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123화 >
사람에게는,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통용되는 의사표현 방식이 있다. 만났을 때 손을 흔든다든가, 배가 고플 때 배를 문지른다든가하는, 기본적인 제스처들 말이다.
지금 마르케시가 두 손을 올리고 있는 것 또한 그런 제스처들의 한 범주라 할 수 있었다.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한 행동. 게다가 딱 봐도 몸이 긴장으로 잔뜩 굳어있는 것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강태한을 강도라고 오해하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어허. 그렇게 긴장하고 있으면 쓰나.”
한편, 그 모습에 강태한은 가벼운 핀잔을 입에 담았다. 혼잣말을 하듯이 나지막하게 입에 담는 한국말.
마르케시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본인의 행동을 지적한다는 뉘앙스는 충분히 전해졌다. 그에 따라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려던 찰나···
“힘 좀 풀고 서있게나.”
마르케시가 따로 긴장을 풀 필요는 없었다.
강태한이 가볍게 경추 쪽을 손날로 두어 번 두드리자, 마르케시의 몸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과 긴장이 거짓말처럼 스르륵, 풀려버린 것이다.
‘오, 마이 갓···’
몸의 감각이 저절로 변해간다.
처음 느껴보는 낯선 경험. 그로인한 약간의 공포.
하지만··· 그 이상의 편안한 기분과 묘하게 안락한 느낌이 그의 몸을 감싸 안았다.
마치 몸에 닿아있는 강태한의 손바닥이 그의 몸을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는 듯한 느낌. 그 전까지는 겁이 앞서 느끼지 못했는데, 마치 단단한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선 것처럼 몸의 균형이 안정적이었다.
“이제 좀 괜찮아졌군.”
굳어있던 몸도 살짝 풀어지고, 올라갔던 손도 어느새 내려온 상황. 강태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반신 전체를 훑어내듯 곳곳으로 돌아다니는 손.
양 어깨를 붙잡더니 가볍게 물기를 짜내는 것처럼 비틀었다가, 턱의 각도도 살짝 틀어주고, 척추의 디스크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주고···
‘어떻게 이런···’
그렇게 그의 손길이 몸 곳곳을 거쳐 지나가고.
그럴 때마다 몸에서는 뽀도독, 우드득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마르케시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은 긴장을 풀고 강태한의 손길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 이렇게 몸에 힘을 쭉 빼고 있으니, 이제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는 이 시원한 느낌을 말이다.
마치 신경을 타고 차가운 생수가 흘러 다니는 느낌이라고 할까. 허나 단순히 시원한 느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동시에 몸 곳곳에 생기가 되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진정한 마사지?’
그렇다면 자기가 여태동안 알고 있었던.
가끔 가다 휴양지에서 받아왔던 마사지들은 다 뭐였단 말인가? 지금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이 느낌에 비하면, 그건 아이들의 촉감놀이 수준에 불과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동양의 미스터··· 아니, 마스터!’
두려웠던 첫 인상은 신기함으로 바뀌고, 곧이어 경악과 감탄으로 바뀌었다. 마르케시는 떡 벌어진 입으로 탄성을 흘리며 천천히 좌우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나 그러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한 가지 호기심이 함께 피어올랐다.
이렇게 서서만 받고 있는데도 이 정도라면.
‘제대로 각을 잡고 받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얼마나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걸까.
내 몸은 얼마나 건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거의 욕망에 가까운 수준의 강렬한 호기심.
허나 이걸 직접 물어보기는 조금 망설여졌다.
사실 이 자리는 강태한과 인사를 나누고자 부른 자리였고, 그렇기에 지금 마사지를 받고 있는 것도 그리 상대방을 존중하는 행동이라 보긴 어려웠으니까.
어떤 타이밍에 말을 꺼내야 최대한 자연스럽고 무례하지 않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찰나···
“흠. 여기서 뭉쳐있는 곳들까지 풀려면, 아무래도 자세를 바꾸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잠시 주무르고 있던 손을 떼면서, 강태한이 영어로 넌지시 말을 걸었다. 그러고선 잠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더니, 이내 적당한 걸 발견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면 저쪽에 잠깐 누워보겠습니까?”
강태한이 가리킨 것은 인근에 놓인 널찍한 쇼파.
때마침 고민하고 있었던 내용이다. 그 말을 들은 마르케시의 얼굴이 눈에 띌 정도로 환해졌다.
“예스! 와이 낫!”
마르케시는 즉각 대답하며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강태한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쇼파 쪽을 가리켰고, 마르케시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걸어갔다. 그러던 중, 강태한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영어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음, 아까보단 좀 아플 수 있습니다.”
“그 정도야 아무 문제없지요! 하하하!”
마사지가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자긴 이미 강태한의 손길에 모든 걸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오히려 기대가 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본격적인 마사지가 시작된다는 뜻이었으니까.
‘흐흐, 그럼 한 번 체험해보실까.’
