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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78화 (78/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78화 >

강 선생님을 방송에 섭외한다.

그 생각을 떠올린 서경우는, 다시 차 한 모금을 입에 머금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처음 생각은 그저 단순하게, 건강이 안 좋은 방송 쪽 지인들에게 이곳을 소개시켜주면 참 좋을 것 같다고 떠올렸을 뿐이었다.

헌데 그게 방송 쪽으로 생각이 이어지니, PD로서의 상상력과 기획력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템일지도···’

물론 방송인이 아니기에 게스트처럼 출연시키는 건 당연히 무리였지만, 강 선생님을 출연시키고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은 다양했다.

블미션에서 미션의 형식으로 짤막하게 등장을 시킬 수도 있고, 다른 예능에서 조력자 역할로 출연을 시키거나 조언을 해주는 전문가 포지션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그림이 나올 것 같았다.

“미션으로 비명참기 같은 걸해도 좋을 것 같고··· 색다르게 졸음 참기를 할 수도 있겠네.”

서경우는 비교적 좀 더 구체적인 사안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명참기는 다른 방송에서도 종종 나온 적이 있는 흔한 아이템이지만, 졸음 참기 같은 경우는 꽤나 신선한 소재라 할 수 있었다.

안마 받는 동안 졸음 참기. 얼핏 보면 잠드는 쪽이 더 이상한, 너무 쉽다 못해 미션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그런 내용으로 보이지만···

이곳의 강 선생님이 한다는 전제조건 하에는 충분히 방송용 그림이 나올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서경우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체험을 해봤으니까.

서경우는 안마가 끝이 났던 한 시간 전에, ‘어디 가봐야 하는 약속은 없는가.’는 강태한의 질문에 없다고 대답한 기억이 있다.

헌데 그 뒤로는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꿈조차도 꾸지 않고 푹 자고 일어났더니, 거짓말처럼 한 시간이 지나있었을 뿐. 단지 선생님이 뭔가 조치를 했다고 막연하게 추측을 할 뿐이었다.

‘오히려 좀 살살해달라고 부탁을 드려야 할지도.’

그의 머릿속에는 자기가 그랬었던 것처럼, 강태한이 손을 움직이는 순간 출연자가 픽, 하고 잠들어 쓰러져버리는 그림이 떠올랐다.

시청자가 보기에는 짜고 치는 것처럼 보일 광경.

실제 효과가 믿기 힘들 정도로 강한 탓에 약간의 축소가 필요하다고 할까. 대부분의 경우와는 오히려 반대가 되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 방송출연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먼저 물어봐야겠지.”

허나 가장 중요한 건 강태한의 의사다.

아무리 그림이 기가 막히게 나올 것 같아도, 본인이 출연의사가 없다면 그냥 거기서 끝인 이야기니까.

“근데 그건 그렇고···”

흐으음.

슬슬 일어날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서경우는 짧은 침음을 뱉으며 찻잔을 들어올렸다.

“이 차는 더 구할 수 없나?”

처음 마셔보는데 입에 착착 달라붙었던 차.

마시고 있을 때는 ‘생각보다 좋다’ 정도의 인상이었는데, 다 마시고 나니 왠지 ‘한 잔 더 마시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아예 집에서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일단 기성품은 아닐 것 같은 맛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구해가는 수밖에 없으리라. 겸사겸사 이것도 꼭 부탁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경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강 사장님~ 요즘 가게 일은 어떠신지~]

카톡 내용을 슬쩍 확인한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귀여운 이모티콘이 첨부되어있는 메시지. 다름 아닌 유세아가 보낸 카톡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면 마냥 어색한 느낌만 났는데, 유세아는 장난칠 때의 특유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생각나서 그런지 괜스레 웃음이 나오곤 했다.

[평소랑 똑같습니다.]

[그럼 번창하고 있다는 뜻인가?]

[그렇게 되겠네요.]

강태한의 말에 유세아는 이모티콘으로 답했다. 귀엽게 생긴 토끼 캐릭터가 입을 가리며 쿡쿡 웃고 있는 이모티콘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 수요일엔 뭐하세요? 바쁘신가?]

