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 안마하신다-63화 (63/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63화>

“선수 분들이 꾀병을 부린다고요?”

“예. 뭐 그렇게 표현하면 아니라고 발뺌들을 하겠지만, 딱 잘라 말하면 꾀병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오늘은 막내 뻘 되는 녀석도 그러더랍니다. 허허.”

강태한과 마주앉아 있는 오재윤 감독이 웃음을 터트리며 커피가 든 종이컵을 집어 들었다.

강태한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일에 열정이 없는 사람보다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 훨씬 낫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 열정이 넘치는 야구선수가 가장 많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경기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성적을 내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꾀병을 부리는 게 어른스러운 행동은 아니고 바람직한 방법도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발현된 부분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실력을 늘릴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탐을 내는 것이 정상이니까.'

내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영약을 찾아다니는 무림인을 치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평소에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야 이해는 하죠. 다들 강 선생님 덕을 본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그냥 선수들 순서 다 미뤄놓고 여기서 안마 한 번 받고 싶을 정도니까요.”

“그럼 등이라도 한 번 좀 봐드릴까요?”

“어, 예? 지금요?”

순간 오재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안 그래도 요즘 몸이 다시 굳어가고 있었기 때문.

별 생각 없이 꺼낸 말이었는데, 정말로 안마를 해준다 하니 마음이 혹하는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감독이 모범을 보이진 못할 망정 그럴 수는 없는 법.

결단 끝에 거절의 말을 꺼내려는 순간.

“농담입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오재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후릅, 하고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괜찮은 척 했지만 내심 아쉬운 맛이 남았다.

“그건 그렇고, 그럼 안마의 순서 기준을 조금 바꿔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자신에게 안마를 받고 싶어 하는 선수가 많다는 건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요즘에도 종종 선수들이 선물을 보내며 잘 좀 부탁한다는 카톡을 보내올 때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제 컨디션이 정말 나쁘거나 부상이라도 입은 선수가 아니라면, 당장 안마가 필요할 정도로 급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강태한이 출장을 다녀간 횟수가 늘어가면서, 한하의 선수들은 모두 강태한의 손길을 한번씩은 거쳐 간 상황이다.

주력 선수들은 물론이거니와 후보 선수들까지 한 번씩, 거기에 부상을 입었거나 슬럼프 겪고 있는 이들은 두 번씩.

말하자면, 이미 경기텐션에 크게 영향을 미칠 정도의 요소들은 강태한이 거의 다 풀어놓은 것이다.

“흐음. 선생님 말씀이 맞기는 하죠.”

코칭스태프들은 매일 마다 선수들의 컨디션 체크를 하고, 정리하여 문서로 남긴다.

그 내용은 당연히 감독에게도 전달된다.

그동안 그 내용들을 확인해온 바, 요 근래 선수들의 몸 상태가 부쩍 좋아졌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컨디션은 물론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강태한의 말마따나 당장 최우선으로 안마를 받아야하는 인원도 딱히 없어졌다.

예전에는 강태한의 안마가 녹슬고 망가진 자전거를 완전히 새 자전거로 바꿔놓는 수준이었지만, 이미 한 번 싹 녹을 벗기고 망가진걸 수리해놨으니 할 게 그다지 없는 셈이었다.

'물론 효과는 여전히 미쳤지만.'

요즘 선수들 사이에선 '선생님한테 안마 받은 당일에 삼진 당해 내려왔으면, 그냥 볼보이나 해야 된다.' 이런 말이 돌고 있었다.

그냥 자기들끼리 놀리고 웃으려고 만들어진 얘기긴 했지만, 그 정도로 강태한의 안마는 여전히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괜히 선수들이 꾀병을 부리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럼 어떤 식으로 바꾸자는 이야깁니까?”

“코칭스태프들이 필요한 대상을 찾아 선정하는 게 아니라, 노력한 선수들을 선발하는 거죠. 일종의 동기부여라고 할까요.”

“오!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강태한의 말에 오재윤이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기회는 한정되어있는데 필요한 사람은 많다면, 경쟁을 붙이는 것이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이다.

왜 이제야 떠올렸나 싶을 정도로, 경영에 있어서는 기초 중의 기초에 해당되는 내용.

