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101화 >
“흐음···”
강태한은 손에 쥐어져있는 하수오를 천천히 훑어보다가, 아직 남아있는 흙을 살살 털어냈다.
“꽤나 실하군.”
근래 본 하수오 중에서도 유독 알이 굵은 녀석.
강태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들고 있던 하수오를 뒤쪽으로 집어던졌다.
딱히 허공섭물을 운용한 것도 아니었음에도, 던져진 하수오는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등에 멘 배낭 안으로 쏙 들어갔다.
지금 강태한이 있는 곳은 평소 다니는 영산의 중턱.
신준호에게서 ‘이 근처에 멧돼지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말 때문에 강태한의 계획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멧돼지 정도야 뭐···’
당연한 말이지만, 무림시절의 야산은 현대의 야산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공간이었다. 날짐승에, 산적에···
물론 그렇다고 멧돼지가 얌전한 짐승이라는 뜻은 아니었지만, 그런 곳에서 산행을 다니고 수련을 쌓던 강태한에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존재였다.
“이쯤인가.”
그렇게 계속 산을 걸었을까.
저 앞쪽에 얕은 울타리가 하나 보이기 시작했고, 강태한은 그곳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산과 산 사이를 구분하기 위해 설치된 경계선.
조금 기운이 약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주변 일대가 명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고, 산들이 능선으로 이어져있는 만큼 이 경계선 너머의 산도 영기가 충만한 편이었다.
아직 이쪽 산에도 손대지 않은 공간이 꽤 남아있긴 했지만, 자원이란 것은 언제나 유한한 법.
언젠가는 다른 영산을 찾아볼 필요도 있을 테니, 저쪽 산의 주인이 누군지나 알아둘까 싶어 아까 신준호에게 넌지시 한 번 물어봤었다. 그런데.
‘새삼 그 양반이 참 땅부자란 말이지···’
결론은 이 주변 일대가 그냥 신준호의 땅이었다.
지인의 아버지한테 헐값에 넘겨받았다나 뭐라나. 어쨌거나, 강태한에게는 그야말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 이 정도로 넓어진다면, 캘 수 있는 약초의 양이 늘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선택의 폭도 넓어지는 셈이었으니까.
강태한은 살짝 기대를 품은 얼굴로,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울타리를 가볍게 넘어갔다.
“확실히 여기도 좋네.”
원래 다니던 산의 중심보다는 좀 떨어지긴 하지만, 바로 옆에 능선으로 이어져있는 만큼 이곳도 나름 명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영산이다.
그는 슬쩍 딴 길로 새 몇 발자국 걸어가 허리를 굽히더니, 인근에서 느껴지고 있던 기운의 근원을 쑥 뽑아냈다.
십 년 정도 묵은 것으로 보이는 더덕.
겉보기에는 그리 대단할 게 없어보였지만, 그 안쪽에서는 충만하게 차오른 영기가 조그맣게 약동하고 있었다.
‘약초 캐는 양을 좀 줄일 필요가 있나 했는데.’
아무래도 당분간은 안 그래도 될 모양.
강태한은 방금 캔 더덕을 배낭 안으로 집어넣고,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려는 목적으로 발걸음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뭔가를 캐가는 것보다 한 번 슥 훑어보는 것이 주된 목표. 그렇기에 굳이 필요한 약초가 아니라면 건드리지 않고 산행에 중점을 두면서 걸었다.
* * *
‘···음?’
그렇게 산을 절반쯤 가로질렀을까.
조금 멀리서 묵직한 기척이 느껴졌다.
기척이 느껴지는 곳까지 닿을 수 있도록 기감을 확장시키는 강태한. 그는 곧 그 기척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 녀석이구만.”
강태한은 안력을 높여 멧돼지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보아하니 신준호가 말했던 인근에 출몰한 멧돼지 중에 한 마리인 모양.
몸집은 꽤 크지만, 엄니와 등가죽의 무늬를 보아한데 무리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성체로 보였다.
다만 강태한이 굳이 저 녀석을 건드릴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헤쳤거나 공격성을 드러내는 놈이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직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굳이 살생을 할 이유가 있겠나.
