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83화 >
“아, 원장님 오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원장님.”
안마를 마친 강태한이 휴게실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다른 직원들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강태한에게 인사를 건넸다.
강태한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띤 채, 마주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에 답했다.
‘사장 소리보다는 한결 듣기 편하네.’
이 가게의 주인은 명실상부 강태한이었으니,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마냥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기도 했거니와, 영 부담스럽게 느껴져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강태한이 결정한 호칭은 원장님.
이것도 괜스레 거창해 보이는 호칭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같은 안마사라는 뉘앙스도 담겨있기에 사장보단 괜찮게 들리는 편이었다.
“근데 다들 거기서 뭐하고 계신 거예요?”
강태한에게 인사를 건넨 두 명의 안마사들은 칸막이 너머, 수면용 침대 쪽에 모여서 한참 뭔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한 명은 침대 위에 누워있고 다른 한 명은 그를 교본으로 삼아 안마를 하고 있었다.
“아, 저번에 원장님이 가르쳐주셨던 거 있잖아요. 그걸 좀 더 연습해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직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손에 좀 안 익어서.”
천종(天宗)혈 부근을 압박하여 주변의 어깨근육들을 풀어주는 연습을 하고 있는 모양.
천종혈은 어깻죽지 근처에 위치해있는, 어깨피로와 상체의 혈액순환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혈자리로, 지난 번 금요일에 강태한이 이들에게 알려준 내용이었다.
“근데 저희끼리는 아무래도 진전이 없네요.”
“혹시 원장님만 괜찮으시다면, 한 번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안 될 건 없죠.”
그의 말에 강태한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다름 아닌 강태한의 가게. 이들의 실력이 향상된다는 건, 어찌됐거나 가게에 좋은 영향으로 작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기껏 뭘 좀 가르쳐놨더니 다른 곳으로 홀랑 가버린다는 가능성도 있었지만··· 굳이 비급(祕笈)마냥 꽁꽁 싸매둘 정도로 대단한 기술도 아니고, 크게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실(失)보다는 득(得)이 더 큰 선택.
그렇기에 강태한은 장인코스의 세 명 외에도 틈틈이, 따로 요청하는 안마사들에 한해 안마의 기술과 요령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배우는 속도에서 조금 차이가 나기는 하는구만.’
강태한에게 특훈을 받고 현재 가게에서 장인코스를 담당하고 있는 김성훈, 황태진, 그리고 최성현.
그들은 이미 이것과 똑같은 내용을 배웠었고, 그때는 각자 습득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연습을 하고 있는 두 직원이 열정이 떨어진다거나, 대충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김성훈과 황태진은 이미 경험이 많이 쌓여있는 상태라 요령과 핵심만 짚어주면 금방 익히고, 최성현은 본인의 재능 자체가 뛰어났을 뿐이다.
강태한이 괜히 이 세 사람을 장인코스의 담당으로 뽑아놓은 게 아니었던 것.
물론 다른 안마사들도 황 실장이 나름 실력을 보고 데려오거나 뽑은 사람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차이가 크게 나는 편이었다.
* * *
“보아하니··· 선생님은 근육을 푸는 건 잘하시는데, 혈자리를 정확히 짚어내는 게 아직 서투르시네요.”
“아··· 티가 좀 나나요?”
“손을 움직이시는 걸 보면 느낌이 오죠. 일단 혈 위치가 애매하시면, 바로 혈을 짚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근육의 줄기를 따라서···”
그래도 학습의지가 있는 것과 없는 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강태한은 두 명에게 각각 필요한 부분들을 짚어줬고, 그들은 강태한이 말하는 내용에 집중하며 경청했다.
“오··· 확실히 그렇네요.”
“벽 하나를 넘어선 기분인데요?”
그 결과, 두 사람은 그동안 막혀있던 부분을 잠깐 사이에 뚫어내는 성취를 이뤄냈다. 남은 건 반복 숙달하며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 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장님.”
“별 말씀을요.”
강태한은 두 사람을 뒤로 한 채 쇼파 쪽으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그 상태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하루 정도는 오전이나 저녁쯤에 아예 강의 시간을 넣어놔도 나쁘지 않겠어.’
지금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틈틈이 알려주는 식이었지만, 아예 정기적으로 한두 시간 정도 수업시간을 빼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앞서 말했듯, 안마사 직원들의 실력이 늘어나는 건 상당히 긍정적인 일이다. 프리미엄 코스를 제외한 일반코스의 단골들도 늘릴 필요가 있었으니까.
