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97화 >
‘흐음···’
휴게실 구석에 놓여있는 커다란 쇼파.
다른 직원들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그곳에서, 강태한은 가부좌를 튼 채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그의 감각은 더욱 날카롭고, 광범위하게 뻗어져나가 다양한 정보를 보내오는 중이었다.
눈만 감고 있을 뿐, 사방으로 기감을 펼쳐놓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동안 광범위하게 기감을 운용하던 강태한은, 다시 내공을 거둬들이고는 깊은 숨을 한 차례 내쉬었다.
‘많이 좋아졌군.’
분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실력을 성취하고 쌓아올리는 데에는 특정 경지가 존재한다.
그 전까지는 성취가 지지부진하다가, 거길 넘어서는 순간 확! 하고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뤄내는 지점. 당연하게도 이런 개념은 무공이나 내공에도 존재하며, ‘경지에 도달했다’라는 말로 흔히 표현되곤 한다.
대부분의 경지는 깨달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때로는 단전의 내공에 따라 구분되는 경지도 있는 법.
전자의 경우는 강태한에게 이미 깨우치고 있던 걸 복습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다시 내공을 쌓아올려 근간을 갖추어야 회복할 수 있는 경지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주일 정도 전을 기점으로 강태한의 기감(氣感)을 다루는 능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내공이 쌓이다 어느 순간 자연스레 일정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하다만.’
무림에 있던 시절 다루던 수준과 규모에는 아직 크게 못 미치지만, 그래도 감고 있던 눈이 좀 더 시원하게 열린 듯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기(氣)라는 개념이 거의 사라져있는 현대에서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
고이지 않고 흐르기만 한다면야, 산골짜기의 시냇물도 언젠가는 바다에 도달하는 법이다. 강태한은 나름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가부좌를 풀고 쇼파에서 일어섰다.
“태한 씨. 거기 있었구나.”
“네. 바로 나갈게요.”
다음 손님이 찾아왔다는 건 이미 기감을 펼치고 있을 때 인지한 내용이다. 그는 옷매무새만 살짝 다듬고 곧바로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빨리 가봐. 이번 손님은 좀 특별할 걸?”
“···그래요?”
“태한 씨도 아마 딱 보면 알 거야. 아우, 모르는 척 하기 힘들었다니까.”
헌데 황 실장이 휴게실 문 앞까지 강태한의 뒤를 따라 걸으며 유난을 떨었다. 마치··· 연예인을 만나서 신난 청소년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
‘사인 한 장이 더 늘어나겠구만···’
로비 벽 한 쪽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액자들.
강태한은 그 액자들을 떠올렸다가, 기대감으로 입 꼬리가 꿈틀거리는 황 실장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 * *
‘흐음··· 유난을 좀 떨만하긴 했구나.’
이윽고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방에 들어온 강태한.
안으로 들어가 손님과 가볍게 목 인사를 나눈 그는, 황 실장이 신이 나서 빨리 가보라고 재촉하던 이유를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오늘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
이미 앞서 한 차례 인사를 나눴음에도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말하는 남자.
‘누가 봐도 이한건이로군.’
QBS의 블미션 뿐만 아니라 MC를 맡은 프로그램이 연달아 대박을 치면서 국민 MC의 반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대표 연예인 중 하나로 꼽히는 유명인이다.
비록 알이 큰 선글라스로 자기 얼굴을 감추고 있기는 했지만··· 너무 익숙한 그 목소리와 말투만으로도 정체를 짐작하기에는 충분했다.
“···혹시 따로 불편한 곳은 없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아는 척을 할 필요는 없고, 강태한이 특별히 따로 해줄 것도 없다. 손님으로 찾아왔으니, 한 명의 손님으로 대할 뿐. 강태한은 그에게 다가가며 언제나 하던 질문을 입에 담았다.
“으음. 목이랑 어깨 쪽이 요즘 특히 뻐근하고··· 허리는 항상 불편한 느낌이 좀 있습니다.”
“목과 어깨, 그리고 허리라.”
현대인이라면 만성적으로 피로가 쌓여있는 주요 부위들이다. 불편한 곳이 있냐고 물으면, 저 셋 중에 최소 한 가지는 꼭 끼어있을 정도. 무난한 부위 선정에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한 번 보도록 하지.”
그리고 이한건의 등 위로 강태한의 손이 올라갔다.
