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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60화 (60/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60화>

박호연의 목소리에는 다소 지친 기색이 느껴졌다.

단순히 과로 때문에 몸이 지쳐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그런 사람들 특유의 분위기가 목소리에 담겨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답변이 부족했다.

강태한은 잠시 뜸을 들인 다음 입을 열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요.”

[···우리 아버지께서는 십 년쯤 전부터 정신이 오락가락하셨지. 소위 치매라고 불리는 증상이라네. 점점 증세가 심해지시다가, 작년쯤부터는 아무런 말도 안하시고 몸도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되셨어.]

박호연은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머니께서도 갑자기 상태가 위태로워지셔서 말이야. 솔직히 언제 어떻게 되실지 장담을 하기가 힘들어. 그런데··· 아버지와 이야기라도 한 번 나눠봤으면 좋겠다고, 저번에 말씀하셨던 게 계속 생각이 나질 뭔가.]

어머니의 상태가 좀 호전되셨을 때, 혹시 하고 싶은 건 없으시냐고 물어봤던 박호연이다.

그때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예전처럼 이야기 좀 나눠보고 싶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당시에는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넘겼었지만···

어머니의 병세가 짙어지고나니, 그때의 말이 계속 그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허나 그건 본인이 이뤄드릴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본인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룰 수없는 일이었다.

치매 환자의 정신을 인위적으로 되찾아주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게 상식이고,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심정으로 자네한테 한 번 부탁이라도 해보는 걸세.]

박호연에게는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의식을 잃고 침대 위에 누워있던 자신의 친구, 신준호의 의식을 강태한이 되찾아줬던 그 순간의 기억을.

그렇다면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잠시라도 좋으니까 아버지의 정신을 원래대로 되돌려놓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박호연은 그 실날 같은 기대를 품으며 강태한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알겠습시다.”

그때까지 묵묵하게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강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일정이 끝나는 대로 원장님 병원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네.]

“대전에 하루 일찍 내려가는 것뿐인데요, 뭐.”

강태한은 그렇게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 * *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오늘도 고생했어, 태한 씨.”

“실장님도요.”

예약이 잡혀있던 마지막 손님까지 마치고 난 후, 강태한은 곧바로 대전으로 출발했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8시 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병원 안으로 들어서자, 로비에 서있던 박호연과 마주쳤다.

“와줘서 정말 고맙네.”

“별 말씀을. 그보다, 병원장이 이렇게 직접 로비에 서 계시면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거 아닙니까?”

강태한이 주변을 둘러보며 가벼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박호연은 실소를 머금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환자 가족이 입원병동 로비에 좀 서있다고 힘들어 한다면, 그건 직원 교육이 잘못된 거겠지. 그렇지 않은가?”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군요.”

“그리고··· 내가 직접 내려와서 안내를 하는 편이 아무래도 조금이나마 더 빠르지 않겠나. 내 마음이 좀 조급해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박호연은 손으로 자리를 옮기자는 신호를 보내더니,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침 1층에 내려와 있던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박호연은 가장 높은 곳인 7층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좌우로 환자실이 늘어서있는 고요한 복도를 따라 좀 걸으니, 박호연이 한 병실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가 우리 어머니가 계신 곳이네.”

그러고는 문을 열고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병실 안으로 들어서는 강태한.

그가 먼저 느낀 것은 병실 안의 기운이었다.

'···이미 한계에 다다르셨다고 봐야겠군.'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기운이 있고, 그 기운은 가지각색의 특색들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도 누구인지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뿜어내는 기운은 하나같이 비슷한 느낌을 띄고 있다.

말라붙고 삭막한 특유의 회색빛 기운.

그리고 이 병실은 그런 기운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침대 위에 누워있는 노부(老婦)의 몸에서는 아무런 활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최소한의 생명유지를 위한 생기 정도만 느껴졌을 뿐.

“원래도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었는데 이번에 폐렴을 앓게 되시면서 상태가 더욱 악화되셨네.”

