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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11화 (111/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11화 >

‘···아무래도 좀 실례겠지?’

들으면 들을수록 강태한의 이미지가 더욱 또렷해지긴 했지만, 서경우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생각을 할수록 일전에 출연제안을 깔끔하게 거절했던 강태한의 모습이 함께 떠올랐던 것이다.

솔직히 태한 씨를 섭외하고 싶은 마음은 본인이 더 크다. 나와 주기만 한다면야 분량을 뽑을 자신이 있는데다, 안 그래도 요즘 작가들이 소재가 없다고 난감해하던 상황이었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추가적인 제안을 삼가고 있었던 건.

서경우에게 있어 강태한은 되도록 오랫동안 꾸준히 만날··· 아니, 만나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강태한의 안마실력은 차원이 다른 수준.

처음 방문을 했었던 이후로도 서경우는 꾸준히 천마안마에 다니고 있었으며, 안마를 받고 나오자마자 다시 천마코스의 예약을 잡고 돌아가는 것이 정기적인 행사가 되어있는 수준이었다.

특히 장기 출장을 나갔다가 돌아와서 받으면, 그것만한 삶의 낙이 없다고 할까. 강태한에겐 앞으로도 계속 안마를 받고 싶었고, 솔직히 받지 않으면 자기가 손해인 수준이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어색하거나 불편한 기운이 감돌게 된다?

강 선생님이 그런 걸로 크게 내색을 하거나 사람을 구별할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도 사실이다.

“···딱히 없네요, 선배님.”

결국 서경우는 결단을 내렸다.

말이 단역이지 사실상 조연에 가까워 보였고, 그런 자리에 배우도 아닌 일반인을 추천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을 것이다.

“흐음. 너, 방금 누구 한 명 떠오른 거 아니었냐?”

역시 촉이 좋으시구만.

서경우는 순간적으로 움찔했으나, 얼굴에 별 내색을 드러내진 않은 채 커피를 들어올렸다.

“에이. 선배님. 제가 예능 쪽으로 빠진지가 언제인데, 아는 배우가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습니까.”

마냥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가 떠올린 강태한은 어디까지나 안마사지 배우가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제가 아는 배우라고 해봤자, 다 업계에 알려진 사람들이고 선배님이 이미 알고 있는 배우들이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주태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빨대로 커피를 한 모금 쪽 빨아마셨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수상한데···”

“하하··· 아, 그것보다, 저쪽 골목에 새로 생긴 삼겹살집 가보셨어요?”

“글쎄. 오며가며 보긴 한 것 같다?”

“거기 고기가 진짜 끝내줍니다. 이따가 저녁 약속 없으시면, 오랜만에 밥이나 같이 한 끼 하시죠?”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태한 씨를 귀찮게 해도 된다는 말은 또 아니다.

둘이 인연이 되면 알아서 만나겠지.

서경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능숙하게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 * *

“오랜만이군.”

천마안마의 2번 방.

그 안에서 손님과 눈을 마주한 강태한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턱을 긁적였다.

“그렇게 오랜만은 아니신 것 같은데요.”

침대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한 명 앉아있었다.

그는 다름이 아닌 대청그룹의 장우영 명예회장.

사적인 자리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가게의 찜질복으로 갈아입은 탓인지 뉴스에 나오던 모습보단 꽤 친숙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꼿꼿한 자세와 그 눈빛에서 평범하지 않은 인상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장우영은 이미 한 차례 다녀간 적이 있었고, 그 기억을 잊어버릴 정도로 긴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었기에, 강태한은 아는 척을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만큼 반갑다는 뜻이 아니겠나.”

장우영은 침대 위로 발을 올려 양반다리를 하면서 빙긋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어디가 따로 크게 불편해서 오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양반다리란 건 기본적으로 눕는 것과는 거리가 꽤 먼 자세다. 굳이 그런 자세를 취했다는 건, 적어도 당장은 안마보다 다른 곳에 목적이 있다는 뜻이리라.

강태한은 슬쩍 장우영의 몸 상태를 살펴보고, 딱히 크게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 근처에 있는 작은 스툴에 자리를 잡으며 말했다.

“이 노인이 자네를 좀 만나보고 싶었는데··· 자연스레 만날 방법이 이것밖에 떠오르질 않아서 말이지. 좀 무리해서 취소된 자리라도 좀 구해달라고 했네.”

“흐음··· 만나고 싶었다는 건, 안마가 목적이 아니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셨단 말씀인가요?”

“그런 셈이지.”

