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 안마하신다-118화 (118/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18화 >

“허허···”

대전 유성구 인근의 산자락.

얼마 전부터 시공에 들어간 본인의 펜션 부지에 도착한 조원호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황당한 심정이 묻어나오는 웃음. 허나 그 황당함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것인지, 좌우의 입 꼬리는 위로 슬쩍 올라가있었다.

“이게 다 뭔 일이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새하얀 김.

바닥에는 그 김을 잔뜩 피워 올리고 있는 물웅덩이가 있었고, 웅덩이의 중심에선 계속 물이 울컥울컥 솟아오르고 있어, 단순히 온수가 좀 고였을 뿐인 게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펜션부지에서 온천이 나오고 있다.

느닷없이 그 말을 들었을 때 조원호는 긴가민가한 심정이었다. 불과 전날 왔을 때만 해도 경치가 좀 좋을 뿐인 평평한 산자락에 불과했었고, 이전 땅 주인에게도 들은 바가 없었던 것이다.

헌데, 지금은 공사부지 한쪽 편에서 보란 듯이 뜨거운 온천수가 샘솟고 있는 중이었다. 조원호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더니, 온천수에 손을 살짝 담갔다가 잽싸게 빼냈다. 제대로 뜨끈한 온도였다.

“진짜 온천이 나왔을 줄이야···”

조원호는 손에 묻은 물기를 바지에 슥슥 닦아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참, 온천이 원래 이렇게 흔한 건가?”

“이쪽 동네에서 현장 좀 많이 다녀보긴 했는데,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현장 감독이 한 마디 거들었다. 그는 조원호의 눈치를 살짝 살피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공사는 어떻게 할까요?”

공사가 진행되던 와중에 갑자기 뿜어져 나온 온천.

여기서 온천이 나온다는 건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었고, 당연히 공사계획에도 반영되어있지 않았다.

그 덕분에 주변은 굉장히 부산스러웠으며, 이곳과 멀찍이 떨어진 곳의 일부 작업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업들도 정지되어 있는 상태였다.

어찌됐거나 기존 계획에는 커다란 차질이 난 상황.

온천이 나왔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닌 것이, 부지에 수원(水原)이 생겨난 만큼 공사 난이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고, 아무래도 규모 자체부터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으음··· 어쩔 수 없죠, 뭐.”

그런 내용들은 본인도 이미 알고 있는 부분.

뭔가 생각에 잠겨 있던 조원호는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감독의 말에 답했다.

“오늘부터 여기는 온천 펜션입니다! 하하하!”

그는 환한 표정으로 박수까지 치며 외쳤다.

방금 전까지 황당해하던 얼굴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살짝 흥분한 기색마저 엿보였다.

“이야,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아는 형님이랑 왔을 때, ‘여기서 온천까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막연하게 희망사항을 상상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게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이것 때문에 기존의 공사계획은 엉망이 됐지만··· 툭 까놓고 말해, 펜션 건물 쪽만 좀 진행됐지 다른 곳은 아직 터만 잡아놓은 수준이고, 계획을 수정한다 해도 커다란 지장은 없는 수준이다.

예상보다 공사규모가 커지는 건 피할 수 없겠으나, 당장 자금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애당초 나름 여유를 두고 사업을 확장한 것인지라 조급해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이쪽에다가 탕을 내고 본관에서 왔다갔다하려면··· 일단 복도를 저쪽까지는 연결을 해야겠구만.’

지금 조원호는 그런 것보단, 이 온천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식으로 설계를 바꿔야할 지 고민하느라 설레고 즐거울 뿐이었다.

“일단 다른 현장까지 흘러가는 일이 없도록 물길만 좀 틔워두시고··· 요 부근 작업은 당분간 미뤄두는 걸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독님, 한 삼십 분 정도 이따가 저쪽에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조원호는 좀 멀찍이 떨어져있는, 현장 사무실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컨테이너 박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전체적으로 설계를 한 번 다시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은데.”

“물론이죠, 사장님.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감독은 인부들이 모여 앉아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혼자 남은 조원호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온천을 쳐다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흐흐··· 이따가 탕에 쓸 돌이나 좀 보러 가야겠네.”

원래 정원 겸 산책로로 활용하려 했던 부지.

펜션 건물과는 딱 적당하게 떨어져있고, 지대의 높이도 적당한 게 여러모로 온천이 들어가면 딱 좋을만한 위치다.

노천탕에서 바람을 쐬며 온천욕을 즐기는 상상에, 조원호는 저도 모르게 빙긋 미소를 지었다. 사업구상을 떠나서 그 자체로 기대가 되는 것이다.