[일반코스는 아무래도 예약이 좀처럼 안 늘어나네.]
강태한은 황 실장이 지난번에 중얼거리듯이 말했던 고민거리를 기억하고 있다.
그 말대로, 프리미엄 코스를 제외한 일반 코스는 아직 예약까지 하면서 찾아오는 손님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강태한의 천마코스는 매일 예약이 가득 차있는 수준이고, 장인코스도 이젠 따로 쉬는 시간을 비워놔야 할 정도로 나름 궤도에 올라섰지만···
일반 코스 쪽의 예약은 퇴근 시간만 아니면 두어 시간 전에만 전화를 해도 충분히 예약을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개업 첫 날에야 예약 없이 찾아온 손님들이 많았고, 황 실장이 그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해 출근한 안마사의 숫자도 많지 않아 손이 부족했었지만.
어느 정도 가게가 정상화되고 예약 손님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지금은, 아무래도 일반 코스의 안마사들이 한가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저렇게 두 명이 연습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그만큼 시간이 남는다는 의미였으니까.
까놓고 말해, 지금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대부분은 강태한을 보고 찾아온 손님들이다. 이건 자만 같은 게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다만 강태한이 받을 수 있는 손님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으니, 일종의 낙수효과처럼 다른 안마사들에게도 손님들이 찾아갈 뿐.
‘안마사들의 수준은 나쁘지 않은데 말이지.’
전에 있던 찜질방과 비교하면, 안마사들의 수준은 전체적으로 높았다. 허나 그래도 강태한의 안마를 기대하고 찾아온 손님들을 만족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안마사들에게 강태한 같은 실력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안마실력을 향상시켜두는 것이,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터였다.
‘단골들 외에도 꾸준한 수요가 있으면 좋겠는데···’
강태한을 찾아오는 손님은 상관이 없다. 천마코스는 개업 이전부터 포화상태였고, 지금은 손님을 어떻게 모을지가 아니라 가격을 얼마나 올려야할지를 고민하는 단계였으니까.
문제는 일반코스 쪽이다.
물론 아직 가게가 열린지 한 달이 채지나지 않은 시점이긴 하지만, 그래도 두 프리미엄 코스에 비해 매출과 손님 수가 뒤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예전 가게에선 찜질방에 찾아온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안마를 받으러 찾아왔듯이, 여기에서도 그런 꾸준한 수요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호텔이랑 사우나 쪽이 영업을 시작하면 개선이 될 것 같기는 한데···’
뭔가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은 없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태한 씨, 이웃에서 손님이 오셨는데.”
“···이웃이요?”
손님이면 손님이지 이웃에서 온 건 뭐란 말인가.
허나 그 순간 강태한의 머릿속에, 방금 고민하고 있던 것과 연동되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혹시 호텔 쪽에서?”
“오··· 어떻게 알았어? 우리 원장님이 촉이 좋네.”
황 실장이 강태한을 가리키며 감탄을 터트렸다.
한편, 강태한은 어깨를 으쓱이며 싱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민이 해결될 것 같은, 그런 냄새가 났다.
* * *
“아, 강 사장님!”
강태한이 천천히 걸어오자, 곽상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환대했다.
“안녕하세요, 음··· 그러니까.”
“아! 잠시만요. 명함 한 장 드리겠습니다.”
강태한이 뭐라 불러야할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곽상영이 지갑에서 명함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만난 곳은 천마안마의 사무실도 아니었고, 그 후로 시간도 꽤 지나있는 상태였다.
황 실장이 말을 전달하긴 했지만, 강태한은 다음 손님이 올 시간이 다 되어 시간을 비우기가 힘들었고 곽상영도 호출이 들어와 호텔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할 일을 마치고, 저녁쯤이 되어서야 이곳, 빌딩 1층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앉은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두 손으로 명함을 건네는 곽상영.
명함을 받아든 강태한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총지배인이셨군요?”
총지배인이라면 호텔의 최고 결정권자에 해당되는 직급이다. 호텔관계자가 왔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게 최고 직급일 거라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조금 의외였다.
“하하··· 총지배인이라고 해도 월급쟁이인데요, 뭐. 다른 지배인들한테 얹혀가는 입장이고요.”
강태한의 말에 곽상영이 머쓱한 반응을 보이며 뒷덜미를 쓸어 만지며 말했다.
