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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80화 (80/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80화 >

칡은 구황작물마냥 그냥 먹을 수도 있고, 옛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갈근(葛根)이라는 이름의 약재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숙취해소와 피로회복, 해열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유용한 식물이다.

다만 그렇다고 마냥 좋은 면만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워낙 생명력이 질긴 탓에 잘 죽지도 않고, 주변 일대의 양분을 거의 독식하듯이 빨아먹는 탓에 인근에선 다른 식물들이 좀처럼 자라질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장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기에 군집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

때문에 가만히 내버려두면 순식간에 불어나 주변 토양을 황폐화시키기에 유해식물로도 지정이 되어있는, 그런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식물이다.

‘저쯤이로군.’

그렇기에 칡이 군생을 이루고 있는 곳은 생각보다도 꽤 티가 난다.

주변 인근에 유독 다른 식물들이 잘 안 보인다든가, 멀리서 봤을 때 얼핏 수풀이 무성해보이지만 인근 나무들은 영 기운이 없어 보인다든가.

특히 기감을 펼칠 줄만 안다면야 방법은 훨씬 더 쉬워진다. 인근 토양의 기운이 상대적으로 미약한데, 땅속에서 굵직한 생기가 느껴진다? 십중팔구로 칡뿌리들이 잔뜩 모여 있는 군생지다.

‘여기는 영기가 워낙 강한 탓에 칡도 그렇게 마음대로 뻗어나가지는 못하지만 말이지.’

그 말인즉슨, 영역을 넓히는 대신 그만큼의 양분을 뿌리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강태한은 주변을 둘러보며 가볍게 기감을 펼쳤다. 주변 일대에 무성하게 자라있는 칡덩굴들. 그리고 발밑에서는 영기를 잔뜩 머금고 있는 굵직한 뿌리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일단··· 이 녀석부터 꺼내볼까.”

중심에 위치해있는 가장 줄기가 굵은 녀석.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줄기가 실한 녀석이 아래쪽도 실한 법이다. 강태한은 적당한 부분을 붙잡고 땅을 고르듯 두어 차례 발을 굴렀다.

칡의 뿌리는 땅 속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간다. 그걸 캐내기 위해선 당연히 그만큼의 땅을 파내야하며, 이는 꽤 힘든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땅을 파기 위한 삽, 막힌 곳을 뚫을 곡괭이, 칡을 잘라낼 톱과 낫··· 장비도 많이 필요하고, 이 모든 걸 갖춰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다만 적어도 지금,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을 때의 강태한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흠. 이쯤인가.”

땅의 기운과 지맥의 상태를 살펴보고, 그 구심점에 해당되는 곳에 발을 올린다. 그리고 강태한은 살짝 발을 들어 올린 다음, 발뒤꿈치에 힘을 싣고 땅을 굴렀다.

구우웅!

땅을 타고 퍼져나가는 묵직한 울림.

대지의 표면은 마치 빳빳하게 당겨놓은 북이라도 된 것처럼 진동하고, 안쪽에서 단단하게 뭉쳐있던 흙들은 부산스레 흔들리며 알갱이로 흩어졌다.

마치 강태한의 발 구름을 따라 인근의 땅이 공명(共鳴)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

그리고 그 순간, 강태한은 칡의 가장 아랫부분 줄기를 붙잡고 망설임 없이 잡아당겼다. 그러자, 어지간한 사람보다 커 보이는 수준의 칡뿌리가 흙 알갱이를 흩날리며 쑥 하고 뽑혀 나왔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크네.”

마치 동네에서 무라도 뽑아낸 듯한 담담한 표정.

허나 그의 손에 쥐어진 칡은 얼핏 흉악해보일 정도로 큼직한 물건이었다. 한 번에 뽑히지 않아 아직도 뿌리 중 일부가 땅에 박혀있었으니 말이다.

칡의 상태를 대충 훑어보던 강태한은 손을 어깨높이로 올렸다. 그러자 이윽고 손날부분에 푸른빛의 기운이 희미하게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손을 휘두르기 시작하니, 필요 없는 줄기 부분은 저 멀리 떨어져나가고 뽑혀 나와 있던 뿌리부분은 일정한 길이로 잘리며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마치 공장에서 가공이라도 한 것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길이. 그렇게 손질되어 바닥에 떨어진 칡들은, 잠시 후 하나둘씩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더니, 저절로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가기 시작했다.

“첫 수확이 괜찮네.”

