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109화 >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미역국.
냄비에서는 뽀얗게 김이 올라오는데, 거기에는 미역국 특유의 감칠맛이 은근하게 실려 있어 냄새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쇠고기 미역국인가.’
서서히 퍼져오는 그 향기로, 강호연은 금방 미역국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가장 무난하지만 그렇기에 가장 확실한 선택. 쌀밥과 어우러지는 그 맛을 떠올리며, 강호연은 잠깐 입맛을 다셨다.
“읏차.”
하지만 강태한이 준비한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가스레인지 옆에 같이 올라가있던 압력솥.
이미 요리는 끝마친 건지 불을 꺼놓고 뜸을 들이고 있었는데, 솥의 뚜껑을 여니 방금 전 쇠고기 미역국의 냄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한 고기의 향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침치고는··· 너무 거한 거 아니냐?”
그 정체는 금방 식탁 위로 올라왔다.
압력솥으로 푹 익혀낸 소갈비찜. 딱 봐도 야들야들한 살점과, 농밀하게 퍼져오는 그 찐한 갈비찜 특유의 냄새에 강호연은 실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아침으론 좀 거한데, 생일상으로는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죠, 뭐.”
그에 강태한은 적당한 말로 넘기며, 미역국과 고슬고슬한 현미밥을 차례로 식탁 위에 올렸다.
“···허허.”
그렇게 차려진 든든한 아침 생일상.
가만히 상을 내려다보고 있던 강호연은, 저도 모르게 가슴 한 켠이 뭉클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내와 일찍부터 사별을 하고 난 이후.
툭 까놓고 말해,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그의 생일상을 차려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냥 지인들이랑 술이나 한 잔하고 돌아오는 정도가 전부였으니까.
그것도 젊었을 때의 이야기고, 요즘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내다 날짜가 지나가고 나서야 ‘생일이었구나.’라고 떠올리는 일이 더 잦았는데.
‘이것, 참.’
아들이 직접 생일상을 차려주는, 이런 일을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다만 자기가 아버지로서 많이 부족했음을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 뻔뻔한 바람으로 치부하고 인연이 없는 일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눈앞에 펼쳐져있는 이 거창한 아침밥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참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기특하고,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그런 복잡한 감정이 가슴 한 켠에 서서히 차오르는 것이다.
“이걸 내가 먹어도 되나?”
“그럼 생일상 주인이 먹지 누가 먹어요? 빨리 드시기나 하세요. 그래야 저도 먹죠.”
“알았다, 이놈아.”
아버지의 감정을 얼추 짐작하고 있기 때문인지, 강태한은 지레 퉁명스럽고 장난 끼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강호연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는, 천천히 미역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겠는가.
식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방심하면 눈물마저 맺혀버릴 듯한 그 뭉클한 감정 속에서 제대로 음식의 맛을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음?”
맛을 보는 순간.
강호연은 저도 모르게 조그마한 탄성을 터트렸다.
원래는 식사를 시작하기 위해 첫술부터 급히 뜬 것에 가까웠지만, 그는 곧바로 숟가락을 움직여 두 입 째를 입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두 입, 세 입··· 그 다음에는 밥까지 한 술.
‘뭔데 이렇게 입에 착착 감기냐?’
그의 입맛을 저격한 것처럼 착착 감겨오는 감칠맛!
괜히 아들 녀석이 끓여줘서 그러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여태동안 먹어본 미역국 중에 손에 꼽을만한 수준이었다.
여전히 그의 가슴 한 켠에는 뭉클한 감정이 피어오르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게 강호연이 수저를 멈출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허허.”
내친 김에 갈비찜까지 하나 집어먹자, 그의 입에선 소박한 웃음이 절로 피어올랐다.
생긴 것만 봐서는 좀 짤 것 같아 밥까지 한 술 떠놨는데, 막상 맛을 보니 적절하게 맞춰진 간과 깊이 배어든 감칠맛이 농후하면서도 절묘한 맛을 자아내고 있었다.
‘잘 드시니까 좋네.’
한편, 강태한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요리를 만든 사람 입장에선,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이었으니까.
아들이 생일상을 차려주는 것이 강호연에게 막연한 소망이었지만, 아버지의 생신상을 차려드리는 것이 강태한의 작은 소원이기도 했다.
보다 정확히는, 무림에 있던 시절 떠올린 소원.
당시엔 현실로 되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고, 설령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아버지가 살아계시긴 힘들 것이라 생각했었기에, 정말 막연한 소망에 불과했었다.
그렇기에, 그로선 아버지의 생신이 오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참이다.
