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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05화 (105/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05화 >

‘아까는 범위가 글로벌로 넓어졌다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스케일 자체가 커진 느낌이다.

대청그룹이라면 그래도 한국에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볼 수밖에 없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이다. 그런 곳의 회장이 손님으로 온다니, 솔직히 말해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비슷하게 생긴 다른 분이라고 보는 게 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한 번 더 볼래?”

그 말에 옆에 있던 동료 직원이 다시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보면 볼수록 닮아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입가에 손을 올리며 침음을 삼켰다.

“으음··· 확실히.”

“그렇지?”

“···근데 넌 어떻게 한 번에 알아봤냐?”

그러던 중, 남자는 문득 떠오른 의문을 자연스레 입에 담았다.

이렇게 사진을 띄워놓고 눈앞에 들이대면 기억이 나긴 하지만, 솔직히 대청직원이 아니라면 거기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이름이 뭔지 기억하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 그랬다.

“예전에 학교에서 발표과제를 한 적이 있어서.”

“아··· 그때 주제가 대청그룹이었다?”

“그렇지, 뭐.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이 사람을 어디서 봤나’하는 수준이었는데···”

끼이익.

잡담을 나누던 와중, 탈의실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갈아입었는데,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그리고 바깥쪽에 있던 직원이 공손한 손짓과 함께 앞장서서 걸으며, 물 흐르듯이 안내를 시작했다.

‘이야···’

한편, 자리에 남아있던 나머지 한 명은 방금 봤던 얼굴과 스마트폰의 사진을 비교하며 재차 감탄을 터트렸다. 다시 봐도 똑같은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흐아암. 교대하자.”

그때, 휴게실에서 걸어 나온 황 실장이 하품을 하며 말을 걸었다. 그는 잠깐 동안의 휴식시간동안 수면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나온 참이었다.

“실장님! 좀 들어봐요.”

“···뭔데 호들갑이냐?”

“재벌이에요, 재벌!”

그 말에 황 실장은 뒷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요즘 매출이 많이 오르긴 했는데, 그래도 우리가 재벌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아니, 우리 매출 말고요. 대청그룹에 장우영 회장 아시죠?”

“모르지는 않지?”

딱히 구설수에 오르던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황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사람이 방금 안쪽으로 들어갔다니까요.”

“엉? 그런 사람이 여길 왜···”

그런 사람이 여길 왜 온다냐? 라고 말하려던 순간, 황 실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이제 와서 정말 새삼스러운 말이었던 것이다.

처음 최태준 선수가 찾아왔을 때도, 조찬혁 배우가 왔을 때도, 이한건이 왔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떠올리지 않았던가. 이쯤 되면 그냥 누가 와도 그러려니 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뭐 올 수도 있지.”

“···납득이 빠르시네요?”

“어제 영국에서 안마 받으러 온 사람도 있는데 뭘.”

황 실장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까놓고 말해, ‘프리미어 리그 선수가 열 시간 동안 비행기 타고 와서 안마만 받고 귀국했다’는 것보단 이쪽이 더 현실성이 있어 보이긴 했다.

‘근데 처음은 야구선수, 그 다음은 배우, 국민MC, 이제는 재벌까지 찾아왔으니···’

스포츠계, 연예계, 그리고 이제 재계까지 진출했으니, 이제 남은 건 정치인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황 실장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그렇고.’

황 실장은 왼쪽 발로 슬쩍 서랍을 열어 액자를 쳐다봤다.

‘재벌회장한테··· 사인해달라고 해도 되나?’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건 이제 꽤 익숙해졌지만, 유명 기업인이 찾아온 건 또 처음이라 애매한 느낌이 드는 황 실장이었다.

* * *

‘참 신기하군.’

한편,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간 장우영은 침대 위에 걸터앉은 채 걸치고 있는 옷을 쓸어 만지고 있었다.

안마를 받을 때 도움이 되도록 얇고 크게 만들어져있는 옷. 옷감은 꽤 신경을 써서 고른 듯 부드러웠지만, 빈 말로도 고급스러운 느낌은 아니다.

이 방도 마찬가지다.

