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106화 >
‘···시원하잖아?’
몸은 온갖 자극으로 버거워하는데, 정작 지병처럼 앓고 있던 심장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오히려 가슴 한 켠이 개운한 기분에, 심장이 건강하고 활력 넘치게 뛰고 있다는 걸 저도 모르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뿐인가.
고통과 자극에서 시선을 돌려 몸의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하니, 곳곳에서 신경을 타고 흐르는 듯한 시원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대대적인 환기(換氣).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오랫동안 묵혀있던 창고에 큼지막한 창을 몇 개 뚫어, 바닥 곳곳에 쌓여있던 먼지까지 한 번에 날려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으하아아···”
한 번 인식하니 더욱 크게 느껴지는 개운함. 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노곤함.
어느덧 그는 몸의 긴장마저 전부 내려놓은 채, 방금 전까지 그토록 아파했던 강태한의 지압마저도 시원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좋구만.’
몸이 개운해지니 정신도 맑아진다.
그는 베개에 머리를 뉘인 채 조용히 숨을 쉬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마음 속까지 편안한 기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강태한이라는 청년에겐 안심하고 몸을 맡겨도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직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도무지 스물여섯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연륜이라든가, 갑자기 바뀌어버린 말투라든가. 아직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많기는 했지만.
‘따로 뭔가 이유가 있겠지.’
솔직히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의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인지, 딱히 크게 거부감이 드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편안하군.”
그렇게 얼추 안마가 끝나갈 무렵.
장우영이 솔직한 감상을 넌지시 입에 담았다.
“이런 기분을 느껴본 건 정말 오랜만이야.”
“그런가.”
“이 나이에 부끄러운 일이지만, 마음 편히 있을만한 곳이 딱히 없어서 말일세.”
자신이 굉장히 특혜를 받는 위치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허나 그렇기에 쉽사리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고,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애초에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딱 두 가지다. 지나치게 어려워하거나, 혹은 너무 들이대거나. 후자의 경우는 십중팔구 그에게 얻어낼 것이 있어서 다가오는 것이기에, 더욱 경계해야만 했다.
“너무 긴장만하면 근육이 뭉치는 법이지.”
강태한은 아직 조그맣게 남아있는 뭉친 근육을 풀어헤치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핏 듣기로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말이었다.
“몸의 건강을 유지하려면, 간단한 운동이라도 좋으니 제대로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해.”
장우영은 베개에 머리를 뉘인 상태로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긴장을 풀 곳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문(愚問)이로군.”
강태한이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운동이 될 리가 있겠는가. 뭐라도 해보려면 본인이 먼저 움직여야지.”
“······그렇군.”
장우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한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그의 말에서 나름 느껴지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혹시 말인데.”
그렇게 침묵이 좀 길어졌을 무렵.
생각에 빠져있던 장우영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다음에 또 찾아와도 되겠나?”
“오는 손님을 막을 이유는 없지.”
강태한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이듯 말했다.
“물론, 예약은 따로 해야겠지만.”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강태한은 장우영의 어깨 뒤쪽에 손을 올리고 한 지점을 지그시 눌렀다.
“그야 당연···”
강태한의 말에 뭐라 대답을 하려던 장우영.
허나 그는 그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전원 스위치가 꺼지기라도 한 것처럼 스르륵 눈이 감기더니 그대로 잠에 들었다.
평소 자는 얼굴이 험상궂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지금의 장우영은 너무나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잠에 들어있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후우우우.”
딱 봐도 꽤 높이 올라온 산 중턱에서, 장우영은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여기까지 올라온 만큼 숨이 가쁘기는 했지만, 벅차기보단 상쾌함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이놈아, 빨리 좀 올라 와라!”
“하아, 아버지··· 경치 좀, 즐기면서, 천천히 가요···”
언덕 아래쪽을 쳐다보며 한 마디 던지는 장우영.
그러자, 한참 비탈길을 올라오고 있던 남자가 힘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있는 탓에, 말 몇 마디조차 제대로 입에 담질 못했다.
“후우우. 흐아아아아.”
잠시 후, 겨우 장우영의 근처에 다다른 그는, 바로 옆에 설치되어있던 벤치에 쓰러지듯이 주저앉고는 연거푸 숨을 몰아쉬었다.
‘느닷없이 주말등산이라니···’
대청그룹의 현 회장이자 장우영의 장남인 장태현.
예전에 ‘사원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미치기에 주말 행사를 자중하라’고 그룹 차원에서 공고한 적이 있었는데, 정작 회장인 본인이 주말등산에 나와 있었다.
원래라면 오늘은 골프를 치러나갈 예정이었는데···
‘어? 주말등산이나 주말골프나 마찬가지인가?’
