다른 사람이겠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강태한을 쳐다보는 최성현.

강태한은 일부러 딴청을 피우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마음의 스승이라니. 자기도 모르게 머쓱해지는, 너무 거창한 표현이었다.

* * *

“안녕하십니까, 원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강태한을 보자마자 칼같이 인사를 건네는 직원들.

“예. 좋은 아침이에요.”

강태한은 웃으며 자연스레 대답을 했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갑자기 직원들 분위기가 달라진 느낌이 드네요.”

“그럴 만도 하지, 뭐.”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황 실장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사장님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호화리조트로, 그것도 전용기까지 빌려다가 휴가를 보내줬는데.”

사실 안마사들은 본인의 가게가 아닌 이상, 직장에 그다지 큰 애착을 가지지 않는다. 그냥 정산 조건이 좋고 손님도 많다면 거기가 최고의 직장이다.

허나··· 천마안마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물론 조건도 좋고 손님도 많지만, 그 이전에 강태한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다른 곳에서는 오랫동안 친분관계를 쌓아도 배울까 말까한 기술들을, 여기선 별다른 대가도 없이 가르쳐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파격적인 휴가복지까지.

솔직히 감동을 안 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원래도 직원들 사이에 강태한을 안마사로서 존중하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거기에 충성심까지 더해진 듯한 분위기였다.

“이쯤 되면 거의 제자 느낌이지. 그런 식이면··· 장인코스를 맡는 세 명은 장로가 되는 셈인가? 나중에 분점을 내면 분파가 되는 거고.”

황 실장이 팔짱을 낀 채 낄낄거리며 말했다. 강태한은 그런 황 실장을 시큰둥한 눈으로 쳐다봤다.

“···요새 무협 좀 보시나 봐요?”

“보다 보니 재밌더라고.”

요즘 들어 휴게실에선 항상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더니, 그때마다 무협 소설을 보고 있었던 모양.

“추천해줄만한 작품은 없나?”

“···글쎄요. 요즘 무협 쪽은 잘 안 봐서.”

“그래? 성현이가 좋아한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예전에는 그랬었죠.”

강태한이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무협지를 좋아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아무래도 직접, 그것도 몇 십 년간 머무르다 돌아오니 관심이 좀 멀어진 것이 사실이다.

“약간··· 설정이 안 맞는 게 있다고 할까, 몰입이 잘 안 될 때가 많다고 해야 하나···”

“아, 무슨 말하는 건지 알 것 같네. 나도 아직 많이 본 건 아닌데, 가끔 진짜 붕 뜬다, 싶은 작품들도 많더라고.”

서로 말하는 내용의 핀트가 살짝 어긋나있기는 하지만, 강태한은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넘어갔다.

* * *

“···후우.”

백화점에서 걸어 다니고 있는 한 남자.

아내의 뒤를 따라 벌써 한 시간 째 백화점 곳곳을 돌아다닌 그는, 가슴에 쌓인 감정을 토해내듯이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까 거기서 사면 되는 거 아니야?”

“저쪽도 일단 한 번은 가봐야지.”

“대충 사지, 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 부모님 선물 고르는 거잖아. 조금만 참아.”

“우리 부모님은 아무거나 좋아하셔···”

이동찬은 서글픔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으나, 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고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자기 부모님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고심을 한다니 살짝 뿌듯한 마음도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도 절실했다.

‘아, 안마 받고 싶다.’

간만의 주말인데도 쉬지 못하는 상황.

그 때문일까, 오늘따라 강태한 선생님의 손길이 절실하게 그리운 기분이다. 이동찬은 슬쩍 스마트폰의 캘린더를 열어 예약이 잡힌 날을 확인했다.

체크되어 있는 날은 다다음 주 수요일.

오늘부터 열흘을 넘게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 그 사실이 삶의 이정표마냥 희망이 되어주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요즘 예약 잡기가 더 힘들어졌단 말이지.’

이동찬은 아직 천마안마라는 가게가 생기기 전, 강 선생님이 찜질방에 있는 안마샵에서 일할 때부터 꾸준히 다녀온 단골손님 중에 한 명이다.

그러다 강태한이 따로 가게를 냈을 때. 그는 한 명의 단골손님으로서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했었다.

솔직히 강태한이 그런 가게에 계속 있을만한 사람은 아니었고, 아깝다는 생각도 종종 했었으니까.

게다가 가게를 옮기고 설비도 훨씬 좋아졌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아지면서 저도 모르게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만큼 예약이 버거워진 것도 사실.

원래도 주말, 혹은 퇴근 이후 시간에는 예약을 잡기가 상당히 버거웠는데, 지금은 거의 한 달 뒤부터 예약을 잡아둬야 한다.

“이따 안마 한 번 받고 돌아가면 정말 좋을 텐데.”

