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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00화 (100/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00화 >

가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몸 자체가 어떤 걸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느낌이.

야밤에 허기졌을 때 먹는 라면 한 그릇이라든가, 오랜 시간 잠들었다가 일어나서 마시는 물 한 컵이라든가, 군대에서 훈련받다 몰래 먹는 초콜릿이라든가.

단순한 욕구 때문만이 아니라 몸에서부터 이것을 원하고 있으며, 입에 들어오는 순간 몸에서 반응이 확, 하고 느껴지는, 그런 느낌말이다.

“와. 뭐야, 이거?”

방금 마셨던 이 칡차 한 모금에서도 그게 느껴졌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온몸에 쫙 퍼져나가는 은은한 온기. 마치 스펀지에 물 한 숟가락을 끼얹은 것처럼 곳곳으로 순식간에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단순히 목이 마른 상태였던 것은 아닐까?

그건 아니었다. 등산을 할 때에 충분한 수분보충은 필수고, 방금 전 카페에 들어오기 전에도 페트병에 남아있던 생수를 마저 비우고 왔던 것이다.

‘맛도 생각보다 괜찮고···’

솔직히 말해 맛은 조금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까 말했듯 약 한 사발 챙겨먹는다는 정도의 마음.

하지만 달착지근하게 감기는 첫맛과, 뒤에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쌉쌀한 맛의 조화가 생각보다 잘 어울려 맛으로도 상당히 훌륭한 차였다.

거기에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아까보다 속이 훨씬 편안해지고, 숨 쉬는 것도 살짝 편해진 기분이다. 오랫동안 얹혀져있던 뭔가가 쑥 내려간 느낌이라고 할까.

“하하. 마음에 드나보네, 그렇지?”

말없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거푸 차를 들이키는 전씨를 보며, 최씨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물건이구만.”

평소 성격이면 티를 안 내려하거나 적당한 말로 넘어가려 했겠지만, 그만큼 감동이 깊었는지 전씨는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내가 이거 좋다고 했잖아. 괜히 권했겠어?”

“최씨가 별로라고 했던 메뉴가 있기는 한감.”

괜히 머쓱한지 그는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내고 다시 칡차 한 모금을 들이켰다. 역시 몸에 잘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후후후.”

그 모습에 최씨는 팔짱을 낀 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카페를 운영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에게 따뜻한 차 한 잔 내줄 때가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종종 들르는 단골들에게 차례차례 칡차 한 잔 씩을 권하던 최준석. ···다만, 칡차의 효능과 그 감동이 너무나도 컸던 탓인가.

“나 왔어, 최 씨.”

“···또 왔어?”

이제는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산에 올라갔다가 일과처럼 카페에 들르는 전씨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칡차 한 잔을 시키곤 자리에 앉았다.

“요즘 느끼는 건데, 이거 마신 날이랑 안 마신 날이랑 그냥 하루가 다르다니까! 하하.”

전씨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단골들도 카페에 찾아오는 빈도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지금에 와서는 조용한 카페도 옛말이 된 느낌이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효과가 큰 것 같은데···’

바쁜 와중에 또 문이 열리면서 들어오는 두 명의 손님. 최씨는 잠시 고민하다, 카운터 위에 올려놨던 ‘추천 메뉴 / 몸에 좋은 칡차’라 적힌 입간판을 조용히 안 보이는 곳으로 내려놓았다.

* * *

[은퇴설 일축? 강주완 연이은 대활약! 감독曰, ‘이번 경기 승리의 주역은 단연 미스터 강.’]

[생각보다 빨랐던 복귀와 생각보다 위대한 재도약. 암흑기를 거치고 일어난 강주완의 새로운 전성기.]

강주완이 안마를 받고 영국으로 돌아간 이후.

그의 감각은 완전히 돌아왔으며, 슬럼프 기간에도 성실하게 훈련에 참가했던 것이 시너지를 일으켜, 그는 이전보다 더욱 뛰어난, 가히 새로운 전성기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정도의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에버튼의 감독은 다른 요소들보다도 실력과 잠재력을 최우선으로 평가하는 사람이다.

본래 그는 강주완의 복귀시기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해 반대했었지만, 연습 경기에서 강주완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자, 그는 곧바로 리그 경기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놓았다.

그 결과는 시원시원한 삼연승.

물론 삼연승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할 만한 기록은 아니었지만, 그 세 경기에서 결정적인 골들이 전부 강주완과 연관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화려한 부활이라 할 만한 활약이라 할 수 있었다.

“강, 솔직히 말해봐.”

