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76화 >
“여기 와보는 건 또 처음인 것 같네.”
강태한의 아버지 강호연.
그는 지금, 대전 동구에 위치해있는 백병원에 와있었다. 주변에서 평도 좋고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차로 5분 안팎이면 오는 거리였지만, 이렇게 직접 와보는 건 처음이었다.
“어디보자··· 어디로 가야 하나?”
부지도 넓거니와 건물도 서너 개쯤은 되어보인다. 방금 막 주차장에 내려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정문과 가장 가까워 보이는 건물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태한이 녀석, 갑자기 걱정은 늘어가지고.’
강호연은 어지간히 몸이 아픈 게 아니라면 좀처럼 병원에 가지 않는 타입이었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아들 녀석한테 안마를 받기 때문일까, 아니면 종종 약초 같은 걸 갖고 와가지곤 보양식을 해줘서 그런가. 좀처럼 몸이 허해지는 일도 없어 병원에 올 일이 더더욱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단순한 감기 기운 정도로 병원까지 와본 적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아버지. 목소리가 평소보다 좀 탁하신데요?]
[감기기운 같다고요? 지난번에 뵈셨을 때만 해도 큰 문제 없으셨는데··· 으음. 그러고 보니 아버지 건강검진 받으신지 얼마나 되셨죠?]
[이번에 검진이나 한 번 받아보시죠. 안 그래도 아는 분이 아버지 한 번 모시고 오라고 했었는데.]
이틀 전, 목상태가 좀 안 좋은 상태로 통화를 했더니, 갑자기 이참에 건강검진이나 한 번 제대로 받아보시라면서 여기, 백병원에 다녀오라고 했었던 것.
‘아는 사람이 여기 의사라고 했었나.’
툭 까놓고 말해 감기기운 가지고 호들갑 떠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들 녀석한테 걱정 받는 게 그리 나쁜 기분도 아니었고, 아버지 걱정해서 병원예약도 잡아준다는데 거절하기가 좀 그랬다.
‘밥을 굶어야한다는 건 좀 그랬지만···’
그래도 뭐, 건강검진을 받아야할 때가 오기는 했다.
다만 딱 봐도 평소 다니던 동네병원보다 비싸 보이는 게 조금 흠이라고 할까. 강호연은 머쓱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래도 건물은 제대로 찾았는지,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접수처로 보이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건강검진을 좀 받으려고 왔는데요.”
“성함이랑 생년월일 좀 말씀해주시겠어요?”
“강, 호, 연이고요. 그리고···”
간호사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하고 엔터를 눌렀다. 그러다 모니터를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옆에 놓여있던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원장님, 강호연 선생님이 오셨는데요. 네네.”
그러고는 다시 강호연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엘리베이터 타고 3층으로 올라가셔서, 오른쪽으로 쭉 걸어가시면 복도 끝부분에 원장실이 있거든요? 거기로 가시면 됩니다.”
“···네?”
강호연이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원장실에서 진료를 한다거나, 상담을 받는다거나 하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규모가 작은 병원의 이야기다.
“원장실로 말입니까?”
여긴··· 딱 봐도 그런 곳이 아니지 않은가.
이런 큰 병원에 와본 적은 별로 없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원장실로 가라는 게 그리 상식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네. 여기에는 원장님 손님이시기도 하니 원장실로 안내해 달라, 그렇게 적혀있네요?”
“아··· 그래요?”
그럴 리가 없는데, 라고 말하려는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전날 통화에서 태한이가 ‘병원에 지인이 한 분 계시다’라고 말했던 일이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 지인이 이 큰 병원의 원장일 것이라고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강호연은 긴 가 민 가하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라 3층을 눌렀다.
그렇게 3층으로 올라와, 처음 안내받았던 대로 복도를 따라 쭉 걸어가던 중··· 딱 봐도 직급이 좀 높아 보이는 의사 한 명이 복도에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다 우연히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혹시 강태한 씨 아버님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만.”
먼저 인사를 건네는 박호연 원장.
그러자 강호연이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답했다.
“반갑습니다, 원장 박호연이라고 합니다.”
“아, 저는 강호연이라고 합니다.”
“이거, 태한 씨가 어느 분을 닮아서 그렇게 외모가 훈훈한 건가 했는데, 아버님을 닮았군요.”
