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75화 >
이 빌딩은 처음부터 이곳, 라이너 호텔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듣기로는 기획단계에서부터 빌딩 중심에 호텔을 먼저 집어넣고, 그 다음에 다른 층에 어떤 것들을 배치할 지 고민했다고 하니까 말이다.
때문에 빌딩 내부에 입점해있는 가게들은 대부분 호텔과의 연계를 생각하여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통유리 너머로 시원하게 한강이 보이는 스카이라운지의 고급 사우나와, 그 밑에 위치해있는 피트니스 센터는 호텔의 핵심적인 세일즈 포인트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거기에다 안마샵이라.’
체크인을 하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은 뒤, 피트니스 센터에 올라가 기분 좋게 땀을 뺀다.
그러고선 한강과 서울의 야경이 보이는 사우나에서 개운하게 땀을 씻어내고, 한층 개운해진 몸으로 푹신한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하루를 마무리 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곽상영이 생각하는, 이곳 라이너 호텔에 찾아온 고객들이 보낼 수 있는 이상적인 저녁 일과의 이미지였다.
비즈니스 목적으로 인근에 출장을 나와 지쳐있는 손님도, 관광을 목적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녀 피곤한 손님도, 그저 호캉스를 위해서 찾아올 손님도.
모두가 매력을 느낄 법한 안락한 하루의 마무리.
어지간한 네임드급 호텔과 견줘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완벽한 저녁이 될 것이라고 곽상영은 장담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시원한 안마까지 선택지가 추가된다면?
기존 구성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매력적인 요소가 하나 추가되는 셈이다. 생각해뒀던 일련의 과정에 안마샵을 끼워본 곽상영은,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업무 끝나면 한 번 안마 받으러 가봐야겠네.”
“오늘이요?”
“그래. 왜, 박 팀장도 같이 갈래?”
“아뇨, 그게 아니라.”
곽상영의 말에 박 팀장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오고가는 사람이 많아보여서 어제 한 번 받아보려고 했었는데, 사람이 붐벼서 예약 없이는 힘들겠더라고요.”
“···그 정도야?”
“네. 거기 실장도 이렇게까지 손님이 몰릴 줄은 몰랐다나··· 특히 사장한테 직접 받는 코스가 따로 있는데, 이건 다음 주, 그것도 평일 이른 오후쯤에나 예약할 수 있답니다.”
허어.
박 팀장의 말에 곽상영은 조그맣게 탄성을 터트렸다. 여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자리를 잡은 가게가 아니라, 기껏 해봐야 개업한지 며칠도 지나지 않은 곳이었다.
헌데 그렇게까지 예약이 차있을 정도라니.
그쯤 되면 단순히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수준이 아니라 단골들의 충성도가 높다는 의미고, 그렇다는 건 기본적으로 고객들의 만족도 자체가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그럼 어쩌면···’
어쩌면 스카이라운지의 사우나와 피트니스 센터에 버금가는 수준의 세일즈 포인트가 될 지도 모른다. 곽상영은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옆에 있는 박 팀장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안마샵 가게 명함 받아온 거 있어?”
“예? 아, 네. 나중에 생각나면 예약 좀 해두려고 한 장 가져왔죠.”
“잠깐 보여줄 수 있나?”
“안 될 거 없죠, 뭐.”
그의 말에 박 팀장은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거기에는 ‘천마안마’라는 가게명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곽상영은 명함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스마트폰에 옮겨 적고서, 곧바로 예약 문의를 위한 문자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 사장님한테 직접 받는다는 코스 이름이 뭐야?”
“가게 이름이랑 같았던 거 같은데··· 아, 천마코스, 이거였던 것 같습니다.”
“천마안마, 천마코스··· 외우기 좋구만.”
박 팀장의 말에 곽상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사장님한테 직접 받으시게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예약을 잡으려면 다음 주 평일쯤에나 가능하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그 편이 낫지.”