강태한은 실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좌우로 고개를 저었고, 그러자 내심 이쪽을 경계하고 있던 멧돼지도 슬슬 긴장을 풀고 다른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 잠깐.”
하지만 그 다음 순간.
멧돼지는 땅에 머리를 박고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 아래에 있는 먹이를 찾은 모양. 하지만, 그 위치가 문제였다.
기감을 통해 느껴지는 땅 속의 기운.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라 다시 한 번 정밀하게 기감을 펼쳐보니, 강태한이 생각한 것이 맞았다.
“그건 안 되지.”
이번에도 천천히 고개를 젓는 강태한.
허나 방금 고개를 저었던 것과 지금 고개를 젓는 것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이 휙, 하고 사라지더니.
“꾸익?!”
멧돼지의 바로 옆에 강태한이 나타나고, 그 거대한 몸체가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멀찍이 떨어진 나무에 쾅! 하고 부딪혔다.
영문도 모른 채 나가떨어진 멧돼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강태한이 나타난 방향의 목 쪽 가죽에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하나 남아있어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굳이 손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이 녀석이 약초를 파먹는다면야 이야기는 달라진다.
강태한은 허리를 굽혀 멧돼지가 머리를 박고 있던 곳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이미 한 입 베어 먹힌 산삼 한 뿌리가 튀어나왔다.
멧돼지는 잡식성이지만, 사람이 그렇듯 이 녀석들도 개체마다 취향이란 게 있다. 한 번 삼을 캐먹는 것에 맛을 들리면 삼만 골라서 캐먹고 다니는 것이다.
그걸 방관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고.”
강태한은 멧돼지의 이빨자국이 남아있는 삼을 던져놓고, 멀리 떨어진 나무 밑에 축 늘어져있는 멧돼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발경의 원리를 적용한 간단한 장법.
허나 그 위력은 멧돼지의 두꺼운 가죽을 뚫고 안쪽까지 타격을 주기에 충분했고, 장법에 맞아 날아가기 전부터 녀석은 사실상 죽어있는 상태였다.
“이걸 어떻게 한다.”
버리고 가는 건 좀 그렇고, 묻는다고 해도 어지간히 깊이 파지 않는다면 다른 멧돼지를 부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멧돼지는 고기도 먹는 잡식이니까.
‘흐음.’
잠시 생각에 잠기는 강태한.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손은 멧돼지의 등 위에 올라가있다. 영산을 돌아다니며 약초를 파먹던 놈이라 짐작은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몸에다 꽤 많은 영기를 축적하고 있는 놈이다.
그만큼 괘씸한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강태한은 일단 흡성대법으로 그 영기를 쭉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날짐승의 것인 만큼 다소 그 기운이 거칠기는 했으나, 단전에 내공이 충분히 쌓이고 안정되어있는 지금은 별 지장이 없는 수준이었다.
‘일단 한 번 물어나 볼까.’
일련의 과정을 마친 뒤.
그때까지 생각에 잠겨있던 강태한은, 일단 숨통이 끊어진 멧돼지를 어깨에 들쳐 메고서, 반대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꺼내 신준호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 * *
“태한 씨! 어서와. 오늘 자주 보는구만.”
“그러게요.”
꽤 시간이 지나, 해가 슬슬 넘어가는 해질녘 무렵.
강태한이 산을 내려오자, 그에게 연락을 받은 신준호가 손을 흔들며 그를 반겼다.
강태한은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화답하는 동시에 슬쩍 주변을 훑어보였다.
평소라면 다른 사람과 만날 일도 없는 인적 드문 공터. 허나 지금은 주차되어있는 차도 많이 보이고, 그만큼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꽤 보인다.
그리고 뭔가를 준비하는 듯 어수선한 분위기.
한쪽에서는 드럼통만한 그릴에 한참 불을 붙이는 중이었고, 한쪽에서는 음료와 쌈장을 비롯한 부재료들을 준비하는 데 한참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 말이 정말이었네?”
“거짓말이면 큰일이죠. 사람이 이렇게 모였는데.”
한편, 신준호는 강태한의 어깨에 들쳐 메여 있는 뭔가를 보면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멧돼지.