아직 땅에 박혀있던 부분을 마저 뽑아내며 강태한이 중얼거렸다. 이미 손질해서 쌓여진 것들만 해도 배낭 하나 정도는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평소라면 더 이상 칡은 캐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한 양. 하지만 오늘은 아예 칡을 캐가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배낭을 미리 한 세 개 정도 가져올 걸 그랬나.”

강태한은 쌓여있는 칡들을 배낭에 옮겨 담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올라와 두 번째로 칡을 캐고 돌아가는 강태한의 등 뒤에는, 터질 것처럼 빵빵하게 채워진 네 개의 배낭이 한꺼번에 메어져 있었다.

* * *

이제 막 해가 기울어져가는 저녁.

강태한은 모닥불 앞에 앉아,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상태로 얕은 호흡만을 천천히 반복하고 있었다.

내공의 정련(精鍊)을 위하여 운기조식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

앞에 피워놓은 모닥불의 불길이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이미 이 상태로 꽤 시간이 지나간 모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흐르자, 닫혀있던 강태한의 눈이 서서히 뜨이며 호흡 또한 깊어지기 시작했다.

“후우우우···”

몸 안쪽에서부터 끌어올리는 듯한 깊은 날숨.

그는 대여섯 번 심호흡을 반복하더니, 해가 진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옆에 쌓아둔 장작더미에서 큼직한 장작 하나를 모닥불에 던져넣었다.

“이제 내공도 나름 궤도에 올라섰군···”

무림에서 현대로 돌아온 이후, 강태한의 내공은 조금씩이나마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첫 날부터 손님의 탁해진 생기를 흡성대법으로 가져오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영약을 확보한 뒤부터는 거의 매일 같이 영약을 섭식하고 내공을 갈무리해왔으니까.

덕분에 지금은 단전에 얼추 그럴듯한 수준의 내공이 모여 있었다. 물론 무림시절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처음 생각해뒀던 것보다 몇 배, 아니 열 배 정도는 빠른 성장속도라 할 수 있었다.

‘내공을 운용하는 것도 많이 편해졌고.’

단전에 쌓인 내공은 물과도 같아, 내공이 쌓이고 깊이가 깊어질수록 탁기에 물드는 일이 적어진다.

조그마한 웅덩이는 한 줌의 흙만으로도 흙탕물이 되어버리지만, 호수에 던져진 한 줌의 흙은 그저 바닥에 가라앉을 뿐인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평소에 내공을 관리하는 것도, 오늘처럼 본격적인 정련과정에 들어가는 것도 심력의 소모가 그리 크지 않게 되었다. 이미 내공의 순도가 충분히 높은 상태이니 말이다.

“···오늘은 하늘이 아주 맑군.”

그렇게 좀 있었을까.

멍하니 타오르는 불을 쳐다보고 있던 강태한은, 문득 하늘을 쳐다보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항상 빛이 뿜어져 나오는 도시와 달리, 지금 이곳에 있는 불빛은 작은 모닥불 하나.

게다가 어두운 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탁 트여있어, 총총히 박힌 채 빛을 발하는 별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장관을 자아내고 있었다.

강태한은 보온병을 꺼내 안에 담긴 커피 한 잔을 컵에 따르고,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외투 너머로 불어오는 쌀쌀한 밤바람.

앞에는 은은한 불빛과 온기를 뿜어내는 모닥불.

그리고 하늘 위에는 끝없이 펼쳐진 별빛의 바다.

여기서 마시는 커피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강태한은 컵에 담긴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시간이 흐른 만큼 조금 식기는 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다음 주에도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네.’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인 탓일까.

가만히 앉아있던 그는 문득 유세아를 떠올렸다.

가평으로가서 함께 캠핑을 했었던 날.

그때도 이런 풍경을 보여주며 캠핑의 묘미를 알려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비가 오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텐트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기는 했고, 그녀도 만족한 것처럼 보여서 다행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것.

“이걸 같이 봤다면 참 좋아했을 텐데 말이지.”

그랬다면 그녀는 어떤 표정으로 웃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강태한은 컵에 따른 커피를 천천히 비워냈다.

* * *

다음 날, 목요일 저녁.

“엇! 선생님, 어서 오십쇼!”

강태한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한 남자가 먼저 인사를 건넸고, 그와 동시에 자리에 있던 다른 네 명의 남자들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셨습니까, 선생님.”

“이거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한 마디씩 인사를 하는 남자들. 그들은 다름이 아니라 최태준, 이광호, 김태평을 비롯한 한하 호크스의 선수들이었다.