“허허, 별 말씀을···”
박호연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얼굴로 말하자, 강호연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여기서 이야기 나누기도 뭣하니, 방으로 들어가실 까요. 오늘 받으실 검진에 대해 설명도 좀 드릴 겸, 간단한 체크부터 하겠습니다.”
박호연은 뒤쪽의 복도를 가리키고는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고, 강호연은 아직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저, 근데 원장 선생님.”
“네. 말씀하시죠.”
“태한이랑은··· 어떤 관계이십니까?”
으음. 강호연의 질문에 박호연은 잠시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머지않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태한 씨는 제 은인이죠.”
“은인이요?”
“예. 빚을 좀 많이 졌거든요.”
그는 원장실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시라는 손짓을 하며 덧붙이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조금도 부담스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실 안 그래도 제가 예전에 태한 씨한테 ‘아버지 어디 편찮으신 곳 있으면 언제든지 병원으로 오시라고 해라’고 말해뒀었거든요.”
“아··· 네에.”
강호연을 쳐다보는 박호연의 눈빛에서는 왠지 모를 깊은 감사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마 자신의 아들, 강태한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자신에게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리라.
이 정도면 거의 목숨을, 그것도 두어 번 정도는 구해준 것이 아닐까. 평소에 태한이 녀석이 무슨 행동을 하고 다니는지가 궁금해진 강호연이다.
잠시 후.
병원장과의 상세하면서도 전문적인 상담을 거치며, 강호연은 일반 건강검진 위에 프리미엄 건강검진이, 그 위에는 다시 VIP 건강검진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들 덕을 이렇게 보나?”
그리고 강호연이 오늘 받을 검진은 바로 그 VIP건강검진이었다. 그는 아직도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으로, 굉장히 안락한 1인실에 누워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아들아. 덕분에 호강한다.]
카톡을 확인한 강태한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거기엔 침대에 누운 상태로 찍어 보낸 아버지의 인증샷도 첨부되어있었다.
예전에 어깨수술의 후유증으로 고생한 탓인지 병원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으셔서 걱정을 좀 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아버지도 만족스러우신 모양이다.
강태한은 인증샷에 담긴 아버지의 미소와 치켜세운 엄지손가락을 쳐다보다, 빙긋 웃으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태한 씨, 이거 어디다가 걸어둘까?”
그때, 휴게실 안쪽에 있던 황 실장이 액자를 들고 다가와서 말했다.
액자 안에는 멋들어지게 그려진 조찬혁의 사인이 담겨있었고, 사인의 밑에는 ‘최고의 안마, 천마안마’라는 문구와 함께 조찬혁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어제 오후 조찬혁이 다녀갔을 때 황 실장이 가게전시용으로 따로 부탁해서 받아둔 사인.
저번에 이어 두 번째로 받는 사인이라지만 조금 긴장을 했었는데, 조찬혁은 이번에도 흔쾌히 사인을 해줬다. 대신 예약 잡을 때 잘 좀 부탁한다는, 장난 반 진담 반이 섞인 말을 하면서 말이다.
“둔다면··· 로비 쪽에 두는 게 맞겠죠.”
“그건 맞지.”
강태한의 말에 황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전시물이라는 건 다른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니까.
“손님들이 앉아계신 곳 뒤쪽에다 걸어놓는 게 어떨까요. 그쪽 벽이 딱 괜찮을 것 같은데.”
“흐음··· 역시 그쪽이 딱 맞지?”
“네. 나중에 사인을 더 모은다고 하면, 중앙이나 구석에서부터 하나씩 채워나가는 맛도 있겠네요.”
개업일로부터 닷새가 지난 오늘.
생각보다 몰려든 손님에 당황해서 다급히 움직이던 것도 지난날의 이야기고, 지금은 정상화를 마치고 비교적 원활하게 가게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 덕분에 이런 식으로 사인을 받아둘 생각도 나고, 어디에 걸어둘지 고민을 할 시간도 나는 셈이겠지. 신중한 표정으로 액자를 들여다보는 황 실장을 보며,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다만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그 사이에 손님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단지 황 실장이 그새 이곳의 업무에 적응을 하면서 효율이 빨라졌고, 또 원래는 좀 더 나중에 오기로 했던 안마사들을 좀 더 빨리 불러왔을 뿐.
오히려 손님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고, 특히 장인코스 같은 경우에는 받은 이후에 바로 예약을 잡고 나가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 날이 갈수록 예약이 팍팍 채워지고 있었다.