전화 너머로 ‘죽어있는 멧돼지를 발견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일단 강태한이 하는 말이니만큼 믿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실물로 보니 느낌이 다르다.
더군다나 그 큼직한 덩어리가 한 청년의 어깨에 들쳐 메여 있는 것은, 그리고 그걸 멘 채로 아무렇지 않게 산을 내려오는 청년의 모습은 그야말로 감탄을 터트리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태한 씨 튼튼한 건 알고 있었는데, 장사였구나.”
“하하··· 매일 운동을 하다 보니.”
얼추 보아 어지간한 돼지만한 크기.
따로 핏물을 빼는 작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얼추 60kg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강태한은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야··· 이걸 그냥 메고 오시네. 업장에서 좀 구른 애들도 힘들어하는 건데.”
신준호가 미리 준비해놓은 큼지막한 테이블. 그 근처로 멧돼지를 가져가자, 근처에 앉아있던 남자가 돼지를 메고 오는 강태한을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큼직한 칼을 집어 드는 남자. 반평생이 넘도록 육류가공업자로 살아온 신준호의 지인이었다.
“핏물 빼놓은 것도 아마추어 수준이 아닌데?”
“왓튜브에 나온 대로 해봤는데 잘 된 모양이네요.”
“그래···? 허 참. 이쪽 일에 재능이 있나보다.”
적당히 얼버무리는 강태한의 말에, 남자는 의문스러워하면서도 대충 넘어가며 칼을 갈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손질할 수 있겠어?”
“요즘 소만 잡긴 했는데, 못할 건 없지. 멧돼지 잡아본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그는 긴말할 것 없이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슥슥 가죽을 벗겨내고 거침없이 칼을 움직이는 게, 딱 봐도 숙련된 게 느껴지는 칼솜씨였다.
“근데 생각보다 준비가 되게 잘 되어있네요.”
그 과정을 지켜보던 강태한이 넌지시 말했다.
오늘은 이 멧돼지로 바베큐 파티를 할 예정.
헌데, 다소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아, 산을 관리하다보면 멧돼지는 가끔 잡히거든.”
그 질문에 신준호는 별 일 아니라는 목소리로 답했다. 본인이 산과 관련된 사업들을 하는 만큼, 주변에도 그런 지인들이 많다.
그렇다보니 간혹 멧돼지가 잡혀 이런 식으로 잔치를 벌인 횟수가 나름 적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일이 빈번한 건 아니지만··· 대강 1년에 한 번 정도씩은 있는 수준.
“그렇군요.”
한편, 강태한은 역시 신준호에게 물어본 것이 정답이라 생각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멧돼지 한 마리를 강태한이 혼자 먹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조금 떼서 먹자니 손질하는 과정 자체가 귀찮은 일.
그럴 바에는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편이 훨씬 바람직할 것이라 생각했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야··· 근데 이거 고기가 진짜 좋은데?”
한편, 한참 고기를 손질하고 있던 남자가 작은 감탄을 터트리며 말했다.
“어떤데?”
“일단 암컷인데다 몸집에 비해 나이도 별로 안 먹어서 누린내도 별로 안 나고···”
그동안 멧돼지를 열댓 번 정도 손질해봤지만, 이 정도로 질이 좋은 고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뭘 맞고 죽었는지, 근육에 경직이 하나도 없어서 엄청 부드러워. 눈 깜짝할 사이에 즉사한 모양이야. 딱히 이상이 있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곧바로 즉사시키기는 했지···’
그의 말에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아래턱을 긁적였다. 고기의 상태를 염두에 두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바람직한 일이 되었다.
“정씨! 고기는 아직인감?”
“서두르면 손 다쳐! 왜 보채?”
“배고파서 그렇지!”
아까 전 한참 숯불을 붙이고 있던 아저씨가 이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오가는 말투로 보아하니 한두 번 본 사이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일단 이거부터 먹고 있던가.”
“흐흐, 준비해놨을 줄 알았지.”
따로 먼저 손질해서 접시에 담아둔 앞다리 살.
정씨는 툴툴거리면서도 접시를 앞으로 슥 내밀었고, 남자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걸 챙겨들었다.
