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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98화 (98/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98화 >

“그···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암이 제가 아는 암이 맞죠? 폐암, 대장암, 췌장암 같은 거요.”

“네. 맞습니다.”

조심스레 입을 연 이한건의 말에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반면 이한건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암이라니.’

당혹감과 함께 밀려오는 막연한 두려움.

깜짝 놀랐었던 얼굴에는 빠른 속도로 침울한 기색이 내려앉아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이 되었다. 암이라는 단어에는 그 정도의 파괴력이 담겨있었다.

대한민국의 사망원인 1위로 꼽히는 암.

딱히 의학 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암이라는 게 얼마나 심각한 병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으며, 그건 이한건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약 없는 투병생활에 점점 초췌해져가던 지인,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원탑급 연예인이었음에도 허무하게 가버렸던 선배님···

악성종양이라는 말을 인지한 순간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그동안 그가 직접 듣고 봐왔던 사례들이 주마등처럼 스르륵 흘러가기 시작했다.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허나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딱히 침착을 가장한다거나, 환자를 안심시키려고 한다거나··· 그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대단찮은 일이라는 뉘앙스였다.

“암일 수도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죠.”

“그럼 심각한 거 아닙니까?”

“물론 암이라는 건 심각한 병이죠. 하지만 아직 조직검사도 안 해봤고··· 설령 암으로 판명이 난다고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리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다시 모니터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여기, 요 조그만 부분이 문제인건데··· 설령 악성종양으로 판정이 나온다고 해도, 내시경으로 떼어내면 끝입니다.”

“수술···을 하면 치료가 된다는 말입니까?”

이한건의 표정에 조금 생기가 돌았다.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암이라는 건, 그나마 수술이라도 해볼 수 있는 상태에서 발견했으면 다행인거라고.

하지만 의사는 그 정도 수준도 아니라는 것처럼 천천히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수술은 피부를 째고 들어가는 것이 수술이죠. 이 정도면 그냥 시술입니다, 시술. 뭐든지 백퍼센트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만약 위암이라고 해도 이 정도 수준이면 별 문제 없으실 겁니다.”

“···정말입니까?”

“예. 물론 시간이 되시는 대로 최대한 빨리 조치를 취하는 편이 좋기는 하겠지만요.”

의사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덧붙이듯이 말했다.

그 말에 이한건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암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가 사실은 별 거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가. 멘탈이 롤러코스터처럼 위아래로 넘실거린 탓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십니다. 이 정도 상태에서는 아무런 증상도, 징조도 없기 때문에 시기를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거든요.”

한편,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의사는 방금 전과 다르게 신기해하는 목소리로 넌지시 입을 열었다.

암이 무서운 이유 중에 하나는 초기에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것에 있다. 본인이 체감할 정도의 증상이 나타날 때면, 이미 암세포가 퍼질 대로 퍼져서 손도 쓸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간혹 이렇게 초기에 발견하는 경우는··· 그야말로 천운이 따라줬다 해도 무방할 정도다.

“오늘 무슨 일로 검진을 받으러 오셨다고했죠?”

“아, 그게···”

안마를 받으러 갔는데, 선생님이 ‘일찍 끝내줄 테니까 병원에 가서 촬영 좀 꼭 해봐라’고 하셨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런 문장이 되겠지만, 이한건의 이성이 그 문장을 목구멍에서 막아냈다. 본인 스스로 생각해봐도 이상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밤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오시질 뭡니까. 뭔가 안 좋은 직감이 들어서··· 하하하.”

때문에 이한건은 적당한 말로 대답을 피했다. 꿈에 할머니가 나오셨던 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딱히 거짓말을 한 셈도 아니었다.

“평소 집안에서 제사를 열심히 지내는 모양이시네요. 이렇게 덕을 보시는 걸 보니.”

“할머니가 절 많이 좋아하긴 하셨죠.”

이한건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 * *

잠시 후.

용건을 마친 이한건은 계산을 마치고 병원 밖으로 향했다. 그는 매니저에게 연락해 일정을 조정한 후, 원래 다니던 병원에 곧바로 진료예약을 잡기로 했다.

[···형, 그럼 암인 거예요? 진짜로?]

“그렇댄다. 이제 어쩌냐.”

심각한 단계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장난끼가 발동한 이한건. 헌데, 수화기 너머 매니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흑, 어떻게요, 형··· 허윽, 맨날 일만 하다가···]

“야! 아냐아냐. 수술할 필요도 없대.”

[맞아요. 흐윽, 암 환자 중에는 수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들었어요.]