“마사지가 아니라 슈퍼 솔저 혈청이라도 맞고 온 거 아니야?”

그러다 보니, 팀의 다른 선수들 또한 그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보다 정확히는 그가 슬럼프를 넘어 단기간에 포텐셜을 끌어올린 비결이 궁금했던 것이다.

“아니면 방사선을 잘못 쬈다든가.”

“오, 헐크처럼?”

“그래. 발목에 뼈를 촬영하다가 감마선이 너무 많이 새어나온 거야.”

“아니면 기존의 도핑 테스트로는 간파할 수 없는 오리엔탈 파워 허브를 먹고 왔다거나.”

“맞네, 그거네!”

동료의 농담에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기며 웃음을 터트리는 고드윈 선수. 두 사람의 터무니없는 소리에 강주완은 실소를 흘렸다.

“뭐가 ‘그거네’야. 영화를 너무 본 거 아니야?”

“고려인삼···이었나? 한국은 옛날부터 신비로운 허브로 유명했었다고 들은 적이 있어. 아무래도 그거 같은데. 아니야?”

“인삼이 유명한 건 맞는데 그거 먹는다고 나을 거였으면 진즉에 나았지. 너도 비슷한 걸 먹어본 적 있잖아?”

“내가?”

“이거 말이야, 이거.”

고드윈의 말에 강주완은 서랍을 열어 한 손 크기의 까만 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걸 본 고드윈의 미간이 단박에 찌푸려졌다.

“개같이 쓴 잼이잖아, 그거.”

“그래. 네가 한 입 크게 떠먹었던 거.”

그 병의 정체는 홍삼진액을 담아놓은 홍삼정.

예전부터 기운이 허할 때면 아침에 한 숟가락씩 떠먹곤 했었는데, 색만 보고 초콜릿잼 같은 걸 생각한 고드윈이 몰래 한 숟가락 떠먹은 적이 있었다.

“난 네가 청산가리라도 퍼먹은 줄 알았지.”

그때 고드윈이 내지른 비명에 주변에 있던 동료들과 스탭들이 죄다 몰려왔던 기억이 있다.

“크흠, 흠. 뭐 어쨌거나.”

재미있는 추억 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그리 자랑스러운 이야기도 아니었기에 고드윈은 헛기침과 함께 화제를 돌렸다.

“네가 맨날 마사지 덕분이었다고 하는 게 정말인지 아닌지, 이번 주에 확인해보면 되겠지.”

지난 번 강주완이 한글로 되어있는 안마원 명함을 나눠줬을 때, 대부분의 선수들은 일단 받아두긴 했지만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었다.

허나 고드윈과 다른 한 선수만은 그 날 바로 예약을 잡아뒀었다.

홈에서 시합을 치르고 난 뒤 다음 경기까지 여유가 꽤 남는 지금 시기. 그는 이 시기에 맞춰 예약을 잡아뒀었고, 감독에게도 허가를 받아 당장 이틀 뒤 한국으로 출국할 예정이었다.

“뭐냐, 고드윈. 진짜 가려고?”

옆에 앉아있던 다른 동료, 덱이 물었다.

“엉. 왜?”

“마사지 하나 받으러 한국까지 간단 말이야?”

한국이면 대충 어림잡아도 비행시간만 10시간 가까이 소모된다. 아무리 다음 경기까지 여유가 좀 있다고 해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정.

때문에 마사지에 관심을 보였던 다른 이들도 시즌이 끝났을 때나 아예 여유가 생길 때 다녀올 생각을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때문에 덱은 고드윈이 말하는 게 평소 으레 꺼내는 농담 같은 건줄 알았는데···

“그럼 안 되나?”

성격상 한 번 꽂히면 직접 해보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고드윈이다. 그는 오히려 당연하지 않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아니, 안 될 건 없지만··· 마사지 한 번 받고 돌아오기에는 시간적으로 가성비가 너무 안 맞지 않아?”

“그거야말로 아니지. 하나 착각하고 있다고, 덱.”

고드윈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다른 마사지가 아니라, 오리엔탈 마셜아츠 마스터의 마사지잖아!”

황당하다 못해 순수해보이기까지 하는 목소리.

“그놈의 오리엔탈···”

그 말에 덱은 이마를 탁, 치며 한숨을 내쉬었고, 강주완은 옆에서 낄낄거리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 *

“태한 씨! 어서와.”

충남 공주의 주택가 골목.

인근에 차를 대고서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마침 정원에 물을 뿌리고 있었던 신준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신 사장님.”

강태한이 주기적으로 영약을 캐고 있는 산의 주인.

