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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07화 (107/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07화 >

“야, 고드윈!”

에버튼 FC 훈련장내의 휴게실.

이제 막 연습경기를 마치고 돌아와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고드윈에게, 팀의 다른 선수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뭔데?”

“너 이 자식, 요즘 갑자기 너무 잘하는 거 아니냐?”

“뭘 한 거야? 슬슬 솔직하게 말해줘.”

사실 고드윈이 한국에 다녀온 직후, 팀의 다른 선수들은 그의 컨디션을 걱정하고 있었다.

요 며칠간 주기적으로 있는 연습경기에도 참여하지 않은 채,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기초적인 풋워크와 드리블 연습에만 맹목적으로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왠지 평소와 다르게 우중충한 분위기까지.

평소 뜬금없는 헛소리와 특유의 밝은 분위기로 동료들 사이에서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담당했었는데, 그런 그의 변화에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괜히 걱정한 모양이지.”

헌데 그러한 염려들이 무색하게도, 이틀 전 있었던 경기에서 고드윈은 미친듯한 대활약을 펼쳤다.

전반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후반 마지막에 2:1로 뒤쳐지던 상황에서 거의 원맨쇼를 펼쳤던 것이다.

혼자 수비라인을 다 뚫고 들어가, 기가 막힌 어시스트를 꽂아서 한 골. 직후 적 수비라인 근처에서 패스를 잘라먹더니, 그대로 파고들어서 직접 한 골.

원래부터 실력이 뛰어나 다른 선수들보다 두각을 드러내는 편이긴 했지만, 어제 경기 마지막 5분 동안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신에 들린 수준이었다.

거기에다 방금 있었던 연습경기에서도 대활약.

안 그래도 잘하던 녀석이었는데, 뭔가 거기서 한 단계 더 올라선 듯한 느낌이었다.

“하하. 그게 아니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이야. 나도 거기에만 집중하기로 했었고.”

한편, 고드윈은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적응? 뭐에.”

“···내 몸의 감각에.”

그는 히죽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몸을 가리켰다.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

고드윈은 감각이 더 날카로워지고 반사 신경과 반응속도마저 한층 빨라졌음을 느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축구실력은 한참 떨어져 있었다.

잠재력과 기대치 자체는 크게 올라간 상황이었지만··· 아직 새로운 감각에 몸이 적응을 못한 탓에, 발이 한 박자 더 빨리 나가거나 공을 스쳐지나가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그때의 실력은 리그 경기는커녕 연습 경기에서도 제 역할을 다하기가 힘들었던 수준.

고드윈은 최대한 빨리 새로운 감각에 적응해야했고, 그렇기에 한동안 묵언수행이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에 온 신경을 집중했었던 것이다.

“사실 경기에 들어가서도 전반까지는 살짝 애매했는데··· 후반쯤에 확실히 느낌이 오더라. 역시, 나는 실전파야.”

고드윈은 자기 가슴팍을 톡톡, 두드리며, 본인이 생각해도 뿌듯하다는 듯이 말했다. 허나 그걸 지켜보는 동료들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직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도핑테스트 다시 해봐야하는 거 아니야?”

딱 봐도 농담처럼 들리는 말에 우스갯소리로 대꾸하는 동료들. 허나 고드윈은 그들을 보며 혀를 차고는 좌우로 손가락을 흔들 뿐이었다.

“믿음이 부족하면 진실은 보이지 않는 법이지.”

“그러니까 그 진실이 뭔데?”

“···오리엔탈 마사지 마스터.”

언뜻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목소리.

평소라면 이 또한 헛소리로 치부를 했겠지만··· 이전에 앞선 사례가 있기 때문인지, 선수들은 조용히 고드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분이 포스의 힘으로 나의 잠재력을 깨워줬어.”

“···뭔 개소리야?”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한 사람.

그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다른 이들의 반응은 그와 달랐다.

“오리엔탈 마사지 마스터와 포스의 힘이라···”

“그랬군. 역시 그랬어.”

“과연. 동양의 신비란 실존했던 것인가.”

다른 때면 몰라도, 이미 앞서 강주완이 한 번 비슷한 주장을 했었던 상황이었고, 강주완은 슬럼프를 극복한 걸로도 모자라 최근 경기에서 실제 성적으로 자신의 성장까지 증명해냈다.

그래도 아직은 긴가민가하는 의견들이 많았고, 마사지의 효과가 탁월했다하더라도 다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거란 추측이 대세였지만···

이렇게 두 번째 실제 사례까지 나오면 아무래도 믿음이 갈 수밖에 없다.

아시아의 동쪽 끝 코리아에,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려주는’ 마사지 마스터가 있는 것이라고!

“내가 말했잖아. 다녀오면 후회는 없을 거라고.”