등에 넓은 손바닥이 닿고, 그 무게감이 전해지는 순간. 침대에 누워있던 이한건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어우, 확실히 다르기는 하네.’
묵직한 제압감과 함께 등을 타고 퍼져나가는 온기.
과연 성재훈이 빈 말을 한 게 아닌지, 손이 올라오는 순간부터 확! 하고 느낌이 온다. 이 사람은 확실히 달라도 뭔가 다르다는, 그런 느낌이.
그 때문일까, 이한건은 신기해하는 한편으로 기대감을 한껏 올리고 있었다. 이 느낌대로라면, 성재훈이나 이경우가 했던 다른 말들도 진짜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으니까.
“···흐음.”
한편, 그의 상태를 살피던 강태한은 뭔가를 감지하고는 미심쩍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감을 다루는 능력이 확장되면서 감각은 더욱 예민해졌고, 보다 세밀한 운용도 가능해졌다. 허나 그 때문일까, 강태한은 이한건의 신체에서 평소 느끼지 못했던 미묘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상복부의 안쪽.’
그곳에서 아주 희미하게 느껴지는, 묘한 기운.
아직 뭐라 딱 집어 말하기는 힘들었지만, 그 안쪽에서 살짝 변질되어있는 듯한, 일반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느껴지고 있었다.
“일단은 좀 더 보도록 할까.”
이전에는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던 말.
아직 의문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강태한은 등 위에 올렸던 손을 거두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혹시 무슨 문제··· 꺽!”
목소리는 평온했으나, 거기에 담긴 묘한 분위기를 눈치 챈 것일까. 이한건이 넌지시 질문을 꺼내려 했으나··· 그 질문은 곧 짧은 비명으로 가로막혔다.
허리춤부터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강렬한 자극!
강태한의 손이 파바바박, 하며 그의 척추를 따라 오르자, 한 순간에 주요 혈자리들에 숨통이 트이고, 그 자극은 고스란히 이한건의 신경으로 전달되었다.
“흐그으으윽!”
그 때문일까, 그의 입에선 예능에서 종종 나오던 이한건 특유의 웃음기 어린 비명이 아니라 호소력이 절절한 비명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다만 당연하게도 안마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척추의 혈들이 뚫리고, 고여 있던 탁기들이 빠져나가며 혈류와 기의 순환이 활발해져가는 상황에서.
강태한은 이를 더욱 촉진시키듯 등과 어깨에서부터 손바닥의 합곡(合谷)혈과 발바닥의 용천(湧泉)혈까지 근육과 혈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활성화는 충분하겠고.’
어깨와 허리에 뭉쳐있는 지점을 짚어, 적절한 지압으로 풀어내는 동시에 탁기를 빼낸다.
이미 한껏 몸의 순환이 활성화된 상태이기에, 빠져나온 탁기는 금방 혈도를 통해 빠져나가고 새로운 생기가 그 자리를 메워낸다.
“하아··· 후우우.”
베개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이한건. 지압의 고통은 사라졌지만, 아직 곳곳에 잔류하고 있는 자극과 쾌감들이 그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고 있었다.
‘···경우랑 재훈이 말이 맞았어.’
이건, 다르다. 분명 안마는 맞지만, 기존에 받아왔던 안마와는 격을 달리하는, 상식에서 벗어나있는 수준의 레벨의 안마였다.
아직 시간도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두어 차례 정도 몸이 재조립된 듯한 느낌.
다만 그 느낌이 좋으냐, 나쁘냐를 묻는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좋은 쪽이다. 이렇게 누워있는 와중에도 몸이 가벼워진 게 체감될 정도였으니까.
한편, 지압을 멈춘 강태한은 잠시 손을 거두고는 단전의 내공을 일부 활성화시켰다.
‘그럼, 뻐근하던 근육도 얼추 풀어냈으니···’
그 다음은, 의문점의 원인을 확인할 차례.
강태한은 그의 등 위에 다시 손을 올리고, 이번에는 전신이 아니라 복부의 내부기관들을 중심으로 기감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한건의 신체는 방금 전의 안마로 한껏 활성화되어있는 상태였다.
그 덕분에 체내의 기운 또한 한층 증폭되어있었으며, 이를 감지하는 것 또한 보다 수월해진다.
그리고 잠시 후.
“흠.”