강태한은 지난번 가게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대로 수요일과 목요일 날 쉬기로 했다. 그게 단골들에게 익숙하기도 할 것이고, 무엇보다 본인 또한 그게 편하고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휴일의 일정을 물어보는 유세아.

강태한은 그 질문에 담겨있는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 곧바로 예측할 수 있었다.

‘지난 번 캠핑이 생각보다도 더 마음에 들었나보네.’

그도 그럴 것이, 스크롤을 조금만 위로 올려도 캠핑장 관련 리뷰나 홈페이지 링크가 네다섯 개 정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만큼 캠핑에 관심이 생겼다는 뜻이고, 그렇다는 건 지난번에 다녀왔던 가평에서의 캠핑이 꽤나 만족스러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조금 걱정이 됐었는데 말이지.’

강태한은 지난 날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저녁식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초저녁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텐트에서 비 내리는 숲을 지켜보며 빗소리를 듣는 것은 꽤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녀 또한 비슷한 감상을 품었는지 옆에서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맥박이 약간 불규칙적이어서 부정맥이 걱정되긴 했지만 말이다.

다만 다음날 아침부터 왠지 시선을 피하는 게 느껴졌고, 대답도 평소와 다르게 단답으로만 끝내기에 뭔가 실수라도 했나 싶었었는데···

아무래도 쓸 데 없는 걱정이었던 셈이다.

강태한은 앞서 그녀가 올린 캠핑장 사진들을 훑어보며 싱긋 웃었다. 여긴 근처에 계곡이 있다, 산책로가 이쁘다, 캠프파이어를 한다드라···

다음에 같이 가고 싶다는 말만큼은 쏙 빠져있었지만, 거기에 담겨있는 의미 정도는 강태한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번 휴일의 일정을 물어보는 것 또한 같은 문맥.

허나 적어도 이번 주에는 그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 강태한은 거절의 답장을 보냈다.

‘이번 주에는 산을 한 번 다녀와야지.’

개업 준비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닐 곳이 많았고, 점심부터 저녁까지는 장인코스의 세 명, 최성현과 김성훈, 황태진에게 안마를 가르쳐주기 위해 꾸준히 가게에 나와야했다.

덕분에 생각보다 손님이 많이 왔다는 것만 제외하면 별 문제없이 개업을 하는 데 성공했지만··· 자연스레 대전으로는 좀처럼 내려가지를 못했고, 신준호의 영산에 다녀온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약초도 슬슬 떨어져가고, 일단은 내공도 한 번 다듬어둘 필요는 있으니 말이야.’

영약으로 쓸 약초는 아직 여유가 있지만, 가게에서 차로 내가는 칡청이 거의 떨어져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손님이 많이 온 만큼, 구비해둔 칡청이 소모되는 속도도 생각보다 빨랐던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는 아예 작정하고 칡을 잔뜩 캐서 오려는 강태한이었다. 칡이야 뭐 워낙 생명력이 질기고 자라는 속도도 빠르니, 마음만 먹는다면야 트럭 한 대 채울 분량도 캘 수 있었으니까.

[시간 못 내시면 어쩔 수 없죠!]

유세아의 답장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답장의 내용은 언뜻 별 신경 안 쓰는 것처럼 보였지만, 메시지 옆의 1자가 지워지고 답장이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그녀의 아쉬움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주기위해서라도 강태한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대신 다음 주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같이 가시죠. 물론 세아 씨 일정이 괜찮다면요.]

계속 대화창을 보고 있었는지, 1자는 곧바로 지워졌다. 이번에도 답장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수요일 완전 좋음!!!]

뒤에 달린 느낌표 세 개와 추가로 덧붙여진 이모티콘. 이모티콘 속의 토끼는 커다란 하트를 끌어안은 채 제자리에서 깡총깡총 뛰고 있었다.

방금 전에는 답장까지 걸린 시간이 아쉬움을 대변하고 있었다고 하면, 지금은 그녀의 기쁨을 대변하는 느낌이다.

[다행이네요.]