마르케시는 설레는 마음으로 쇼파 위에 엎드렸다.
그러자 곧바로 허리 위에 올라오는 강태한의 손.
확실히 서있을 때와는 느낌이 다른, 본격적인···
“끄허어어어억!”
그 순간, 그의 고개가 하늘 높이 치켜세워지며 비명소리가 넓은 홀에 울려 퍼졌다.
딱히 안마를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기에 뭉친 곳이 풀린 적도 없고, 그렇기에 뭉쳐있는 지점들 하나하나가 상당한 수준으로 굳어있다.
그리고 이런 곳을 짚으면 당연히···
“마이, 마이 가아아아아앗!”
비명이 터져 나올 수밖에.
마르케시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좀 아플 수 있다고 했잖은가.”
반면, 강태한은 태연한 표정으로 마르케시의 목 부근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렇게 처절한 비명은 보기 드물었지만, 그에게 있어 이런 반응 자체는 그리 생소한 게 아니었다.
“소리를 너무 지르면 목이 쉴 수도 있으니···”
그러니 그에 대한 조치도 자연스럽다.
뒤통수 언저리를 지긋이 누르는 엄지손가락.
그러자, 한껏 내지르던 마르케시의 비명소리가 점점 사그라지더니 자연스레 멎었다. 정확히는, 목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그저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었을 뿐.
당연히, 몸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있었으며.
강태한의 안마는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마르케시는 아무런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그저 침묵 속에서 팔다리를 휘젓는 것으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뿐이었다.
* * *
바디케어의 사내 정기회의.
부장급부터 임원진, 사장까지 동석해있는 회의실의 중심에는, 이번에 새롭게 개발된 안마의자의 시제품이 놓여있었다.
“으음. 이게 이번에 새로 나올 라인업의 첫 시제품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사장님.”
가장 상석에 앉은 중년 남성의 말에, 단상 위에 서있던 남자, 개발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묘하게 밝아보였다.
“일단 겉모습은 잘 뽑힌 것 같군요. 세련된 느낌이면서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느낌도 들고.”
“그러게 말입니다. 적어도 디자인은 럭셔리 제품라인에 잘 어울리네요.”
한 임원이 감상을 입에 담자, 다른 이들도 한 마디씩을 덧붙이듯이 말했다.
이번 개발 프로젝트는 회사의 명운이 걸렸다 해도 무방한 프로젝트. 특히 이를 추진한 이들에겐 앞으로의 직장생활 및 계약 갱신이 달린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겉보기보다 중요한 건 알맹이 아니겠습니까?”
허나 모두가 긍정적인 평을 꺼내는 것은 아니었다.
담담한 목소리로 중요한 부분을 지적하는 목소리. 그는 방금 전 호평을 했던 임원, 김 상무와 다른 라인을 타고 있는 황 전무였다.
“결국 저희가 경쟁사에 밀렸던 것도 내부의 소프트웨어 때문이었죠. 그 부분에서 별다른 개편이 없었다면야, 제자리걸음 아니겠습니까.”
다만 그가 지적한 내용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안마의자는 결국 장식품이 아닌 기능형 전자제품. 결국 그 효과를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없는 것이다.
“그 부분은 어떤가? 송 팀장.”
“아주 훌륭합니다.”
짧고 담백한 대답. 덕분에 회의실에는 잠시 동안 고요한 시간이 흘렀다. 그 뒤로 설명이 이어질 줄 알고 기다렸는데, 그 짧은 대답으로 답변을 끝낸 것이다.
‘···뭐야?’
결국 당황한 것은 오히려 황 전무였다.
마치 든든하게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한 태도.
이번에 회장님이 직접 개발팀에 지원을 해줬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아마 그게 아닐까 싶었다.
“아주 상당히 훌륭한 모양이야?”
“뭐라 딱 짚어서 말씀드리기가 어려운데··· 소프트웨어가 전체적으로 한 단계, 특히 사용자의 만족도가 대폭 올라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슬쩍 안마의자 쪽으로 손을 뻗더니, 꺼져있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한 번 직접 체험해보시겠습니까?”
“···응?”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
툭 까놓고 말해, 황 전무는 이번 프로젝트를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안마의자 사업을 빠르게 포기하고, 기존의 공기청정기 라인을 강화시키자고 했던 사람이니까.
“···허허, 참.”
그런 사람에게 곧바로 체험을 권하다니.
당황스럽다 못해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그것이 곧 호기심과 호승심으로 연결되었다. 황 전무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어디 한 번 앉아나 보지.”
앞으로 나가 안마의자에 털썩, 앉는 황 전무.
일단은 고급 쇼파에 누운 것만 같은 안락함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다만 이것은 기존 제품과도 동일한 부분. 결국 그가 말한 대로 기능적 개선이 없다면야 별다른 의미는 없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한편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버튼을 누르는 개발팀장.
