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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87화 (87/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87화 >

“뭐야, 아니었어?”

최씨가 살짝 아쉬운 티를 내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태한이가 이런 건물을 어떻게 통째로 사?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맞아, 최씨. 우리 상식적으로 살자고. 애초에 태한이가 가게를 차렸다고 했지 빌딩을 지었다고 했남?”

강호연이 핀잔을 주듯 말하자, 방금 전까지 최씨와 함께 호들갑을 떨고 있던 김씨가 어느새 태세를 전환하여 그 옆에 서있었다.

“하긴, 뭐 그게 중요한감. 태한이가 아버지 생각해서 서울에다 호텔도 빌려놓고, 식사부터 사우나에 안마까지, 그냥 쫘아악 준비해놨다는 게 중요하지.”

괜히 머쓱해진 최씨는 감동적인 멘트를 꺼내 화제를 돌렸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지, 강씨는 뿌듯한 표정으로 코밑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내가 아들 하나는 잘 뒀어. 그치?”

“아유, 두 번 말하면 입 아프지. 그리고 우리는 친구 하나 잘 둔 셈이고.”

“맞어, 맞어! 덕분에 이렇게 같이 서울에서 호강도 해보는 거 아니겠어? 태한이가 어렸을 때부터 아주 그냥 눈빛부터 똘똘했지!”

강호연의 말에 최씨와 김씨가 옆에서 한 마디 씩을 거들었다. 다만, 그렇다고 그저 강호연이 듣기 좋으라고 꺼낸 빈 말들은 아니었다.

두 사람에게 있어 강태한이 기특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이렇게 아버지를 초대한 것만 해도 대견한데, 아버지 혼자 오시면 심심하실 수도 있다면서 자기들 둘까지도 챙긴 것이다.

“감동이다, 감동이야.”

김씨는 진심이 담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아버지를 모시는 김에 겸사겸사 부른 거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우리 민수가 태한이 반만 닮았으면 좋겠는데··· 아들 놈을 어떻게 이렇게 잘 키운겨?”

“태한이야 뭐··· 알아서 잘 컸지. 내가 한 게 있나.”

강호연은 머쓱해하는 표정으로 뒷덜미를 긁적였다.

그건 아버지의 겸손 같은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 태한이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자식에게 좋은 아버지였냐, 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잘 자라준 것이 더 기특하고, 더 고마울 뿐이었다.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이 좋은 날에.”

“그래. 일단 여기 밖에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자고.”

두 사람은 강호연이 한참 힘들 때 술주정도 몇 번 들어줬던 입장이었기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뻔히 꿰뚫어보았다.

둘은 강호연이 쓸 데 없는 궁상을 떨기 전에, 양쪽에서 어깨를 밀면서 빌딩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사람이 향하는 곳은 빌딩의 5층.

호텔의 로비와 함께 레스토랑, 비즈니스 센터와 같은 주요 시설들이 배치되어 있는 곳이었다.

“오··· 괜찮네.”

“딱 봐도 좋아 보이는 곳인데?”

이윽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두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며 조그맣게 감탄을 터트렸다.

1층보다도 높은 층고와 넓은 공간이 돋보이는 로비. 덕분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시야가 탁 트이는데, 세련된 인테리어와 적절하게 배치된 장식품들이 고급스러운 인상을 안겨주었다.

까놓고 말해 두 사람이 호텔 인테리어에 관해 안목이 깊거나 식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작부터 대접받는 듯한 느낌이 확 오는 게, 꽤나 수준 높은 인테리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로비 구경을 마친 세 사람이 다가가자, 프론트의 직원이 공손한 목소리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게 뭐라고, 세 사람의 얼굴에 괜히 긴장한 기색이 나타났다.

“아, 체크인을 좀 하려고 하는데요.”

“예약자 분 성함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프론트의 직원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강호연으로 예약이 되어있을 겁니다.”

“강호연 선생님··· 확인됐습니다. 정면 우측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셔서, 18층으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편안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직원의 공손한 인사에 목인사로 답하고서, 강호연은 엘리베이터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아유, 이런 곳에 오면 괜히 긴장이 된단 말이지.”

“말은 강씨가 다 했는데 왜 최씨가 긴장을 해?”

“그냥,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 이런 곳에 와본 적이 워낙 오래됐어야 말이지.”

