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82화 >
“경우야. 너 어디 이상한 데 갔다 온 건 아니지?”
이한건이 살짝 걱정이 어려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일단 한 번 받아보면 알 거라는 것도 그렇고, 서경우가 하는 말이 약간 사이비 전도사들이 꺼내는 말들과 비슷하게 들렸던 것이다.
“안 그래도 내가 그 소리 할 줄 알았어요.”
서경우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한건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두어 차례 끄덕거렸다.
“저도 다른 사람한테 들었을 때는 긴 가 민 가 했었고, 형이랑 똑같은 생각했었거든요.”
“···누구한테 들었는데?”
“그 왜, 조찬혁 씨 저번에 오셨었잖아요?”
“그랬지. 찬혁 씨 와서 고생하고 갔잖아.”
“근데 찬혁 선배님이 왜?”
갑자기 언급된 유명배우의 이름에 사람들의 관심이 서경우에게 더욱 집중되었다. 그 시선 속에서 서경우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다른 게 아니고 찬혁 씨한테 추천받은 안마샵인데, 여기 다녀온 이후로 두통이라는 걸 앓아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찬혁 씨가 그랬다고?”
조찬혁이라면 이한건도 나름 친분이 있다.
그렇기에 그가 좀처럼 과장을 하거나 빈 말을 꺼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서경우를 의심스레 쳐다보고 있던 이한건의 시선이 순식간에 호기심으로 물들었다.
“···조 선배님 편두통 장난 아니신데.”
“맞아. 저번에 촬영 나오셨을 때도 편두통 때문에 쓰러지셨던 거잖아. 근데 그게 나을 수가 있나?”
서경우가 조찬혁의 이름을 언급하자, 그냥 ‘뭔소리 하나’ 듣고 있던 멤버들의 반응도 좀 더 솔깃해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어쨌거나, 서경우가 따로 걱정을 했을 정도로 멤버들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사실이었다. 솜씨가 뛰어난 안마샵이 있다면야, 그것만큼 반가운 소식이 없다.
“경우야, 내가 찬혁 씨한테 한 번 물어본다? 나 얼마 전에도 찬혁 씨랑 카톡한 사이거든?”
“아유, 물어봐요, 물어봐. 형도 참, 내가 뭐 얻어갈 게 있다고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요?”
“···진짜인가 본데?”
카톡을 키는 시늉을 하던 이한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마트폰을 다시 내려놓았다. 아직 믿겨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솜씨가 뛰어난 안마샵이 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인 모양이었다.
“야, 경우야.”
“아이, 그렇게 믿기 싫으면 말아요. 나나 한 번 더 갖다오게. 예약도 안 밀리고 좋네.”
“아니, 그게 아니라.”
옆에서 비교적 조용히 듣고 있던 손재형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이번에도 사실여부를 캐묻는 건가 싶어 질색하며 손을 흔든 서경우였지만, 손재형은 그저 천천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 안먀삽 위치랑 번호가 어떻게 되는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사실여부는 직접 가봐야 알 수 있다.
서경우의 말이 허풍인지 아닌지를 가리고 있던 다른 멤버들과 달리, 처음부터 ‘한 번 가봐야겠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손재형이다.
“계속 듣고 있는데 다들 뭐라하기만 하고, 그러니까 정작 필요한 내용이 안 나오잖아. 일단은 거기 번호가 어떻게 되는지 좀 알려줘.
“아, 잠시만요.”
서경우는 그제야 명함지갑을 꺼내 안쪽을 뒤적였다. 그러고는 곧이어, 천마안마라 적혀있는 명함 한 장을 꺼내 손재형에게 건넸다.
“뭐야. 이러면 네가 명함이 없어지는 거 아냐?”
“괜찮아요. 애초에 여기 멤버들이랑 다른 지인들한테도 주려고 여러 장을 챙겨왔거든요.”
그러면서 아예 명함 예닐곱 장을 꺼내들었다.
“···그럼 나도 한 장 챙겨볼까.”
“나도, 요즘 허리가 좀 안 좋아서.”
“고맙다 경우야.”