그때, 조금 늦게 들어와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주완이 슬쩍 끼어들면서 말했다.

“효과를 생각하면 비행기 값 정도야 별 거 아니지. 장거리 비행 때문에 피로가 쌓인다지만, 안마로 다 풀어주시니 경기 컨디션도 걱정할 필요 없고.”

“게다가 바로 밑에 있는 호텔도 시설이 나름 괜찮아서 숙소 고민할 필요도 없다구.”

강주완의 말에 한 마디 거드는 고드윈.

그의 말에 강주완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맞아. 그리고 다른 시설들도 꽤 좋아. 특히 꼭대기층에 있는 사우나가 나름 운치 있는데··· 너도 가봤지? 고드윈.”

“어··· 사우나?”

강주완은 당연히 가봤을 거란 생각에 말을 꺼냈지만, 정작 고드윈은 ‘사우나’라는 말에 흠칫하는 반응을 보였다.

“거, 거긴 안 가봤네.”

매우 개방된 모습으로 선풍기 앞에 서서, 바나나우유를 들이키고 있던 이름 모를 아저씨의 모습.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에 고드윈은 세차게 좌우로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비운다음,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그건 좀 아쉽네. 다음에라도 가 봐.”

“아니··· 사양할게.”

다시 그 모습이 떠오를 것 같아, 고드윈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젓고는 단호한 말투로 답했다.

“저번만큼 일정이 빌 때가 또 언제쯤에 있지?”

“당일로 정말 안마만 딱 받고 돌아온다면 사흘 정도만 비어있어도 충분하지 않아?”

한편, 두 사람의 말을 들은 다른 선수들은 각자의 스케줄을 확인하거나 비행기 시간을 확인하며 서서히 흩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일전보다 확실히 더 적극적인 반응.

그도 그럴 것이, 방금 마사지의 효과를 보장한 두 선수가 현재 이 팀을 이끌어가고 있는 투 탑이자 쌍두마차였던 것이다.

한 명이 그러면 모를까, 두 사람 모두가 마사지를 극찬하며 성장의 비결로 꼽고 있는 상황··· 이쯤 되면 궁금해서라도 다녀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그 날 저녁에는 뭐 먹었냐?”

바쁜 듯 서서히 흩어져가는 동료들 사이에서, 강주완은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고드윈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네가 말한 대로 삼겹살로 했지. 끝내주던데.”

그 질문에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고드윈. 사우나에서의 기억과 달리, 삼겹살을 먹었던 기억은 두고두고 떠올리고 싶을 정도로 행복한 기억이었다.

“네가 영국의 한식당에서 먹는 삼겹살과는 느낌부터 다를 거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어.”

“아, 그건 확실히 다르지.”

강주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건 그렇고, 선생님은 고기도 잘 구우시더라.”

“···선생님? 누구.”

“누구긴 누구야. 마사지 마스터님이지.”

당연하다는 듯한 고드윈의 말에, 강주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님이 왜 네 고기를 구워줘?”

“아. 어쩌다 선생님이랑 합석해서 먹었었거든.”

고드윈은 팔짱을 끼며 잘난 척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왠지 우월감이 담겨있는 얼굴이었다.

“모르겠지만, 마사지 마스터는 바베큐도 마스터야.”

“···그, 그러냐?”

농담 끼가 다분하게 묻어있는 유치한 말.

헌데 왜일까. 강주완은 가슴 한 켠에서 진지한 부러움과 질투심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기분이었다.

* * *

‘이쪽 길이었었지, 아마.’

강태한은 이전 기억을 더듬으며 우측으로 핸들을 꺾었다. 지금 그는 유세아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목적은 다름 아닌 병문안.

통화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심한 병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기다리던 캠핑을 자진해서 포기할 정도였으니, ‘병세가 꽤 심한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봤을 땐 별 일 없었는데 말이지.”

아파트에 도착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며, 강태한은 마지막으로 살폈던 유세아의 상태를 떠올렸다.

선천적으로 약한 심장이 항상 걸리긴 했지만, 적어도 그 땐 딱히 별다른 증세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요즘 바쁘다더니 몸이 상하기라도 한 건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이 대략 일주일 전.

이번에 주연급으로 들어가는 촬영이 있어 한동안 바쁠 것 같다했었으니, 아무래도 그 사이에 기력이 좀 쇠해졌을 지도 모른다.

촬영 쪽 일은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현장에 있다 보면 진 빠지는 일도 꽤 많을 테니까.

“뭐, 나로선 쾌차를 바라는 수밖에.”

유세아는 어머니와 함께 지낸다 했으니, 아마 병간호는 어머니께서 직접 하고 계시리라.

그렇다면 본인의 역할은 안부를 묻고 도움이 될 만한 선물을 건네는 것 정도일 터.