하지만 운 좋게 취소된 자리가 있는 게 아닌 이상, 그럴 수는 없다. 예전에는 이런 기분이 들 때 장인코스를 이용하곤 했었는데, 요새는 장인코스를 예약하는 것도 꽤 힘든 편이었다.

‘일반 안마 코스라도 좀 받아볼까···’

요즘 분위기를 보아하니 일반 쪽을 찾는 사람도 상당히 많은 모양이던데.

어쩌면 나쁘지 않은 판단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던 순간.

“고객님! 안마의자 한 번 앉아보고 가세요!”

전자제품 구획을 지나가던 와중, 어느 직원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를 불러 세웠다.

원래라면 그냥 못 들은 체 하고 지나갔겠지만··· 한참 안마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인지,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 섰다.

‘···아니다, 됐다.’

순간 혹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안마의자는 결국 안마의자다.

한계가 명확하다고 해야 하나.

예전에는 사우나에 있는 코인 안마의자를 자주 애용해왔었지만, 강 선생님의 손맛을 알아버린 지금은 솔직히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어머, 요즘엔 안마의자들도 세련되게 나오네요.”

그렇게 그냥 갈 길을 가려던 순간.

이동찬의 동행자, 그의 아내가 관심을 보였다.

“그렇죠? 이게 이번에 저희 바디케어에서 새로 나온 신제품인데, 여기 보시면 색상도 메탈, 화이트, 그레이, 골드, 브라운, 다섯 가지로 준비되어 있어요.”

그러자 옆에 서있던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심 흥미가 있는지, 이동찬의 아내는 설명을 들으며 여기저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당신, 한 번 앉아봐.”

“나? 나는 왜.”

“원래 안마의자 갖고 싶어 했었잖아.”

작년쯤인가. 지인 집들이에 갔다가 집에 있는 안마의자를 보고 부러웠던 나머지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다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저 스쳐지나가듯 한 마디 했던 거였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그때 당신 엄청 시무룩해져있었잖아. 기억하지.”

약간의 감동.

헌데 그 감동스러운 분위기 때문일까.

“한 번 편하게 이용해보세요, 고객님.”

“···그, 그럴까요.”

거부하기 영 애매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원래는 크게 생각이 없었건만, 이동찬은 머쓱한 표정으로 안마의자에 앉아 등을 기댔다.

“혹시 따로 뻐근하신 곳이 있으실까요?”

“딱히 없습니다.”

“그럼 기본모드로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앉기는 앉았지만.

솔직히 기대감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

‘적당히 한 5분 정도 받고 일어나면 되겠지.’

기대감도, 구매의사도 딱히 없는 상황.

그렇게 못내 안마의자에 앉은 이동찬이었지만.

우우우우웅.

“···어?”

등받이의 마사지 롤러가 그의 척추를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순간. 이동찬은 생각지도 못했던 느낌에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낯선 기계에서 느껴지는.

왠지 익숙한 감각.

그건 다름이 아니라.

‘···강 선생님?’

물론 자극의 강도나 디테일한 부분에선 한참 뒤떨어지고, 등줄기를 타고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강렬한 느낌 같은 것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척추가 풀어지면서 온몸으로 자극이 흘러 들어오는 듯한 이 느낌은, 분명 강 선생님에게서나 느껴볼 수 있었던 그 느낌이었다.

“오오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안마.

둥글둥글하고 단단한 플라스틱 볼이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참 뻐근했던 부분들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노곤한 느낌이 들도록 부드럽게.

때로는 저도 모르게 탄성이 날 정도로 강력하게.

안마는 등만 아니라 고정된 팔다리에서도 진행되었고, 온몸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그 시원함에 이동찬은 저도 모르게 잔뜩 느슨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좋다···’

강 선생님의 솜씨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당장 하루 동안 피로를 풀기엔 충분하다고 할까.

왠지 모르게 선생님의 손길을 떠올리게 하는 기술적인 뭔가가 있었으며, 그 덕분인지 몸에 느껴지는 시원함도 장난이 아니다.

실제로 강 선생님에게 안마를 받을 때 자주 짚어주시거나 주물러주시던 곳들을 딱딱 집어내는 느낌.

단순히 ‘이 정도면 대충 시원하지?’라고 말하는 듯한 기존 안마의자들의 움직임과는, 근본적인 메커니즘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느낌이다.

“우아아아···”

안마의자의 진동으로 떨리는 이동찬의 목소리.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주기적으로 탄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기보다는, 이미 자신만의 세상으로 떠난 듯한 모습이었다.

“···원래 다들 이런 반응이에요?”

“이번 제품이 좋긴 한가 봐요. 다른 제품들보다 유독 자주 있으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와 직원.

아내는 일행이 아닌 척 살짝 거리를 두고 있었고, 직원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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