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 안마하신다-81화 (81/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81화 >

“어흐, 잘 먹었다.”

“여기 안주가 참 괜찮다니까.”

술자리는 딱 기분이 좋을 때에 끝이 났다.

과음하는 사람도 없고 무턱대고 권하는 사람도 없으니, 각자 자기 주량에 맞게 마시고 마무리된 것.

“선생님은 입에 좀 맞으셨습니까?”

그래도 살짝 아쉬움이 남아 근처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씩만 더하기로 하고 걸어가던 중, 뒤쪽에서 걷고 있던 이광호가 강태한에게 넌지시 물었다.

“예.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특히 중간에 나왔던 튀김들이 술이랑 잘 어울리더라고요.”

중간에 나왔던 튀김, 그 중에서도 굴튀김은 바삭하면서도 안쪽에 촉촉한 풍미는 고스란히 살려놓은 것이, 그야말로 술을 부르는 맛이었다.

강태한의 솔직한 감상에 이광호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계속 즐거운 분위기라 따로 말씀을 못 드렸는데··· 저희 모두 선생님에게는 정말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요 근래 한하 호크스의 팀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고조였다. 비록 가을 야구는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지만, 팬들이 즐거워하고 응원해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몸이 좋아지니 성과가 나오고, 성과가 나오니 의욕과 열정도 더욱 불타오르고···

덕분인지 선수들의 훈련참가율은 물론이요, 평소 일상생활에서 보여주는 행동들도 비교적 건실해져 있었다. 오늘 술을 절제하는 모습도 그런 부분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었다.

“특히 저랑 기호는 은퇴까지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선생님 덕분에 거의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지 뭡니까.”

이광호가 소탈한 웃음을 터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낯이 간지러운 말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꼭 따로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

“전부 강 선생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광호는 잠시 자리에 멈추고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딱 절도가 느껴지는 감사인사. 그 말에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에 제가 가게를 열었습니다. 서울에 영등포구 쪽에요.”

“예? 아, 네. 들었습니다.”

조금 삼천포로 빠지는 듯한 이야기였지만, 이광호는 강태한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에 오실 일이 있으면, 8시 이후에 한 번 들러주세요. 그때는 예약도 없는 시간이니, 한하 선수 분들은 한 번씩 따로 봐드리겠습니다.”

시즌이 끝났으니 한동안 야구장으로 출장을 나가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선수들이 가게로 찾아오는 것은 별개의 일이지 않겠는가.

그런 강태한의 말에 이광호는 순간 멈칫했다가 얼굴 전체로 화색을 지었다. 딱 한 번씩이긴 해도, 예약과 별개로 안마를 봐주겠다는 뜻이지 않은가.

“정말이십니까?”

“그럼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아, 물론 무료는 아니고요.”

“그야 당연하죠! 하하, 다른 애들한테도 다 전달해두겠습니다, 선생님.”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곧장 카톡을 보내는 이광호.

한편, 앞서 걸어가고 있던 다른 선수들은 어딘가를 가리키더니, 갑자기 자리에 멈춰서고 뭐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뭐냐, 왜 여기 멈춰 서있어?”

“아, 광호 형. 다른 게 아니고요.”

최태준이 골목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형들이 타자끼리 2차 쏘는 걸로 배팅장에서 한 게임만 치자고 해서요.”

그가 가리킨 곳에는 밤에도 환한 조명이 켜져 있는, 초록색 철망으로 감싸여있는 코인배팅장이 있었다.

* * *

동전을 넣으면 배팅머신에서 공이 나오는 시스템.

“지금 여기서 배팅을 하고 가자고?”

“한 게임만요. 술 깨기 딱 좋잖아요?”

“태준이는 투수니까 깍두기로 빼고···”

김태평이 최태준을 가리키며 말했다가, 강태한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흐렸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실래요?”

“야, 선생님도 당연히 빼야지!”

“아뇨, 재밌을 것 같네요.”

옆에 있던 안기호가 끼어들며 손을 젓는 찰나, 강태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의 입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아무래도 구경만 하는 것보단 같이 끼어서하는 게 더 재밌으니까요.”

“오오, 강 선생님이 즐기실 줄 아시네!”

“확실히 그렇긴 하죠.”

예상외의 대답이었지만, 그렇기에 흥이 오른다. 강태한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선수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럼 저도 간만에 공 좀 쳐보죠.”

“태준이 너도?”

“선생님도 하시는데, 투수라고 빠질 수 있나요.”

“좋다, 좋아!”

그렇게 여섯 명 모두 들어간 배팅센터.