최씨와 김씨는 로비에선 짐짓 이런 곳에 익숙한 척을 하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오는 순간 이마를 한 번씩 훔쳤다.

“우리가 뭘 하든 아무도 신경 안 쓴다니까···”

강호연은 둘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한 마디 던졌다.

머지않아 18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세 사람은 1804호를 찾아 안내판을 살피며, 복도를 따라 걸었다. 헌데 안쪽으로 걸어갈수록, 왠지 모르게 뭔가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무슨 느낌이었는가 하니.

“···이게 뭐여.”

“우리 집보다 넓어 보이는데”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 알았다.

“이게··· 스위트룸인가 뭔가 하는 그거여?”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객실보다 훨씬 더 큰 넓이.

강호연은 그제야 복도에서 느꼈던 위화감이 뭔지를 알아차렸다. 방에 가까워질수록 객실 문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졌던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실제로 객실들이 넓었으니까.

“아마 스위트룸이 맞을 거야. 태한이가 뭐라고 했더라··· 프리미엄 스위트랬나. 아무튼 그래.”

“캬, 이름답게 달달한 방이구만!”

“최씨가 뭘 모르네. 스위트 룸의 스위트는 말이야, 달달하다는 뜻이 아니야.”

“그럼 뭔데?”

“···이야, 방이 참 넓네!”

막상 본인도 생각이 안 났는지, 김씨는 방을 둘러보는 척하며 말을 돌렸다. 방도 넓은 것이, 침실도 두 개에 욕실마저 두 개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잠시 후.

“좀 늦어서 죄송해요, 아버지.”

“아냐. 우리도 온지 얼마 안 됐어.”

방으로 찾아온 강태한이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면에 보이는 넓은 응접실에는 아버지 한 명밖에 없었다.

“김씨 아저씨랑 최씨 아저씨는요?”

“방 구경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그때, 안쪽에서 펑, 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이불이라도 털어내는 듯한 소리.

강태한이 그쪽으로 슬쩍 발걸음을 옮기자.

“이야, 푹신푹신하구만!”

“애들 타는, 방방인가 뭔가, 그거 같네!”

김씨 아저씨와 최씨 아저씨가 침대 위에 앉은 채로 팡팡 뛰고 있는.

좋게 말하면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은 순수한 모습이, 사실대로 말하면 조금 눈 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김씨, 최씨··· 지금 뭐하는 거야?”

“강씨, 이거 봐봐! 침대가 엄청···”

여전히 신난 목소리로 말하던 최씨. 그는 강호연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강태한과 눈을 마주치더니, 방방 뛰던 몸을 멈추고 조용히 침묵했다.

“···흠흠. 태한이 왔냐?”

“크흠. 이 정도면, 침대가 무너져서 다칠 걱정은 안해도 되겠네. 음.”

그리고 옆에 있던 김씨는, 침대의 강도라도 테스트해보고 있었던 것처럼 괜히 매트리스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 * *

“캬··· 여기 사우나, 경치가 장난이 아니네.”

“이게 몸보신이지, 몸보신이여···”

빌딩 꼭대기, 22층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사우나.

그곳의 온탕에서, 최씨와 김씨는 노곤한 목소리로 각자 감탄을 터트렸다.

큼직한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한강의 풍경.

그 통유리와 온탕 사이에는, 접근을 막는 역할의 울타리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더군다나 세 사람이 여기에 온 시간은 늦은 오후.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방에서 좀 쉬다 올라온 지금은, 슬슬 해가 져서 어두워져가는 때였다.

창문 너머에서 낮과 밤으로 넘어가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풍경. 그걸 뜨끈한 온탕에 몸을 담근 채로 볼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사치스러운 상황이었다.

“근데, 저 창문에는 김이 왜 안 서리는 거지?”

“몰라. 똑똑한 사람들이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

“그건 그렇고, 강씨 덕분에 진짜 호강하네.”

김씨가 옆을 보며 말하자, 조용히 풍경을 지켜보고 있던 강호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뭘 내 덕분이야. 태한이 덕분이지.”

탁 트인 서울의 전망과 함께 즐기는 뜨뜻한 목욕.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한 경험이었는데, 아들 녀석이 모든 걸 준비해줬다고 생각하니, 아버지로서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세 사람의 사치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목욕을 마치고 상쾌한 기분으로 나온 세 사람은,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 강태한의 천마안마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가게가 때깔부터 기깔이 난다, 야!”