장우영의 말에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지만, 당황스러울 정도의 일도 아니었다. 노인들은 가끔 가다 요상한 짓을 하는 법이니까.

대화 좀 하겠다고 집안에 몰래 들어와 있거나, 실력 좀 보겠답시고 다짜고짜 살기를 뿌리던 노고수(老高手)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충분히 납득할만한 수준이었다.

“여긴 안마원이긴 하지만··· 그런 걸 싫어하진 않습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들어나 볼까요.”

“으음. 그렇지. 다만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는 말이 좀 더 적절하겠어.”

장우영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나지막하게 말하더니, 이내 강태한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고맙네. 덕분에 이 노부의 고집보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 뒤늦게라도 깨달을 수 있었다네.”

강태한에게 넌지시 조언을 받았던 이후.

깨달은 바가 있었던 장우영은 장남에게 ‘같이 산에 가자’는 말을 꺼냈고, 그 결과 부자의 관계는 이전보다 한참 부드러워질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부모에게 자식이 먼저 찾아와야하는 거 아니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사소한 고집에 불과했다.

그 고집을 꺾고 강태한이 말한 대로 먼저 움직이는 순간, 장우영은 자신이 바랐던 걸 잠깐이나마 얻을 수 있었다. 마음 편히, 단지 아버지와 아들로서 등산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이다.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기쁘네요.”

한편, 그 말에 강태한은 솔직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바뀌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노인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동안 지내온 세월과 경험이 워낙 많다보니, 본인의 신념도 뚜렷하고 자연스레 고집도 생기는 것이다.

헌데 본인의 조언이 그걸 바꾸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뿌듯할 정도까진 아니어도 나름 흐뭇한 기분이 드는 강태한이었다.

“가족 분과 화해를 하신 모양이죠?”

“···그렇지. 어떻게 알았나?”

“대충 보면 견적이 나오죠.”

강태한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사람들에겐 각양각색의 고민들이 있다지만, 그의 경험상 노부(老父)들의 고민은 세세한 부분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체로 비슷한 편이다. 특히 현직에서 손을 놓고 은퇴한 이들은 더더욱 말이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자네는 두 번째 삶이라도 살고 있는 것 같아. 스물여섯 같지가 않단 말이지.”

강태한에게서 묻어나오는 연륜에 장우영이 한 마디 툭 던지듯 말하자, 순간 강태한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그로선 단순한 비유를 들었을 뿐이겠지만, 의외로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였던 것이다.

“···흠. 그런 말을 종종 듣기는 합니다.”

“하하. 그럴만해.”

다만 강태한의 동요는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고, 그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자 장우영도 별 생각 없이 소소한 웃음을 터트렸다.

“뭐 어쨌거나, 지금 이렇게 자네한테 따로 말을 거는 것도 자네의 조언에 따르고 있는 것이라네.”

“무슨 뜻입니까?”

강태한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자, 장우영이 곧바로 이어서 말을 덧붙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마음이 생각보다 편안해.”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치 동년배의 벗과 담소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숨겨둔 꿍꿍이도 없이 그저 이야기만 나누는, 그런 소소한 편안함 말이다.

“그래서 좀 더 자주 만났으면 했다네.”

그러려면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면 안 되고, 이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있다. 다름이 아니라 강태한에게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여긴 안마원입니다.”

그의 말에 강태한은 짐짓 딱딱한 목소리로 답했으나, 이내 느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이야기가 하고 싶다면 따로 연락을 주시죠. 차 한 잔 마시는 약속 정도야 저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오늘 찾아온 보람이 있군.”

흔쾌하게 말하는 강태한의 모습에, 장우영은 멋쩍어하는 미소를 지으며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쑥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 그건 그렇고···”

얼추 이야기를 마친 듯한 분위기에, 강태한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앉아있는 장우영에게로 손을 뻗었다.

“···왜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안마원에 오셨으면 안마는 받고 가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부드럽게 천천히 손을 움직이는 강태한.

그 손길이 닿을 때마다 장우영의 몸이 자연스레 하나하나 펴지더니, 이윽고 침대에 엎드린 모습이 되었다.

‘어라?’

본인의 몸이 움직였지만, 정작 장우영은 자신이 왜 엎드려있는지 순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거의 자기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수준의 느낌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

언제나 그렇듯, 방 안에선 안마를 받는 사람의 탄성과 신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 * *

“···으음.”

대청그룹 내부에 위치해있는 회의실.

