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71화 >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한데···”
대성 웨일즈의 베테랑 투수, 김호정은 찜질방의 온돌방 구석에 앉아 삶은 계란의 껍질을 정성스레 까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가?”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옆에 누워있던 최태구가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김호정은 방금 깐 삶은 계란을 소금에 톡 찍으며 말했다.
“이 시간에 지금 찜질방에서 멍이나 때리고 있는 거 말이야.”
원래 지금쯤이면 슬슬 일어나 호텔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을 시간이다.
그런데 그 시간에 이렇게 찜질방에서 계란이나 까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자니, 영 어색했던 것이다. 심지어 기다리는 이유도 찜질방에 딸려있는 안마샵에서 안마를 받기 위해서였으니, 더욱 더 그랬다.
“까놓고 말해서 기분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김호정은 삶은 계란을 입 안에 집어넣고, 살얼음이 낀 식혜까지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약간 배덕감이 든다고 해야 되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따 오후에 경기도 있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느낌?”
“그런 거 치곤 알차게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최태구가 김호정의 앞에 놓인 쟁반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에는 방금 까놓은 것 말고도 꽤 많은 계란껍질들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그리고 뭐, 감독님이 다 생각이 있지 않겠냐.”
“그게 가장 신기해. 평소에는 컨디션 관리에 그렇게 예민했던 사람이 말이야.”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에게는 정해진 일과가 있다.
느지막한 오후에 일어나 가벼운 식사를 하고, 미팅 및 트레이닝을 거친 다음, 각자 알아서 휴식을 취한다. 그러고 난 후에 경기에 임하는 것이다.
지극히 단순한 과정이고 이게 뭐 별 거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생활을 몇 년 넘게 해오고 거기에 익숙해져있는 선수들은, 그 일과의 내용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경기 컨디션에 영향이 갈 수가 있다.
특히 심 감독은 이런 부분들을 나름 중요하게 여겨, 선수들의 식단도 최대한 맞춰주고 되도록 평소 일과나 트레이닝 메뉴도 터치를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면시간까지 줄여가면서 찜질방에서 안마를 받아오라니. 평소 감독이 보여줬던 모습과는 다소 매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좀 이상하긴 하지. 오늘 등판을 안 시키는 것도 아닌 모양인데.”
등판이 없는 날이었다면 적당히 쉬고 오라는 뜻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에게 따로 카톡을 보내본 결과, 심지어 선발로 등판시킬 예정이니 안마 잘 받고 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니면··· 여기 안마 솜씨가 진짜 기깔난다든가?”
문득 생각을 떠올린 김호정이 말했다.
“그야 솜씨가 좋긴 하겠지. 굳이 감독이 경기 전에 받고 오라고 할 정도니까. 기본조건 아니겠어?”
“내 말은, 그냥 좋은 수준이 아니라 안마를 받으면 막 온몸에 혈이 뚫리고 날아다니는 수준이 되는 거야. 그러면 설명이 좀 되지 않겠냐?”
“···왜, 아예 안마로 회춘까지 한다고 그러지.”
김호정의 말에 최태구가 피식 실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그러자 김호정이 박수까지 한 차례 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야, 그럼 진짜 좋겠다. 네가 예전에 빌려왔던 소설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잖아. 그걸 뭐라고 그러더라. 추구··· 무슨 혈이었는데.”
“추궁과혈?”
“그래, 그거.”
“그런 건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지, 임마.”
심지어 무협지에서도 기연 급에 속하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행운으로 취급되는 내용이다. 최태구는 실소를 머금은 채로 말도 안 된다며 손을 저었다.
“나도 알지. 근데 그 정도쯤은 되어야 심 감독이 이런 지시를 내리지 않겠냐, 그런 이야기지.”
“그런 사람이 있으면 진즉에 소문이 나지 않았겠냐? 갑자기 선수들 능력도 확 올라가고, 팀 성적도 미친 듯이 올라갈 테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며 손을 휘젓던 와중, 문득 떠올린 생각에 최태구는 뒷말을 흘렸다. 갑자기 그 조건에 딱 맞는 팀 하나가 떠오른 것이다.
“한하 호크스?”
“···어, 잠깐만. 진짜로?”
최태구가 한하를 언급하자, 김호정의 반응도 달라졌다. 장난스럽게 말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진지해진 것이다.