“야생 고기니까 탈나기 싫으면 푹 익혀 먹고!”
“아이고, 내가 한두 번 먹남? 걱정 말어··· 음?”
그러고 다시 숯불 그릴로 돌아가려던 남자.
그는 그러다 강태한과 눈을 마주치더니, 잠시 접시를 내려놓고는 가볍게 악수를 권했다.
“자네가 멧돼지 가져온 사람이지?”
“네, 맞습니다만.”
“고마워. 덕분에 오랜만에 사람들 얼굴도 보고, 좋은 고기도 먹겠구만. 잘 먹을게.”
그는 마주잡은 손을 두어 차례 흔들더니, 가볍게 목 인사를 건네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도 슬슬 저쪽으로 가.”
“그래도 되나, 정씨?”
“그래. 그래야 나도 쉬면서 하지.”
정씨는 손을 휘휘 저으며 저쪽으로 가라는 시늉을 했다.
“항상 고마워, 정씨. 고생 좀 해줘.”
“고생은 무슨.”
남자는 퉁명스레 말하면서 계속 손을 움직였고, 신준호와 강태한은 그를 뒤로한 채 사람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좋으신 분들이네요.”
“그렇지?”
담담하게 감상을 입에 담는 강태한.
그 말에 신준호도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 날, 신준호의 연락을 받고 산 밑에 모인 사람들은 기어코 멧돼지 한 마리를 깔끔하게 먹어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 * *
영등포구에 위치한 라이너 호텔.
새로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호텔이라 인지도는 조금 떨어졌지만, 그래도 나날이 빠르게 입지를 잡아가는 중이었다.
여의도와 거의 딱 붙어있는 위치.
객실에서 보이는 한강 뷰.
꼭대기 층의 사우나를 비롯한 훌륭한 부대시설.
그 외에도 내세울만한 강점들은 많았고, 이런 요소들이 종합되어 직접 다녀간 방문객들 사이로 좋은 평가가 이어진 것이다.
“아, 이제 좀 여유가 있네.”
프론트 데스크에서 한참 용무를 보던 호텔리어.
체크아웃으로 바쁠 수밖에 없는 시기를 지나, 비교적 한적해진 로비를 보며 그는 크게 티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허리를 폈다.
“그래도 오늘은 좀 적은 편이었지.”
그 말에 옆에 있던 동료가 대꾸했다.
“그래··· 앞으로는 점점 더 많아질 거고.”
손님이 많이 찾아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비례해서 피로가 쌓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들은 호텔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프론트 데스크의 직원. 이렇게 푸념을 하는 와중에도 허리를 꼿꼿이 선 채 조용히 말해야하는 것이 그들의 숙명이었다.
“그건 그렇고, 어제 경기 봤냐?”
“에버튼이랑 맨유? 봤지.”
“이야, 강주완 이제 완전히 폼 돌아왔더라.”
그러면서 조곤조곤하게 잡담을 나누는 두 사람. 두 사람 모두 꽤 오랜 시간 해외축구를 챙겨본 팬이었으며, 퇴근하고 하이라이트를 챙겨보는 것이 삶의 작은 낙이라고 할 수 있었다.
“May I help you?(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러는 와중에도 손님이 다가오자, 남자는 곧바로 공손한 눈인사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말에서 알 수 있듯 이번에 찾아온 손님은 외국인이었다.
왜일까.
“아, 체크 인을 좀 하려고 하는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고드윈 벨스터입니다.”
···음?
왠지 모르게 익숙한 이름.
그는 반사적으로 손님의 얼굴을 살폈다가 흠칫하고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예약리스트를 확인했다.
“1712호입니다. 저쪽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그럼 좋은 하루되시길.”
열쇠를 받고 멀어져가는 고드윈.
데스크의 두 호텔리어는, 한동안 말없이 그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맞지?”
“미쳤다, 미쳤어.”
에버튼의 대표 선수 중 한 명인 고드윈 벨스터.
TV에서만 봤던, 아니, 어제 본 경기에서도 뛰어다니던 선수를 직접 맞닥뜨린 상황에, 두 젊은 호텔리어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