“그게 아니고! 진짜 별 거 아니래. 장난 친 거야!”

원래도 감수성이 좀 짙은 녀석이기는 했는데, 바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이한건은 괜히 장난을 쳤다가 훌쩍거리는 매니저를 한동안 달래야했다.

[와··· 형, 어떻게 그런 걸로 장난을 쳐요? 평소에 이런 농담 잘 안하는 사람이 그러니까 진짠 줄 알았잖아요.]

“그래, 내가 미안하다. 그보다, 이번 주 스케줄들 조정을 좀 할 수도 있으니까, 관계자 분들한테 연락 한 번만 좀 돌려줘.”

본래 탑급 연예인임에도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일정을 어기거나 바꾸는 경우가 없었지만··· 악성종양이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 뭐겠는가?

매니저에게는 일처리를 부탁하고, 그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잡아탔다.

‘근데, 그건 그렇고···’

그렇게 택시에 탑승한 채로 이동을 좀 했을까.

막연한 조급함이 사라지고 마음이 조금 가라앉으니,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의문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선생님은 진짜 어떻게 알아차리신 걸까.’

뜬금없이 병원에 찾아가보라고 했던 말씀.

이번이 첫 방문이기에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아무 때나 이런 식으로 말을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먼저 다녀왔던 서경우, 성재훈에게도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었으니까.

그렇다면 우연의 일치인가?

그건 또 아닌 거 같다. 그때 이야기하던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는 분명 뭔가를 알고서 말하는 느낌이었으니까.

“으으음···”

뭐라 깔끔하게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성재훈이 말했었던 ‘자신이 뭘 기대하건 간에 그 이상을 경험할 것’이란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몸도 엄청 좋아졌어.’

천마안마에서 안마를 받은 지 이제 얼추 두 시간이 다 되어가는 시간. 수면회복과정을 거치지 않아 효과가 늦게 나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깨는 그동안 무거운 짐을 메고 있다가 내려놓은 것처럼 가벼웠고, 허리는 좌우로 60도 이상으로 돌아가면 찌르르한 통증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휙휙 돌아가고 있었다.

악성종양의 충격에 빠져 거기에만 생각이 집중되어있었는데, 안마의 효과만 놓고 봐도 상식을 벗어난 수준인 것이다.

한동안 생각에 잠긴 채 멍하니 창가를 바라보던 이한건. 잠시 후, 그는 주머니에 넣어뒀던 스마트폰을 꺼내 매니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네, 형.]

“어, 그래. 지원아. 다른 게 아니고, 하나 더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하세요.]

“천마안마···라고, 형이 안마원 연락처를 하나 불러줄 건데, 거기에다가 예약이나 한 번 잡아주라. 시일은 최대한 빠를수록 좋을 것 같아.”

평소 매니저에게 사적인 부탁은 되도록 피하지만, 지금 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말을 꺼내는 이한건이었다.

* * *

[블미션 촬영에 적신호. 이한건, 위암판정으로 인해 기존 촬영 스케줄 전부 캔슬!]

[모두에게 사랑받는 국민 연예인의 암 판정, 징크스는 계속되는가.]

[하늘이 도왔는가? 이한건 관계자 측 曰, ‘위암인 것은 맞지만 조기위암이라 심하지는 않아. 이미 시술 마치고 회복 중.’]

동네방네 소문을 낸 건 아니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다더니 이한건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방송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한건이 위암이라고?”

“아이고··· 안타까워서 어떡햐.”

“뭘. 보니까 조기위암이라드만. 그 정도 수준에서 찾은 거면 오히려 복 받은 거지, 복.”

평소 성실하고 주변에 선행을 베푸는 이미지로 알려져 있던 국민연예인의 암소식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인터넷 뉴스에는 한동안 이와 관련된 기사들이 주구장창 올라왔으며, 주요 방송국들의 뉴스에도 심심치 않게 언급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이한건 완쾌! 블미션 촬영 이번 주부터 재개.]

[팬들에게 심려 끼쳐 죄송하고 감사. 앞으로는 건강하고 즐거운 소식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다.]

위암이라곤 해도 애당초 심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곧이어 이한건의 쾌유와 방송재개를 알리는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행이구만.”

인터넷 기사들을 훑어보던 강태한은 가볍게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물론 사기(邪氣)가 느껴지긴 했어도 그 수준이 미미했기에, 검사를 받았다는 시점에서 쾌유를 예상하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확실히 결론이 나오는 것은 또 별개의 일 아니겠는가.