안쪽으로 들어오니 생각보다 널찍한 공간이 나왔고, 앞에는 그물망이, 그 그물망 사이에는 배팅머신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자, 밑으로 들어가면 땅볼, 옆으로 날아가면 파울, 앞에 망에 걸려야 안타입니다.”

배팅센터에 가자고 먼저 말을 꺼낸 김태평이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간단하게 규칙을 설명했다. 그러고는 동전을 넣고, 시범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방망이를 들고 배팅머신 앞에 섰다.

“먼저 하시게요?”

“이런 건 하자고 한 사람이 먼저 쳐야지.”

그 순간, 퉁!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이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김태평의 눈에 힘이 들어가더니, 팡! 소리와 함께 공이 옆으로 날아갔다.

“상급자용이긴 해도 생각보다 공이 좀 빠르네?”

“그러게요. 코인배팅장에서 쏘는 공 치고는 너무 빠른 거 아닌가.”

그걸 본 다른 선수들이 한 마디씩 던졌다. 물론 훈련장의 배팅머신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반인에게는 충분히 빠른 구속이었다.

“저번에 왔는데 여기가 치는 맛이 좀 있더라고요.”

김태평은 느슨하면서도 요령이 느껴지는 자세로 날아오는 공을 연달아 때려 맞췄다. 날아온 공은 총 12구. 김태평은 그 중에 11개의 안타를 쳤다.

“아, 처음 공을 파울로 날린 게 좀 컸다.”

“잘 쳤네, 뭐.”

자리로 돌아오며 아쉬움을 표출하는 김태평.

그 다음으로 타석에 선 건 다름 아닌 강태한이었다. 김태평이 공을 치는 동안 순번을 정할 때, 자진해서 먼저 쳐보고 싶다고 말을 했던 것이다.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단 말이지.’

그렇다고 굳이 이런 곳에 찾아와 공을 쳐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회가 닿아 배팅장까지 오게 되니 더욱 호기심이 깊어졌다.

강태한은 손에 쥐어진 야구방망이의 무게감과 균형을 느끼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런 느낌이었지.’

참고하는 것은 앞서 배팅을 했던 김태평의 자세.

중심은 축이 되는 뒷다리에 몰아세우고, 무릎은 살짝 느슨하게 풀어준다. 그 상태로 잠시 기다렸다가 공이 오는 순간.

팡!

허리를 돌리는 동시에 팔을 휘두르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깔끔한 곡선을 그리며 공이 날아갔다.

전문가가 봐도 딱히 흠잡을 곳이 없는 자세와 스윙.

방금 스윙이 우연히 나온 게 아니라고 말하려는 듯, 강태한은 이어지는 공들도 연달아 깔끔한 스윙으로 시원하게 쳐내고 있었다.

“···뭐지.”

그걸 지켜보는 다른 선수들 사이에서는 다소 놀란 기색이 흘렀다. 강태한의 모습에서 초심자의 느낌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방금 스윙, 완전 태평이 형 느낌이었는데?”

“설마 예전에 야구를 좀 배우셨던 건가?”

“에이. 만약 야구를 배웠다고 해도 어떻게 딱 저 느낌이 나와. 누가 저렇게 가르쳐준다고.”

세밀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큰 틀에서는 김태평의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한하의 선수라면 모두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태평이형 자세를 시범삼아 따라해 본 건가?”

“에이, 그게 저렇게까지 폼이 나온다고?”

“말이 안 되는 것 같긴 한데···”

하지만 그나마 그게 가장 가능성 있어 보이는 생각이었다. 방금 앞서 나왔던 김태평의 자세를, 그 잠깐 사이에 터득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는 것이 말이다.

“이거 꽤 재밌네요.”

그러는 사이 차례를 마친 강태한이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왔다. 힘을 좀 빼긴 했어도 이렇게 뭔가를 쳐 날린 것은 꽤 오랜만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상쾌한 기분이었다.

“허허···”

“···생각보다 잘 치시네요, 선생님.”

선수들은 아직 놀란 기색이 남아있는 표정으로 강태한에게 짧은 박수를 보냈다.

공이 날아오는 족족 시원하게 안타를 날린 강태한.

야구를 해본 적 없는 사람이 공을 전부 맞춘 것도 신기한 일이었지만, 그 안정적인 자세와 스윙은 더욱 믿기 힘든 것이었다.

“거짓말 안 보태고, 다음 신인 드래프트에 한 번 나오셔도 되겠는데요.”

강태한의 실력은 어지간한 현역 아마추어 선수들보다 훨씬 뛰어나고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이광호는 망설임 없이 단언할 수 있었다.

* * *

“한건이 형! 오셨어요?”

“어 경우야. 먼저 와있었구나.”

마포구에 위치해있는 한 한우전문 정육식당.

