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 안마하신다-84화 (84/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84화 >

호텔 쪽과 일정부분 제휴를 맺는 것. 이건 강태한도 예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부분이다.

특히 다른 건 몰라도 꼭대기 층에 있는 사우나시설은, 개업하기 전부터 협력관계를 맺는다면 굉장히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니까.

때문에 안 그래도 호텔이 영업을 시작하면 자기가 한 번 호텔 쪽과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황 실장이 강태한에게 따로 말을 꺼내둔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운이 따라주는군.’

그런데 호텔 쪽에서 먼저 이렇게 제휴 제안을 꺼내온 것. 그것도 총지배인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니, 이런저런 절차를 거칠 것 없이 일의 진행도 훨씬 편하고 빠를 터였다.

“원장님께서도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신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이대로 진행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컵 안에 담긴 커피가 슬슬 식어갈 무렵.

계획에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자, 곽상영이 종이에 뭔가를 메모하며 말했고,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고민거리 하나가 알아서 해결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그림이야.’

호텔에서는 투숙객들에게 사우나와 함께 천마안마의 기본안마코스를 홍보하고, 천마안마는 이걸 2할 정도 할인된 가격에 제공한다. 그리고 할인된 가격의 일부는 호텔 쪽에서 지불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언급된, 큰 틀로 잡혀있는 내용.

호텔 쪽에서는 다른 부대시설과 연동하여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니 좋고, 강태한의 입장에서도 일반코스의 손님들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으니 좋고. 그야말로 서로 도움이 되는 구조다.

“사실 안마를 받을 때 선생님 인상이 꽤 우직해보여서 걱정을 조금 했었거든요. 근데 이렇게 이야기가 잘 통하시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흐음··· 일할 때 제 인상이 조금 다르긴 하죠.”

곽상영의 말에 강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의 분위기와 안마에 집중할 때의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것은, 강태한도 인지를 하고 있는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는 제 쪽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요.”

곽상영의 본론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이야기가 마무리된 상황. 하지만, 목적을 가지고 자리에 나온 것은 곽상영 뿐만이 아니었다.

“예? 아, 네. 말씀하시죠.”

상황을 살피다 슬쩍 자신의 본론을 꺼내는 강태한.

그러자 미지근해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던 곽상영이 다시 컵을 내려놓았다.

“저희 안마원에 방문한 손님들이 사우나를 이용할 수 있도록, 그쪽에서도 제휴를 맺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강태한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곽상영은 입가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거 좋군요. 상호간에 연계도 좀 더 잘 이뤄지겠고··· 사실, 안마를 받고 나왔을 때 저도 사우나가 고프기는 했습니다.”

안마를 받은 사람들이 물 흐르듯 사우나에 들렀다가 가는 그림. 안마를 받은 상태에서 즐기는 사우나는 더욱 만족도가 높을 것이고, 이는 자연스레 사우나 시설과 호텔의 평판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 기회에 겸사겸사 해결할 수 있으니 좋군.’

안 그래도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일을 자연스럽게 진행시킬 수 있게 되어 좋은 강태한.

‘적극적으로 먼저 제안을 꺼내주시니 좋네.’

사업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동시에 말이 통하는 제휴 파트너를 얻은 것 같아 흡족한 곽상영.

“그럼 이번 미팅에서, 앞에 말씀드렸던 내용과 같이 이 일도 한 번 이야기를 꺼내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좋은 소식을 기대하도록 하죠.”

두 사람은 각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잡은 손을 천천히 위아래로 몇 차례 흔들었다.

* * *

“그래? 사우나 이야기도 다 끝내놨다고?”

잠시 후.

빌딩 내 1층에 위치한 갈비집에서, 강태한은 익숙한 두 사람, 황실장과 최성현이랑 함께 늦은 식사를 위해 모여 있었다.

“네. 어쩌다보니 한 번에 해결이 됐네요.”

“우리 강 원장님이 사업수단이 좋네.”

“운이 잘 맞아떨어지는 거지, 뭐.”

최성현이 물을 채운 컵을 건네며 말하자, 강태한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운도 겹치고 겹치면 실력이야.”

황 실장이 피식 웃으며 한 마디를 거들었다. 본인 말로는 가게도, 투자금을 받은 것도 모두 운 덕분이라는데, 이쯤 되면 단순히 운이 좋다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상님 묘를 잘 썼다거나?”

“우리 할아버지 화장하셨는데?”