[캠핑용품 보러 같이 가는 건 어때요? 저 불량 난 텐트 버리고 새로 사러 가야하는데!]

[그럼 다음 주 월요일 날 시간 괜찮으세요?]

[월요일 완전 좋음!!]

‘스케쥴 확인하고 말하는 거 맞겠지?’

글자에도 느껴지는 듯한 하이텐션에 강태한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목요일에 보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강태한은 스마트폰을 다시 보관함에 집어넣었다.

“태한 씨. 여기 있나?”

그때 입구 쪽에서 황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있는데요.”

“잠깐 사무실로 와봐야 할 것 같은데.”

“흐음··· 알겠습니다.”

황 실장의 말에 강태한이 침음을 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인 즉, 강태한에게 용건이 있는 손님이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용건이 있는 손님을 일일이 다 만나면 강태한의 업무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기에, 황 실장의 판단 하에 따로 시간을 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질 때에만 사무실로 안내를 하고 있었다.

“어떤 분이신데요?”

그렇다는 건 황 실장의 생각에 나름 중요한 손님이라는 뜻. 호기심이 생긴 강태한은 휴게실 밖으로 걸어나오며 슬쩍 질문을 던졌다.

“놀라지 마라. 서경우 PD님이야.”

연이어 담당 프로그램들을 성공시키며 요 몇 년 사이에 인지도를 확 끌어올린, QBS의 명실상부한 대표 PD중에 한 명.

담당 프로그램들의 인기가 높고 본인의 프로그램에서 자연스레 얼굴이 노출된 적도 몇 번 있었기에, 방송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였다.

“···그게 누군데요?”

허나 강태한의 반응은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인터넷 뉴스를 자주 보긴 하지만, 아무래도 예능 프로그램 관련 쪽 기사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던 강태한이다.

* * *

“오! 안녕하세요, 선생님.”

강태한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쇼파에 앉아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강태한의 기억에 있는 사람이었다.

‘방금 전에 안마를 받은 손님이시군.’

확실히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어딘가 기사나 방송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만약 야구 감독들처럼 선글라스라도 끼고 왔었더라면 유심히 쳐다보면서 알아보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QBS에서 PD를 하고 있는 서경우라고 합니다.”

“이곳 가게 사장인 강태한입니다.”

둘은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나눈 뒤, 각자 자리에 앉았다. 이런 경험이 많은지, 서경우는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화두를 던졌다.

“혹시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선생님에게 안마를 받았었거든요.”

“기억합니다. 담이 잘 오실 것 같은 분이셨죠.”

체질적으로 평소에도 근육의 긴장도가 높아 뭉쳐있는 곳이 많은 손님이었다. 굳이 기억을 되짚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방금 전 있었던 일이었다.

“이야. 어쩜 그렇게 제 증상들을 딱딱 맞추시는지.”

서경우가 감탄을 터트렸다.

나중에 안마 도중에는 그렇다 쳐도, 처음에 방에 들어오자마자 증세를 알아맞춘 것은 다시 돌이켜 생각해봐도 신기할 정도였다.

“게다가 안마는 또 어찌나 시원하던지··· 처음에는 안목에 놀라고, 그 뒤에는 안마솜씨에 놀라고, 지금은 눈에 띄게 체감되는 효과에 놀라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아부 같은 게 아니었다.

굳이 그런 걸 섞지 않아도 자연스레 극찬이 나올 정도의 경험이었으니까. 서경우의 감탄에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아유, 그냥 도움이 된 정도가 아닙니다. 정말로요.”

여기까지 안마에 대한 감탄을 터트리는 시간이었다.

“···그건 그렇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가 PD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서경우는 중간에 잠시 뜸을 들이고는, 자연스럽게 본론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선생님한테 안마를 받고 일어나보니,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스레 방송에 나갈 법한 그럴듯한 그림들이 몇 가지 떠오르더라고요.”

“그렇습니까?

“예. 그래서 혹시나 여쭤보는 건데···”

그는 살짝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혹시, 방송출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흐음···”

강태한은 아래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질문 자체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만, 답은 아직 결정해두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일단 지금은 거절해두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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