이한건이 방 번호를 확인하고 문을 열자, 이미 자리에 앉아있던 서경우가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했다.

“요즘 여기서 자주 모이는 것 같네.”

“아무래도 룸이 편하니까요. 여기만큼 고기 괜찮고 공간분리까지 확실한 곳이 없잖아요.”

서경우의 말에 이한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은 매번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이한건은 예능계를 대표하는 연예인 중의 한 명이다.

사람 많은 가게에서 자칫 이름이라도 한 번 크게 불렸다가는, 맥주 한 잔은커녕 정신없는 시간만 보내다 도망치듯 빠져나오게 될 것이 뻔했다.

“뭐야, 블미션 실세 둘이 먼저 와있었네?”

“실세는 무슨. 일단 앉아라, 대훈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차가 좀 막혀서.”

“뭐야, 왜 또 다들 이렇게 일찍 왔어?”

그 뒤로 시간이 좀 흐르자, 모이기로 한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장수 예능프로그램 블라인드 미션의 주요 출연진 다섯 명과 서경우 PD. 이렇게 모이는 자리가 꽤 잦았는지, 딱히 격식 같은 건 없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여기는 PD님이 사시는 거죠?”

“뭐? 소고기는 나눠서 내야지, 뭔 소리야.”

“야. 경우가 소고기 사준다고 하면 걱정부터 해야 돼. 어디 오지 같은 데로 간다는 뜻이니까. 그런 말은 하지도 마라.”

“그냥 오지로 데려가는 것보단 소고기라도 먹고 가는 게 낫지 않나 싶은데요.”

“하긴, 이번 촬영도 겁나 힘들었잖아. 무슨 산을 오르라고 하냐. 디스크 한 번 더 나가는 줄 알았다.”

“그거 원래 기획은 정상까지 가는 거였는데, 제가 형들 생각해서 중턱으로 바꾼 거예요.”

“···정상까지 가자고 한 작가 누구야? 이름 좀 말해줘 봐.”

술잔과 함께 자연스레 오가는 농담과 지난 촬영에서 있었던 자잘한 에피소드들.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와 함께, 천천히 시간이 흘러갔다.

“아, 근데 이젠 진짜 몸이 안 좋은 게 느껴져.”

그러던 와중, 이야기의 화제는 자연스레 건강 쪽으로 옮겨졌다. 올해로 마흔을 넘어선 손재형이 허리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얼마 전에 디스크 판정이 나오고 주의를 받았던 부분이었다.

“요샌 추격미션 같은 거 한 번 하면 진짜 몸이 퍼지는 게 느껴진다니까. 나 이번 촬영 때는 집에서 기절하듯이 쓰러졌어.”

“하긴, 퍼질 만도 했지. 산에서 오르막길이랑 내리막길을 그렇게 뛰어다녔으니.”

“내가 맨날 운동 다니는 게 뭐 어디 가서 뽐내려고 하는 게 아니야. 살아남으려고 하는 거라니까? 블미션 종영하기 전에 내가 먼저 죽겠어.”

저마다 우스갯소리처럼 한 마디씩 던지는 말. 허나 그게 마냥 웃고 넘어갈 이야기는 아니라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경우 너는 왜 갑자기 그렇게 컨디션이 좋아졌냐?”

그러던 와중, 이한건이 서경우를 가리키며 물었다.

얼마 전 같이 촬영 나갔을 때만 해도 불면증이 다시 도졌다면서 죽상이었는데, 지금은 근심 같은 것도 없어 보이는 상쾌한 얼굴이었다.

“얼굴은 반들반들하고, 주름도 좀 펴진 것 같고. 어디서 얼굴에 주사라도 맞고 온 거야?”

“아니, PD가 얼굴에 주사를 왜 맞아요?”

서경우가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저었다.

“안 그래도 형들한테 말해주려 했는데, 이거 안마 받고 이렇게 된 거에요.”

“···안마? 그게 그 정도로 효과가 나올 수 있나?”

서경우의 말에 이한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라고 안마를 받아본 적이 왜 없겠는가. 안 그래도 정말 피곤한 날이면 꼭 단골 안마원에 들러 한 시간 동안 안마를 받고 집으로 가는 이한건이다.

다만 그렇기에 더욱 의아했다. 그가 알고 있는 안마에는, 죽어가던 사람이 저렇게 화색이 될 정도로 스펙타클한 효과는 없었으니까.

“일단 한 번 받아보면 알아요. 저도 처음에는 ‘에이, 설마.’ 했었는데, 받고 나오니까 ‘캬, 이게 진짜네!’ 했다니까요.”

강태한의 방송섭외는 일단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것과 처음 생각했던, ‘방송지인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라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서경우는 기가 막힌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안마샵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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