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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77화 (77/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77화 >

‘어찌 보면 그냥 하는 말 같기도 한데···’

서경우는 잠시 그가 말한 내용들을 되짚었다.

일시적이지 않은 피곤, 며칠 째 설치는 잠.

그 내용들은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이야기지만, 사실 달리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현대 직장인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세상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만성적인 피로에 고통 받고 있으며, 그런 사람들은 으레 잠을 설치거나 불면증 증세에 시달리곤 했으니까.

말하자면 상대방이 직장인이라는 것만 추측할 수 있으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들어맞는, 그런 굉장히 포괄적인 예측이라는 것이다.

맞추면 신통방통한 거고, 아니면 말고.

선무당이나 사이비 전도사들이 으레 그렇듯, 일단 툭 던져보는 그런 말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어떻게 맥도 안 짚어보고 사람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근데 왜지.’

머릿속으로는 그런 이성적인 생각을, 다소 실례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생각을 떠올렸음에도, 저 안마사에 대한 불신감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럼 편하게 엎드려보게.”

“···예.”

주변을 압도하는 듯한 저 묵직한 분위기 때문인가.

아니면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윽한 눈빛 때문인가.

그 목소리에 담겨있는 왠지 모를 깊은 신뢰감에, 서경우는 얌전히 그의 지시에 따라 침대 위에 몸을 엎드렸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읏.”

그의 등 위에 강태한의 손이 올라가는 순간, 몸 위에 두툼한 주춧돌이라도 하나 올려놓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힘을 주거나 몸무게를 실은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살짝 올려놓았을 뿐인데도 말이다.

허나 그게 불편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몸의 중심에 묵직한 무게감을 잡아주는 것이, 오히려 안정감이 드는 기분이었다.

여기에 손바닥과 닿아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온몸에 퍼져나가는 따스한 온기.

단순히 겉 표면만 따뜻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온기가 안쪽까지 스며들어 혈관을 타고 온몸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뿐인가. 온몸에 퍼져나간 온기 덕분인지, 온몸이 노곤하게 풀어지고 곳곳의 근육들이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게 말이 되는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로 자기 몸에서 느껴지고 있는 감각인데 어쩌겠는가. 서경우는 복잡한 생각은 던져버리고, 그저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이 편안한 기분을 즐기기로 했다.

‘이미 만족했을지도···’

몸이 스르륵 풀어져서 그런지, 벌써부터 피로가 싹 가시고 솔솔 졸음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삼십 분에 거의 십만 원에 달하는, 까놓고 말해 마사지 중에선 꽤나 비싼 축에 속하는 값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그 값어치는 충분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몸은 완전히 풀어지고, 정신도 살살 몽롱해져있는 상황. 잠에 들기 직전의, 딱 기분이 좋은 그 상태가 한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크게 문제가 있는 부분은 없다만···”

딱 그때쯤, 확인을 마친 강태한이 등에서 손을 떼어냈다. 이 상태로 조금만 더 있었으면 기분 좋게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서경우가 살짝 아쉬움을 느끼고 있던 찰나···

“손을 봐야할 곳들은 제법 많아 보이는군.”

약 5초 남짓한 사이에, 강태한의 손이 허리부터 시작해 목 아래까지 이어지는 주요 혈들을 순식간에 지압해냈고.

“어어어억?!”

꿈나라로 넘어가기 일보직전 상태에 있었던 서경우는, 갑작스레 밀려오는 자극에 저도 모르게 몸을 가볍게 튕기고 말았다.

* * *

‘뭐, 뭐지?’

서경우가 처음 느낀 감각은 저릿함이었다.

가끔 가다 팔꿈치를 잘못 부딪치면 전기가 짜르르, 올라오는 느낌이 들면서 팔이 저려오지 않는가. 마치 그 현상이, 강태한의 손가락이 지압하고 지나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다만 그 저린 느낌은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고.

그 다음으로 이어진 감각은 시원함.