“모셔놓은 납골당의 터가 좋을 수도 있지.”

최성현의 말에 황 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납골당도 풍수지리를 따르나?”

“아이, 그냥 농담으로 하는 소리죠.”

괜히 진지한 반응에 최성현이 질색하며 손을 저었다. 그러는 사이, 한껏 달궈진 숯불과 함께 주문한 갈비가 테이블에 올라왔다.

딱 봐도 고기가 야들야들한 생갈비.

벌써부터 달큰짭짤한 향이 올라오는 양념갈비.

가격대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딱 봐도 고기의 품질이 꽤나 좋아보였다.

“야, 이거 맛있겠다.”

“저번에 한 번 먹어봤는데, 이 집 생갈비가 진짜 괜찮아. 알지? 갈비집은 생갈비 맛있는 데가 진짜 맛집인 거.”

황 실장이 불판 위에 고기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러자, 집게를 들고 있는 황 실장을 최성현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왜?”

“아니··· 실장님이 구우시나 해서요.”

“그러려고. 왜?”

“그러면 기대가 좀 떨어지는데.”

최성현은 곁눈질로 슬쩍 강태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눈길이 느껴졌는지,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강태한이 실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야, 그렇게까지 일을 시키고 싶냐?”

“하지만··· 실장님이 구우면 맛이 없다고.”

“으음.”

강태한은 뭐라 반박을 못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번 황 실장이 삼겹살을 구웠을 때, 겉은 태웠지만 안은 설익어있는 고기를 보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했다.

“이 자식이? 그럴 거면 네가 구워.”

“···그냥 제가 구울게요, 실장님.”

허나 최성현은 컵라면조차도 가끔 물 조절을 실패하는 인간이었기에, 강태한은 조용히 황 실장의 집게를 가져왔다.

치이이익···

석쇠 위에서 금방 익어가는 갈비. 야들야들한 살코기 위에 줄무늬로 새겨지는 석쇠무늬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워보였다.

“확실히 태한 씨가 잘 굽긴 잘 구워···”

뜨거운 숯불 위에 올려져있는 석쇠. 사실상 직화구이나 마찬가지고, 그렇기에 올라오는 불의 열기가 곳곳마다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숯의 향은 잘 배어들지만, 어느 쪽은 불이 너무 강하고 어느 쪽은 또 너무 약한··· 말하자면 고기 굽기의 최고 난이도라 할 수 있는 환경.

허나 그럼에도, 불판 위의 고기는 타거나 설익는 곳 없이 고르게,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여기 사장님보다 잘 굽는 게 아닐까 싶은 수준이다.

“아··· 강주완 선수, 결국 귀국한다네요.”

“강주완이면··· 축구 선수?”

“예. 아예 회복기를 갖기로 했다나봐요.”

그러던 와중,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최성현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하며 화면을 보였다. 거기엔 강주완 선수의 귀국 결정과 그의 최근 행보에 관한 내용이 담긴 인터넷 기사가 띄워져 있었다.

“그보다 너, 축구까지 챙겨보냐?”

“아뇨? 그냥 재밌어 보이는 경기 있을 때만 가끔 보는 정도에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최성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근데 강주완이 빠지면, 보는 날도 거의 반으로 줄겠네요. 아, 괜히 내가 다 아쉽네.”

강주완은 국가대표로서 큰 활약을 보여주며 국내 축구팬들의 관심을 끌어 모은 선수이자,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해서도 좋은 성적을 보여준, 현재 한국 축구계에서 손에 꼽히는 인지도를 지닌 선수였다.

다만 그렇게 승승장구를 하나 싶었으나··· 경기 중에 한 번 부상을 입고 실려 가더니, 이후로 좀처럼 경기에 나오질 못하고 나오더라도 예전 같은 솜씨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면서 부상악화설, 은퇴설 같은 것이 돌아다니더니, 시즌 말이긴 하지만 아직 시즌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귀국을 한다는 기사까지 나온 것이다.

“뭐 어쩌겠냐··· 프로선수라면 본인이 부상 리스크까지 감수하면서 뛰어야하는 거지.”

“그렇긴 한데··· 왜 하필 우리나라 선수한테, 그것도 잘나가던 유망주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냔 말이죠.”

최성현이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모든 분야에서 다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장래유망한 선수가 포텐셜을 다 터트리지도 못한 채 꺾이는 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혹시 우리 강 원장님이 봐주시면 되지 않으려나?”

