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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14화 (114/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14화 >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어두운 방 안.

비상등 불빛만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그 안에서, 장태현은 자신의 양손을 두어 차례 꼼지락거리며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안마를 받았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다 정확히는 뭔가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기억이 끊어져있었다. 거의 필름이 끊어지는 수준으로,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졸음이 몰려왔던 것이다.

“일어나셨어요?”

그렇게 좀 멍하니 앉아있으려니, 직원이 찾아와 조명등을 키고는 테이블 위에 쟁반을 올려놓았다.

“다 끝난 거죠?”

“예. 천천히 쉬시다가 나오시면 됩니다.”

그럼 편안한 시간되시길.

직원은 그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방을 나섰고, 장태현은 조명등을 올려보다 테이블 위의 쟁반을 쳐다보았다.

‘약재와 꿀을 넣은 차인가.’

언뜻 코에 닿은 달착지근한 향기.

안마를 받고 한 숨 푹 자고 일어난 탓일까. 문득 느껴지는 뱃속의 허한 공복감에, 장태현은 손을 뻗어 찻잔을 들고는 조심스레 한 모금 들이켰다.

“···좋구만.”

목구멍을 타고 넘어 들어가는 따뜻한 온기.

그 온기는 잘 정돈된 수로를 따라 흘러가듯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고, 그 자체로 활력이 되어 몸의 기운을 북돋았다.

한 모금만으로도 이렇게까지 곳곳으로 효과가 퍼져나가는 것은, 기존의 탁기들이 빠져나가면서 그만큼 순환이 원활해진 덕분.

물론 장태현이 그런 자세한 사정까지 알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개운함만큼은 그 또한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머리가 맑아.’

툭 까놓고 말해, 자신의 일이 몸이 고달픈 일은 아니다. 거기에다 건강관리에도 신경 쓰고 있기에 건강 검진에서도 별다른 문제는 나온 적이 없다.

다만 여러모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할 뿐.

그 때문인지 편히 숙면을 취한 적도 거의 없고, 머릿속에 흐릿한 안개가 낀 것처럼 답답한 상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말끔한 기분이다.

맑게 갠 하늘처럼 쾌청하다고 할까, 전산실에 엉망진창으로 엉켜있던 전선들을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느낌이라고 할까.

‘이게 선생님이 따로 말했던 효과인가···’

장태현은 잠에 들기 전, 잠깐 들었던 강태한의 말을 떠올렸다.

짧은 시일 내에 어떤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거란 말.

들을 때는 ‘안마를 받고 나면 당연히 효과가 있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정도 수준이라면 생색을 내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무쇠로 만들어져 녹슬어가던 엔진을, 최신식 플라스틱 합금으로 교체해놓은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몸도 마음도 마치 새 사람이 된 것처럼 가벼웠다.

“···흐음.”

그렇게 새로워진 몸 상태를 확인하며 연신 감탄을 터트리던 와중. 장태현은 어떤 가능성을 떠올리고는 조용히 침음을 삼켰다.

아마 힘들 것이란 생각은 들지만.

혹시나, 만약에.

지금 자신이 받았던 이 안마를, 그 강렬한 자극을 안마의자에 담아낼 수만 있다면. 아니, 그 중에서 십 분의 일만이라도 전할 수만 있다면.

‘완전 대박이겠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안마의자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기계가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을 기술고문으로 초청하여, 어느 부위를 어느 정도로 지압하고 압박해야 하는지를 일일이 연구해가며 안마 패턴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훌륭한 센서와 제작 기술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안마의 데이터가 뒤떨어지면 효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애초에 안마라는 것이 제대로 된 지점을 적절한 힘으로 눌러야 그 효과가 나오는 것이니까.

경쟁업체 쪽에서는 공동개발을 통해 기술제휴를 받은 만큼 그 부분에서 앞서고 있었고, 그것이 그들의 경쟁력이자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말하자면 소프트웨어의 차이라고 할까.

자회사, 바디케어 쪽에서도 이 부분을 뒤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복합적인 부분에서 난항을 겪고 있으며, 특히 뛰어난 기술고문을 영입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만약 이곳의 강 선생이 회사의 기술고문을 맡아주게 된다면···

‘흐름이 바뀔 지도 몰라.’

확신은 가질 수 없다.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다’ 정도의 생각이다.

공부를 잘하는 능력과 잘 가르치는 능력이 서로 다른 영역에 있듯, 본인의 실력과 그걸 기계에 접목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쪽 임원진들이랑 회의가··· 아마 다음 주였지.’

