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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04화 (104/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04화 >

‘누군가 했더니 아까 왔었던 손님이군.’

옆에 멈춰서있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강태한.

그의 정체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의문은 남아있었다.

이 남자가 자길 보고 반응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안마에 대한 감사라든가, 다시 만나서 반갑다라든가. 충분히 아는 척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헌데 최성현은 왜 저런 놀란 반응을 보이는가.

강태한은 그 의문을 넌지시 입에 담았다.

“아는 사이야?”

“어··· 일방적으로는, 그렇지?”

한편, 최성현은 벙 찐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강태한의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삼겹살집에서 고드윈 선수와 마주친다니! 정신을 차리고 봐도 여전히 현실성이 없는 광경이었다.

‘고기 먹으러 오길 잘했다!’

최성현이 에버튼의 경기를 챙겨보기 시작한 건 그저 강주완 선수 때문이었지만, 꾸준히 챙겨보다 보니 지금에 와선 팀 자체를 응원하는 팬이 되었다.

이 자리에는 단지 오랜만에 같이 저녁이나 먹고 가자는 강태한의 말에 따라왔을 뿐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 인생 최고의 선택 중 하나가 되어있었다.

“누군데?”

“진짜 몰라? 고드윈이라고, 에버튼에 유명 선수야.”

“아하···”

최성현의 말에 강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버튼이라하면, 분명 강주완 선수가 있던 팀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 강주완 선수의 추천을 받고 예약을 했던 것이리라. 머릿속에서 이어지는 연결고리에 강태한은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오리엔탈 마스터!”

한편, 자기가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걸 확신한 고드윈은 손뼉을 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말에 강태한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리엔탈 마스터? 저요?”

혹시나 하는 얼굴로 자길 가리키며 되묻는 강태한.

그 질문에 고드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스! 동양의 신비! 푹 자고 일어나니 몸이 완전히 좋아졌습니다. 잠들었던 탓에 말은 못했지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군요.”

마스터라는 호칭이 아주, 상당히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말의 핵심은 감사에 있었다. 강태한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눈인사로 답했다.

“저, 손님. 죄송한데.”

그때, 바쁘게 움직이던 가게 직원 중 한 명이 고드윈에게 다가와 난처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가게에 비어있는 자리가 없어서 그런데··· 좀 기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왓?”

당연한 말이지만, 고드윈은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가 직원의 말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옆에 있던 강태한이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가게에 남는 자리가 없으니 좀 기다려야할 것 같다고 하는데··· 혹시 몇 분 정도 기다려야되요?”

“그게 , 적어도 이십 분에서 삼십 분 정도는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이십 분이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기에는 좀 긴 시간이다.

그렇다고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 혼자 다른 식당을 찾아가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닐 터. 강태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드윈에게 말을 걸었다.

“자리가 나려면 이십 분에서 삼십 분 정도는 기다려야한다고 하네요.”

“아, 그렇습니까···”

난감한 표정을 짓는 고드윈. 강태한의 생각대로, 지금 잔뜩 허기가 진 상태에서 다른 삼겹살집을 또 찾아간다는 건 여러모로 까다롭고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실망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것처럼, 강태한이 미소를 지으며 덧붙이듯이 말했다.

“혹시 괜찮으시면, 같이 합석하실래요?”

“어, 그래도 됩니까?”

“네. 어차피 자리도 넓고.”

대부분의 고기집 테이블이 그러하듯 둘이 앉아있는 곳도 4인석이었기에, 공간은 어차피 충분했다.

“성현아, 괜찮지?”

“어? 무, 물론이지!”

영어는 잘 못했지만, 그래도 간간히 들리는 아는 단어와 눈치로 문맥정도는 파악하고 있던 최성현이다. 그는 대답과 동시에 옆으로 자리를 옮겨 공간을 내줬다.

“오, 감사합니다! 친절하시군요.”

“아닙니다. 이것도 인연인데요.”

강태한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내려놨던 집게를 다시 잡았다. 합석이라. 왠지 무림에 있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객잔에서 그렇게 만난 인연들이 꽤 있었으니까.

한편, 구석으로 들어간 최성현은 자신의 과거를 깊이 후회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영어 좀 배워둘 걸!’

그리 능숙하진 않지만, 그래도 고드윈과 무난하게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강태한의 모습.

반면 본인은 팬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는데도, 이걸 어떻게 말문을 시작해야할지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동안 살면서 영어를 배워야하는 필요성을 한 번도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최성현이었다.

* * *

치이이익!