순간 자기도 악습을 행하고 있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장태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기는 사원이 아니라 임원들이랑 다니는 거였으니까!
“힘드냐?”
“예? ···아뇨. 괜찮습니다.”
장태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잠시 쳐다보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거 마셔라.”
“···고맙습니다, 아버지.”
장태현의 옆에 앉으며 생수병을 건네는 장우영.
살짝 얼음이 서려있는 것이, 딱 봐도 시원해보였다. 장태현은 조심스레 생수병을 받아들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냉수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좀 시간이 지났을까.
바람도 쐬고, 땀도 슬슬 말라가기 시작할 무렵.
“태현아. 오늘 나와 줘서 고맙다.”
“케흑, 커흑, 컥!”
마침 재차 냉수를 마시고 있던 장태현은 기어코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가슴을 탕, 탕쳐서 겨우 사레를 내린 그는 장우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지, 오늘 뭐 잘못 드신 거 아니죠?”
“뭐 임마?”
“아니··· 평소 안 하시던 말을 자꾸 하시잖아요.”
장태현이 생각했을 때, 아버지는 나름 괜찮은 분이셨지만··· 그렇다고 부자관계가 친밀한 것도 아니었다. 필요한 이야기는 오가지만, 데면데면한 느낌.
특히 일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아버지가 먼저 뭔가를 하자고 이야기를 꺼냈던 적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오늘 등산도 그냥 산만 오르시고.”
그렇기에 아버지가 통화로 ‘같이 산이나 가자’는 말을 꺼냈을 때, 따로 둘이서 이야기할 것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이 자리에 나왔다.
일단 등산복을 입고 오긴 했지만, 준비물도 그렇고 마음가짐도 그렇고 그냥 산책이나 한다는 생각으로 왔던 것이다.
헌데 이런 본격적인 등산이라니.
평소와 다른 아버지의 모습에, 아들로서는 당황스럽기 이전에 걱정부터 들 정도다.
“···나, 너희한테 좀 서운했었다.”
한편, 장우영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뒷자리로 물러나니 얼굴도 명절에나 가끔 비추지, 따로 연락하는 녀석도 없고, 괜히 너희한테 소외되는 것 같고.”
“그건··· 죄송합니다.”
“아냐. 죄송할 필요 없다.”
진지한 말투로 살짝 머리를 숙이는 장태현에게 장우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소홀했던 건 내가 먼저였더구나. 너희 어릴 때 일만 쫓아다녔던 건 난데, 이제 와서 안 찾아준다고 꽁해있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
“···네?”
아닙니다. 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장태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버지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너무 의외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꺼내보기로 했다. 염치없긴 하지만··· 지금이 마음에 안 들고 뭐라도 해보려면 내가 먼저 움직여야하는 것 아니겠냐.”
[뭐라도 해보려면 본인이 먼저 움직여야지.]
며칠 전 안마사에게 들었었던 말.
권태로운 나날을 보내며 가슴 한 켠에 서운한 마음을 쌓아두고 있던 그에게, 그 말은 생각보다도 크게 와 닿았다.
그렇게 먼저 한 걸음 움직여본 결과···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는 재벌, 회장, 기업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아버지로서 아들과 함께 등산을 하고 있었다.
“오늘 나와 줘서 고맙다.”
“···하하, 참.”
장태현은 머쓱한 표정으로 코를 슥 문질렀다.
갱년기 때도 안 이러시던 분이 갑자기 이러니 당황스럽긴 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다만 이 주제로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기가 난감했기에, 장태현은 슬쩍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아버지. 왜 이렇게 정정해지셨어요?”
“왜. 난 정정해지면 안 되냐? 이제 물려줄 것도 별로 없는데.”
장우영이 장태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잇!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이상한 놈이 되잖아요. 그냥 지금 산을 오르는 체력이 말이 안 되셔서 그러죠. 수행원보다 쌩쌩하시니, 원.”
장태현은 다른 벤치에 앉아있던 장우영의 수행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은 휴식을 취해 괜찮아졌지만, 한참 산을 오를 때는 그 또한 장태현 못지않게 힘들어하고 있었다.
“재만아, 너 내가 그래서 짐 좀 가볍게 챙기고 오라 했잖아. 어?”
“아휴, 제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다만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의 옆에 놓여있는 빵빵한 백팩.
회장이 목마를 때나 넘어졌을 때부터, 조난당해 자력으로 24시간을 버텨야하는 상황까지 가정해서 아예 생존키트를 싸온 이재만이었다.
“어쨌거나, 어떻게 갑자기 그리 좋아지신 거예요?”
“···이번에 귀인을 한 분 만났다.