나름 인테리어도 괜찮고 설비도 제법 갖추고 있어 보이지만,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그냥 깔끔하고 평범한 방일 뿐인 것이다.

근데.

자기는 지금 왜 이렇게 기대가 되는 것일까.

‘이런 느낌을 받은 게 얼마만인가···’

어디 5성급 호텔에서 VVIP대접을 받았을 때도.

적어도 반 년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한다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지금 그는 기대를 하다못해 약간의 설렘마저 느끼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때, 닫혀있던 방문을 열고 강태한이 안으로 들어왔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에 답하는 장우영. 그를 본 강태한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란스러울만 했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강태한은 그가 누구인지를 바로 떠올려냈다.

지난 번 호텔 복도에 쓰러져있었던 노인.

솔직히 말해 당시 강태한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고, 지금도 잘은 모르지만··· 그때 옆에 수행원이 따로 붙어있었고, 그 수행원이 그를 ‘회장님’이라 불렀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회적으로 꽤 입지가 있는 사람일 거란 생각은 했었는데··· 카운터 직원들이 보였던 반응을 보아, 아마 나름 유명한 사람인 것이리라.

“오랜만에 보는군.”

먼저 말을 꺼낸 건 장우영이었다.

문이 열렸을 때부터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는, 그 미소에 맞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 몇 주 전쯤인가에 뵈었었죠?”

“오호. 기억하고 있는가?”

“저로서도 기억에 남는 일이었으니까요.”

강태한은 침대 옆의 간의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호텔 복도를 걷다가 심장병에 걸린 사람을 도와준 일. 상대가 어딘가의 회장님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기억에 남을만한 일이다.

“음. 그때 자네가 응급조치만 해놨다고 했었지.”

“그랬었죠.”

“그래서 마저 제대로 된 조치를 받으려고 왔다네. 아무래도 마무리까지 잘 맺는 것이 중요한 법 아니겠는가.”

좀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장우영.

그 말에 강태한도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잘 찾아오셨네요.”

“후후후···”

장우영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넌지시 물었다.

“자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나?”

“스물여섯입니다.”

“···스물여섯?”

강태한의 말에 장우영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너무 어렸기 때문.

그는 남들보다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난 편이었고, 본인 또한 그에 자신을 갖고 있었다.

“아닌 것 같은데···”

그렇기에, 스물여섯이라는 말에 그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외모는 이십대 초반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만 놓고 보면 그보다 두 배 이상의 나이라고 해도 믿을 만했다.

특히 처음 그와 만났을 때.

[다행히 아직 완전히 막히기 전이로군.]

아직 얼굴은 보지 못하고 그 목소리만 들었을 땐··· 이런 표현은 주책없을 지도 모르겠으나, 어디 무협지 같은 곳에 나오는 나이 지긋한 은둔고수에게 진찰을 받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실제로 그런 수준의 효과가 있기도 했지.’

비상약도 큰 소용이 없던 상황에서, 손짓 몇 번과 잠깐 동안의 안마만으로 협심증을 가라앉혔으니, 무협지 은둔고수의 솜씨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데 스물여섯이라니.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임에도 장우영은 쉽사리 믿기가 어려웠다.

“뭐, 제 나이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듯한 미묘한 웃음이었다.

“지금 저는 한 명의 안마사일 뿐이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군.”

그리고 본인은 안마사에게 찾아온 손님이다.

물론 여기까지 온 이유에는 이 청년에 대한 호기심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결국 부차적인 것.

강태한은 조용히 침대 맡에 놓인 베개를 가리켰고, 장우영은 그제야 등을 돌린 채 침대 위에 엎드렸다.

“으음.”

곧바로 장우영의 등 위에 손을 올리는 강태한.

이야기가 좀 길어진 만큼,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강태한은 손바닥에 정신을 집중한 채 그곳을 중심으로 섬세한 기감을 펼쳐가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분위기야.’

한편, 장우영은 그런 강태한의 분위기 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처음 호텔 복도에서 만났을 때 느꼈던 범상치 않은 분위기. 지금 강태한에게선 그때의 느낌이 어렴풋이 배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심상치 않은 솜씨.’

손바닥 하나로 몸 전체를 장악당한 듯한 느낌.