그렇다고 딱히 거창한 선물이나 이벤트를 준비한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지금은 딱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며,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너, 어디서 국 끓이는 법이라도 배워왔냐?”
“왓튜브에 나와 있는 레시피대로 했죠.”
“근데도 이렇게 맛있단 말이야?”
“레시피 올린 셰프가 좀 유명한 사람이긴 한 모양이에요. 강한진이랬나.”
어깨를 으쓱이며 답하는 강태한.
잠시 후, 아침상이 너무 거창한 거 아니냐고 말했었던 강호연은 밥그릇을 싹싹 비우고 미역국 한 그릇까지 더 비우고 나서야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 * *
“흐아아암.”
유세아는 한 차례 크게 하품을 하며 정수기의 냉수를 한 컵 받았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침대에 누워 끙끙 앓고 있던 그녀였지만, 지금 하품을 하고 있는 그녀는 아직 덜 깬 졸음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민인 사람처럼 지극히 평온해보였다.
‘세상마저 달라 보이는 수준이네···’
전날, 그녀는 강태한이 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안마를 받던 도중에 스르륵 잠들고는 그대로 계속 자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거의 열두 시간 동안 죽은 듯이 잠만 자고 있었다는 모양. 심지어 앓는 소리도 없고 뒤척이는 것도 없이, 정자세로 누워 숨소리만 간간히 들려오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덕분일까.
지금 그녀는 그야말로 개운한 기분이었다.
열은 잠에 들기 전부터 거의 가라앉아 있었고, 몸살기운도 씻은 듯이 사라진지 오래다. 지금 그녀에겐 약간의 허한 느낌과 공복기를 제외하면, 그 어떤 증상도 없는 상태였다.
‘엄청 시원하기는 했지···’
당장 안마를 받고 있을 때는 고통도 고통이거니와, 자극이 너무 강해 그 효과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었는데···
안마가 거의 끝나갈 무렵부터 안락할 정도의 편안함이 느껴지더니, 한 숨 자고 일어난 지금은 경이로울 정도로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세아야, 그냥 냉수 먹지 말고, 거기 엄마가 따로 따라놓은 거 있잖아.”
그러던 와중, 유세아가 나온 것을 봤는지 거실에 앉아있던 한주아가 주방 쪽으로 걸어오면서 말했다.
“어떤 거?”
“네 앞에 있는 그거.”
한주아가 식탁 위에 놓인 머그컵을 가리키자, 유세아는 머그컵 안쪽을 슬쩍 쳐다봤다. 컵 안에는 ‘나 몸에 좋소’라고 말하는 듯한 짙은 검갈빛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딱 봐도 써 보인다는 뜻이었다.
“···냉수가 더 맛있어 보이는데?”
유세아는 망설임없이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어디서 또 이상한 거 받아온 거 아냐?”
“너, 네 남자친구한테 말이 심하다?”
“태한 씨? 태한 씨가 왜.”
“그거 어제 태한 씨가 갖다 준 거거든. 자기가 직접 따로 만든 한방차라나, 뭐라나.”
“그··· 그래?”
“한 입 마셔보니 정성이 들어가도 여간 들어간 게 아니던데. 이것 참, 한 잔도 안 마셨다는 걸 알게 되면 태한 씨도 많이 서운하겠어.”
유세아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자, 한주아는 쐐기를 박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조심스레 다시 머그잔을 살피는 유세아.
그 말을 듣고 다시 보니, 왠지 달리 보인다. 정성이 느껴진다고 할까. 은은하게 퍼져오는 한약재의 향마저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마시면 되잖아, 마시면···”
그녀는 들고 있던 냉수를 내려놓고는, 못이기는 척 머그잔을 들어올렸다. 색깔만 봤을 땐 몰랐는데, 가까이서 향을 맡아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듯했다.
“음?”
그렇게 조심스레 한 모금.
헌데 한 번 맛을 본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더니, 그녀는 다시 차를 기울여 재차 맛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입 안에서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쌉쌀한 향.
분명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의 맛이었지만··· 왠지 그 맛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흔히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몸에 잘 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게다가 단지 차 한 모금을 마셨을 뿐인데, 방금 전까지 허했던 몸에 기운이 차오르고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식힐 대로 식혀둔 미지근한 차였는데도 말이다.
“후우.”
순식간에 컵을 비우고 내려놓는 유세아.
아까 전까지 냉수나 마시려고 했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얘 좀 봐. 남자친구가 만들어줬다니까 그냥 바로 재깍 비워버리네?”
“···아, 아냐. 그냥 맛있어서 그래.”
