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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15화 (115/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15화 >

“후후후···”

아침, 대청그룹의 회장실.

평소처럼 출근하자마자 오늘 하루의 스케쥴 표를 훑어보고 있던 장태현은, 고개를 들어 창가를 쳐다보며 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아하하하.”

아까 전부터 씰룩거리고 있던 입 꼬리.

그는 결국 참고 있던 웃음을 큰 소리로 터트렸다.

날씨가 맑은 탓일까. 오늘따라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유난히 밝고 아름다워 보였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결국 이를 지켜보고 있던 최 비서가 넌지시 물었다. 그는 들고 온 커피를 내려놓고는, 살짝 걱정이 서려있는 얼굴로 서있었다.

“아, 최 비서. 오늘따라 날씨가 참 좋아. 그렇지?”

창밖을 가리키며 말하는 장태현.

그 말에 최 비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출근하면서 본 기억에 따르면, 분명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것이 당장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던 것이다.

장태현의 손가락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니, 아니나 다를까 우중충한 날씨였다. 최 비서는 순간 당황했다가 이내 납득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일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아, 그래? 그렇게 티가 나나? 하하하.”

눈치를 챈 최 비서가 슬쩍 물어보니, 장태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은 말이야···”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웃더니, 자기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주변 최측근들이나 아내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심지어 그의 아버지도 모르는 그의 원형탈모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다.

“나, 다시 머리가 나고 있더라고.”

“······”

수줍어하는 모습이 마치 고백 같은 소년과도 같다.

그 생소한 모습에, 최 비서의 얼굴이 당황으로 미묘하게 굳어버렸다. 분명 희소식이고 기쁜 일이었지만,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 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남자의 마음은 생각보다도 섬세하다는 말.

그게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머리카락에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큼은 얼추 들어맞는 이야기다.

평소 어지간한 일에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장태현 회장도, 피부과에 다녀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침울해진 티가 날 정도였으니까.

그렇기에, 아무래도 머리와 관련된 주제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그래도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였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정말 잘 됐군요.”

“그렇지? 흐흐.”

그가 선택한 것은 정석적인 대답.

그러자 장태현에게서도 정석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그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난 그 날 원장선생님이 말씀하셨던 효과가 몸 컨디션을 풀어주는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걸 말씀하셨던 모양이야.”

짧은 시일 내에 미약하게나마 어떤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잠들기 전, 강태한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잠에서 깬 직후에는 그게 몸의 컨디션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회장 자리에 오른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하고 가벼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헌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그동안 본인이 어떻게든 해결해보려 했지만 전부 실패하고, 결국 가발로 덮어씌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그 문제를 말이다.

“아무래도 진짜 귀인이신가봐.”

처음에는 은퇴한 아버지를 노린 사이비인건 아닐까 걱정했었다.

그 다음에는 마음씨가 고운 청년인줄 알았다.

헌데 이제 와서 알고 보니···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진짜배기였던 것이다.

황폐하게 메마른 땅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기적.

물론 자신의 탈모는 유전적인 문제가 아니라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원형탈모로, 전자에 비하면 충분히 회복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허나 그동안 별다른 진전 없이 점점 탈모의 영역이 넓어져갔던 것도 엄연한 사실.

그 흐름을 이렇게 뒤집어줬다는 것만으로도··· 가히 기적이라 부를만한 일이었다.

‘···다음에는 아예 완치되는 거 아니야?’

그가 잠들기 전, 강태한은 미약하게나마 효과가 있을 거란 말 외에도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효과가 마음에 들면 한 번 더 찾아오라 했던 것이다.

흐름상으로 봤을 때 여기서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음을 암시하는 말. 어쩌면 더 이상 탈모 걱정 없는 삶을 사는 것도, 망상만은 아닐 수도 있었다.

“직접 만나러 가신게 큰 득이 됐군요.”

그런 장태현의 반응에, 최 비서도 빙긋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거들었다. 비록 생소할 정도로 낯선 반응이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까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러게 말이야. 아, 혹시 사진도 볼래? 아침에 샤워하고 나서 찍은 게 있거든.”

“······”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장태현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엔돌핀이 솟구친 나머지 자중심을 살짝 잃어버린 모습. 그 모습에 최 비서는 가볍게 헛기침을 터트리곤, 옆에 놓인 스케줄 표를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크흠.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곧 있을 미팅 준비를 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회장님.”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능숙하게 화제를 돌리는 솜씨.

그 말에 장태현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휴우.’

