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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89화 (89/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89화 >

‘황 실장님의 말대로 됐군.’

잠시 강태한은 지난 번 생갈비집에서 있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때 ‘설마 강주완 선수가 우리 가게에 올 일이 있겠냐’는 최성현의 말에, 황 실장은 ‘혹시 모르는 일이다’라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말대로 일이 흘러간 상황.

강태한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부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인연이 닿는다는 것이 새삼 신기한 기분이었다.

“어디, 불편한 곳은 따로 없는지?”

“으음··· 허리 쪽이 좀 뻐근합니다.”

강태한의 물음에 강주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그에겐 허리 말고 정말 불편한 곳이 따로 있었다.

‘어차피 고칠 수 없는 거··· 괜히 어색한 상황 만들 필요는 없지.’

이곳에 아직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

강주완이라고 안마 한 번 안 받아봤겠는가?

물론 확실히 가게 분위기도 훌륭했고, 안마사 선생님도 들어오자마자 포스가 느껴지는 것이 평범한 안마원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안마 가지고 왼쪽 발목의 부상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랜 친구에게 따로 소개를 받은 곳이기는 했지만··· 강주완이 갖고 있는 기대는 그냥 푹 쉬고 나오기 좋은 안마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흠. 왼쪽 발목은 불편하지 않다는 말인가?”

허나 그를 유심히, 특히 발목 언저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안마사는 의외라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예? 어··· 아. 그건 아니고요.”

그 말에 강주완은 자신의 증세를 꿰뚫어보기라도 한 줄 알고 순간 흠칫했지만, 이내 납득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자기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본인은 유명인이다. 설령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최신뉴스만 좀 챙겨봤다면, 자신의 이름과 왼쪽 발목에 부상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을 만도 했다.

“어차피 나을 수도 없는데, 선생님한테 괜한 부담을 드리는 게 아닐까, 해서요.”

조금 실례일 수는 있었지만, 빙빙 돌려 말할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강주완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입에 담았다.

“솔직하군.”

“혹시 실례였다면, 죄송합니다.”

“뭐··· 일단은, 괜한 부담인지 아닌지 한 번 보도록 하지. 엎드려 보겠나.”

강압적인 분위기는 없지만 왠지 순순히 말을 따라야할 것 같은, 묘한 마력이 담겨있는 목소리.

강주완은 얌전히 침대 위에 엎드렸고, 강태한은 그런 그의 등 위에 평소처럼 조용히 손을 올렸다.

“···엇.”

순간, 강주완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저 등 위에 손 하나가 올라왔을 뿐인데, 돌덩이라도 올라온 듯한 압박감과 함께 온몸을 제압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느슨하게 풀어지는 근육.

느슨하게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따스한 온기.

거기에다 그게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손을 통해서, 자신의 몸 내부 곳곳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그런 감각이 느껴졌다.

헌데 그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다고 할까. 강주완은 베개에 머리를 묻은 채로, 안쪽에서부터 저절로 새어나오는 깊은 숨을 조용히 내뱉었다.

‘확실히 뭔가가 다르기는 하네···’

본격적인 안마는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이미 다른 안마들과의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톡 까놓고 말해, 남은 시간동안 계속 이렇게만 있을 예정이라고 해도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방금 전 목욕탕에 몸을 푹, 담그고 있을 때에도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

사실 요 근래 마음고생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하도 받은 바람에, 제대로 편히 쉬어본 적도 없는 강주완이다. 그는 노곤한 표정으로 온몸에 퍼져나가는 따스한 온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건 말해줄 수 있을 것 같군.”

“···어떤 걸 말인가요?”

어느새 파악을 마치고 등 위에서 손을 떼어내는 강태한. 그러자, 강주완이 내심 아쉬운 기색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노곤하다 못해 살살 졸음 기운마저 오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도중에 끊어진 탓이다.

“방금 전 발목에 관한 걸 나한테 말해줬었더라도, 괜한 부담은 아니었을 거라고 말이야.”

한편, 강태한은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뒤, 엎드려있는 강주완의 척추 위아래에 각각 왼손과 오른손을 올려놓았다.

“혹시, 그 말은 곧···”

왼쪽 발목을 낫게 해줄 수 있을 거라는 말인가.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강태한의 목소리에는 빈 말을 꺼내거나 허세를 부리는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에, 강주완은 저도 모르게 되물으려 했다.

