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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13화 (113/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13화 >

“······”

자동차가 완전히 지나가고 난 후.

주변에는 잠시 동안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공을 놓쳤던 아이도, 눈앞에서 자동차가 지나가는 걸 지켜본 아이도, 그걸 지켜보고 있던 장태현과 비서도 아무런 말없이 가만히 서있었다.

그 침묵 속에서, 강태한만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별 일 없었다는 듯 대수롭지 않아하는 표정.

그는 차도 쪽으로 걸어가더니, 그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공을 주워서 아이에게 건넸다.

“다음부터는 주위를 살펴보고 움직이렴.”

“고, 고맙습니다···”

강태한이 공을 건네고 어깨를 툭툭 두드리자, 침묵이 시간이 끊어지듯, 아이가 공을 받아들며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뭐지?”

“몰라, 갑자기 나타났어.”

그 옆에 가만히 멈춰서있던 다른 아이들도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들로서는 상황을 자세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차도로 튕겨져 나간 공을 쳐다보다가, 뒤늦게 달려드는 차를 발견했고··· 깜짝 놀라 공을 주우러가던 친구를 쳐다보니, 당연하다는 듯이 저 형이 서있었다.

“그럼 조심히 돌아가라.”

강태한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싱긋 미소를 짓더니, 가볍게 손을 흔들고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나타나 소년 한 명을 구한 것치고는 지극히 평범한 걸음걸이였다.

“···허허.”

한편, 장태현은 그때까지 엉거주춤하게 서있던 자세를 고쳐 잡으며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다급하게 달려가다 멈춘 모습 그대로, 강태한이 떠나갈 때까지 멍하니 서있었다.

“최 비서, 혹시 봤어요?”

“···아뇨. 못 봤습니다.”

뭘 봤냐는 건지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뭘 말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최 비서는 당황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비서인만큼 그의 주 업무는 사무작업에 있지만, 이렇게 1:1로 동행할 때에는 경호원의 역할도 일부 수행해야 한다. 그렇기에 주변 행인과 상황변화에는 항상 주의를 기울이는데···

“잠시 시선이 분산되긴 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타나있더군요.”

시선이 분산된 이유는 갑자기 뛰쳐나가려 하는 장 회장을 제지하기 위해서였다. 어쨌거나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장 회장의 안전이었으니까.

허나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길게 봐야 몇 초. 그런데 그 이후 다시 현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갑자기 한 청년이 나타나있었던 것이다.

“신기하구만.”

두 사람은 앞에 있던 아이들보다 키도 크고 거리도 좀 떨어져 있었기에, 시야 폭이 좀 더 넓었다. 허나 그럼에도 청년이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으음···”

다만 짚이는 곳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주변을 돌아본 최 비서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을 조심스레 입에 담았다.

“혹시 인근의 주차된 차량에서 내린 게 아닐까요.”

“···오. 그걸 생각 못했네.”

최 비서의 말에 장태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에는 상당히 많은 차량들이 일렬로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저 청년이 다른 골목에서부터 달려온 것이라면 거의 올림픽 육상 금메달에 가까운 주파실력을 보여준 것이겠지만, 인근 차량에 타 있다가 때마침 내렸다고 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것도 꽤 많은 우연들이 겹쳐야하지만, 그나마 이쪽이 가능성이 있어보였던 것이다.

“하긴,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허나 장태현은 곧 좌우로 고개를 젓고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일련의 소동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떠들며 갈 길을 가는 초등학생 무리.

자칫 잘못했으면 정말 끔찍한 일이 일어날 뻔한 상황이었었지만, 지금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만약 이 자리에 그 청년이 없었다면, 분명 사고가 일어났을 것이다. 최 비서와 자신은 거리가 멀었고, 자동차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아이는 공만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그런 끔찍한 사태를 막아준 것인데.

그 청년이 어떻게 나타났는지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어떻게 그게 가능했냐를 따질 게 아니라, 그 훌륭하고 모범적인 행동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한 번 개인적으로 만나봤으면 좋겠군.’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렸지만, 이미 청년의 모습은 어딘가로 사라진지 오래였기에, 장태현은 혼자만의 아쉬움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허나 잠시 후.

목적지, 천마안마에서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태현은.

“어라.”