‘수월하게 흘러가고 있군.’
다른 사람의 가게에서 일을 하며 돈을 받아가는 것과, 직접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는 것.
그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지 강태한은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아무런 우려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막말로 전자는 나 혼자 안마만 잘하면 되는데, 후자의 경우는 안마만 잘한다고 해서 가게 전체가 잘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허나 그런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가게는 순항하고 있었다. 황 실장의 사무능력이 생각보다도 더욱 빛을 발하고, 중견라인이라 할 수 있는 장인코스의 세 명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덕분이었다.
“사장님, 예약손님 오셨는데요.”
“알겠습니다.”
덕분에 강태한의 일은 크게 바뀐 게 없었다.
간간히 황 실장과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직원을 고용한다거나 비품을 바꾼다거나 하는 일이 있을 때 최종결정을 내리기는 하지만.
결국 평소처럼 그가 하는 일은, 안마로 손님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다. 강태한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어깨를 풀고는, 손님이 기다리고 있을 안마실을 향해 걸어갔다.
* * *
“아으, 피곤해.”
안마실의 침대 위에서, 서경우는 찌뿌둥한 표정을 지으며 상반신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했다. 일전에 인터넷에서 봤었던, 피로회복에 좋다는 스트레칭 법이었다.
허나 그 정도로 회복될만한 피로가 아니었다.
그는 요 일주일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지방촬영이 많아 편히 잠을 잘 시간 자체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요 근래 불면증이 심해진 탓이 컸다. 잠을 잘 시간이 있어도 좀처럼 잠에 들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프로그램 런칭 때는 항상 이렇다니까···’
불면증의 원인이야 원래 알려진 바가 없다만, 시험이라든가, 중요한 발표가 있다든가 하면 긴장감 때문인지 매번 이런 식으로 불면증이 도졌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을 때도 많지만, 한 번 도지면 그 영향이 어림잡아 최소 한 달, 길게는 세 달···
어렸을 때야 체력이 뒤받쳐주니까 밤을 새워 공부하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랬지만··· 이젠 체력이 딸리는 상황에서 잠이 안 오니, 미칠 지경이었다.
몸이 약에 민감한 탓에 웬만해선 수면제도 먹을 수 없었고, 특히 요즘에는 제대로 잠을 못 잔 날에는 종종 편두통이 겹쳐 그야말로 끔찍한 하루를 보내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몸이 예민하게 태어난 것을.
예전에는 뭐라도 해보려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체질을 바꿀 수 있다 하여 한의원도 꾸준히 다녀봤지만 결국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이번에는 기대를 좀 해봐도 되나···’
안마 한 번에 편두통과 공황장애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는 이야기. 솔직히 당사자에게 직접 들은 게 아니었다면, 헛소리로 치부하고 흘려들었을 것이다.
허나 당사자 본인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게다가 그 사람이 평소 빈 말을 잘 안하는 조찬혁이었으니··· 서경우 입장에서도 나름 기대를 가져볼만한 것이다.
‘불면증만이라도 해결 좀 됐으면.’
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상태.
이것만큼 심플하면서도 괴로운 것이 없다. 서경우는 기도하는 듯한 마음가짐으로 문 쪽을 바라봤다.
“안녕하십니까.”
그러자 타이밍 맞게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왜일까. 서경우는 순간 저 남자의 존재감이 이 공간을 확 휘어잡는 것을 느꼈다.
소위 카리스마라고 부르는 특유의 분위기.
마치 노련한 베테랑 연예인이 촬영현장을 순식간에 장악해버리는, 그런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얼굴은 젊어 보이는데.’
보이는 모습과 실제 나이에 차이가 큰 걸까.
그 호기심 때문인지, 서경우는 자기도 모르게 강태한과 눈을 마주친 채로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흐음.”
그런 와중, 먼저 입을 연 것은 강태한이었다.
“몹시 피곤해 보이는데, 일시적인 게 아니로군. 보아하니 며칠 째 잠을 설치고 있는 모양이지.”
“예? ···예.”
서경우는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틀린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환경 탓도 있지만··· 본래 체질 자체가 예민해. 오랫동안 겪은 증상이군. 그렇지 않은가?”
“···맞습니다.”
안마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안목만큼은 신통할 정도다. 라고, 서경우는 조심스레 생각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