허나 그 물음은 끝을 맺지 못하고 도중에 끊어졌다.

강태한의 왼손이 척추 윗부분의 대추(大椎)혈을, 그와 동시에 오른손이 아랫부분의 명문(命門)혈을 누르는 순간.

“흐으으어어억!”

마치 댐이라도 무너진 것처럼, 갑자기 척추를 중심으로 흐르는 강렬한 자극에, 강주완은 체면도 생각하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 * *

강주완의 몸을 살펴봤을 때, 강태한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예전에 봤던 최태준과 굉장히 비슷한 유형이라는 것이었다.

‘벽에 부딪히면 일단 몸으로 노력부터 하는 타입.’

좋게 말하면 노력이고, 나쁘게 말하면 몸의 혹사다.

한참 슬럼프에 갇혀, 무작정 연습에만 몰두했었던 최태준처럼 말이다. 보아하니 둘이 지인관계인 것 같은데, 이런 부분에서 서로 닮은꼴인 모양이다.

‘원래라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 같지만 말이지.’

그 전까지는 이것이 그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밑거름이 되어줬을 것이다. 적절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 그 두 가지가 시너지를 일으켜 그를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만들었으리라.

다만 최태준이 과도한 자책 때문에 본인의 몸을 망가트리기 시작했다면··· 강주완 같은 경우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경기에서 입은 부상이 그 원인이 된 셈이었다.

“계속해서 훈련은 빼먹지 않은 모양이지.”

“흐그윽··· 흐으. 예? 아, 네.”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키고 있던 강주완이 한 박자 늦게 답했다. 그러자, 강태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 발목에 문제가 있다는 건, 굳이 손을 대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혈도가 뒤틀려있는 탓에 흐르는 기운 자체가 불안정했던 것이다.

허나 거기서 강태한이 이상하게 느꼈던 건··· 그러면서 해당 부위에 생기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어딘가에 문제가 있으면 몸은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을 한다.

긁힌 상처에 딱지가 앉고, 출혈이 발생하면 인근 혈관들이 수축하듯이, 반사적으로 아픈 곳에 생기를 집중시켜 부분적으로나마 회복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부상을 입은 부위에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몸 자체에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

그 이유는 단순했다. 부상회복에 집중시켜야할 생기를, 다른 일로 먼저 가져다 쓴 것이다. 복귀를 위한 훈련으로 말이다.

“주치의도 훈련에 참가해도 된다고 했거든요.”

“아마 그랬겠지.”

강주완이 아까의 대답에 덧붙이듯이 말하자, 강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추측하고 있었던 내용이다.

적어도 겉으로 봤을 때는 아무 문제도 없었고, 완치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내부에 뒤틀려있는 혈도가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을 뿐.

때문에 발목을 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발을 움직일 때 예전에 느꼈던 감각과는 미묘하게 다른 이질감이 있었을 것이다.

“좀 더 세밀하게 들어가자면 발끝과 발등의 감각에 이질감이 있었을 테고··· 발목이 돌아가는 느낌도 영 어색했겠구만.”

허리에서부터 혈자리들을 열어놓으며 허벅지를 주무르고 있던 와중, 강태한은 본인이 파악한 내용들을 혼잣말하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예? 어떻게 그걸.”

그 말에, 강주완은 비명을 참고 있던 와중에도 흠칫 놀라며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발의 감각이 이상해졌다. 이건 팀 내부의 인원들에게만 말해놓은 내용이고, 특히 저렇게 세밀한 부분들은 주치의와 감독에게만 말한 내용들이었다.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영국 현지의 기사에서도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던 내용.

“바로 여기에 다 적혀있지 않은가.”

강태한은 얼핏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그의 종아리부터 시작해서 왼쪽 발목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흥으으으으!”

두 발로 뛸 수 있게 되었을 적부터 공을 차왔던 다리. 거의 이십 년 가까이 단련을 해온, 탄탄하기로는 어디서 뒤지지 않는 종아리다.

헌데, 지금 그 단단한 종아리가 마치 스펀지처럼 꾹꾹 눌러지고 있었다. 그 때문인가, 전에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한 자극이 종아리에서부터 시작해, 몸을 관통하여 머리끝까지 닿고 있었다.

“허어, 허어어···”

처음 느껴보는 경험. 그 자극에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고 있었는데, 강태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리를 주물렀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뿜어져 올라오는 자극!