방 안에 들어온 젊은 안마사와 눈을 마주친 순간, 자기도 모르게 당황의 목소리를 터트렸다.

“혹시, 그··· 그···”

얼굴을 보자마자 탁, 솟구치는 강렬한 기시감.

장태현은 그를 뭐라고 불러야할지 말을 더듬으며 한참을 고민하다, 뒤늦게 한 마디 내뱉었다.

“···모범시민?”

“예?”

그 호칭에, 강태한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뭐··· 제가 나름 모범적으로 살고 있긴 합니다만.”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뜬금없는 호칭이라는 건 바뀌지 않는 사실이었다.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크흠.”

앞뒤를 잘라놓고 꺼내놓으니,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비약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장태현은 한 차례 헛기침을 내뱉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방금 전, 길에서 선생님이 아이를 도와주는 걸 봤습니다. 공만 보고 차도로 뛰어들었다가 하마터면 차에 치일 뻔한 상황이었죠.”

침착하게 조곤조곤 말하는 장태현.

이제야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 들은 강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죠.”

“예. 그 기억이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는데, 그 덕분인지 선생님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보겠더군요.”

얼핏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어 어떤 사람인지 한 번 인사라도 나눠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기회가 생기다니. 묘한 인연에 장태현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으음··· 그리 말씀을 하시니 괜히 머쓱하네요. 단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만.”

강태한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래도 뭐,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쁘군요.”

그러곤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그 반응에, 장태현은 순간적으로 탄성을 터트렸다.

‘기운이 맑은 사람이란 게 이런 건가.’

당연한 말이지만, 그가 사람의 기운 같은 걸 볼 수 있을 리는 없다. 단지 겸손하게 말하는 그의 눈빛과 목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맑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차도에 뛰어드는 아이를 붙잡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허나 그걸 실제상황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걸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버지가 귀인이라 부른 이유를 알겠군.’

장태현은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새삼스레 떠올렸다. 아버지가 행여 이상한 사이비에 꼬이신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 직접 확인하러 왔었던 것이다.

다만 이 청년과 마주친 순간, 장태현은 자신이 쓸 데 없는 걱정을 했다는 걸 깨닫는 동시에 대략적인 상황의 경과를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추측할 순 없었지만.

이 청년과 만나고 나서 심적으로 뭔가가 바뀌신 게 아닐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란 생각과 함께 장태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도 뭐라고 딱 짚어서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가슴 한 켠이 따스해지는 기분이야.’

이 청년과 마주 보고 있자니, 몸이 따뜻해지고 훈훈해지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흐음···’

다만, 그건 단지 그런 기분이 드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강태한의 기감이 그의 몸을 안쪽에서부터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그가 느끼는 따스함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딱히 이상한 부분은 없지만···’

직접 손을 대고 기감을 펼치는 것보단 감지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이전보다 능력이 향상되고 예민해진 만큼, 딱히 큰 이질감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긴 한데.’

잠시 애매한 표정을 짓는 강태한.

허나 그는 곧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장태현에게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럼 슬슬 시작하도록 할까요.”

“아, 예.”

본래 목적은 안마를 받는 것이 아니었고, 오해도 얼추 해결되었지만, 굳이 이걸 거절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웠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안마 실력도 뛰어나실 것 같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어느 분야에 성실한 사람은 다른 곳에도 성실하기 마련이다. 특히 그게 자신의 본업이라면 더더욱.

장태현은 방금 전까지 없었던 기대감을 품으며, 얌전히 등을 보인 채로 침대 위에 엎드렸다.

“그럼··· 시작하지.”

그 순간 바뀌는 강태한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의아함을 느끼기도 전에, 강태한은 곧바로 그의 허리를 붙잡고 척추의 양 옆에 자리해있는 혈을 꾸욱, 누르기 시작했으며.

“허으으으윽!”

자신의 기대를 아득히 뛰어넘는 듯한 강렬한 자극에,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와 함께 장태현의 허리가 거칠게 꿈틀거렸다.

* * *

‘몸 자체는 나쁘지 않군.’

기감을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대략적인 사항을 훑어볼 수 있듯이, 처음 몸을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정보들을 알아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 사람이 운동을 하는지, 안 하는지.

평소 식사를 제대로 하는지, 안 하는지.