[어느 분에게 정말 기연(奇緣)과도 같은 도움을 받은 덕분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사적으로 만난 분이라 이런 자리에서 감사를 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를 마저 읽던 강태한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이한건의 말을 옮겨 적은 기사의 내용. 거기서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기연이라.’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가 방문한 시기가 조금 더 빨랐다면, 기감의 능력이 향상되기 전이었다면, 설령 그가 천마안마에 왔더라도 강태한이 사기(邪氣)를 감지해서 말해주기는 힘들었을 테니까.

만난 것도 인연이지만, 시기도 적절했다고 할까.

물론 여태동안 그런 기운을 가진 사람이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었고, 이한건이 유일한 경우였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실제로 그 이후 사기가 느껴지는 손님을 한 명 더 발견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의 기감이 좀 더 예민해져서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 것. 그렇게 보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뭐 보고 있어요?”

그러던 와중, 누군가 다가와서 그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다름 아닌 유세아였다.

“이한건 씨 기사요.”

벤치에 앉아있던 강태한은 미소를 머금은 채 솔직하게 답했다. 그는 잠시 유세아를 쳐다보고 있다가, 담담한 목소리로 넌지시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입으신 것도 예쁘네요.”

그들이 있는 곳은 인천 시립의료원의 광장.

오늘 이곳에서는 입원 환자들을 위한 작은 공연회가 열렸고, 유세아는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사회자를 맡게 되어 깔끔한 정장차림을 하고 있었다.

방금 막 행사를 끝마치고 강태한에게 돌아오는 길.

강태한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그녀는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한 차례 자기 옷을 둘러보았다.

“···그, 그래요? 괜찮아요?”

“네. 좋네요.”

그 말에 유세아가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그건 그렇고, 오늘 같이 와줘서 너무 좋아요.”

“뭘요. 저도 관심이 있어서 온 건데.”

오늘 봉사활동은 당연히 유세아의 일정이다.

때문에 강태한이 같이 올 필요는 없었으나··· 그녀가 알게 모르게 계속 봉사활동을 해왔다는 것이 조금 신기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흥미도 있어 기꺼이 따라온 것이다.

“다음에는 안마사로 참여를 하면 좋겠네요.”

다만 이번에는 갑자기 따라온 것이기도 했고, 애초에 공연회가 핵심이었으니, 행사준비에 일손을 좀 더했을 뿐 강태한이 특기를 발휘하는 일은 없었다.

“그것도 좋네요! 하긴, 태한 씨 같은 고급인력을 이렇게 낭비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죠.”

강태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유세아.

“언니.”

그러던 중, 관객석 쪽에 있던 한 아이가 그녀 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였다.

“오늘 공연 끝났어요?”

“···네, 다 끝났어요.”

허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이는 입원 생활을 오래 했는지 다소 초췌한 인상이었다.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춘 유세아의 말에 아이는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마술 아직 못 봤는데.”

“어떻게 하죠, 마술은 마술사님이 큰 일이 났다고 하셔서 못 오셨는데.”

중간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마술 공연이었던 모양. 아이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 담겼지만, 이내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엄마가 참을 줄도 알아야한다 했어요.”

투정을 부릴 법도 한데, 애써 눌러내는 모습.

원래라면 기특하게 보여야하는 상황인데, 상황과 초췌한 안색 때문일까, 괜히 가슴 한 켠이 씁쓸해진다.

“그럼··· 이 오빠가 마술 하나 보여줄까.”

그때, 벤치에 앉아있던 강태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오빠가 마술사에요?”

“아니, 오빠는 마술사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야.”

그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눈치껏 살짝 뒤로 빠지는 유세아. 강태한은 그런 그녀에게서 행사 관련 팸플릿으로 보이는 종이를 한 장 건네받았다.

“이거 네 번만 접어 볼래?”

아이는 강태한이 건넨 종이를 접기 시작했다. 따로 말은 안 하지만, 내심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자, 이제 여기에다 콧기름을 좀 바르고···”

그렇게 네 번 접은 종이를 건네자, 강태한은 자신의 콧잔등과 아이의 콧잔등을 교대로 쓸어 만지고 종이에다 문질렀다.

그러곤 휙! 하고 허공에 던져지는 종이.

그와 동시에 접혀져있던 종이가 활짝 펴지더니, 한순간 백여 개의 자그마한 파편으로 조각조각 찢겨져 허공에서 꽃가루처럼 흩날렸다.

“와아아···”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꽃가루처럼 흩날리던 종이조각들이 한꺼번에 확하고 불꽃에 타버리며 사라지더니, 그 사이로 작은 꽃 한 송이를 들고 있는 강태한의 오른손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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