모두가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고 톡톡한 효과를 본 선수들. 그래서 그런지, 강태한을 맞이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가식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편하게 계시지, 왜 일어나세요.”

“아유, 저희가 어떻게 그럽니까. 어렵게 오셨는데.”

강태한의 말에 처음 인사를 건넸던 김태평이 고개와 손을 동시에 저으며 말했다.

“어디보자··· 여기! 상석에 앉으시죠.”

“야, 태평아! 거기가 어떻게 상석이냐? 입구가 보이는 쪽이 상석이지. 선생님, 이쪽에 앉으시죠.”

김태평이 상석 반대편 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이광호가 가볍게 꾸짖으며 진짜 상석 쪽을 가리켰다.

“그냥 여기 앉겠습니다. 여기가 편해 보이네요.”

강태한은 싱긋 웃으며 최태준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자리에서 상석이라니, 그런 눈에 띄는 자리를 자처할 생각은 딱히 없었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오늘 이 자리는 안마를 위해 모인 자리가 아니었다. 애초에 평소와 달리 지금 그들이 모여 있는 곳도 야구장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오늘 자리는 선수들끼리 가볍게 가지는 술자리.

시즌도 다 끝났겠다, 구단 차원에서의 성대한 회식이나 모임은 진즉에 끝이 났고, 그런 와중에 ‘강 선생님과 꼭 술 한 잔 하고 싶다!’라는 이광호의 말에 몇몇 선수들이 동조하며 만들어진 자리였다.

“자, 그럼··· 일단 한 잔 받으시죠, 선생님.”

보아하니 강태한이 오기 전까지 아직 술병도 따지 않은 모양이었다. 강태한이 잔을 들어 올리자, 이광호가 두 손으로 술을 따랐다.

“자, 그럼 먼 길 와주신 강 선생님을 위해, 건배!”

“건배!”

큰 형뻘 되는 이광호가 선창하자 다른 선수들도 잔을 올리며 흥겨운 목소리로 따라 외치고는 각자의 잔을 비워냈고, 강태한 또한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는 마찬가지로 잔을 비웠다.

“갑자기 연락해서 당황하셨을 텐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저도 오고 싶어서 온 건데요, 뭐.”

안주로 새우튀김 하나를 집어먹은 강태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이런 자리를 딱히 꺼려하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한하의 선수들, 그 중에서도 특히 여기 있는 사람들이랑은 그동안 나름 정이 들었던 것이다.

“듣기로 막 개업하신 참이라 바쁘시다 들었는데.”

“어? 진짜로? 이야, 광호 형! 바쁘신 선생님을 대전까지 오라고 한 거예요? 너무하다 진짜.”

“아니야, 임마! 선생님이 안 그래도 대전에 올 일이 있으니까 대전에서 보자고 한 거란 말이야!”

팀의 분위기 자체가 그런 건지, 이 멤버들끼리만 그런지는 몰라도, 막내격인 최태준이 끼어있음에도 술자리는 자연스레 이야기와 농담이 오가는 좋은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이번 시즌은 야구다운 야구 좀 해서 좋았다!”

“막판에 몰아서 한 게 문제지만 말이지.”

“그게 다 선생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한 잔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원래 야구에 관심이 없으셨다고 들었는데, 정말입니까?”

“네. 근데 보다보니 나름 맛이 있더라고요. 응원하는 팀이 이기니까 재밌는 것 같기도 하고.”

“크흐··· 선생님 때문에라도 다음 시즌은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술잔이 오가고,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무르익어가는 분위기. 다만, 술병이 어느 정도 쌓이자 다들 술은 자제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광호 형, 한 잔 더 하실래요?”

“아냐, 난 괜찮아.”

“사이다나 좀 더 시키자. 물도 새로 달라하고.”

누가 먼저 말을 꺼낸 것도 아닌데, 다들 알아서 자중하는 느낌. 사실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은 이후, 단순히 경기 성적만 좋아진 게 아니라 선수들의 생활도 조금씩 바뀌었다.

“건강할 때 관리해놔야지. 안 그렇습니까, 선생님?”

특히 나이를 좀 먹은 베테랑 급의 선수들. 한 번 잃었다가 되찾은 피지컬이다 보니, 아무래도 소중함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원래 선수들 사이에서 술 좋아하는 걸로 유명했던 이광호였지만, 그는 음료 잔에 사이다를 따르며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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