주차를 마친 후, 강태한은 뒷좌석에 올려뒀던 종이가방을 집어 들고 슬쩍 내용물을 살폈다.

강태한이 직접 재료를 골라 달인 한방차, 작은 병에 옮겨 담은 칡청, 잔병치레에 특효인 생강청 등등.

크기 자체는 종이가방 하나에 쏙 들어가는 양이지만, 죄다 액체류라 그런지 손에 느껴지는 무게감은 꽤나 묵직했다.

‘이 정도면 나름 도움이 되겠지.’

백화점에서 건강식품 코너를 좀 둘러봤지만, 딱히 크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아 따로 준비한 것들이었다.

유세아의 체질은 이미 살펴본 바 있었기에 한방차도 그에 맞춰 재료들을 골랐고, 같이 가져온 청들도 한 차례 기를 골라내는 공정을 거쳤다.

강태한으로선 간소하게 준비한 수준이지만··· 유세아에겐 하나같이 보약 같은 효능을 지닌 물건들. 이윽고, 강태한은 챙겨온 물건들을 가지고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예전에 몇 번 유세아를 데려다준 적이 있었고, 따로 주소를 알려준 적도 있었으니까.

금세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한 강태한은 조심스레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강태한이라고 합니다.”

따님의 남자친구라는 말도 해야 하나.

잠시 그런 고민을 하던 순간, 안쪽에서 살짝 서두르는 듯한 걸음소리가 들리더니, 벌컥, 하고 현관문이 열렸다.

“어머어머, 학생이 강태한 씨?”

문을 열고 나온 것은 유세아의 어머니인 한주아.

그녀는 강태한의 얼굴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더니, 입가 주변에 손을 모았다.

“예. 처음 뵙겠습니다.”

“이야기는 딸아이한테 많이 들었어요.”

그녀의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 번 남자친구에 관해 물어봤을 때,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자친구 자랑을 주루룩 늘어놓았던 것이다.

과장이 심하면 오히려 의심이 드는 법.

때문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진짜 훤칠하네.’

키도 큰데 어깨까지 떡 벌어져있었고, 눈매는 날카로우면서 꼬리 쪽이 살짝 내려와 있는 것이 부드러운 인상까지 품고 있었다.

거기에다 깊이가 느껴지는 이 진중한 분위기까지.

‘음, 합격!’

그녀는 마음속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결론을 내리곤,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다른 게 아니고, 세아 씨가 몸이 아프다고 해서, 도움이 될 만한 걸 좀 가져와봤습니다.”

“어머··· 뭘 이런 걸 다.”

2차 합격! 아직 내용물을 살펴보진 않았지만, 요즘 애들 같지 않게 이런 것까지 챙겨오는 모습에 한주아는 다시 한 번 마음속의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세아 씨는 좀 괜찮아졌나요?”

“좀처럼 열이 안 내려가긴 하는데, 그래도 잠은 잘 자고 있어요.”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용건을 마친 강태한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아니, 뒤로 물러나려했다.

“어? 그냥 가게요?”

하지만 그런 그를 한주아가 붙잡았다.

“네. 아무래도 민폐가 될 수 있으니···”

“에이. 이렇게 그냥 돌아가면 내가 뭐가 되나. 와서 과일도 좀 먹고, 딸아이 얼굴이라도 보고 가요.”

“···그럴까요?”

솔직히 말하면, 바라던 바다.

강태한은 잠시 머쓱한 표정을 짓다가, 머리를 두어 차례 긁적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끄흐으으···”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며 유세아는 앓는 소리를 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어지러움과 두통. 그럴 때마다 그녀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하아아.”

다만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가 애매했다. 워낙 자다 깨다를 반복해서 정신이 몽롱하기도 했거니와, 그 경계가 모호했던 것이다.

“엄마··· 엄마아···”

얼음 팩 좀 다시 갈아줘.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정신이 몽롱한 탓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아이처럼 연달아 칭얼거릴 뿐.

그때쯤이었을까.

그녀의 머리 위에 시원한 기운이 슬쩍 올라왔다.

“아··· 좋다.”

뜨겁던 이마의 열을 확 내려앉히는, 그러면서도 차갑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는 정도의, 딱 마음에 드는 시원함이었다.

그 덕분일까.

방금 전까지 그녀를 앓게 했던 두통도 서서히 가라앉고, 침대가 빙빙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어지러움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엄마 손이 진짜 약손이긴 하네···”

간만에 편안하게 숨을 고르는 유세아.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기분에,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헌데.

“흠. 지금은 제 손이 약손이긴 하죠.”

“엉?”

생각지 못한 목소리에, 그녀의 두 눈이 팍 뜨였다.

그녀의 앞에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강태한의 얼굴.

평소처럼 싱긋 웃고 있는 그 모습과,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내려가는 듯 했던 유세아의 열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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