옆에서 지켜보던 한주아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하자, 유세아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첫 입까진 강태한을 생각해서 먹은 거긴 했지만, 그 다음부턴 그냥 빨려 들어가듯 꼴깍꼴깍 마셨으니까.
“하긴, 남자친구가 괜찮은 사람이긴 하더라.”
허나 한주아에겐 둘러대는 말로 들릴 뿐.
그녀는 다만 혼자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치?”
비록 자기 말을 오해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강태한을 칭찬하는 말에, 유세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귀를 쫑긋 세우며 흥미를 보였다.
“키도 크고 얼굴도 훤칠한데, 몸은 또 듬직하고. 예의도 바르고 점잖은 게, 마음에 쏙 들더라 야.”
“후후··· 내가 없는 말을 지어낸 게 아니라니까?”
유세아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지었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말에 그녀가 다 뿌듯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건 그렇고, 너 점심은 뭐 먹을래?”
“음··· 김치찌개 해줘. 돼지고기 많이 넣어서.”
슬슬 점심 준비를 하러 주방으로 들어가는 한주아.
유세아는 옆에 놓여있던 한방차를 한 잔 더 따라 마시며 신중히 고민하더니, 이윽고 가볍게 입맛을 다시며 답을 내놓았다.
전날까지 끙끙 앓던 환자의 모습은, 이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 * *
찜질방의 안마샵에서 본인의 가게로 옮기고 난 후.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기본적으로 강태한의 일과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퇴근하고 나서 되도록이면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후우우.”
덜커덩.
강태한은 그때까지 사용하고 있던 기구를 내려놓고,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라이너 빌딩 21층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피트니스 클럽.
라이너 호텔에 소속되어있는 부대시설 중 하나로, 약간의 문제가 생겨 사우나보다 오픈이 좀 늦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평이 좋아 하루가 다르게 회원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깨끗한 시설과 넓은 공간, 런닝머신을 뛰며 보이는 탁 트인 전경, 그리고 약간의 추가비용을 더하면 같이 끊을 수 있는 사우나 합동 회원권까지···
‘마음에 들어.’
새삼스레 이전에 이용하던 시설들과 비교해본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다녔던 클럽과 찜질방이 안 좋은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이곳과 비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데다, 지금은 같은 건물에서 엘리베이터, 아니 계단만 오르내려도 다닐 수 있는 가까운 위치였다.
편리하기도 편리하지만, 시간도 훨씬 단축할 수 있는 부분. 덕분에 요즘에는 집에 도착하는 시간도 한층 빨라져있었다.
“다른 직원들한테도 좋기도 하고···”
강태한은 기구에서 일어나 자리를 비키며 주변을 가볍게 한 바퀴 훑어보았다. 그가 살피고 있는 건 시설이 아니라 이 안에 있는 손님들의 얼굴.
그들 중 대부분은 당연히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강태한의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안마사들의 모습이 간간히 눈에 들어왔다.
강태한과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는 오전출근반.
당연한 말이지만, 안마사에게 체력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길 따라서 운동을 하라고 할 수 없는 노릇.
그래서 수업할 때만 ‘틈틈히 운동을 하는 게 좋다’라고 말버릇처럼 말할 뿐이었지만··· 참 고맙게도, 그 이후 강태한처럼 피트니스 클럽에 등록하고 꾸준히 다니는 안마사들의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미쳤다.”
한편, 지켜보고 있는 것은 강태한 뿐만이 아니었다.
“원장님 체력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운동을 하다 잠시 구석의 벤치에 모여 쉬고 있던 세 명의 안마사들. 그들은 방금 전까지 운동을 하고 있었던 강태한을 쳐다보며, 저마다 한 마디 씩의 감상을 입에 담았다.
얼핏 봐도 100kg가량은 될 것 같은 중량을 걸어놓고 한동안 묵묵히 운동만 하더니, 가볍게 큰 숨 한 번 쉬고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그냥 헬스장에서 만난 사람이 그러고 있어도 놀라울 것 같은데··· 원장님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쉴 새 없이 안마를 하고 온 상황이지 않은가?
그 정보들을 종합하면, 눈앞에 보이는 저 광경이 믿기 힘들 정도로 터프한 모습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아까 등 근육 움직이는 거 봤냐?”
“등으로 종이 접기도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이번엔 턱걸이하러 가시네.”
잠깐 숨을 고르고 몸을 좀 풀더니, 바로 다용도 철봉으로 가서 턱걸이를 오르내리는 강태한 원장의 모습. 그를 지켜보던 세 사람은 묵묵히 침묵을 지키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만에 하나라도 원장님에게는 까불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