마치 물을 퍼 올리는 펌프처럼, 강태한의 엄지손가락이 지압할 때마다 종아리에선 허리가 저릿해질 정도의 강렬한 자극이 터져 나왔다.

“후우우우···”

그렇게 한동안 있었을까.

왼쪽 종아리에서부터 발목까지 지압을 마치고 난 후, 강태한의 손이 오른쪽 다리로 넘어가자, 강주완은 그제야 긴 숨을 내쉬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오른쪽에서도 자극이 만만치 않은 건 똑같았지만, 그래도 방금 전 왼쪽 다리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었다.

‘···어라.’

그렇게 숨을 좀 고른 덕분일까.

강주완은 그제야 왼쪽 다리의 감각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달라졌다?’

발끝의 촉감도 더 예민해진 것 같고, 혈액순환도 좀 더 잘 되는 느낌이다.

막혀있던 게 뚫리고, 비틀려있던 것이 다시 펴진 듯한 감각. 이게 어울리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망가졌던 전선이 다시 고쳐진 듯한 느낌이다.

물론 단순한 플라시보 효과,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다리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로.

정말로 다리에 감각이 되돌아 온 거라면.

아직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그 상상을 한 것만으로도, 강주완은 가슴 한 켠에 뭉클한 뭔가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현역으로 복귀하는 건 사실상 포기하고 있던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실 날 같은 희망 한 줄기가 내려온 기분이었던 것이다.

“선생님, 혹시···”

“혹시 한 시간 사이에 약속 같은 건 없는가?”

안마가 끝나고 난 후.

강주완이 약간 감상에 젖은 목소리로 뭐라 말을 하려던 순간, 강태한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예? 아, 네. 없는데요.”

호캉스라는 생각으로 왔기에, 이 빌딩 밖으로 나갈 일정도 하나도 없는 강주완이다. 그는 강태한의 질문에 답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숨 푹 자고 나가게.”

“그럴···”

까요. 입에 담은 대답은 미처 끝을 매지 못한 채, 강주완의 기억은 거기서 끊어졌다.

* * *

잠시 후.

“생색낼 만하네···”

잠에서 깨어나 칡차 한 모금을 마시던 강주완은, 짤막하게 소감을 말했다. 그의 머릿속엔 큰마음 먹고 양보하는 거라 말하던 최태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뭐하러 서울까지 안마를 받으러 가냐’고 말했던 것도 떠올랐다. 물론,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있었다.

이 정도 안마라면 서울이 아니라 어디 중국 깡촌에 있다고 해도 충분히 다녀올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 정도의 만족도였다.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발의 감각이 돌아왔는가. 그건 확신하기 힘들다.

하지만 여기에 들어오기 전과 지금의 상태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게다가 몸에 활력이 넘쳐흐르는 게 느껴지고, 요 근래 축 처져 있던 어깨는 교정이라도 받은 것처럼 빳빳하게 펴져있었다.

만족. 아니, 대만족.

강주완은 안마사 선생님에 대한 깊은 감사를 느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빠져나왔다.

“좋은 시간 되셨습니까.”

“예. 너무 좋았네요.”

가벼운 목인사와 함께 인사를 건네는 황 실장.

강주완은 싱긋 웃으며 그에게 카드를 건넸다. 요 며칠사이 한 번도 지어본 적이 없는, 진심에서 우러난 선명한 미소였다.

“혹시 선생님한테 따로 인사를 드릴 수 있을까요?”

“아··· 안마를 담당하신 강태한 선생님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이미 퇴근하셨습니다.”

“···그렇군요.”

강주완은 조금 아쉬움이 담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 감사를 표하기도 전에 잠에 빠진 터라, 뭐라도 인사를 좀 남기고 싶은, 하다못해 팁이라도 건네 드리고 싶은 것이 강주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크흠, 흠. 저, 근데···”

그렇게 강주완이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고 있을 무렵. 앞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황 실장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해보세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강주완의 표정을 보고, 충분히 각이 보였는지 황 실장은 카운터 아래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사인 한 장만 좀···”

그 손에 쥐어진 것은 한 시간 전부터 준비해두고 있었던 사인지와 사인펜. 그러면서 황 실장은 벽 한 쪽에 걸려있는 작은 액자 하나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거기에 걸려있는 것은 다름 아닌 조찬혁의 사인.

이렇게 하나씩 모아, 유명인들의 사인으로 벽 한 면을 메우는 것이, 황 실장의 소소한 야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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