그때 한 번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장태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찻잔에 담긴 칡차를 마저 비워냈다.

“그건 그렇고··· 여긴 왜 이리 간지럽지.”

장태현은 슬쩍 문 쪽을 쳐다본 다음, 머리 위로 손을 올리더니 머리카락을 스윽 벗겨냈다.

정확히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발. 그것을 벗겨내자, 그 안쪽에서 동그랗게 패여 있는 새하얀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손바닥만한 원형 탈모.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이런 유형은 회복 가능성이 높다고 했지만, 매일 스트레스가 끝이질 않는 탓인지 좀처럼 회복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요즘 들어 벗겨진 두피가 단단해지고 감각이 둔해져가는 게 느껴져서 우울해지고 있었는데··· 바로 거기에 간지러운 느낌이 들고 있는 것.

‘머리가 맑아져서 감각도 살아난 건가···’

장태현은 반사적으로 벅벅 긁으려다, 행여나 두피가 손상될 것을 걱정하며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것으로 애써 간지러움을 해소했다.

* * *

“흐음···”

카운터에 서있는 황 실장은, 고민에 빠진 모습으로 나지막하게 침음을 삼켰다.

‘슬슬 일반 코스도 인력이 부족해지겠구만.’

그의 앞에 나와 있는 것은 이번 주의 예약표.

일반코스를 찾는 손님이 별로 없어 강태한과 상의를 했던 것이 불과 며칠 전 일인 것 같은데··· 요즘에는 여기에도 꽤 많은 예약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인지도가 올라간 덕분도 있지만, 호텔과 사우나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찾아오는 손님의 숫자도 자연스레 큰 폭으로 상승했다.

호텔의 투숙객들이 사우나를 이용하고, 안마원까지 자연스레 발걸음이 이어지는 건··· 처음 가게의 입지를 봤을 때부터 생각해두고 있던 부분.

거기에 강태한이 호텔 쪽과 맺은 제휴까지 있었으니, 손님들이 이렇게 늘어난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단골들도 늘어나고 있으니.’

특히 근래에는 일반 안마사들도 따로 지명을 받거나 지정예약이 걸리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었다.

사실 손님이 늘어나는 건 마케팅만으로도 가능하지만, 따로 안마사들이 지명을 받는 것은 그것과 별개의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만족을 느끼지 않으면, 자길 안마해준 사람의 이름 같은 건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는 법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지명을 했다는 것은 그 손님이 지난번에 상당한 만족을 느꼈다는 것이고, 그건 곧 일반 안마사들의 솜씨가 많이 훌륭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원장님이 열심히 하신 보람이 있네요.”

황 실장과 비슷한 생각을 한 건지, 옆에 있던 직원이 모니터를 슬쩍 쳐다보고는 한 마디 던졌다.

“다들 열심히 배우기도 한 거지.”

강태한이 일반 안마사들을 대상으로 직접 가르치는 안마 수업. 사실 황 실장은 수업 참여율이 그리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툭 까놓고 말해 정기적으로 뭔가를 배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고, 더군다나 그게 직장에서 하는 것이라면 더욱 귀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헌데 수업의 내용이 워낙 알찬 덕분인가, 아니면 강태한에게서 느껴지는 묘하게 엄숙한 분위기 때문인가··· 안마사들은 신기할 정도로 성실하게 임했고, 수업의 참여율도 높았다.

결과적으로 손님들의 만족도도 올라가고, 일반 코스를 찾는 단골들도 많이 늘어나게 된 것.

“본격적으로 구인을 좀 해봐야겠는데.”

원래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춘 안마사를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강태한의 수업이 계속된다면야,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질 수 있다. 기술은 이쪽에서 가르친다는 마인드로 갈 수 있으니까.

‘어쩌면 나중에는 아예 안마사들을 육성해서 체인점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후후.’

예전에는 구상도 할 수 없었을 사업.

헌데 지금은 그 가능성이 보이는 듯도 하다. 강태한이라는, 실무와 교육 모두에 실력을 갖추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인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구상이었다.

물론 거기엔 상황도 받쳐줘야 되고 자금도 뒤따라야하며, 무엇보다 강태한의 의견이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 꼬리가 씰룩거릴만한 야망이었다.

“저기요.”

“예.”

그렇게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을 무렵.

어느새 다가온 손님을 뒤늦게 발견하곤, 황 실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영업용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푹 쉬셨습니까.”