“좋네. 참 좋아.”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이번에도 김씨와 최씨의 입에서는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동양풍으로 꾸며낸 멋들어진 인테리어.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내부의 공간은 훨씬 넓었고, 그 안은 아까 봤던 호텔 못지않게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꾸며져 있었다.

지인의 아들 가게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감탄을 터트릴 만한 모습이었다고 할까.

“오셨어요, 아버지?”

그런 세 사람을, 강태한이 직접 맞이했다.

원래는 접객 직원의 역할이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경우인만큼 강태한이 직접 마중을 나온 것.

“태한아! 가게 진짜 좋다.”

“하하··· 감사합니다.”

김씨 아저씨의 말에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근데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저기서 옷부터 갈아입고 나오시겠어요?”

세 사람은 강태한이 건넨 옷을 각자 챙겨들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유,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어라? 혹시 너, 성현이 아니냐?”

“네? 절 아세요?”

“알지! 예전에 민수랑 같이 집에 놀러왔잖아.”

이후 김씨와 최씨는 각각 장인코스로.

“오늘 어떠셨어요? 아버지.”

그리고 강호연은 아들, 강태한에게 직접 안마를 받고 있었다.

“좋았다.”

강호연은 담백한 목소리로 감상을 담았다.

원래 강태한이 알던 아버지라면 여기서 말을 끝냈겠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그는 아까보다 조금 더 격양된 목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정말 좋았어. 특히 사우나가 끝내줬다. 이래서 사람들이 한강 뷰, 한강 뷰 하는구나, 싶었지 뭐냐.”

“아, 여기 위에 사우나가 좋긴 하죠.”

강태한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찜질방에서 나온 뒤로 출근 전에 목욕을 하는 일과가 사라져 아쉬웠는데, 요즘에 다시, 그것도 훨씬 퀼리티가 좋은 시설을 이용할 수가 있어 삶의 질이 한층 높아진 강태한이다.

“게다가 방은 또 어쩌면 그렇게 넓은지··· 두 가족이 자도 되겠더구나. 너 좀 무리한 거 아니지?”

“무리한 거 아니에요. 호텔 쪽에서 배려를 좀 해주기도 했고요.”

강태한이 당초 부탁을 했던 건 스위트룸이었지만, 원래 예약이 잡혀있던 게 취소되었다면서 곽상영이 프리미엄 스위트룸으로 방을 올려줬다.

원장님에게만 드리는 서비스라나 뭐라나.

물론 서비스인만큼 비용은 그대로였다. 보답의 의미로 강태한도 곽상영에게 따로 안마를 한 번 해주기로 했지만 말이다.

“그새 또 어깨랑 허리 쪽이 좀 뭉쳤네요, 아버지.”

“아··· 그게 티가 나냐? 요새 메뉴개발 좀 한다고 주방에 오래 있다 보니, 조금씩 뻐근해지더라. 근데 그렇게 무리한 건 아니고···”

강호연은 멋쩍어하는 목소리로 변명하듯이 말했다.

아들에게 쓸 데 없는 걱정을 끼치는 것 같기도 하고, 기껏 덕분에 나아진 몸으로 다시 무리를 한 느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죠, 뭐.”

다만 강태한은 아버지의 등을 주무르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목소리. 거기에는 흐뭇해하는 기색마저 담겨있었다.

“몸은 제가 챙겨드릴 테니, 아버지는 하고 싶은 거 다 하시면 됩니다. 요리도 더 배워보시고, 늦잠도 주무시고, 원호 아저씨랑 골프도 치러 다니시고.”

오랜 세월 아픈 몸을 이끌고 가게를 지키셨던 아버지. 그렇게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면서,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가게에 나가 늦은 저녁에 돌아오셨다.

“그동안은 못하셨던 거잖아요.”

그 이유가 다름 아닌 자신 때문이었다는 걸, 강태한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고, 아버지의 어깨도 훨씬 나아진 지금··· 이런 아버지의 열정적인 모습은, 강태한에게 그저 뿌듯할 뿐이었다.

“···고, 맙다.”

“어라. 아프세요?”

“아니··· 크흠, 흠흠! 목욕하고 찬바람을 쐤더니, 목이 좀 막히네.”

먹먹해진 소리에 조심히 물어보는 강태한.

이에 강호연은 헛기침으로 촉촉한 목소리를 감추며, 애써 아무것도 아닌 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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