비록 나름 오랜 시간 장 회장을 모시며 신뢰관계가 쌓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라나는 머리카락 사진까지 공유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것이 최 비서가 내린 결론이었다.

“아, 그리고 최 비서.”

잠시 후, 준비를 마치고 회의실로 향하던 장태현은, 뒤늦게 떠올렸다는 듯이 최 비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 원장님에게 꼭! 좀 부탁을 드렸으면 해.”

“기존 예약을 앞당겨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그것도 좋기는 한데.”

꽤 솔깃했지만, 기존 규칙을 깨트리는 부탁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강 원장처럼 강직해 보이는 사람은 더더욱 말이다.

장태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번 안마의자 기획에 기술고문으로 와주실 수는 없는지, 그 섭외를 부탁해달라는 말이야.”

어쩌면 그룹의 자회사, 바디케어의 사활이 결정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에 겪은 기적 같은 일로, 장태현은 자신의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

‘혹시라도 탈모치료 기능까지 담아낼 수 있다면···’

이건 단순한 글로벌 진출과 기업의 수입 창출을 넘어서,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바지하는 거대한 공헌이 될 것이다.

* * *

“이야, 오랜만에 보는구만, 앨버트!”

리버풀의 워터프런트 인근에 위치해있는 한 호텔.

그곳의 스위트룸에서, 접객실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과장된 몸짓을 해가며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미스터 마르케시.”

방으로 들어온 손님은 에버튼 FC의 앨버트 감독.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또 다른 전성기를 이끌어내고 있는 중이라 평가받는 감독이다.

“요즘 일을 너무 열심히 하시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안색이 훨씬 환하시구만! 마치 나처럼 말이야! 와하하하!”

그런 그에게 과장된 수준으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남자는, 다름 아닌 타르빈 마르케시. 인도에서 석유 및 가스회사를 운영하는 인물인 동시에, 현재 에버튼FC를 소유하고 있는 구단주이기도 했다.

“자네 혹시 어제 우리 팀 경기 봤는가?”

“그야 뭐, 당연히.”

“아하! 자네는 현장에서 봤겠구만! 미안하네. 내가 요즘 경기가 있었던 날이면 자랑부터 하고 보는 게 습관이 되어서 말이야! 우하핫!”

그는 손뼉까지 치며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보일 수가 없는 반응. 그 모습에 앨버트 감독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맞은편의 쇼파에 자리를 잡았다.

“위스키 한 잔 하겠나?”

“나쁘지 않군요.”

앨버트 감독이 답하자, 마르케시는 직접 컵에다 얼음을 넣고 술을 따르더니, 그의 앞쪽으로 컵을 스윽 내밀었다.

“···호오.”

술잔을 집어 들고 천천히 한 모금 맛을 보는 앨버트. 살짝 머금는 것만으로도 입 안 가득 퍼지는 강렬하면서 그윽한 향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짧은 탄성을 터트렸다.

“좋은 술이군요.”

“기분이 좋을 땐 그만큼 좋은 술이 있어야지.”

담담한 칭찬 한 마디에 마르케시는 히죽 미소를 짓고는, 가볍게 입을 축이듯 본인도 한 모금 들이켰다.

“사실, 요즘 내 술 창고가 반이 비어버렸어. 경기가 있을 때마다 축하주를 따다 보니까 말이야! 하하하하!”

잠시 동안 잠잠해졌나 했더니, 이내 웃음소리와 함께 높은 텐션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스포츠팀의 구단주가 되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마르케시의 경우에는 좀 더 본질적이고 단순한 부분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마음.

그리고 본인의 팀을 갖고 싶고, 또한 그 팀이 리그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

마르케시는 본인이 에버튼 FC의 구단주이자 가장 큰 팬 중에 한 명이라 자부하고 있었으며, 팀의 승리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렇기에 요즘, 그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작년 시즌만 해도 잘 쳐줘봤자 중하위권에 있는 팀이었는데, 요즘에는 그야말로 연승행진을 이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요즘 보는 맛도 아주 좋아.”

슬럼프를 이겨내더니 전보다 더 큰 활약을 펼치는 강주완.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레전드 클래스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고드윈.

두 사람은 매 경기마다 최소 한 번씩은 기가 막힌 장면을 뽑아내고 있었고, 그 덕분인지 경기 수준 자체가 한 단계 끌어올려진 느낌이라, 보다보면 가끔 가다 선수들의 플레이에 감동을 느낄 정도였다.

