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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93화 (93/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93화 >

“헤이, 강!”

시합이 끝나고 난 이후, 훈련장내 카페테리아.

이제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강주완이 가운데 테이블에 앉자, 그 주변으로 팀의 다른 선수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야? 아까 보니까 그냥 폼이 돌아오기만 한 수준이 아니던데?”

“한국에서 수술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고 하더니, 설마 그게 사이보그 수술이라도 되었던 건가?”

아까 전에 있었던 연습게임에서, 강주완은 단연 독보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드리블은 발에서 공이 떨어지지 않고, 슛과 패스는 하나같이 기가 막힌 루트를 그리며 날아갔다.

단순히 부상으로 잃어버렸던 발의 감각이 돌아온 수준을 떠나··· 오히려 그 전보다도 좀 더 좋아진 듯한 느낌.

“폭포 밑에서 수행이라도 하고 온 거야?”

“오, 그럴 듯한데? 홍콩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선수들은 부상으로 힘들어했던 동료가 다시 회복된 것에 기뻐하고 축하를 보내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거기에 좀 더 깊은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프로 스포츠선수가 몸 관리에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기에, 그들이 강주완에게 관심을 갖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툭 까놓고 말해 부상으로 떨어졌던 폼이 다시 되돌아오는 경우는 꽤나 드문데, 거의 반쯤 은퇴상황까지 갔다가 이렇게 단기간에 회복하는 것은 말 그대로 처음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속세를 벗어나 은거하고 계신 고수를 만났지.”

“오, 마이 갓! 오리엔탈 마샬아츠 마스터!”

“난 이미 그럴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지.”

강주완이 장난삼아 한 마디 꺼내자, 선수들 중 몇몇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감탄을 터트렸다. 그 반응에 강주완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방금 그 말을 믿는 거야?”

“아니었어? 기대했는데.”

“오리엔탈 마샬아츠가 아니면, 뭔데?”

리액션을 보이던 선수들은 실망한 듯 살짝 풀이 죽은 모습을 보였다. 강주완은 히죽 웃으며, 곧바로 진실을 입에 담았다.

“한국에서 안마를 받고 왔어. 오랜 친구한테 좋은 안마사 한 분을 소개받았거든.”

“···안마? 마사지를 말하는 거야?”

“그래. 마사지.”

그러자, 이번에는 오히려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다. 강주완의 말을 믿지 못하거나, 방금 전과 같은 농담으로 치부하는 눈치였다.

“슬슬 알려주라. 한국에서 뭘 하고 돌아온 거야?”

“진짜야. 마사지 받은 거 말고는 딱히 한 게 없어.”

강주완의 대답에 주변의 몇 명이 고개를 저었다.

“···마사지만으로 그 정도 효과가 나올 수 있다고?”

“에이. 강, 그냥 알려주기 싫으면 그렇다고 말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

마사지 정도는 이미 꽤 많은 선수들이 종종 받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피로회복에 충분한 효과가 있고, 컨디션 케어에 큰 도움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주일도 안 되는 사이에 부상의 후유증을 사라지게 한다든가, 사람을 완전히 바꿔놓는다든가 하는 효과는 없었다. 적어도 그들이 아는 선에서는 말이다.

“믿기 싫으면 믿지 마.”

다만 강주완의 반응은 담담했다.

처음 최태준에게 추천받았을 때 자신도 믿지 못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지금 본인 스스로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직접 경험을 했고, 그 효과를 보고 있는 자신도 이런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말만 듣고 믿을 수 있겠는가. 그걸 굳이 설명하려할 이유는 없었다.

강주완은 테이블 위의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주머니에 따로 챙겨뒀던 명함지갑을 꺼내들었다.

“그건 뭐야?”

“내가 소개받은 안마원의 명함이야.”

지난 번,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게의 명함을 스무 장 넘게 챙겨왔던 강주완이다. 지인들과 동료들 생각이 나서 한 번 여쭤보니, 사인도 해주셨으니 원하는 만큼 가져가셔도 된다나.

강주완은 꺼내든 명함을 오른손에 뭉태기로 쥔 다음, 선수들 쪽으로 슬쩍 내밀면서 말했다.

“나도 원래는 별 기대 안하고 갔었던 거거든. 너희한테 믿으라고는 안 하겠는데··· 혹시라도 한 번 들러보면 후회는 없을 거야.”