박호연의 말에 강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느린 걸음으로 노부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 저···.”

“괜찮네.”

근처에 앉아있던 간병인이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 박호연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천천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흐음.’

노부의 옆에 선 강태한은 곧바로 그녀의 목덜미를 손으로 가볍게 짚어 상태를 확인했다.

잠시 후, 그의 얼굴 위로 씁쓸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어쩔 도리가 없군.'

인간에게는 수명이라는 것이 있다.

운명처럼 죽는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올 때 갖고 태어나는 기운의 양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소위 선천진기(先天眞氣)라 불리는 개념.

일반적으로 명문(命門)혈에 원기의 형태로 고여 있는 이것은, 내공의 관리에 따라 소모되는 속도를 조금 늦출 순 있을지언정 다시 보충하거나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노부는 이미 선천진기의 양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수명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현대의학의 힘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생기 정도는 불어넣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다.

이미 혈도 자체가 쇠약해져 있거나 중간이 끊어져있어,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해도 제대로 순환을 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이미 깨져있는 항아리.

물을 붓는다고 해도 깨진 항아리 조각들에 방울방울 맺히는 게 고작일 뿐, 거기에 물을 받아서 모아둘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것 같나. 우리 어머니의 상태는.”

강태한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살살 고개를 저었을 뿐.

그는 도움이 될 정도의 생기를 대추(大椎)혈에 불어넣고 천천히 손을 떼어냈다.

“···그렇군.”

강태한의 대답에 박호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박호연은 의사다.

어머니의 상태 정도는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오래 버티셔도 사나흘··· 아니, 당장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단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을 뿐.

“뭐··· 자네한테 부탁을 하고 싶었던 건 어머니보다는 아버지 쪽이었으니까 말이야.”

마지막 인사라도 나누실 수 있도록 아버지의 정신을 되돌리는 것.

그것이 본 목적이었으니 아직 실패했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얼굴이 다소 서글픈 기색으로 물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 *

“원래는 아버지도 7층 병실에 계셨었다네.”

다시 엘리베이터를 향해 복도를 되돌아가며, 박호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태한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정신도 문제지만, 아버지의 건강 상태도 그렇게 좋진 않으셨거든. 최대한 안정을 취하셔야 했다네. 물론, 몸을 움직이실 정신도 없으셨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옆 병실에 입원하시니,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가 계신 병실로 찾아오시는 거야. 원래는 미동도 거의 없으시던 몸을 끌고 오셔서, 간병인이 다시 데려갈 때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서계셨지.”

“병세가 호전되신 겁니까?”

“그건 아니야. 정신도, 몸도 그대로셨어. 그냥··· 무리를 하시는 거였지. 그렇게 매일 어머니를 찾아 오셨던 거야.”

원래 두 분 사이가 나쁘진 않았거든.

박호연은 그 말을 덧붙이며 서글퍼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걱정되셔서 찾아오셨던 걸까.

아들로서는 아버지의 의지를 존중해드리고 싶었지만, 의사로서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병실을 옮기기로 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병실은 5층에 있다네.”

그렇게 말하며 박호연은 엘리베이터의 5층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박호연의 아버지, 박재성이 있는 병실 앞에 도착했다.

“저 왔어요, 아버지.”

박호연이 방문을 열며 인사를 드리자, 침대 위에 앉아있는 노인의 고개가 이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단지 그뿐.

그 외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병실을 옮긴 뒤로는, 주무실 때 빼고는 항상 이 상태로 지내고 계신다네. 그래도 가끔은···.”

말을 이어가던 박호연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는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현명했던 아버지.

그는 아버지가 작은 가게에서부터 시작해 손수 사업을 일궈나가던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었다.

그렇게 사업을 번창시키고서 노년에 들으셨을 때는, 당신께서 필요한 만큼의 자산만 남겨두시고 사회에 대부분 환원한 다음, 박수를 받으며 은퇴를 하셨다.