그것도 폭발적인 수준의 시원함이었다.

마치 온몸에 숨구멍이 트이는 느낌이라고 할까. 피부가 숨을 쉰다, 같은 상투적인 표현의 레벨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바람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원함을 넘어 짜릿해질 정도의 그 강렬한 감각에.

“크허어어어어어···”

서경우는 한동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몸을 살짝 비틀고 있다가, 이내 커다란 감탄사와 함께 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 정도면 시원함이 치사량이다!

폭발적인 자극에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던 서경우가, 그나마 감각이 진정되고 처음 떠올린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

‘통로는 얼추 확보가 된 것 같고.’

반면 강태한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불면증은 말 그대로 불면(不眠). 말 그대로 좀처럼 잠에 들지 못하는 질환이다. 자고 싶어도 잘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자체는 지극히 단순한 증상이고, 누구나 살면서 잠을 설친 기억은 몇 번씩 있을 테니 꽤 흔한 증상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게 장기간 이어지고 생활에 지장을 주기 시작하면, 이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잠 고문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니까.

더군다나 불면증을 앓는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도 크고 그 원인조차도 제각각이니, 괴롭기만 할 뿐만 아니라 좀처럼 해결하기 힘든 병이기도 하다.

‘다만 이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지.’

내공을 흘려보내 온몸의 혈도와 근육들의 상태를 가볍게 훑어본 결과, 필요 이상의 힘이 들어가 있거나 지나치게 수축되어 있는 근육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그 말인즉 근육들의 긴장도가 쓸 데 없이 높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도 이 정도라면, 평소에는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할 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해당 지점들마다 주변 근육들이 함께 뭉치고 굳어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 당장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지속된 현상일 것이라고 강태한은 추측했다.

‘이러니 잠을 쉽게 잘 수가 있나.’

잠을 잔다는 건 기본적으로 몸의 긴장을 풀어놓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몸이 긴장하고 있거나 힘이 들어가 있으면 잠에 들기 어려운 것이 당연한 일.

설령 그 상태로 잠에 들더라도 근육이 제대로 쉬지를 못하니 수면의 효율과 만족도가 떨어지고, 근육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평소에 담도 자주 오는 편이지 않은가?”

“후우우··· 예? 마, 맞습니다.”

쪽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어깨나 목에 담이 들어있더라.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일이지만, 서경우에게는 특히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던 서경우는, 깊은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도 강태한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알고 물어보셨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말이야.”

“혹시 그만큼 몸 상태가 안 좋다는 뜻입니··· 으극!”

강태한의 대답은 말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근육들이 뭉쳐있는 곳을 지압으로 눌러 풀어헤치고, 내공으로 내부의 혈도를 자극하여 혈류의 순환을 끌어올린 다음, 고여 있던 탁기를 아까 뚫어뒀던 숨구멍으로 흘려보냈다.

다만 근육들이 뭉쳐있는 상태는 그리 심하지 않다.

정말 심하면 예전 오재윤 감독의 허리근육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는 수준까지도 가지만, 아직 그 정도 수준까지 간 곳은 없었다.

단지 몸 곳곳, 주요 부위들마다 뭉쳐있거나 혈도가 꼬여있는 곳이 서너 군데 씩 있다는 게 문제일 뿐.

말하자면 질보다 양인 셈이다.

“으흐극, 선생님, 자, 잠시만··· 큭, 쉬면···”

“그리 아프진 않을 텐데, 조금만 참아보게.”

강태한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근육들의 상태가 그리 심각하진 않았으므로 안마의 강도도 그리 센 편은 아니었고, 따라서 고통도 비교적 양호한 편일 터였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술자의 입장에서 한 생각이지, 피시술자인 서경우의 입장에선 조금 달랐다.

“아픈데요오오옷!”

고통이라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

설령 다른 손님들이 이보다 몇 배는 강한 고통을 견딘다고 해도, 지금 당장 본인의 아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허리의 근육들이 찢어졌다가 다시 재조립되는 듯한 감각에, 서경우는 저도 모르게 몸으로 큰 호를 그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비명을 내질렀다.