딱히 회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장태현은 그곳에 앉아 비서가 건넨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각이 애매하긴 하구만.”

한 차례 침음을 삼킨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들고 있던 종이뭉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무턱대고 경쟁에 들어가기도 힘들 것 같고···”

서류는 그룹에 속한 한 자회사에서 올라온 것으로, 특정 제품군에 관한 최근 실적과 해당 사업에 관한 향후 전망을 축약 보고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회사의 이름은 다름 아닌 바디케어.

공기청정기나 가습기처럼 건강과 관련된 생활가전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곳으로, 특히 몇 년 전쯤에 안마 의자로 상당한 매출을 뽑아냈던 라인이다.

기존에 중국에서 수입되는 대부분이었던 상황에서, 럭셔리로 차별화를 두는 데 성공하여 시장을 장악하고 큰 실적을 거두었던 것.

헌데··· 최근 다른 회사에서 경쟁 상품을 만들고 공격적으로 마케팅에 들어가더니, 지금에 와서는 거의 반반 싸움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상대측에서 더욱 투자를 늘릴 것이란 전망까지 나와 있는 상황. 단순한 허세가 아닐까 했지만, 방금 본 자료를 살펴보니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 쪽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니.’

상대측이 과감하게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또 그만큼 성과를 거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오랫동안 안마의자를 만들어왔던, 업계의 장인이라 부를만한 일본의 회사와 공동개발로 상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본인이 직접 체험해 봐도 차이가 느껴지는 수준.

시장의 흐름도 저쪽으로 넘어간 지 오래고, 실제로 판매량은 물론이거니와 렌탈을 연장하는 빈도도 상당 부분 줄어들어 있었다.

“조한 씨.”

“예, 회장님.”

“이쪽 임원진이랑 회의 일정 좀 잡아주시고··· 김 사장이랑은 이번 주 주말에 식사나 한 번 하자고 말해줘요.”

버리기엔 아깝고, 살리려면 뭔가 혁신이 필요하고.

어느 쪽이건 결론은 되도록 빠르게 내려야했다. 머리가 갈팡질팡하면 아래는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법이니까.

다만 양쪽 다 리스크가 큰 선택이기에 섣불리 선택할 수도 없다. 순간 두통이 몰려왔는지, 장태현은 잠시 안경을 벗어놓고 양손으로 눈과 관자놀이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러다 문득 떠올랐는지, 장태현은 안경을 벗어놓은 채 옆에 있는 비서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제가 말씀하셨던 곳은 찾아보셨어요?”

지난 번 아버지와 등산을 하면서 들었던 ‘귀인’이라는 말. 그때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넘어갔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상한 느낌이 들어 비서에게 따로 조사를 부탁한 장태현이다.

“예. 찾아보니 천마안마라는 가게로, 새로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가게입니다. 회장님이 협심증으로 쓰러지셨을 때, 그곳 원장님에게 도움을 받으셨다고.”

“···흐음.”

아버지가 급성 발작으로 병원에 다녀가셨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가 있다. 그때 도움을 줬다면 그에게도 은인이었지만··· 이미 수상하다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것마저도 미심쩍게 느껴졌다.

일부러 미행하다 대상이 곤란을 겪을 때, 혹은 곤란한 상황을 일부러 꾸며놓고 도움을 주는 건 사이비에서 교묘하게 활용하는 방식 중에 하나였으니까.

‘게다가 병원에서도 검사 결과엔 문제가 없고 오히려 건강해지셨다고 했었으니.’

그거까지 생각하면 의심은 더욱 커졌다.

장태현은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잘은 모르지만, 애초에 천마라는 게 무협지에서 마왕 같은 거 아닌가?”

“비슷합니다.”

“그럼 안마원 이름이 마왕안마라는 건데··· 이렇게 놓고 보면 너무 수상해보이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라는 듯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SNS에 올라온 다른 방문자들의 평을 보면, 그렇게까지 수상한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유명인들도 종종 다녀가는 모양이고요.”

“···그래요?”

장태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허나 의심은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많이 다닌다고 해서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 건, 그쪽에서도 흔히 활용하는 심리였으니까 말이다.

“사실, 조사하면서 방문 예약도 잡아뒀습니다만.”

장태현의 그런 고민을 읽어냈는지, 그의 비서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한 번 제가 다녀와 볼까요?”

“···아뇨.”

그 말에 장태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럴 때에 가장 확실한 확인방법은.

“제가 가보죠, 뭐. 날짜는 언젭니까?”

자기가 직접 찾아가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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