그러자, 잔잔한 기계음과 함께 천천히 의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
먼저 센서가 가볍게 몸을 두드리며 형태를 인식하고, 그에 맞춰 등받이와 발받침, 갖가지 마사지 기계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용자의 신체에 맞춰 기계를 변형시키고 안마를 진행하는 시스템. 그 자체는 최신제품들이라면 대부분 갖추고 있는 새로울 것도 없는 기능이다. 헌데.
“오오···?”
이건 정말 자신의 몸에 딱! 맞는다.
뭐라고 짚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자기 몸에 딱 들어맞는 느낌과 함께 기존에 다른 안마의자에선 느껴볼 수 없었던 극도의 편안함이 찾아왔다.
그렇게 사용자에게 맞춰 기계가 변형되고 난 후.
가볍게 툭, 툭 건드리는 듯한 타격이 전신을 훑고 지나간 다음, 본격적인 안마가 시작되었다.
자신에게 딱 맞게 맞춰져 온몸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압박감과, 절묘할 정도로 피곤한 지점들을 딱딱 짚어서 풀어주는 안마.
마사지 롤러가 척추를 시원하게 훑으며 내려가는 동시에, 어깨의 날갯죽지가 좍 펴지면서 뭉쳐있는 곳을 마사지 볼이 지긋이 눌러낸다.
“흐오오오오···”
그러는 와중에 아래쪽의 마사지 볼이 발바닥 한 가운데를 시원하게 꾹꾹 지압하자, 황 전무는 자기도 모르게 노곤한 신음소리를 흘려냈다.
‘이거, 좋다···’
안마의자는 결국 안마 흉내를 내는 기계일 뿐이다.
간혹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종종 있고, 황 전무도 그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좋은 안마의자라 해도, 결국 기계로 재현하는 데에는 한계라는 게 있는 것이다.
헌데, 이건···
달랐다. 기존의 안마의자와 궤를 달리한 느낌.
기존의 안마의자가 백 점짜리 안마를 오십 점까지 이식시켜놓은 느낌이라고 한다면, 이건 천 점짜리 안마를 오백 점까지 이식시켜놓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생각이 직감적으로 떠올랐다. 기반이 되는 기술부터가 차원이 다른 느낌인 것이다.
“···엇?”
그렇게 정확히 삼 분이 지나고.
적당히 코스가 진행되는 단계까지 접어들자, 개발팀장은 안마의자의 작동을 멈춰 세웠다. 체험의 목적으로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판단이었다.
“어떠셨습니까?”
결론은 사실상 이미 나와 있었다. 안마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황 전무가 보여줬던 표정은, 그야말로 만족 중에도 대만족이었던 것이다.
“···흐음.”
허나 황 전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점잖은 표정을 짓고는 조용히 침음을 흘렸다.
“···조금 더 받아봐야 알겠는데?”
그 말에는, 그래도 대놓고 만족을 표현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담겨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안마를 받고 싶다는 솔직한 욕망도 함께 담겨있었다.
* * *
“마스터 강! 음식은 입에 좀 맞으십니까?”
“예. 아주 좋네요.”
강태한은 가볍게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강태한의 앞에 놓이는 접시들은 나오는 족족 깔끔하게 비워지고 있었다.
“특히 방금 먹은 요리가 마음에 드는군요. 관자도 부드러웠고, 곁들여진 소스도 엄청 좋았어요.”
“하하하! 다행입니다. 사실, 오늘 좋은 캐비어를 구하지 못했다고 해서 헤드셰프가 급하게 바꾼 메뉴였거든요.”
마르케시는 웃음을 터트리며 깍지 낀 손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지금은 저녁 식사 시간.
시내로 관광을 나간 일행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리조트 내에 머무르던 일행들은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일행이 아닌 사람도 한 명 끼어있었으니.
“아, 혹시 와인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다름 아닌 이 리조트의 주인인 마르케시였다.
그는 강태한의 맞은편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하면서, 마치 오랜 지인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뭔가, 원장님이랑 저 사람이랑 되게 친해 보인다?”
“친해 보인다기보다는··· 저 사람이 원장님이랑 적극적으로 친해지고 싶어 하는 느낌인데.”
“저 분이 이번에 초대했다는 리조트 주인 아니야? 프리미어 리그 에버튼FC의 구단주.”
“맞네, 여기 나오는 이 사람이네.”
한편,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직원들은 그 모습에 술렁거리고 있었다.
해외 축구팀의 구단주라 하면 소위 재벌이라 불리는 사람. 그런 사람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십거리가 되는 것이다.
“뭐, 원장님이 안마라도 해주신 게 아닐까?”
그러던 와중에 슬쩍 자신의 가설을 내미는 김성훈.
“아··· 그런가? 하긴, 얼마 전에 우리 가게에 정태현 회장도 왔다갔었다며.”
“맞아, 나는 실제로 봤었어.”
“우리 원장님 안마는 못 참지···”
그러자, 그때까지 술렁이던 직원들은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며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