“으음. 원한다면 조치를 취해줄 순 있네만.”

“그, 그렇습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서경우가 화색을 지었다.

“강도를 조금 낮춰주시는 건가요?”

“아니. 자네가 소리를 못 지르게 해줄 수 있지.”

서경우의 얼굴은 화색을 지었던 그대로 굳었다.

강태한의 목소리는 농담조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위협하는 느낌도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그렇게 해줄 수 있다’라고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왜일까.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강태한의 분위기는 분명 듬직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살짝 두렵게도 느껴지는 서경우였다.

“필요하다면 금방 해줄 수 있는데. 혹시 필요한가?”

“···아뇨. 엄살 안 부리도록 하겠습니다.”

강태한의 말은 협박 같은 것이 아니었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서경우는 좌우로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조용히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 * *

“······음.”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뒤.

서경우는 침대에서 상체만 일으킨 채로 멍하니 앉아있다, 나지막하게 침음을 삼켰다.

‘너무 신기한데.’

일단 잠이 너무 달았다. 그야말로 꿀 같은 단잠.

고작 한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지금 그의 몸은 너무나도 개운했다.

“몸도 내 몸 같지가 않고.”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어떤 물건을 아무런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뭔가 하자가 있는 상태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때가.

스마트폰의 필수적인 기능을 꺼놓고 있었다던가, 자체적으로 불량이 나있었다던가···

그리고 지금 서경우가 자기 몸에 대해 느끼고 있는 감각이 바로 딱 그 느낌이었다.

여태동안 자기가 ‘정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렇게 깔끔하게 개운해져보니까 사실은 어딘가 문제가 있었던 상태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너무나도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몸.

이게 건강한 몸이고 이게 정상적인 상태다.

안마를 받기 전에도 했던 피로회복 스트레칭을 똑같이 하는데, 전혀 다른 느낌에 서경우는 감동마저도 느끼고 있었다.

‘찬혁 씨가 극찬을 할 만 하네.’

처음엔 그 조찬혁 배우가 2주 연속으로 예약을 잡았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놀랐지만, 그의 경험담을 곧이곧대로 전부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거기엔 ‘그게 어떻게 안마 정도로 가능한 일인가’ 싶은 수준의 허황된 이야기도 많이 섞여있었으니까.

허나 지금은 그가 했던 모든 이야기에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직접 받아본 결과, 이 안마사의 솜씨라면 그 정도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은 것이다.

“일어나셨어요?”

그렇게 좀 생각에 잠겨있었을까.

한 직원이 조명등을 켜면서 안으로 들어오더니, 차 한 잔과 간단한 주전부리가 담긴 쟁반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천천히 차 한 잔 드시면서 쉬신 다음, 자리에 그대로 두고 몸만 나오시면 됩니다.”

그럼, 마저 쉬세요.

직원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서경우는 닫힌 문을 조용히 쳐다보다, 쟁반 위에 놓인 찻잔을 들고 천천히 한 모금 맛을 보았다.

‘···좋네.’

달큰하면서도 쌉쌀한 향.

이 차가 무슨 차인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낯설면서도 입에 착 감기는 맛이 제법 느낌이 좋았다.

“요즘 블미션 멤버들 건강이 좀 안 좋은데.”

여기저기서 뜀박질하는 일이 많기도 하고, 프로그램 자체가 나름 장기화되다보니, 고정출연자들 사이에서 건강이 안 좋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곤 했다.

특히 허리 쪽이나 무릎 쪽.

기회가 되면 이곳의 선생님을 소개시켜주면 참 좋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혹시 방송 출연은 좀 괜찮으시려나?”

따로 소개시켜줄 게 아니라 선생님을 아예 출연을 시키면 어떨까. PD인만큼, 자연스레 방송 구성 쪽으로 생각이 흘러가는 서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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