그러면서 손에 쥔 명함을 두어 차례 흔드는 강주완.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라는 뉘앙스다.

비록 명함은 한글로 되어있었지만, 숫자로 적혀있는 연락처는 당연히 외국인도 읽을 수 있고 현지에서 택시기사에게 건네줄 수도 있다.

“안마를 받으러 한국까지 가라고?”

“무슨 미슐랭 3스타 마사지라도 되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다들 믿기 싫으면 안 믿어도 돼. 난 그냥 혼자만 알고 있으려니 왠지 의미 없는 것 같고, 미안하기도 해서 말해주는 거니까.”

그럼, 이건 필요 없는 거지?

강주완이 그렇게 덧붙이며, 명함을 내밀고 있던 손을 다시 거두려는 순간.

“잠깐만.”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명함 한 장을 슥, 빼갔다. 요 근래 들어 어깨가 결리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던 골키퍼 허들린이었다.

“나는 강이 농담을 하는 건 봤어도 거짓말을 하는 건 본 적이 없거든.”

시즌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중이긴 했지만, 경기가 몰려있을 때만 아니라면 사나흘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낼 수 있다.

물론 동아시아까지 다녀오는 건 확실히 무리한 일정이고, 감독 및 스탭들과의 상담도 필요하겠지만···

강주완처럼 최고의 컨디션으로 회복된다는 보장만 있다면야, 설령 그곳이 지구 반대편이라고 할지라도 다녀올 용의가 있었다.

“명함 한 장 챙겨둬서 손해 볼 건 없겠지.”

“···맞는 말이긴 하네.”

“그럼 일단 나도 한 장.”

한 명이 명함을 가져가기 시작하자, 너도 나도 한 장씩 챙겨가는 선수들. 그 광경에 강주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그러던 와중에···

“한 번 다녀와 볼 필요는 있을 것 같군.”

살짝 주름이 들어있는 손이 나타나, 명함 한 장을 슥하고 집어 들었다. 다름 아닌 앨버트 감독이었다.

“일단 스탭 한 명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보내보도록 하고··· 그 뒤에 어찌할 지를 생각해봐도 괜찮겠지. 개인적으로 먼저 다녀오고 싶은 사람들은 따로 말해라. 일정과 상황만 맞는다면 보내줄 테니.”

손에 쥔 명함을 살펴보며 말하는 앨버트 감독.

그 진지한 목소리에 강주완이 웃으며 말했다.

“감독님은 믿어주시는 건가요?”

“나는 내가 직접 본 것밖에 믿지 않아.”

앨버트는 안경을 벗더니, 다소 시큰둥한 표정으로 렌즈를 닦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팀의 스트라이커 강이 돌아온 걸 이 두 눈으로 직접 봤는데,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처음 강주완과 이야기를 나눴을 땐, ‘부상이야 어찌됐건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어줍지 않은 근성론을 품고 되돌아온 줄만 알았다.

현실적으로 오랫동안 떨어져있던 폼이, 이렇게 단시간에 회복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앨버트 감독은 그에게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줬고··· 거기서 강주완은 최선이 아닌 최고의 결과를 뽑아냈다. 그의 말을 믿는 데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 * *

한편, 그 다음 날쯤 천마안마에선.

“저, 실장님···”

“뭔데. 무슨 일이야.”

“외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담당직원이 수화기를 살짝 내려놓은 채 난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작스레 들려온 영어 몇 마디는, 그를 당황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뭐로 말하는데. 영어야?”

“네. 그런 거 같아요.”

“일단 줘봐.”

반면, 황 실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걸어와 아무렇지 않게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익스큐즈 미. 오, 예스. 예스 천마안마.”

그러고는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나가는 황 실장.

뭔가 어설픈 느낌이 물씬 느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져갔다.

“음··· 노, 노. 댓 데이, 스케쥴 이즈 풀.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중간마다 말을 버벅거릴 때도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문제없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느낌. 이윽고 통화가 끝나자, 옆에 있던 직원이 감탄을 터트렸다.

“와, 실장님! 어떻게 영어를 그렇게 잘 하세요?”

“자식아, 이런 건 다 자신감이고 실전이야.”

예전에 이태원 바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레 익히게 된 회화능력! 독학으로 공부하기도 했지만, 거의 다 직접 부딪히면서 배운, 말 그대로 실전영어였다.