“호텔 정리가 끝났으면 식사라도 대접을 해드렸을 텐데, 레스토랑 팀에서 전원 휴가를 나간 상황이라서요. 다음에 정식으로 초대를 드리겠습니다.”
“음. 오픈예정에 차질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레스토랑 팀은 오픈 직후에 업무량이 유난히 많아서, 오픈 전에 객실팀이랑 더불어 이런 식으로 배려를 해주는 편입니다.”
소소하게 오가는 대화. 그러는 사이 주문한 음료가 나와 두 사람 앞에 각각 놓였다. 강태한은 앞에 놓인 카페모카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하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 안마도 받으러 오셨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어, 기억하고 계셨던 모양이군요.”
“예. 4시였나, 그때쯤에 오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아요! 정확하시네요. 어떻게 다 기억하세요?”
강태한의 말에 곽상영이 신기하다는 듯이 박수까지 치면서 반응을 보이고는, 연이어 감탄을 터트렸다.
“크. 제가 그래도 호텔 일하면서 여기저기 호텔 사우나도 다녀보고, 안마도 받아봤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선생님 안마가 단연 으뜸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강태한은 손에 커피 잔을 쥔 채로 싱긋 미소를 지었다. 쑥스러워하거나 으쓱이는 기색이 없는 담담한 반응이었다.
“과찬을 해주시니 감사하네요.”
“하하··· 그런 것치고는 담백한 리액션이신데요.”
곽상영이 소탈하게 웃은 다음, 슬쩍 눈치를 보며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선생님도 알고 계실 것 같지만, 저희 호텔에서 사우나랑 피트니스 센터도 같이 운영을 할 계획입니다. 이미 완공도 마친 상태고요.”
“네. 알고 있습니다.”
천마안마의 위층인 21층과 22층에 각각 들어서는 시설들. 강태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곽상영이 손깍지를 끼우며 살짝 앞으로 허리를 숙였다.
“사람 심리라는 게··· 운동으로 땀이 나면 사우나에서 씻고 싶고, 사우나에 다녀오면 시원하게 안마 한 번 받고 싶어지고···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동의하듯 강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서로 효과를 높여주기도 하죠.”
단순히 기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효능이 있다. 운동 후에 하는 사우나는 말할 것도 없고, 안마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몸이 굳어있는 상태보다는 살짝 풀어져있을 때 안마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는 법이니까. 몇몇 안마원에서 안마 전에 족욕을 먼저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역시! 잘 알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도 빠르겠군요.”
강태한의 맞장구에 곽상영이 화색을 지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 호텔에선, 투숙객들이 자연스레 사우나를 이용할 수 있도록 홍보와 함께 할인 혜택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물론 피트니스 센터도 마찬가지고요.”
지극히 당연한 마케팅전략이다.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곽상영은 옆에 내려놓은 서류가방에서 작은 안내서 같은 것을 꺼내들었다.
“본론을 말씀드리자면, 이게 객실마다 비치될 팜플렛인데··· 여기에 선생님의 천마안마가 추가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곽상영이 가리킨 곳에는 사우나에 관한 안내와 함께 근사한 전망사진이 걸려있었다. 거기에 강태한의 가게를 함께 소개하고 싶다는 것.
“흐음.”
좋다. 충분히 좋은 그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강태한은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침음을 삼켰다.
“왜 그러십니까?”
“사실 저희 가게가 이미 예약이 많이 밀려있는 상태라서··· 호텔에서 손님이 찾아온다고 해도, 저희가 받을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그건··· 충분히 그러실 수 있겠네요.”
곽상영은 천마코스를 예약할 때의 일을 떠올렸다.
예약이 뭘 그리 많이 차있는지, 원래 주말에 받을 예정이었지만 부득이하게 평일 대낮에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긴, 애초에 호텔 손님이 모두 천마코스를 받을 수는 없지···’
안마를 받은 순간, 이건 미쳤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걸 모든 손님들에게 제공할 수는 없다. 설령 예약이 텅 비어있다고 해도 강태한의 몸은 하나뿐이니까.
그래도 뭔가 아쉬움이 남는 상황이다.
이미 이상적인 그림을 완성시켜놨던 상황이기에, 그 아쉬움은 더욱 컸다.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던 곽상영.
“···혹시 일반코스는 예약 상황이 어떻습니까?”
그의 입에서 예상한 반응이 나오자, 강태한은 입가에 씨익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