그동안 안마는 컨디션 관리용 수단이라는 고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떠올리지 못한 발상이었다.

“여기 있는 이 파일이 오늘 선생님에게 드릴 컨디션 관리 명단이었습니다만, 그렇다면···.”

컨디션이 눈에 띄게 악화된 두 명은 명단에 남겨놓고, 나머지는 그동안의 훈련에 성실히 임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요 근래 성적이 좋아졌다고 자만에 빠져있던 선수, 안마만 받으면 전부 OK라면서 쓸 데 없이 여유나 부리던 선수들은 자연스레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민우야!”

“네, 감독님. 부르셨어요?”

“이거로 문서 다시 작성해서 인쇄 좀 해 와라.”

오재윤은 파일을 건네며 히죽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안마 하나 믿고 긴장이 느슨해져 있는 녀석들이 종종 보였었는데, 그런 녀석들한테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았다.

“조금만 기다리시죠. 아마 금방 가져올 겁니다.”

강태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조금 침묵이 흘렀을까, 강태한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던 오재윤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팀의 개선방안까지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도 이 팀에 관심이 좀 생겼거든요. 가끔 야구 보는 맛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오재윤의 말에 강태한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보다 정확히는, 자기한테 관리를 받은 선수들이 경기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맛이 있는 거였지만,

“근데 요즘 어깨 쪽이 안 좋으신 모양이네요.”

“이야, 보시면 딱 아십니까?”

“뭐 자세 같은 걸 보면 얼추 보이죠. 그럼 시간도 좀 남는 거 같은데, 잠깐 봐드릴까요?”

“엇, 정말입니까!”

슬쩍 던지는 강태한의 말에 오재윤의 표정이 화색이 되었다.

강태한은 슬쩍 시계를 쳐다보고는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까 농담만 해놓고 슬쩍 넘어가는 것도 좀 그러니까요. 5분 정도긴 하지만 잠깐 봐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강태한은 그의 왼쪽 어깨를 붙잡고는 오른쪽 팔꿈치로 어깨 쪽 등을 세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흐그급!”

손가락으로 지압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강도!

순간 저도 모르게 비명을 터트리려는 찰나,오재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비명을 질렀다간 밖에 있는 직원들에게도 들릴 테니까.

허나 비명을 참고 있는 입과 달리, 그의 얼굴은 물에 닿은 솜사탕마냥 스르륵 힘이 빠져서 노곤하게 풀어져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아프지만···.'

그 이상으로 엄청나게 시원하다.

오재윤은 고통과 행복이 동시에 느껴지는 묘한 얼굴로, 5분 동안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한편, 기초훈련을 위해 모여 있는 선수들 앞에서, 오늘 안마를 받을 선수들의 명단이 공개되었다.

“어! 어제 들었던 내용이랑 다른 거 같은데?”

“제가 안마 받을 차례라고 하지 않았어요, 코치님?

“광호 형은 또 왜 받아요! 이번이 세 번째인데!”

사전에 미팅에서 들었던 것과는 달라진 내용.

그렇기에 선수들 사이에서 소란과 반발이 있었지만.

“오늘 명단을 뽑은 기준은 평소 보여줬던 훈련 참여도와 집중도다. 감독님이 정하고 코칭스태프들이 검토한 내용이야.”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던 선수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기준을 들으면 납득할 결과였기 때문이다.

“하하! 그러니까 내가 훈련은 항상 열심히 하는 편이 좋다고 했잖냐!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니까!”

“너희들 훈련 때 설렁설렁 움직일 때부터 알아봤다, 이것들아. 덕분에 안마 시원~ 하게받고 온다!”

반면 원래 명단에 없었다가 추가된 인원들은 코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밀고 박수를 쳤다.

그 중에서도 이광호와 김태평은 특히 신이 나서 주변의 다른 선수들을 놀리고 있었다.

* * *

다음 주 월요일.

박호연의 병원에서 그의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시고, 그로부터 닷새 정도가 지났다.

“여긴가.”

강태한은 스마트폰의 지도를 한 번 더 확인하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이 고개를 내밀고는 손을 휘휘 흔들었다.

“태한 씨. 여기야.”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박호연.