“예. 정말 좋았습니다. 근데··· 혹시 저를 담당하셨던 안마사분이랑 만나볼 수 있을까요? 천마코스를 받았는데요.”

천마코스라 하면 두 말할 것 없이 강태한이다.

황 실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원장님은 이미 퇴근을 하셔서··· ”

“···그렇군요.”

그러자 장태현의 얼굴에 짙은 아쉬움이 나타났다.

사업과 관련된 용무인 만큼 미리 언질을 두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기에,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나 원래 아쉬운 입장이 기다려야하는 법.

장태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복 안쪽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원장님과 부디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 명함 하나 두고 가려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예. 그야 뭐···?”

생각 없이 손을 내민 황 실장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명함에 적혀있는 기업과 이름이 굉장히 낯이 익었던 탓이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어, 아, 예.”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를 떠나는 장태현.

원래는 ‘살펴가라, 조심히 가라’ 등의 인사를 건네야했지만, 황 실장은 어색한 반응밖에 보이질 못했다.

“···어쩐지 옷부터 명품 티가 나더라니.”

대청그룹 장태현 회장.

고급스러운 재질의 종이에다, 딱 그 아홉 글자와 함께 조그맣게 전화번호만 적혀있었는데, 오히려 그게 더 큰 임팩트를 가져다줬다.

“와, 방금 분, 옷도 그렇고 뭔가 범상치 않았죠.”

“그러게.”

“어떤 분이에요?”

옆에 있던 직원이 슬쩍 고개를 내밀자, 황 실장은 잽싸게 명함을 뒤집고는 지갑 안쪽에 집어넣었다.

“몰라도 돼.”

“에이, 좀 보여줘요!”

“일이나 해, 임마.”

황 실장은 마침 울리는 전화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왠지 사업 쪽의 냄새가 난단 말이지.’

굳이 감출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르지만···

이런 건 되도록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것이 상식이다. 더군다나 이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태한과 관련된 일.

평소라면 입이 가벼운 편에 속하는 황 실장이었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 편이었다.

* * *

한편, 그 다음 날.

“끄흐으으음!”

침대에서 일어난 장태현은 가볍게 기지개를 폈다.

‘아침부터가 다르네, 아침부터가.’

기지개 한 번에 몸 곳곳이 깨어나고 찌뿌둥한 것들은 전부 떨어져나가는 기분.

원래는 한참동안 스트레칭을 하고나서도 몸이 무거웠는데, 지금은 가볍다 못해 상쾌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깔끔한 아침이 얼마만인가.

아니, 어쩌면 평생에 처음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설령 사업 쪽 일이 잘 풀리지 못하더라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편이 좋겠는걸.’

다음에는 아버지와 함께 가도 좋으리라.

장태현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이 상쾌한 기분을 그대로 이어가기 위해 갈아입을 옷을 챙겨들고 샤워실 안으로 향했다.

“후우우···”

머리 위로 쏟아지는 따스한 온수.

잠시 떨어지는 물줄기 속에서 멍을 때리다, 손바닥으로 물을 받아 가볍게 세수를 한다.

그 다음으로는 머리를 감을 차례.

장태현은 손바닥에다 샴푸를 받고, 양손을 문질러 손에서부터 거품을 일으키고 나서 조심스레 머리로 가져간다.

아직 거품이 일지 않은 샴푸 원액이 두피에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한, 기초적이면서도 필수적인 방법.

혹자는 무슨 차이가 있겠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실제로도 별 차이 없다는 견해도 있었지만···

그들이 뭘 알겠는가?

이 마음은 머리가 빠져본 사람만 아는 것이다.

장태현 본인도 그 전까지는 몰랐으니까.

그는 마사지하듯 조심스레 머리를 문지르며, 아래쪽에서부터 위로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음?”

그런데 그 순간.

샴푸 거품으로 덮여있는 두피 위에서, 장태현은 이전과 다른 어떤 감촉을 느꼈다.

“음?!”

설마, 하는 심정으로, 장태현은 물을 틀어 머리를 덮은 샴푸거품을 모조리 씻어냈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뺨을 처음 매만지는 아기마냥 세심하게 정수리 부분을 더듬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유달리 부드럽게 느껴지는 정수리의 두피.

그리고.

막 자라나는 털이 갖고 있는 특유의 거칠거칠함!

“우와아아아악!”

손가락 끝을 타고 전해지는 그 감촉에, 정태현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기쁨과 환희로 가득 채워진, 그런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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