그의 등에서 손을 떼어낸 강태한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충 짐작은 가는군.”
뭐라 딱 짚어 말하기는 애매했지만, 이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아낼 수 있었다.
묘하게 불길한 느낌을 띄고 있는··· 이른바 사기(邪氣)라 불리는 개념. 현대에서는 굉장히 사이비스러운 뉘앙스가 담긴 표현이지만, 이 개념에 그것만큼 잘 어울리는 말도 없다.
‘내 쪽에서 조치를 취할 수도 있겠지만···’
다만 여기에는 적지 않은 리스크가 따른다.
평소처럼 체내의 흐름을 조율하거나 신체의 컨디션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기의 근원을 물리적으로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물론 불가능한 건 아니고, 자기가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당장 조치를 취하겠지만··· 현대에는 더 전문적이고 적합한 장소가 있다.
“혹시 이후에 일정이 있는가?”
“···예? 아, 두 시간 정도 뒤에 스케쥴이 있습니다.”
이한건의 말에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대로라면 이대로 수혈(睡穴)을 짚어 잠을 재우고 한 시간 정도의 회복기를 줘야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원래라면 이 뒤에 푹 잠드는 것이 순서지만, 자네에게는 더 급한 일이 있으니 생략하도록 하겠네.”
“···급한 일 말입니까?”
강태한의 말에 이한건은 정신이 멍한 와중에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일정이 두 시간 정도 비어있다고 말했는데, 급한 일이라니.
“좀 규모가 있는 병원에 가서, 내부 검사를 한 번 받아보는 게 좋겠어. 꼭 다녀오도록 하게.”
“병원···이요?”
예상치 못한 말에 이한건이 되물었다.
“무리인가?”
“···아뇨, 일단 알겠습니다.”
다소 뜬금없게 들리는 말이었지만.
그의 표정과 목소리가 꽤나 신중하면서 진지했기에, 이한건은 자기도 모르게 얌전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이한건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의자 뒤의 차가운 벽에다가 등을 기댔다.
그가 있는 곳은 영등포구에 위치한 대형 병원.
일정을 앞에 두고 굳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방금 전 안마사 선생님이 그에게 했던 말 때문이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한 번 꼭 받아보라는 말.
당연한 말이지만, 이한건은 정기적으로 건강검진도 꾸준히 받으며 건강도 열심히 챙기는 편이다. 그가 오랜 시간 연예계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는 건, 이런 건강관리가 기본 바탕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새 뭔 일이 났을 것 같지는 않긴 한데.’
증상이라고 부를만한 건 딱히 없었고, 굳이 따지자면, 속이 더부룩한 일이 종종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젊었을 때부터 달고 다니던 증상이다.
하지만··· 왜일까.
왠지 그 선생님의 말은 허투루 넘길 수가 없었다.
때문에 이한건은 잠시 병원에 들러 CT촬영을 받았고, 지금은 대기실에 앉아 그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한건 씨?”
“네.”
“진료실로 들어가실 게요.”
그 사이에 결과가 나온 모양. 이한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로 향해 걸어갔다. 딱히 짚이는 증상이 없기 때문인지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예, 환자 분. 일단 앉으시죠.”
이한건은 의사가 손으로 가리키는 의자에 앉으며 정면의 모니터를 쳐다봤다.
꽤 큼직한 크기의 모니터. 거기에는 각각의 각도에서 자신의 내장기관들을 흑과 백으로 담아낸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일단 전체적으로···는, 크게 이상이 없으십니다.”
역시. 의사 선생님의 말에 이한건은 그럴 것 같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의사 선생님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요 부분, 이쪽에 요거 보이시죠?”
“예··· 위장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 동그란 부분이 위장인데, 지금 이 부분을 보시면 작은 돌기 같은 게 하나 있습니다.”
“듣고 보니까 그렇네요, 선생님.”
이한건은 의사가 막대로 가리키는 곳을 유심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러자, 의사는 들고 있던 막대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직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게 악성종양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번에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한건.
그 상태로 방금 전 대화를 곱씹다가, 뭔가 심각한 단어 하나가 섞여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예? 악성종양이요?”
“네. 확정된 건 아니고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면··· 크기랑 위치로 봤을 때 조기위암 정도 되겠네요.”
화들짝 놀란 이한건과 달리, 의사의 목소리는 평온할 정도로 담담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