그와 눈을 마주친 강태한은 그가 앉아있는 구석진 자리로 걸어갔다.

그러자 박호연이 싱긋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 태한 씨. 되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네.”

“별 말씀을, 그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 고생은 뭘. 그보다, 뭐 마실 거나 먹을 거 필요 없어? 아까 기다리면서 하나 먹었는데, 여기 치즈 케이크가 생각보다 맛이 좋더라고.”

박호연은 비어있는 접시의 포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는 얼마 전 병원에서 봤을때와는 다르게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는 그럼 여기, 얼그레이 티를 따뜻하게 한 잔.”

“자네는 커피보단 차를 좋아하는 모양이구만, 왠지 잘 어울리는 느낌이군. 잠깐만 앉아있게.”

“아, 제가 주문하고 올게요.”

“괜찮아. 내가 오라고 한 거니까 그냥 앉아 있어.”

박호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태한을 만류하고는 주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조용한 시간이 흐르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박호연이었다.

“자네에겐···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네.”

“괜찮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그때도 충분히 하셨지 않습니까.”

“내가 그랬던가? 하지만, 나는 아무리 해도 부족한 것 같아서 말이야. 하하.”

그는 털털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의사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다.

그렇기에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자주 접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동안 박호연은 많은 죽음을 지켜봐왔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돌아가시는 분도, 주변에 아무도 없이 홀로 쓸쓸히 돌아가시는 분도, 심지어 형제자매들끼리 유산 문제로 싸우고 있는 와중에 숨을 거두신 분도 계셨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부모님 두 분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돌아가시는 분을 처음 봤네.”

말 그대로 선명한 미소를 머금으신 채로 돌아가셨다.

두 분의 마지막이 어땠는지는, 그 한 문장만으로도 설명이 충분했다.

그게 자식 된 입장으로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는 굳이 입에 담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아버지와 오랜만에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 정말 꿈에서나 가능했었던 일이야.”

그렇기에 박호연은 지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부모님에게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만, 적어도 두 분을 배웅하는 그 순간에 있어서 만큼은 아무런 후회도 남지 않은 덕분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자네를 은인(恩人)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거지. 그렇지 않은가?”

박호연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하자 강태한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당사자로서는 꽤 머쓱했던 탓이다.

“음료 나왔습니다.”

타이밍 좋게 등장한 직원이 두 사람 앞에 각각의 음료를 내려놓았다.

강태한은 찻잔에 담긴 티백을 건져 티슈 위에 올려놓고, 차 한 모금을 마셨다.

"근데, 왜 서울까지 올라오신 거에요?”

“그야 자네와 한 약속 때문이지.”

"약속이요?”

강태한은 잠시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박호연과 서울에서 보자고 약속한 적은 없었다.

그가 짐작이 안 간다는 표정을 짓자, 박호연이 당연하지 않냐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한테 꼭 사례를 하겠다고 했잖아.”

“아···.”

그것도 약속이긴 하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전에서 주셔도 되는데.”

“아무래도 빠른 편이 좋지. 그리고 그 사례 때문에 서울에서 볼 일도 좀 있었고.”

그러면서 박호연은 옆 자리에 올려뒀던 서류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강태한에게 서류봉투 하나를 내밀면서 말했다.

“자네한테 어떤 사례를 해야 이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고민을 좀 해봤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자네한테 도움이 될 만한 걸 하나 떠올렸다네.”

강태한은 서류봉투에 들어있는 문서를 꺼내들었다.

대충 보아하니 부동산 투자와 관련된 사업계획서처럼 보였다.

“아버지가 지인 분들과 함께 투자해서 올린 빌딩이 있다네. 거기 계획서를 보면 알겠지만, 밑에는 카페와 식당들을 놓고 그 위에 호텔, 꼭대기에는 사우나를 배치할 예정이야.”

“꽤 규모가 크군요.”

서류를 자세히 살펴보진 않았지만, 첨부되어있는 그림만 봐도 이십층 정도는 되는 고층빌딩임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말년에 참가하신 사업이고 비중도 그리 크진 않지만 그래도 원하는 자리에 가게 하나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서류에 첨부된 사진의 꼭대기층, 그 바로 아래층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이쯤에다 자네 안마샵을 하나 내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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