불판 위에 올려놓은 고기를 뒤집자,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와 함께 야들야들하게 익은 반대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자체로 식욕을 자극하는 모습.

여기에 허기까지 더해진 탓일까, 고드윈은 강태한이 고기를 뒤집는 동안 불판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하, 끝내주는구만.’

이전에 강주완이 적어준 말이 맞았다.

지금 이토록 허기진 상황에서 먹는 기름진 삼겹살은, 그야말로 끝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 맛조차도 보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입 안 가득히 퍼져나가는 육즙과 고기의 감칠맛을, 고드윈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는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그러던 와중, 한 번씩 고기를 뒤집은 강태한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침묵의 시간이 너무 길었기에 뭐라도 화제를 던져놓은 것이다.

“그야 마사지를 받기 위해서죠.”

“···그거 하나 때문에요?”

어렵사리 대화를 따라가고 있던 최성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의외라는 목소리.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리그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고 불과 사흘 전에 있었던 경기에도 고드윈이 출전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안마를 받으러 한국까지 오다니.

강태한의 안마실력을 낮춰보는 건 아니었지만, 비행기를 타도 왕복으로 스무 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걸 생각하면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정인 것이다.

“흐음··· 결단력이 좋으시네요.”

한편 강태한은 충분히 그럴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의 관점에서는 그리 이해하기 힘든 행동도 아니었다.

아마 가게에 대한 정보는 강주완에게 얻었을 터.

그리고 강주완은 슬럼프에서 빠져나왔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 뉴스창이 경기 날마다 떠들썩해질 정도로 큰 활약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어떻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영국에서 한국까지 오는 길이 먼 것은 사실이었지만, 만약 그렇게 해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야 못할 것도 없다.

만약 내공의 양을 확 키워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강태한은 한국에서 영국까지가 아니라 더 먼 곳이라 하더라도 당장에 찾아갔을 테니까.

‘실제로 덕을 좀 보기도 할 테고.’

덕분에 그는 이미 성과를 얻은 상황이었다.

살짝 비틀려있던 혈도를 강태한이 다시 원상태로 되돌려줬으니까. 본능적인 감각도 되살아날 것이고, 반응속도도 미세하게 앞으로 당겨질 것이다.

그가 어느 정도 수준의 선수인지는 잘 모르지만.

원래 달고 다녔던 페널티를 벗어던졌으니, 아마 기존보다 한 단계 높은 실력을 뽐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과대평가나 생색 같은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역시! 마스터라면 알아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마스터라 하는 겁니까?”

공감해주는 강태한의 반응에 화색을 짓는 고드윈.

반면, 강태한은 아까 전부터 신경 쓰던 호칭에 탐탁치 않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허나 고드윈은 오히려 환한 미소와 함께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그야 물론, 오리엔탈 마셜아츠 마스터시니까요!”

“···예?”

“영화에서 봤습니다. 포스의 힘으로 물건도 막 움직일 수 있고, 눈빛만으로 상대방을 꿰뚫어보고··· 마사지를 할 때도 포스의 힘을 활용하신 거죠?”

“하하··· 그것 참.”

···생각보다 감이 좋을지도?

겉으로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터트렸지만, 속으로는 내심 촉이 날카로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강태한이다. 포스라는 단어를 기(氣)나 내공으로만 바꾸면 그렇게까지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마스터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네요.”

그렇게 말하며 강태한은 다 익은 삼겹살을 고드윈과 최성현 쪽으로 옮겨놓았다.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기 적절한 방법이었다.

“오, 이제 먹어도 되는 겁니까?”

“예. 먹는 법은 아시나요?”

“한 번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야들야들하게 잘 익은 삼겹살 한 점.

고드윈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툰 젓가락질로 고기를 집어 들더니, 살짝 쌈장을 찍은 다음 그대로 입 안으로 가져갔다.

“···와우.”

씹는 순간, 쫄깃한 비계와 함께 촉촉한 살코기의 식감이 함께 어우러지며 기름진 감칠맛이 입 안 가득히 퍼져나간다.

씹으면 씹을수록 배어나오는 깊은 감칠맛.

꽤 오랜 시간 공복이 유지된 탓일까, 아니면 이 고기 자체가 맛있는 것일까. 고기를 씹을 때마다 오히려 계속 증폭되는 식욕에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다.

“먹을 만해요?”

“···너무 좋습니다.”

곧바로 다음 한 점을 집으며 고드윈이 대답했다.

그런 짧은 말로는 이 감동을 표현할 수 없었지만, 달리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도 않았거니와 당장은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이 훨씬 앞섰다.