방금 전까지 거짓말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막상 명함을 꺼내드니 한 장씩 가져가는 멤버들. 그 모습에 서경우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다들 예약하려면 빨리 하세요. 보니까 예약이 많이 빡세더라고요. 특히 직장인들 퇴근시간이나 주말이면··· 거의 3주 뒤에도 예약을 잡기 힘든 정도?”
“···그 정도라고?”
“어, 위치도 방송국 근처네?”
명함에 나와 있는 주소는 영등포구 당산동.
여의도에 있는 방송국에서 나오면, 차로 가는 것은 물론이고 걸어서도 얼마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있는 동네다.
‘충분히 가볼만 한데?’
어디 경기권이나 외지에 있다면 고민을 좀 했겠지만, 이 정도면 그냥 방송 끝나고 들르면 되는, 뭣하면 걸어서 가도 되는 수준이다.
“···야, 인기 있긴 한가봐. 이 시간에도 통화중이네.”
“예. 평일에도 상관없습니다. 네. 그럼 비어있는 날 중에 가까운 순으로 좀 말해주시겠어요?”
전화를 걸어봤다가 통화중이라는 말에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손재형. 헌데 바로 그 순간, 옆에 앉아 있던 이창호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는 관심 없는 것처럼 하더니, 새치기야?”
“에이. 새치기가 아니죠, 형.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을 하시네. ···아, 네. 그럼 목요일 오전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네.”
그 순간을 기점으로 자리에 있던 모두가 스마트폰을 꺼내들더니, 한동안 테이블 위의 술잔이 비는 일 없이, 가게예약 때문에 멤버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 벌어졌다.
* * *
강태한의 천마안마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예상 이상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동안, 라이너 빌딩 자체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고 할까.
원래 입점하기로 되어있던 가게들이 하나둘씩 개업 준비를 마치고 문을 열기 시작했고, 공실로 남아있던 곳들도 가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여기 상권이 괜찮긴 한가보네요. 아직 활성화도 안 되어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다니고.”
“그럼, 계약은 이대로 진행할까요?”
“네. 아까 거기에다가 사인하면 되죠?”
공실을 채운 새로운 가게들의 입점 결정에는, 알게 모르게 천마안마의 영향이 조금씩 들어가 있었다.
아직 거의 대부분의 가게들이 개업을 하지 않았을 때도 천마안마에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손님들이 방문했고, 결론적으로 빌딩 자체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락거린 셈이다.
말하자면 꾸준히 유동인구를 만들어내는 셈.
예비점주들이 가게 자리를 보러 왔을 때, 빌딩 내 상권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은 꽤 인상적인 모습으로 작용되었다.
다만 지금 이곳에서 가장 바쁘게 일이 돌아가고 있는 곳은, 다름이 아니라 빌딩의 5층부터 19층까지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라이너 호텔이었다.
“8층부터 19층까지, 객실 가구들 제대로 다 들어가 있나 한 번씩 더 체크해봐. 나중에 클레임 들어오면 일 나는 줄 알고들 있고.”
“박 팀장님! 1018호에 설비팀 한 명 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에어컨 상태가 영 이상하다는데요!”
개업까지 며칠 남겨두지 않은 막바지에서, 사실상의 최종점검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 덕분에 지원팀에서부터 객실팀, 식음팀, 시설팀, 홍보팀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영역에서 다들 바삐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한편.
그 모두를 통솔하는 역할의 총지배인, 곽상영은···
“···미쳤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일어나,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터무니없는 무언가라도 발견한 듯한, 놀라다 못해 살짝 벙 쪄버린 표정이었다.
“이건 미친 수준이야.”
그가 앉아있는 곳은 천마안마 5번방의 침대 위.
안마를 받고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었다가 방금 눈을 뜬 그는, 스트레칭을 하며 연신 감탄을 터트리다, 벽에 걸린 디지털시계를 다시 한 번 쳐다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이건··· 기대 이상이야.’
원래도 호평을 할 때 쓰는 말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는 훨씬 더 높은 평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갖고 있던 기대가 안 그래도 높은 상태였기 때문.
아직 상권이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 상황에서, 단골들만으로 예약이 밀릴 정도였으니··· 분명 다른 안마원에서는 받기 힘든, 그런 하이레벨 수준의 안마 솜씨를 갖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왔다.