이 손님 같은 경우에는 나름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는 편으로, 근육도 탄력이 살아있으며 영양도 골고루 섭취하여 몸에 활력이 남는 편이었다.

이런 때는 불편한 어딘가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치거나 혈도가 막히는 일이 없도록 신체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쪽에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다만 심력 쪽이 영 좋지 않군.’

말하자면 정신.

평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중단전에서부터 상단전까지 이어지는 혈도들의 상태가 다소 거칠고, 특히 심력이 흐르는 혈도 중에는 탁기로 틀어 막힌 곳도 있어 순환 자체가 원활하지 못해 보였다.

“뭐가 문제였는지 대충 알겠군.”

“어, 어떤 게 말입니까?”

“자네의··· 아니, 혼잣말일세.”

고통에 신음하는 와중에도 슬쩍 물어보는 장태현.

강태한은 그런 그에게 답하려다··· 스리슬쩍 말을 돌렸다.

처음 그가 느꼈었던 한 가지 걸리는 부분.

보다 정확히는, 눈에 보이고 있는 정보와 기감을 통해 느낀 정보 사이에 있는 이질감이었다.

눈에는 분명 그의 수북한 머리숱이 보이고 있는데.

기감을 통해서 느껴지는 바로는···

‘정수리 부분이 텅 비어있지.’

상당히 규모가 큰 원형 탈모.

눈으로 보기에는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잘 만들어진 고급품이긴 했지만, 그의 윗머리로 보이고 있는 부분은 가발이었던 것이다.

만에 하나 자신의 감지 능력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기에 안마를 하면서도 거듭 확인해봤지만··· 그럴 수록 자신의 확신만이 더해질 뿐.

‘···아직은 젊어 보이는데, 안타깝게도.’

원래라면 확인한 내용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하고, 그로 인해 점쟁이 같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하는 강태한이었지만···

이 일에 관해선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그가 감추고 싶어 하는 치부였으니까.

‘특히 상단전 쪽의 심력 고갈이 심각하군.’

이 손님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 증거로 상단전 인근의 혈도가 유별날 정도로 메말라 있었고··· 자연스레 심력도 고갈되어 있었으며, 이로 인해 곳곳에 탁기가 쌓이며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었다.

허나.

체질이 그렇다면 어쩔 도리가 없지만, 이는 별개의 원인이 존재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부분이다. 강태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엎드려 보겠는가.”

“예? ···예에.”

강태한의 말에 장태현은 얌전히 몸을 뒤집어 천장을 바라본 채로 누웠다. 비록 바뀐 말투가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흐음···’

한편, 강태한은 그의 목 뒤에 위치한 천주(天柱)혈을 손가락으로 짚은 채, 그대로 슬며시 위로 살짝 들어올렸다.

“오오오오···”

천주. 하늘의 기둥이라는 거창한 호칭처럼 대다수의 혈도와 연결되어있으며, 이곳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머리의 혈도 중 대부분에 자극을 가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자연스레 터져나오는 탄성.

허나 방금 전까지 내뱉었던 신음이 고통과 자극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시원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랫동안 막아뒀던 댐이 열린 느낌이라고 할까.

말라붙은 배수로에 맑은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감각이라고 할까.

아무런 고통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머릿속으로 직접 밀려들어오는 듯한 이 강렬한 쾌감에 장태현은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후로도 목과 어깨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안마.

천주혈부터 시작해서 풍지, 아문 등의 주요 혈들을 자극하고, 막혀있던 탁기를 끄집어내어 통로를 비우고, 단전을 살짝 자극하여 황폐화되어있던 상단전의 혈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났을까.

“딱 짚어 말하기는 뭣하지만.”

슬슬 안마가 끝나갈 무렵.

강태한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아마 짧은 시일 내에 미약하게나마 어떤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걸세.”

“···예?”

다소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는 장태현.

허나 강태한은 그의 수혈(睡穴)에 손을 얹으며, 일방적으로 말을 끝맺을 뿐이었다.

“그 효과가 마음에 든다면, 한 번 더 찾아오게.”

“그게 무슨···”

흐릿해지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장태현은 기절하듯이 스르륵, 잠에 들었다.

뒷날, 장태현이 정수리에서 새롭게 자라나는 한 무리의 머리카락들을 발견하는 것은, 불과 며칠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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