“귀인이요?”
그 말에 장태현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데는 아니죠?”
“이상한 데라니?”
“아버지. 명예회장이 사이비종교에 빠졌다는 소문이 돌면 그룹 이미지에 타격이 좀 클 것 같은데요.”
“이 녀석이?”
“하하하하.”
장태현은 웃으며 남아있던 생수를 마저 들이켰다.
지치긴 했지만, 그래도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땀을 흘려서 그런가, 평소 느끼지 못했던 개방감이 확 밀려드는 느낌이었다.
“뭐 설령 사이비라 해도, 아버지가 이렇게 바뀌신다면야 나쁘지는 않네요. 건강도 그렇고.”
빈말로도 정다운 부자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장태현이 아버지를 싫어한 적도 없었다.
예전이라면 상상하기 힘들었겠지만,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로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장태현은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그럼 슬슬 다시 올라갈까.”
“···전 여기서 기다릴게요, 아버지.”
벤치에서 일어나 가볍게 기지개를 피는 장우영.
하지만 장태현은 손에 쥔 생수병을 만지작거리면서, 가만히 먼 곳을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뭐? 왜? 봉우리까진 가야지.”
“···여기 경치가 왠지 마음에 들어서.”
그는 시선을 피하며 순간 떠오른 변명을 입에 담았다. 아버지와 같이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게 싫은 건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주말에 등산하는 것까지 좋아진 것은 아닌 장태현이었다.
* * *
[에버튼 연승행진! 고드윈과 강주완의 쌍두마차.]
[5분 남기고 연달아 터진 고드윈, 강주완 투탑 콤비의 두 골, 에버튼 극적인 역전승. 연승 이어간다.]
[고드윈, 경지를 넘어섰다. 신들린 드리블에 이어지는 칼 같은 어시스트. 이후 도핑의혹 해프닝까지.]
“허허.”
인터넷 뉴스기사들을 훑어본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전날 있었던 경기에서 나온 강주완과 고드윈의 대활약으로, 인터넷 기사들이 온통 도배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헌데 두 사람 모두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은 선수들. 그래서 그런가, 괜히 이런 상황에 뿌듯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괜히 머쓱해지기도 했다.
‘실력 좋은 선수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몸의 단련된 상태만 봐도 얼추 짐작하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그땐 이렇게까지 유명한 선수인 줄 몰랐었고, 안마의 효과가 이렇게까지 잘 들어갈 줄도 몰랐다.
가게에서 쉬고 있을 때 약간의 호기심이 생겨 눌러봤던 하이라이트 영상.
축구경기를 자주 본 건 아니었지만, 그 잠깐의 영상만으로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고드윈의 실력이 훨씬 더 뛰어나다는 걸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의 활약을 말하는 기사들을 보아한데, 아마 그 전 경기까지만 해도 이 정도의 기량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 사이에 강태한이 엉켜있던 혈도를 바로잡아 반응속도를 끌어올려놨고··· 고드윈은 요 며칠 사이 거기에 완전히 적응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임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호랑이한테 날개를 달아준 격인가.”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떨어져있던 날개를 다시 붙여줬을 뿐이다. 어느 쪽이건 간에, 저 머나먼 타국의 스포츠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복합적인 기분이 드는 강태한이었다.
‘그건 그렇고··· 내일 장작은 뭘 쓸까.’
한편, 목표지점에 도착한 강태한은 스마트폰을 집어넣으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내일은 오랜만에 유세아와 같이 캠핑을 가는 날.
그리고 강태한은 내일 캠핑하면서 쓸 소모품과 장비들을 둘러보기 위해 백화점에 들른 참이었다.
‘이번에는 불판에 굽지 말고 꼬치로 해볼까··· 음?’
유세아의 반응을 상상하며, 괜찮아 보이는 구이용 쇠꼬챙이를 살펴보던 와중···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강태한은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다름이 아닌 카톡 알림. 양반은 못 되는 건지, 유세아가 보낸 메시지였다.
캠핑과 관련된 이야기일까.
하긴, 거의 일주일 전부터 기대된다고 말을 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피식 실소를 머금으며 카톡을 확인하는 강태한. 헌데, 메시지의 내용은 강태한의 예상과 달랐다.
[미안해요, 태한 씨. 몸이 좀 안 좋아서 내일 못 나갈 것 같아요. 준비 많이 했을 텐데 너무 미안해요.]
“···어라.”
흐음. 강태한은 잠시 생각에 잠기며 침음을 흘렸다.
이윽고, 그는 들고 있던 쇠꼬챙이를 내려놓고 오는 길에 얼핏 봤었던 건강식품 기획코너를 찾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