곽상영은 작성한 문자를 송신하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확실하진 않지만··· 어쩌면 비즈니스 얘기까지 해야 할 수도 있는데, 그럼 바로 사장님이랑 만나는 쪽이 낫지 않겠어?”
만약 정말 자기가 기대한 수준으로 만족도가 높고, 사업적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보인다면, 곧바로 그 자리에서 비즈니스 얘기로 넘어갈 생각을 하고 있는 곽상영이었다.
* * *
“으아··· 드디어 끝났다.”
해가 저물고 저녁이 된 오후 8시.
마지막으로 잡혀있던 예약 손님까지 마무리한 최성현은, 휴게실로 들어오자마자 쇼파 위에 털썩 주저앉고는 스스로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는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지금까지, 잠깐의 휴식시간들과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안마를 하고 이제야 일이 끝난 상황이었다.
“고생했다, 성현아.”
“아저씨도요···”
늘어져있는 최성현에게 누군가 차갑게 식힌 이온음료 한 캔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최성현과 함께 장인코스를 담당하고 있는 황태진이었다.
“이렇게까지 바쁠 줄은 몰랐는데.”
황 실장의 활약으로 장인코스 또한 꽤 많은 예약이 잡혀있긴 했지만, 그래도 강태한의 천마코스마냥 꽉꽉 들어차있는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기껏해야 하루에 일고여덟 개 정도가 잡혀있었던 수준. 그렇기에 적어도 개업 후 한동안은 좀 느슨한 일과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가게 문을 열고나니, 예상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황 실장이 당황해서, 좀 나중부터 출근하기로 되어있던 안마사들에게도 연락을 돌릴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몰려들어온 손님들의 행동패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일단은 카운터에서 강태한의 천마코스를 받고 싶다고 물어봤다가, 예약만 하고 그냥 돌아가거나··· 아니면 꿩 대신 닭이라고, 아쉬운 대로 그 다음 코스인 장인코스를 받든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자 쪽보다는 후자 쪽을 택하는 손님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고, 이는 자연스레 최성현과 황태진의 업무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도 수입은 짭짤하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죠.”
황태진의 말에 최성현은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일단은 장인코스라는 프리미엄 라인에 들어가면서 받는 금액 자체가 올라갔는데, 최성현이 가져가는 성과금의 비율 또한 6할로, 예전에 받던 4할에서 절반가량이 올라간 상태였다.
그렇게 계산을 해보면··· 대충 생각해봐도 예전에 받던 돈의 두 배는 가볍게 웃도는 금액이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까 힘이 좀 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나는 안마일 해온 그동안 중에서 요즘이 제일 좋더라.”
최성현의 옆에 앉으며, 황태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단순히 수입이 늘어나서 때문만이 아니었다.
까놓고 말해 예전에는 ‘다른 재주가 없으니 이 일이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이었는데, 강태한을 만나면서 이 일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은 출근할 때마다 의욕이 샘솟는 기분.
더군다나 강태한에게 안마기술을 배우고, 손님들의 반응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을 보면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뿌듯한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하긴, 일할 맛이 좀 나긴 하죠?”
최성현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올라간 수입도 그렇지만, 휴게실 내부만 봐도 직원들에게 꽤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이 느껴졌다. 애초에 공간도 넓게 잡아놨고, 대충 커피포트만 갖다놓은 게 아닌 제대로 된 탕비실에, 수면용 침대에···
다른 샵들을 이곳저곳 다녀본 건 아니라 자세히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 수준의 휴게실은 찾아보기 힘들 거라고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뭐하고 있어?”
마침, 탕비실 안쪽에서 나온 황 실장이 다가오며 넌지시 물었다. 그는 들고 온 커피포트와 함께 다구(茶具)세트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냥 신세한탄 좀 하고 있었죠.”
“그런 거 치고는 대화하는 분위기가 좋던데?”
황 실장은 첫잔을 준비하면서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엔 다소 어설픈 느낌이 있었는데, 그동안 차를 자주 마시더니 이젠 다구를 다루는 솜씨가 제법 능숙해져 있었다.