아들로서는 물론이고,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도 깊이 존경할 수밖에 없는, 그런 멋진 아버지였는데.

그렇게 멋지게 살아오셨던 아버지의 말년이 이렇게 초라하다니.

심지어 아내도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에, 그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치매라는 것이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막을 수도 없는 일이라는 걸 그 또한 잘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야속함에 가슴 한 켠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미안하네. 감정이 좀 격해졌군.”

순간 울컥하여 입을 다물고 있던 박호연이 강태한에게 사과를 건넸다.

한편, 강태한은 그 의 말에 고개를 저은 다음, 천천히 침대로 거기에 앉아있는 박재성에게로 다가갔다.

'이곳도 기운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지만···.'

죽어가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회색빛 기운.

이곳 또한 그 삭막한 기운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작지만 선명한 기운을, 강태한은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 조심하게. 아버지는 누가 만지면···.”

싫어하실 수 있다.

평소에는 가만히 계시지만, 누군가 자신을 만지면 갑자기 역정을 내실수가 있었다.

하지만 박호연은 꺼내던 말을 맺지 못하고 중간에 말을 흐렸다.

강태한이 목덜미 쪽으로손을 대자, 아버지께서 살짝 고개를 숙여 목덜미를 내민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마치 기다리고 계셨던 것처럼.

그렇게 좀 시간이 지났을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뭐라고?”

강태한은 너무나도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지 가능하니까 가능하다고 말하는, 그 정도의 목소리.

박호연은 자기가 잘못 들었나하여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확답은 드릴 수 없고 시간도 조금 걸리겠지만 원장님의 부탁을 들어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요.”

박재성의 몸 상태가 괜찮은 건 아니었다.

이쪽도 수명이 한계에 다다라 몸도, 혈도도 성한곳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최소한의 원기를 남겨두고 있었어.’

그의 하단전에 남아있는 조막만한 원기가, 작은 촛불처럼 미세하지만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직 못 다한 사명이 있는 걸까, 어떤 약속이라도 남아있는 걸까.

어느 쪽이건 간에, 어느 강인한 의지가 본인의 본능마저 꺾어가면서 이 기운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정말인가?”

“네.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 말에 박호연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너무 많은 감정들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던 중, 주머니에 넣어뒀던 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원장님, 713호로 일단 와계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환자분 상태가 좀 안 좋아지셔서···]

어머니를 담당하고 있는 간호사의 전화다.

의료적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의사를 찾지 원장까지 찾지는 않는다.

그렇다는 건 원장을 찾는 게 아니라··· 환자의 가족을 찾는다는 의미였다.

혹시 모를 임종 때문에 말이다.

“···알았네, 곧 가겠네.”

박호연은 그 말을 남기고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강태한을 바라봤다.

“먼저 올라가 계시죠.”

방이 워낙 고요했던 탓에 통화내용은 강태한에게도 충분히 들렸다.

강태한이 위를 가리키며 말하자, 박호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

“자아, 그럼···.”

방에 남아있는 건 두 사람.

강태한은 노인의 몸을 바르게 앉힌 다음, 그의 등 뒤로 돌아가 명문혈 위에 오른손 바닥을 올렸다.

이 노인에게 남아있는 기운이 무엇을 위해 남겨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단서는 있었다.

몸도, 정신도 성치 않은 와중에 매일 같이 아내의 병실로 찾아갔다는 이야기.

분명 거기에 이 노인의 소망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강태한은 생각했다.

“같이 회광반조(回光返照) 한 번 해봅시다, 영감님.”

회광반조.

촛불이 마지막에 화려하게 타오르듯, 마지막 순간에 총기와 원기를 되찾는 현상.

본래 누가 의도하거나 도와준다고 마음대로 일으킬 수 있는 현상은 아니었지만···

대상에게 충분한 수준의 원기와 본인의 의지가 남아있다면야, 이야기는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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