“미스터 마르케시가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시니 저도 기쁘군요.”

한편, 그런 마르케시의 반응에 앨버트 감독 또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단순히 구단주의 비위에 맞추기 위한 대답은 아니었다.

툭 까놓고 말해, 팀에 별 관심이 없는 구단주도 생각보다 많다. 축구를 좋아하기보단 그 팀의 사업적 가치를 보고 들어오는 구단주들도 많았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미스터는 최고의 구단주지.’

헌데 팀의 경기를 일일이 챙겨보고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자랑을 늘어놓는 구단주라. 조금 리액션이 과하다는 느낌은 들지만, 그걸 어찌 나쁘게 볼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마르케시는 ‘난 축구를 좋아하지만 전문가는 아니다’라며 최대한 간섭을 피하고 응원에만 집중하는, 그야말로 감독으로서 불만을 가질 수가 없는 구단주였다.

“오늘은 별 일이 있어서 부른 건 아니고··· 이번에 리버풀까지 온 김에 이야기나 좀 들어보려 했지. 혹시라도 불편하거나 애로사항이 있을까 해서.”

그의 말에 앨버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몇 가지 사소한 내용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구단주에게 직접 말할 내용은 아니었다.

“딱히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마르케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치즈 한 조각을 집어먹었다. 그러더니 이내 흥미로워하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요즘 주완과 고드윈의 폼이 장난이 아니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본론이 끝나니 곧바로 관심사로 화제를 돌리는 느낌. 업무적인 이야기를 할 때보다 훨씬 초롱초롱한 눈빛에, 앨버트는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뭐, 두 사람은 원래 잘 뛰긴 했죠.”

“그야 그렇지. 하지만 지금은 클래스가 달라진 느낌이잖아?”

원래도 잘 뛰던 선수들이었지만, 요즘은 그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에버튼 연승 행진의 주역이라 하면 단연 그 두 사람을 뽑을 테니까.

“사실··· 얼마 전에 주완을 한국으로 돌려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일은 나도 잘 알고 있지.”

마르케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예정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왔지 뭡니까. 전 조급한 마음으로 제 배려를 무시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폼이 완전히 돌아왔지 뭡니까.”

“오호? 수술이라도 성공적으로 받고 온 건가?”

“아닙니다.”

앨버트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사지를 받고 왔다고 합니다.”

“···마사지?”

의아해하는 마르케시에게, 앨버트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마사지를 받고 부상 후유증이 다 나았다고 하더니, 실제로 이후 대활약을 펼친 것, 그 말을 들은 고드윈이 ‘오리엔탈 마셜아츠 마스터’를 외치며 한국에 다녀온 것. 그리고···

“그 결과, 미스터도 아시다시피 두 선수 모두 엄청난 활약으로 팀의 성적을 이끌어가고 있죠.”

“···허어어.”

이야기를 들은 마르케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의자 손잡이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괴었다.

“솔직히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그러고는 곧이어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두 선수가 똑같은 경험을 했다하고, 실제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구만.”

이야기만 들었으면 믿기 힘들었겠지만, 이미 성적으로 증명을 해낸 상황이니 납득을 할 수밖에 없다.

“···순간 든 생각이 있는데 말이야.”

“뭡니까?”

“두 명이 받아서 이렇게까지 기량이 올라갔다면··· 아예 모든 선수들이 다 받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

만약 팀의 선수 모두가 마사지를 받게 된다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효능이 나타나리라는 법은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기량이 올라가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게 된다면.

“뭐··· 이번 시즌엔 챔스까지 가게 될 지도 모르죠.”

“당장 추진하자고!”

유럽 리그의 올스타전과도 같은 챔스.

그 단어가 앨버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마르케시는 발까지 동동 구르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다른 선수들도 하나둘씩 한국에 다녀올 일정을 잡고 있습니다만··· 당분간은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경기 일정도 있고, 저희 쪽에서 시간을 낸다고 다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경기 일정? 며칠 시간도 내기 힘들 정도인가?”

“그렇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선수들이 한국까지 비행기로 다녀오는 시간이 좀 걸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순서를 정해서 다녀오는 방식으로 추진 중입니다.”

앨버트의 말에 마르케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그 마사지 마스터를 여기로 모셔오면 되지 않을까? 내 비행기로.”

“···흐음.”

돈이 많은 사람들은 가끔 발상의 범위 자체가 다를 때가 있다. 새삼스레 느끼는 생각에 앨버트는 나지막하게 침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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