“흐음. 그건 그렇고···”

그러다 돌아가던 와중, 조원호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팔짱을 끼고 침음을 삼켰다.

“태한이 그 녀석이 은근 복덩이란 말이지. 흐하핫.”

바로 전날 있었던 강태한과의 대화를 떠올렸던 것. 단지 우연히 타이밍이 겹쳤을 뿐이겠지만, 타이밍이 절묘한 것이 마치 강태한이 온천을 뚫어준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은 것이다.

공사가 끝나고 탕이 완성된다면, 형님과 태한이를 먼저 초대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조원호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대전에서 오신 강호연 주방장님입니다!]

짝짝짝짝!

진행자의 말과 함께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

그러자, 화면에는 강태한에게 굉장히 익숙한, 하지만 이렇게 보기에는 좀 많이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

강태한과 굉장히 닮았으면서도 세월의 흔적으로 살짝 주름살이 들어간 얼굴.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 강호연이었다.

“이야, 메이크업도 받으셨나본데.”

얼마 전에 방영된 ‘맛집전국시대’의 최신 화.

맛집전국시대는 어떤 요리를 주제로 각 지역에서 섭외된 사장님들이 여섯 명 정도 나와, 저마다 특색을 보이고 경연까지 펼치는 요리프로그램이었다.

강태한으로선 굳이 이렇게 챙겨볼 이유가 없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이번 화는 달랐다. 다름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출연한 방송이었기 때문.

그는 얼마 전에 새로 산 쇼파에 누운 채, 화면에 나오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웃음기 서린 감탄을 터트렸다.

[안녕하세요, 대전 동구에서 이십 년째 태한반점을 운영하고 있는 강호연이라고 합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빙긋 미소를 짓는 아버지의 모습.

메이크업도 받고 여기에 조명까지 더해져서 그런가, 평소 가게에서 보이던 모습보다 선도 날카롭고, 전체적으로 왠지 훈훈하다는 인상이 느껴졌다.

[와, 수타면 치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네요!]

[이야, 이거 어렸을 땐 진짜 자주 봤던 건데.]

[이게 아무리 기계로 뽑는 거랑 별 차이가 없다고 그래도, 직접 수타치는 걸 보고 먹으면 왠지 맛도 더 좋고 면도 쫄깃한 것 같고 그렇거든요.]

아버지의 하이라이트라고 한다면 단연 수타.

강호연은 방송에 나온 여섯 명의 사장님 중 유일하게 직접 수타를 쳐서 면을 뽑아냈고, 그 묵직한 장면을 통해 다른 건 몰라도 캐릭터만큼은 확실하게 잡아냈다.

[아까 박력 넘치는 수타쑈를 봐서 그런가, 대전 사장님께 좀 더 면발이 쫄깃한 느낌이 있네.]

[실제로 반죽 비율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그 덕분인지 꾸준히 화면에 등장하고 자주 언급되는 느낌이다. 다른 사장님들보다도 화면에 잡히는 시간도 좀 더 길고, 자연스레 비중도 늘어난다.

“그렇게 걱정을 하시더니, 잘 하셨네.”

방송 막바지. 강호연의 최종순위는 2등으로, 1등에게만 주어지는 메달을 받진 못했지만, 그래도 방송으로 남긴 인상만큼은 1등보다 크다 할 수 있었다.

수타면 퍼포먼스부터 시작해서 사실상 분위기를 쭉 가져가고 있는 느낌이었으니까. 방송에 대해 잘 모르는 강태한도 아버지가 꽤 활약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우우우웅.

그렇게 영상이 거의 끝나갈 무렵.

강태한은 진동하는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 건 사람의 이름을 확인했다. 양반은 못 되시는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예, 아버지.”

[어, 태한아. 통화 가능하냐?]

“물론이죠. 집이에요.”

강태한은 리모콘으로 TV를 끄고, 앞에 내려놓은 냉수를 한 모금 마신 다음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아버지. 방송 잘 나오셨던데요?”

[그래? 봤냐?]

“예. 일이 좀 많아서 본방은 못 봤고, 방금 봤죠. 같이 나온 사장님들 중에서는 아버지가 제일 분량 많이 뽑으신 것 같던데요?”

[에이, 뭘. 편집을 잘 해준 거지.]

쑥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말하는 강호연.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 눈에 보이듯이 훤하다.

“장사도 더 잘 되시겠던데.”

[가게? ···아휴, 말도 마라.]