요즘 가게 일이 바빠 자주 찾아오진 못하지만, 그래도 신세를 지고 있는 만큼 종종 찾아와 선물을 건네곤 하는 강태한이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렀습니다.”

“하하. 나야 반갑고 고맙지.”

“여기, 아까 전화에서 말씀드렸던 선물입니다.”

그러면서 강태한은 손에 들고 있던 기다란 종이가방을 신준호에게 건넸다. 그걸 받아들자, 묵직한 무게감이 그의 손에 전해졌다.

“이건··· 술인가?”

“네. 산삼으로 담근 겁니다.”

“사, 산삼?”

그 말에 신준호가 기겁을 했다.

“아니, 뭘 또 이런 걸 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닙니다.”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술에 들어간 산삼은 총 세 뿌리. 다만 셋 다 4년에서 5년 정도 묵은 것들이었고, 애당초 신준호의 산에서 캐낸 것이니 이 정도 선물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저번에 준 더덕주도 남아있는데.”

“좀 묵혔다가 먹으면 더 좋죠. 대신에 산삼주는 한 번에 많이 드시진 마시고, 사모님이랑 같이 한 잔씩만 드세요. 그럼 건강에 도움이 좀 될 겁니다.”

“···그래, 고맙게 잘 마시겠네.”

신준호는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오히려 어떻게 마셔야하는 지를 말하는 강태한이다. 신준호는 실소를 터트리며 미소를 지었다.

“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자고. 차라도 한 잔 내줄테니.”

신준호는 물을 뿌리던 호스를 잠그고, 집 안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렇게 할까요.”

“좋아, 그럼 들어가지.”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강태한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앞장서서 걸어가는 신준호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사모님은 안 계신 모양이죠?”

“아, 요즘 아내가 산보에 맛이 들려서 말이지. 아마 지금쯤 동네 뒷산을 걷고 있을 거야.”

강태한이 가게를 차린 이후로도, 채서윤은 주기적으로 강태한에게 찾아와 안마를 받고 돌아갔다.

그 횟수가 서너 차례쯤 되었을까.

덕분에 이젠 눈에 띄게 몸이 나아진 상태였다.

골반과 척추도 얼추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 있었고, 관절통은 이제 비 오는 날 뜀박질을 하더라도 무리만 하지 않으면 괜찮을 정도였으니까.

뿐만 아니라 체력도 좋아진 탓에, 이젠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시간이 남는 수준이라 그 시간에 아이와 놀아주거나 산보를 다니게 된 것이다.

“다 자네 덕분이야. 다시 한 번 고마워.”

치료할 방도도 없었고, 설령 할 수 있다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부작용이 있진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런 것 없이 건강해진 아내의 모습.

이미 그에겐 많은 감사를 표했지만, 신혼 때처럼 쾌활해진 아내를 생각하면 신준호는 강태한에게 몇 번의 감사를 표해도 부족할 뿐이었다.

“하하···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그 마음을 알기에 강태한도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 잠시 후, 두 사람은 테이블과 원두커피 한 잔씩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좋군.’

잔을 입가 쪽으로 가져와 잠시 향을 맡는 강태한.

커피에도 따로 신경을 쓰는 것인지, 신선한 원두 특유의 향긋하고 그윽한 풍미가 어지간한 프랜차이즈 커피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건 그렇고··· 지나가던 길이라면 오늘도 산에 다녀온 건가?”

그렇게 한 모금 커피를 맛보았을 쯤.

앉아있던 신준호가 넌지시 물었다. 강태한은 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반대입니다. 이제 막 산으로 들어가려는 참이었어요.”

오늘은 캠핑 장비도 챙겨왔으니, 하루 묵고 새벽에 서울로 올라갈 생각을 하고 있는 강태한이다. 한편 그의 말에 신준호가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그게···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 산까지 들어온 줄은 모르겠는데, 요즘 인근 지역에 멧돼지 몇 마리가 출몰해서 야단을 쳐놓은 모양이야.”

“멧돼지 말입니까? 위험하네요.”

멧돼지라.

분위기에 맞춰 짐짓 놀란 기색을 내보이긴 했지만, 속으로는 ‘그렇구나’ 정도의 감상 밖에 없는 강태한이다.

“그래. 그래서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더라고. 가지 말라는 소리까지는 안하겠는데, 그래도 태한 씨도 조심했으면 해서 하는 말이야.”

“으음··· 그러게요. 그러면 산에 가더라도 낮에만 잠깐 다녀오는 편이 좋겠네요.”

강태한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내며, 잠깐 내려놓았던 원두커피를 다시 한 모금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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