안타까워하는 최성현의 모습에, 황 실장이 고기를 굽고 있는 강태한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지병인 편두통도 낫게 하고 이미 한하에서 성과를 보인바 있으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으음. 글쎄요.”

다만 강태한은 평소처럼 덤덤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자세한 건 봐봐야 알겠죠.”

강태한 본인이 다른 안마사들보다 많은 걸··· 아니, 상당히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건 사실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굳이 확답은 하지 않는다.

“하긴, 애초에 강주완 선수가 우리 가게에 찾아올 확률이 얼마나 있겠어.”

“근데 그건 혹시 모르는 일이긴 해.”

최성현의 말에 황 실장이 넌지시 말했다.

한하의 최태준 선수, 오재운 감독, 국민배우 조찬혁··· 당장 떠오르는 사람들만 해도 이 정도인데, 하나같이 좀처럼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다.

특히 찜질방에 딸려있는 안마샵에서는 더더욱.

허나 그런 사람들도 발걸음을 하게 만들었으니··· 강태한에게는 인연을 끌어들이는 뭔가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그 뭔가가 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뭐라고 딱 집어서 말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납골당의 터가 좋나?”

“왜 갑자기 이야기가 다시 되돌아갑니까?”

한참 전에 끝난 이야기를 갑자기 언급하는 황 실장에게 최성현이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냥 고기나 드시죠.”

그러는 사이, 다 구워진 고기를 각자의 앞 접시에 옮겨주며 강태한이 말했다.

“···야, 잘 구웠다.”

“생갈비에 숯향을 진짜 잘 입혀놨네.”

겉으로만 야들야들한 게 아니라 씹는 맛까지 일품인 고기. 씹을 때마다 입 안 가득 육즙이 배어나오고, 은은한 숯향이 함께 어우러지며 깊은 감칠맛을 자아낸다.

“전에 와서 먹었을 때보다 훨씬 맛있는데?”

굽는 사람에 따라 확연히 차이가 나는 고기의 맛.

황 실장은 새삼스레 그 실력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 * *

“와··· 가게 진짜 좋네.”

천마안마에 방금 들어와, 이제 막 옷을 갈아입고 나온 손님.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인테리어부터 넓이까지, 지난번에 찾아갔었던 찜질방의 안마샵과는 차원이 다른 탓이었다.

“은비 왔구나?”

“아, 오빠! 오랜만이에요.”

밖으로 나온 강태한이 말을 걸자 그녀, 채은비는 온몸으로 반가운 기색을 표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 오랜만이네. 일은 잘 풀리고 있고?”

“말도 마요. 예전보다 성적이 더 좋아졌다니까요?”

채은비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번에 선발전 예선을 통과한 이후, 그녀는 무난하게 본선까지도 넘어서 정회원, 투어프로에 해당되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그토록 바랐던 프로활동을 곧바로 시작하게 된 것.

중간에 부상으로 인해 꿈을 포기했었지만, 그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면 꽤나 일찍부터 프로가 된 셈이었다.

“기사로 나온 건 봤었지.”

“어, 봤어요?”

“네가 링크도 보내줬는데 그걸 어떻게 안 보니.”

“내가 그랬었나?”

시치미 떼는 채은비의 모습에, 앞서 복도를 걸어가던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기사에 나왔다며 채은비 본인이 보내줬던 링크. 골프에 대해선 잘은 모르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둔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가게 진짜 좋네요. 지난 번 가게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는데, 여긴 생각보다 훨씬 좋아서 놀랐어요.”

방 안으로 들어서자, 거기서도 한동안 주변을 둘러보며 채은비가 말했다. 동양풍의 분위기에 세련된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운 느낌을 담아내고 있었다.

“디자이너분이 솜씨가 좋으시더라고.”

“그런 것 같네요.”

채은비는 감탄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대 위에 올라가 등을 보인채로 엎드려 누웠다.

“그래서,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한 건 뭐야?”

강태한은 그녀의 등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물었다. 이틀 전, 카톡에서 중요한 일이 있으니 안마 좀 받고 싶다고 말을 했던 채은비였다.

“···아, 그거요.”

강태한의 손이 올라가고, 노곤하게 풀어져있던 채은비가 한 박자 늦게 답했다.

“사실 별 건 아니고··· 저 이번에 미국으로 원정 나가게 됐거든요.”

별 거 아니라는 말과 달리, 그녀는 조금 머쓱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