강태한의 말에 강호연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피로감이 섞여있지만 약간 자랑하는 티가 살짝 섞여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요즘 손님들이 쉴 새 없이 오느라 쉴 시간도 없다. 브레이크 타임을 미리 잡아놔서 망정이지, 그것도 없었으면 직원들 다 도망갔을 걸?]

“제 말대로 브레이크 타임 하길 잘했죠?”

[···그래, 이놈아.]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강태한의 생색에 강호연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무튼, 이십 년 넘는 시간 동안 가게 좁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자주 드는구나. 특히 방송에 나간 이후로는 더 그런 것 같아.]

예전에도 SNS를 통해 손님들이 계속 늘어가긴 했는데, 방송에 나간 이후로는 정말 폭발적으로 늘었다. 대기자를 안내하는 직원을 따로 뽑았을 정도다.

“아버지도 정신없으시겠네요.”

[그렇지 뭐. 요새는 주방도 거의 못 들어가고 계속 면만 뽑고 있는 수준이야.]

“어깨는 괜찮으세요?”

[···그게, 몸은 신기할 정도로 괜찮다. 네가 안마를 해주고 가서 그런가?]

“다음에도 봐드릴 게요.”

빙긋 웃으며 말하는 강태한.

그러던 중, 문득 떠올랐는지 강태한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 가게 하나 새로 차려드릴까요?”

[뭐? ···아니다, 됐다.]

순간 멈칫했다가 고개를 젓는 강호연.

비록 거절을 표하긴 했지만, 멈칫하는 순간에서 순간 설렜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해드릴 수 있는데.”

[빈 말이라도 고맙다. 네가 무슨 돈이 있어.]

“저야 뭐··· 사업도 얼추 잘 굴러가고 있고, 그동안 딱히 돈 나갈만한 곳도 없었죠.]

안마라는 게 인건비가 많이 나가기는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인건비를 제외하면 크게 비용이 나갈만한 구석이 없다.

요식업처럼 재료를 쓰는 것도 아니고, 무슨 최첨단 기술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강태한은 가게를 소유하고 있었기에 임대료를 낼 필요도 없었다.

[그럼 네 아파트부터 사.]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부동산 다녀왔어요.”

[···그, 그래? 그렇게 돈이 빨리 모였어?]

강호연이 살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강태한의 사업이 번창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으니까. 한편 강태한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파트까진 아니지만, 괜찮은 방이 있더라고요. 꽤 널찍한 쓰리룸으로.”

[대출이라도 받았니?]

“뭐 대출은 아니고···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일종의 계약금을 받았다고 해야 되나.”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최근에 꽤 큰돈이 들어올 일이 하나 있어서요.”

바디케어 신제품 개발의 기술고문.

그동안 천마안마의 일과 병행하느라, 아버지가 출연하는 방송도 챙겨보지 못할 정도로 바쁜 일과를 보냈지만, 그래도 덕분에 그의 통장의 잔액은 자릿수가 달라져있었다.

서울의 중심 상권이라면 모르겠지만, 대전에 아버지 가게 하나 정도는 충분히 내어드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 * *

지난 번, 장태현 회장과 찻집에서 만났을 때.

두 사람은 서로 만족스러운 결론을 도출해냈다.

장태현 회장은 강태한의 협조를 약속받았고.

강태한은 억 단위의 선금과 차후의 성과금, 그리고 기술제공과 차후 활용에 대한 로열티까지 확보했다.

물론 그렇다고 강태한이 기존에 잡혀있던 예약들을 파한 것도 아니었고, 본업에 소홀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안마원에서 평소의 일과를 끝내고 나면, 바디케어의 기술고문으로서 다시 출근하는 빠듯한 스케줄을 한동안 보냈을 뿐···

[너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니냐?]

“아뇨, 생각보다 별 거 없었어요.”

아버지의 말에 강태한이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제가 그러했다. 생각보다 일정이 빨리, 한 일주일 정도 사이에 끝나버렸기 때문.

처음 약속했던 대로 강태한은 안마의 기술과 요령을 알려줄 뿐이었고, 그걸 구현하고 소프트웨어로 완성시키는 건 기술자들의 몫이었기에, 원래 일정도 그렇게까지 길게 잡힌 건 아니었다.

‘일단 계약 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자기도 모르게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

다만 본인이 멋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저쪽에서 오히려 충분하다고 말하는 상황이었으니, 강태한으로선 묘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뭐 어쨌거나···”

강태한은 머리를 긁적이며 통화를 마저 이어나갔다.

“생각 있으시면, 가게 위치나 좀 찾아두세요. 조원호 아저씨랑 같이 보러 가시면 좋겠네요.”

아까 꺼냈었던 말은, 결코 빈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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