헌데 이곳의 사장, 강태한의 솜씨는 그런 수준을 넘어서있었다. 평범한 수준의 안마가 회전목마라면··· 이건 롤러코스터라고 할까.
다른 곳에서 느끼기 힘든 수준이 아니라 이곳에서밖에 느낄 수 없는, 그야말로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있는 독보적인 레벨이었던 것이다.
“아··· 결국 사장님한테 말도 못 꺼냈네.”
자신은 이 아래 호텔의 총지배인이며, 선생님의 안마샵과 함께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 일단은 그런 뉘앙스로 가벼운 인사라도 해두고, 좀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는데···
“중간부터 머릿속이 새하얘져가지고.”
원래 안마를 받다보면, 안마사와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기 마련이다. 마치 미용실에서 미용사와 잡담을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식으로 안마를 받다가 자연스럽게 타이밍을 봐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는데, 이게 웬걸. 상상 이상의 고통과 머릿속이 새하얘질 정도의 시원함에,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 채로 30분을 보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한 시간이 지나있는 상황.
게다가 몸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가볍고 상쾌했다. 자동세차장에서 막 빠져나온 기분이라고 할까, 방금 A/S를 마치고 나온 느낌이라고 할까···
자고 있는 사이 호빵맨에 나오는 제빵사 아저씨가 나타나 몸통을 새로 끼워줬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깨어나셨어요?”
그렇게 잠시 멍을 좀 때리고 있었을까.
가게의 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조명등을 켰다.
초롱불처럼 네모난 곽 안에서 은은하게 주황빛을 뿜어내는 조명등.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인테리어에 한층 멋과 분위기를 더해주는 게, 주변과 잘 어울리는 훌륭한 조명등이었다.
“좀 쉬시면서 차 한 잔 드시고, 천천히 나오세요.”
그 말을 남기고 직원은 공손히 목 인사를 건넨 다음, 다시 밖으로 나가며 방문을 닫았다.
곽상영은 잠시 주변 인테리어를 둘러보다 직원이 두고 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푹 자고 일어나 개운해진 몸에 스며드는 따뜻한 차 한 모금. 몸이 느슨하게 풀어지며,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좋구만.”
요 며칠, 호텔 오픈과 관련해서 바쁜 나날이 계속 이어져왔었다. 지금이야 팀장급에서 처리할 일들만 남아있어, 안마샵에 들를 여유마저 생겼지만···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업무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예상치 못한 완벽한 휴식.
원래 오픈직전 주어지는 휴가에서 죽은 듯이 잠만 잘 생각이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낄 정도로 피로가 싸악 씻겨 내려간 기분이었다.
‘손님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을 해보면···’
이 근방으로 출장을 나왔다가 피곤한 몸을 끌고 호텔로 들어온 회사원 A씨. 일단 체크인을 하고 호텔이나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가, 호텔 내 이용고객 할인을 보고 22층의 사우나에 들른다.
한강과 서울 야경이 보이는 사우나에서 개운하게 몸을 씻어내고 나온 뒤.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피곤함은 남아있는 상태다. 뭔가 아쉬움이 남아 그 상태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와중··· 직원에게 추천을 받고 이곳으로 찾아와 안마를 받게 된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겪은 것과 동일한 경험을 겪게 된다면. 온몸의 피로는 싹 씻겨 내려가고, 거짓말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면.
‘정말 훌륭한 하루의 마무리구만···’
출장을 나온 회사원뿐만 아니라 휴가를 맞아 호캉스로 찾아온 손님도, 관광을 목적으로 서울에 찾아온 외국인들에게도, 아주 매력적인 마무리가 될 것이다.
‘···좋아.’
잠시 생각에 잠긴 채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본 곽상영은, 뭔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다가··· 뒤늦게 뭔가를 떠올리고 다시 뒤를 돌아봤다.
“···그래도 차는 다 마시고 갈까.”
생각보다 맛이 좋았던 차.
딱히 서두를 필요는 없기도 했고, 남기고 가기엔 아깝기도 했기에 곽상영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테이블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