“말이 그런 거죠, 뭐.”
“가게 바꾼 소감을 좀 나누고 있었지.”
“그렇구만···”
고개를 끄덕이며, 황 실장은 찻주전자에 물을 붓고 잠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렇게 좀 시간이 지났을까. 딱 첫 잔이 우려졌을 쯤, 살짝 눈치를 보던 최성현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저, 실장님.”
“왜?”
“오늘 장인코스 손님들 반응은 어땠어요?”
좀 더 정확히는, 자기 손님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장인코스는 나름 프리미엄이 붙은 코스고, 일반코스보다 가격도 50% 정도가 더 비싸다. 당연히 손님들이 생각하는 기대치도 높을 수밖에 없다.
그걸 과연 자기가 충족시킬 수 있을까.
혹은 충족시켰을까.
예전 샵에서도 장인코스를 맡았던 김성훈이나 원래 솜씨가 좋다고 알려진 황태진과 달리, 자기는 경험도 적고 상대적으로 솜씨도 부족해보였기에,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이 있는 최성현이었다.
“음, 네 손님들?”
그리고 그런 생각 정도는 대충 꿰뚫어보는 황 실장이다. 그는 입 안에 차 한 모금을 머금으며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응 좋았어. 받고 나온 손님들이 다시 예약 잡고 명함까지 챙겨서 나갔으면 말 다한 거지. 안 그래?”
“그, 그래요?”
“의심나면 다음에 예약표 확인해봐라. 추세를 보아하니 앞으로 조금씩 더 바빠질 것 같은데?”
입술을 씰룩거리는 최성현의 모습에 황 실장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솔직히 말해, 황 실장은 장인코스에 최성현을 넣는 건 살짝 시기상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안마사의 나이가 어리면 그 실력을 의심하는 손님이 생각보다 많다.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자신의 안목보다는 강태한의 안목을 신뢰했기에 별다른 말없이 장인코스에 넣었던 건데···
‘확실히 태한 씨가 보는 눈이 있다니까.’
쓸 데 없는 걱정이었는지, 아니면 강태한의 수업이 그만큼의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 최성현은 부족함 없이 손님들을 만족시킨 모양이었다.
“아하이, 참. 여기서 더 바빠지면 싫은데.”
한편,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은 괜스레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내며 쇼파에서 일어났다. 허나, 그 목소리와 달리 그의 입 꼬리는 슬쩍 위로 올라가있었다.
* * *
“···영업하는 거 맞나?”
강태한의 가게가 있는 라이너 빌딩의 1층.
건물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긴가민가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걷고 있었다.
QBS의 대표PD 중 한 명인 서경우 PD.
지난 날 조찬혁에게 안마샵을 추천받아 예약을 잡아뒀던 그는, 안마를 받으려고 이곳까지 찾아왔다.
헌데 딱 봐도 이제 막 완공된 신축빌딩인데다, 아직 공사를 하고 있는 가게도 드문드문 보이고 전체적으로 휑한 느낌이 들어, 제대로 활성화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찬혁 씨가 거짓말을 했을 것 같진 않지만···’
하지만 가게의 사정이 갑자기 어떻게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그래도 일단 엘리베이터를 찾아 걸어가고 있던 와중.
“야, 진짜 좋았다. 몸이 거짓말처럼 가벼운데?”
“좋겠다, 나도 강 선생님한테 받고 싶었는데.”
“그러니까 내가 예약할 때 같이 하자고 했었잖아. 왜, 장인코스는 별로였어?”
“아니, 장인코스도 생각보다 좋았어. 안마사 쌤이 좀 젊어보여서 약간 불안했는데, 불편했던 곳들을 딱딱 집어서 풀어주더라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안쪽에서 여자 두 명이 걸어 나오더니, 방금 받았던 안마에 대한 소감을 서로 나누고 있었다.
‘···영업은 하나보네.’
아무래도 안마샵은 정상영업을 하는 모양.
서경우는 영업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은 채 엘리베이터에 올라, 20층으로 가는 버튼을 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