“이 친구가 원래 고기를 좀 잘 굽습니다.”

계속해서 연달아 삼겹살을 집어먹는 고드윈. 그 모습을 흥미롭게 쳐다보던 최성현이 한 마디 꺼냈다.

“예?”

“음··· 그러니까.”

하지만 영어가 서투른 탓에 잘 전달되지 않은 모양.

최성현은 잠시 고민을 하다, 강태한을 가리키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리안 바베큐 마스터.”

“오우! 지저쓰! 리얼리?”

“리얼로!”

마스터라는 단어에 호들갑을 떨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고드윈. 그리고 처음으로 제대로 이야기가 통한 듯한 느낌에, 최성현 또한 화색을 지으며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놈의 마스터 소리는···”

그 나사가 하나 풀린 듯한 분위기 속에서, 강태한은 조용히 쌈 하나를 싸서 입 안에 집어넣었다.

* * *

다음 날.

“그게 진짜야?”

“그렇다니까. 못 믿겠으면 저기 액자 한 번 봐봐.”

전날 황 실장과 함께 근무를 섰던 직원이 벽에 걸려있는 액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새 새로 하나 추가되어있는 액자. 거기엔 깔끔한 필기체로 고드윈이라 적힌 사인이 들어있었다.

“와··· 미쳤다. 시즌 중이라 바쁠 텐데?”

“듣기로는 안마만 받고 오늘 딱 돌아간다더라.”

“···사장님 솜씨가 그 정도인가?”

들어온 지 한 달 정도 되긴 했지만, 안마사로 일하는 건 아니었기에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은 적도, 솜씨를 지켜본 적도 없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전부터 유명인들도 많이 왔다가긴 했으니까.”

SNS에서도 종종 화제가 되었듯, 천마안마엔 누구나 알아볼법한 사람들이 종종 나타나곤 한다.

대부분이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예약표를 살펴보다보면 익숙한 이름들이 꽤 자주 눈에 들어올 정도.

특히 조찬혁 배우나 서경우 PD, 한하의 선수들 같은 경우는 거의 정기적으로 들락거리는 수준이다.

“그래도 범위가 글로벌로 확 넓어지네.”

“아마 강주완 선수가 소개를 해준 게 아닐까, 싶어. 둘 다 에버튼에 있잖아.”

“맞다, 강주완 선수도 왔다 갔었지···”

그는 새삼스레 감격에 젖으며 액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멀리서 봐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또박또박 적힌 강주완의 이름 석 자가 걸려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참 신기··· 어서 오세요.”

그러던 와중 스르륵, 하고 열리는 문.

둘이 잡담을 나누다가도 손님이 들어오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인사를 건네는 것이, 황 실장이 본다면 꽤나 흐뭇해할 법한 광경이었다.

“안마를 좀 받으러 왔는데.”

카운터 앞으로 다가와 조곤조곤 말하는 손님.

언뜻 나이가 꽤 많아 보이긴 했지만, 보기보다 정정하기도 하거니와 느껴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노신사였다.

“혹시 예약을 하셨다면 성함 좀 여쭤도 될까요?”

“이재만으로 되어있을 거요.”

“네··· 확인 됐습니다.”

모니터 앞에 선 직원이 확인절차를 거치는 동안, 다른 직원은 눈대중으로 사이즈를 잰 뒤 갈아입을 옷을 꺼내 옆에 올려놓는다.

‘···어?’

제법 잘 맞는 호흡. 헌데 옷을 올려놓고 손님의 얼굴을 쳐다본 직원이,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에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저쪽에 보이는 탈의실에서 이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시면 됩니다.”

“알겠네.”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걸어가는 노신사.

그런 와중에, 방금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은 직원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뭐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이것 좀 봐봐.”

그는 만지작거리던 스마트폰의 화면을 옆으로 내밀었다. 거기에는 대청그룹의 회장, 장우영의 사진이 나와 있었다.

“이게 왜?”

“여기에다가 안경만 살짝 씌운다고 생각해봐. 예를 들면··· 방금 오셨던 손님 같은 금테 안경.”

“으음···?”

그는 그 말대로 머릿속에서 금테 안경 하나를 떠올리고, 사진에다 슬쩍 얹어보았다. 그러자 그 또한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어라? 진짜로?”

멀리 갈 게 아니라, 복장만 조금 편한 옷으로 바꿔놓으면 방금 전 탈의실로 들어간 손님의 모습과 굉장히 닮아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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