당연한 말이지만, 장우영이 안마를 받아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예전에 전담 안마사를 고용한 적도 있었고, 나름 손맛이 좋기로 소문난 사람에게 찾아가 받아본 적도 있었다.

허나 이런 느낌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다.

이게 스물여섯 먹은 청년의 솜씨라고?

차라리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말이 될 것 같았다.

“흠. 요 근래 관리를 좀 한 모양이로군?”

“건강이 좀 돌아오니 의욕이 생기지 뭔가.”

“바람직한 일이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움직이는 강태한.

장우영도 입가에 머쓱한 미소를 머금던 순간···

‘어?’

굉장히 자연스레 대화가 오가긴 했지만, 뭔가 달라져있었다. 어느새 말투까지 바뀌어있었던 것이다. 마치··· 무협지의 은둔고수처럼.

“자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장우영이 의문을 입에 담으려던 순간.

꾸우욱!

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주변 혈도를 압박할 정도로 뭉쳐있던 허리근육. 강태한은 척추를 기준으로 양옆에 뭉쳐있는 근육을 지그시 누르기 시작했고.

“어허허허허허!”

장우영은 꺼내려던 말을 삼킨 채, 당황과 경악으로 가득 찬 이상한 소리를 입에 담았다.

* * *

‘확실히 효과가 많이 나타나긴 했군.’

장우영의 몸 곳곳을 누르고 주무르며, 강태한은 혈도의 상태를 전체적으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병원에서 받는 조치가 그러하듯, 안마 또한 받고 난 이후의 관리에 따라서 효과가 더욱 커질 수도, 아니면 축소될 수도 있는 법이다.

강태한이 괜히 손님들을 한 시간 동안 잠재워 회복기간을 잡아두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뒤에 나름 건강관리를 신경 써서 했던 모양인지, 안마의 효과도 제대로 적용되어 있었고 노인의 몸 상태는 이전보다 많이 나아져있었다.

‘그래도 손을 볼 필요는 있겠지만.’

확인을 마쳤으니 이제 조치를 취할 뿐이다.

전신의 혈자리를 자극하고, 원기를 자극하여 혈도 내에 흐르는 생기의 양을 대폭 증가시킨다.

나이를 먹은 만큼 곳곳이 노쇠해져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큰 곳은, 지난 번 노인이 쓰러진 이유이기도 했던 심장이다. 심장 자체가 워낙 중요하고 예민한 부위라 거기에다 직접 조치를 취하긴 힘들지만···

‘간접적으로 강화시키는 법은 있지.’

심장의 문제는 대개 길이 막히는 데에 있고, 그것의 근본적인 문제는 혈도에 쌓인 탁기와, 원활하지 못한 생기의 순환에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다름이 아닌 혈도를 전체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

그를 위해 강태한은 그의 몸 곳곳을 지압하고, 혈도를 압박할 정도로 지나치게 뭉쳐있는 근육들을 풀어놓고 있었다.

“끄흐으으으으으···”

당연히 그 고통과 자극은 상당한 수준.

그리고 그것들은 장우영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야할 것들이었다. 그는 전 회장으로서의 체면치레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한 채, 베개에 머리를 박고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너무 아픈데?’

지난 번 복도에서는 굉장히 편안한 기분이었다.

손을 얹는 순간 심장을 죄여오던 고통이 스르륵 풀리고, 몸의 긴장마저도 풀어주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르다.

물론 예전에도 안마를 받아본 적이 꽤 있고, 안마에는 어느 정도 고통이 따른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그 정도가 너무하다.

지압 하나하나가 근육을 꿰뚫는 것처럼 아픈데.

그런 지압들이 몇 초 사이에 ‘두두두두’ 내리 꽂히는 느낌이었으니까.

‘이 정도면 심장에도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은데···’

고통과 자극들을 견디다보니 자연스레 호흡이 가빠지고, 몸의 긴장 상태도 점점 격해진다. 당연히 노인의 심장에는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없는데···

“어?”

그의 걱정과 달리 오히려 편안해진, 아니, 편안하다 못해 개운해진 듯한 심장의 상태에 장우영은 순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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