시즌 말에 들어서 갑자기 실력이 확 뛰어오르며 대활약을 펼치기 시작한 한하 호크스. 이들의 행보는 코칭스태프들 사이에서도 화제였지만, 당연히 선수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된 일이다.
스태프들과 달리 직접 필드에서 맞부딪히기에, 상대선수들의 컨디션이나 실력의 변화에는 선수들이 좀 더 민감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으니까.
“확실히 광호 녀석 폼이 리즈시절마냥 돌아오긴 했었단 말이지···”
이광호, 안기호, 김태평··· 그 외에도 몇몇.
한하의 베테랑급 선수들이,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미친 기량을 뽐내면서 팀의 성적을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예전 피지컬을 그대로 되살려놓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 변화가 너무나도 극적인 수준이었기에, 경기 직후 상대팀의 요청으로 도핑테스트가 한 차례 더 진행되는 일이 있었을 정도니 말 다했다.
헌데 그게 다 안마 덕분이라면? 그걸 송 코치나 감독이 알아내서, 이렇게 둘을 데리고 온 거라면? 그렇다면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이 설명된다.
“···에이, 설마.”
“그러면 진짜 무협지다, 야.”
하지만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둘은 각각 손과 고개를 저으며 헛된 상상으로 치부했다.
“죄송해요, 통화가 좀 길어졌네요.”
허나 일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던 송남섭 코치가 온돌방 안으로 되돌아오자.
“코치님! 오늘 만나는 안마사 말인데요.”
“혹시 한하랑 연관이 있는 사람입니까?”
두 사람 다 말도 안 되는 일로 치부했던 것치고는 꽤나 열정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일 뿐이고, 송 코치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겠지만··· 그래도 그 ‘혹시나’가 너무나도 매력적인 이야기였던 것이다.
“어, 제가 얘기 안했던가요?”
헌데 송남섭의 반응은 지극히 담백했다. 당연한 일이지 않느냐는 듯한, 그런 반응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하 쪽에 주기적으로 출장 나가고 계신 분이에요. 아마 그때부터 한하 성적이 오른 거라고 예상되고요.”
“···그, 그걸 먼저 말했어야죠!”
“죄송합니다. 저도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되서··· 말씀을 드린 줄 알았네요.”
김호정의 말에 송남섭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건 그렇고 이제 곧 있으면 안마 받으러 가실 시간인데, 어떤 분이 먼저 받으실래요?”
“그야···”
김호정과 최태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마주봤다.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온 배터리. 긴 대화는 필요 없다. 둘은 미소를 지으며 당연하지 않냐는 목소리로 동시에 말했다.
“그야 물론 저죠.”
“제가 먼저 받아야죠.”
“···에이. 투수인 내가 먼저 받는 게 맞지.”
“타석까지 올라가는데, 내가 받는 게 맞지.”
“요즘 나 어깨 안 좋은 거 다 알면서 이럴 거야?”
“나야말로 허리 나가기 직전인 거 몰라?”
서로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사나워지는 목소리. 다 큰 어른보다는 마치 중학생 두 명이 다투는 듯한 모양새다.
“둘 중 한 분만 받는 것도 아니고 30분 먼저 받는 것뿐인데··· 그냥 가위바위보 하시죠.”
결국 송 코치가 중재안을 내놓기 전까지, 둘은 누가 밥을 몇 번 샀는지까지 언급하며 순서를 따져가고 있었다.
* * *
그리고 그로부터 두 시간가량의 시간이 흐른 후.
“···미쳤다, 미쳤어.”
“이게 말이 되나?”
안마를 받고 나온 두 사람은, 컨디션이 좋아진 게 눈에 보일 정도로 확 달라져 있었다. 피부만 봐도 윤기가 잘잘 흘렀던 것이다.
“추궁과혈이 현실에도 있다니.”
“그거, 무협지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거라고 하지 않았냐?”
“그러니까, 내 말이.”
김호정은 원래 안 좋았던 어깨를, 최태구는 허리를 계속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연신 감탄을 터트리고 있었다.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삐걱거리는 게 느껴지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안쪽까지 기름칠을 하고 다시 조립해놓은 것처럼 부드러웠으니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올만 했다.
“안마는 어땠어요?”
“아, 송 코치.”