“그래서, 뭐라는데요?”

“이런저런 말은 많이 하는데··· 다음 주 목요일에 예약을 하고 싶다고 해서 꽉 찼다고 하고, 다른 날로 잡아줬지. 영국에서 출장 나오는 에버튼 씨래.”

물론, 그렇다고 황 실장이 정말 모든 대화를 이해한 건 아니다. 하지만 업무에 필요한 내용만 알아들으면 되지 않겠는가?

그는 살짝 으쓱거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예약일정의 해당 날짜에 에버튼이라는 이름을 적어 넣었다.

“와··· 다시 보입니다, 실장님.”

“다시 보지만 말고, 너도 영어 좀 배워, 임마. ···근데 에버튼이라는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볼펜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리며 잠시 생각에 빠지는 황 실장. 그러던 중, 마침 옆을 지나가던 최성현이 그 말을 듣고는 슬쩍 말했다.

“에버튼이면 축구팀이잖아요. 강주완 선수 뛰는.”

“아! 맞아, 맞아. 거기서 들었었네.”

황 실장은 탁 뚫린 궁금증에 손가락을 튕겼다가··· 한참 뒤, 문득 한 가지 의문을 떠올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 그럼 영국에 사는 에버튼 씨한테 전화가 온 게 아니라, 에버튼 팀에서 전화가 왔던 건가?’

어느 정도의 일처리는 가능하지만, 그의 영어가 전문적인 건 아니다. 막히는 부분은 그냥 뉘앙스와 흐름에 맞춰 적당히 알아들을 뿐.

당시 나왔던 에버튼이란 단어에 대해서, 황 실장은 뒤늦게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렸다.

“···에이, 설마.”

물론 얼마 전 다녀갔던 강주완 선수가 그새 팀으로 복귀했고, 거기서 열성적인 홍보를 한 덕분에 팀에서 전화를 했을 수도 있지만···

살짝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지 않은가.

황 실장은 괜히 허공에다 손을 휘휘 젓고는, 다시 본인의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다 황 실장은 슬쩍 아래의 선반을 열어 안쪽을 확인했다. 이제 두 개 남아있는 액자.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들고는, 사인 받을 액자를 추가로 주문하기 시작했다.

* * *

“여기 나와 있는 게, 회장님의 검사결과입니다만···”

대청그룹의 공익재단에서 운영하는 대청병원.

지난 날, 호텔에서의 협심증 발작으로 인해 쓰러질 뻔했던 일이 있고난 후, 장우영 명예회장은 곧바로 주치의를 찾아가 건강검진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저택의 거실에 앉아, 장우영은 담당주치의가 건넨 자료들을 훑어보며 차 한 모금을 마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얼마나 안 좋아졌나?”

장우영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장난조로 말했다.

까놓고 말해, 이런 나이가 되면 건강이 악화되는 일은 있어도 더 좋아지는 일은 거의 없다. 애초에 문제가 있어서 다시 받은 검진이었으니, 아무래도 안 좋은 결과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그 반대입니다, 회장님.”

주치의는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내려놓고, 화면을 장우영 쪽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거기에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의학적으로 보이는 사진이 몇 장 나와있었다.

“이게 뭔가?”

“회장님의 심혈관조영술 촬영 결과물입니다.”

“아, 그때 그거구만.”

심장을 감싸고 있는 관상동맥에 조영제를 주사하고 특수 X선으로 촬영하여 이상을 확인하는 검사법.

검사할 당시의 일을 기억한 장우영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손목을 통해 미세한 관을 집어넣는데, 솔직히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듣고 보니 혈관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내용을 알고 보니 뭔가 보이긴 하는 느낌.

두 사진을 살펴보던 장우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넌지시 물었다.

“최근 꺼가 오히려 더 선이 굵은 느낌인데?”

“네.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랑 여기, 희미하게 나오던 구간이 좀 더 선명해졌습니다. 아래까지 내려가는 혈관들도 보다 또렷해졌고요.”

으음. 장우영은 턱에 손을 올린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의사들이 하는 말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건가.”

“심장상태가 꽤 좋아지셨습니다.”

“···어, 그런 건가?”

솔직히 좋은 결과는 기대하지 않고 있었기에, 장우영의 입에서 살짝 당황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는 괜히 한 번 더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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