둘을 기다리고 있던 송 코치가 다가오자, 최태구는 다짜고짜 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코치님 말대로더라니까요! 받아보니까 느낌부터가 다르네. 이건 뭐, 단순한 컨디션 조절이 아니라··· 선수생명 자체가 연장되는 수준인데요?”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런 안마를 한 달에 한 번··· 아니, 반년에 한 번씩만 받을 수 있어도 선수생활에 크나큰 도움이 될 터였으니까.
“제가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둘의 반응에 송 코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침에 나올 때 툴툴거리던 모습과 비교하면 차원이 달라진 반응이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 경기 잘 뛸 수 있으시겠어요?”
“글쎄요··· 이 정도 느낌이면.”
김호정은 어깨를 휘휘 돌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평소 시합의 승패를 워낙 잘 맞추기에, 스탭들의 회의에도 종종 끼어들곤 하는 김호정이었다.
“오늘 경기 지면 제가 은퇴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김호정은 파격적인 발언을 입에 담았다. 그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의 회춘을 한 수준인데, 경기 하나 못 따내면 투수로서 실격이지. 안 그러냐?”
그는 동의를 구하듯 옆에 있는 오랜 동료이자 친구, 최태구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최태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은퇴는 안 한다.”
스포츠라는 게 원래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
특히 야구는 더욱 그렇기에, 친구의 발언에 깔끔하게 선을 그어놓는 최태구였다.
* * *
“대성 웨일즈, 압도적인 점수 차로 승리···”
안마사 휴게실 구석에 놓여있는 4인용 테이블.
거기에 앉아있는 최성현이, 한 인터넷 기사의 제목을 읽으며 말했다. 거기엔 전날 잠실구장에서 있었던 경기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었다.
“딱 집어서 나와 있네. 베테랑급 라인업인 김호정 선수와 최태구 선수의 활약이 눈에 띄게 돋보이는 경기였다. 두 선수는 마치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으며··· 그렇다는데?”
기사에는 전날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고 나간 두 선수의 활약상이 간략하게 나와 있었으며,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는 총평으로 마무리되어있었다.
“어제 경기가 좀 재밌긴 했던 것 같더라고.”
그리고 강태한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평소처럼 나중에 하이라이트만 본 거긴 했지만, 그것만 봐도 시원시원한 장면들이 많아서 보는 맛이 좀 있었다.
자기 손을 거친 두 선수가 하이라이트 장면에 유독 많이 나오기도 했고 말이다.
“이 정도면··· 나중에 너한테 안마 받은 선수가 몇 명이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거 아니냐?”
최성현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말하는 동시에 한편으론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무서운 점이었다.
“태한 씨, 잠깐 시간 괜찮나?”
그때 대기실 안으로 들어온 황 실장이 강태한에게 말을 걸었다.
“보여줘야 할 게 좀 있어서.”
“네. 그냥 앉아있는 중이었어요.”
강태한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황 실장은 강태한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자 둘 사이에 끼어있는 최성현이 넌지시 물었다.
“저도 들어도 되는 얘기에요?”
“상관없어.”
황 실장은 들고 온 서류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제 그와 강태한이 가게를 옮긴다는 건 비밀도 아니었다. 사장과도 이야기가 다 끝났고 말이다.
“보여줘야 할 게 뭔데요?”
“그거 말인데. 저번에 태한 씨가 말한 거 있잖아.”
“저번이라면···”
“슬슬 예약 받아도 될 것 같다고 했던 거 말이야.”
“아, 그거요.”
이제 개업일도 윤곽이 잡혔겠다, 요청이 있는 손님들한테 예약을 받아둬도 괜찮을 것 같다고 지난 번 황 실장에게 이야기를 꺼내놨었다.
물론 그렇다고 여기서 강태한의 가게 예약을 받는 건 상도덕을 떠나 해서는 안 될 짓이었으니···
‘옮기는 가게가 결정되면 연락을 해달라.’며 신신당부를 해놨던 손님들에게만 따로 물어보는 방식으로 진행해보자고, 그렇게 결론이 났었다.
“혹시 문제가 있나요?”
“문제? 있지. 이틀 전부터 예약을 받기 시작했는데 말이야···”
강태한의 물음에 황 실장은 내려놓았던 서류를 폈다. 거기엔 칸마다 글자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표가 하나 나와 있었다.
“···예약이 벌써 거의 차버렸거든.”
거기에 나와 있는 표는, 다름이 아니라 개업일로부터 일주일 동안 잡힌 예약들을 적어놓은 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