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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59화 (59/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59화>

“흐음.”

강태한은 손에 쥔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화면에는 채은비의 카톡이 띄워져 있었다.

[오빠 저 예선 통과했어요! 무려 조에서 1등임 ㅎ]

[대회 감이나 되찾을 겸 나온 건데 느낌이 좀 좋더라니, 본선까지 가버렸네요~ 이렇게 된 거 바로 프로 생활 시작하면 어떡하나 고민중!!]

메시지 밑에는 골프채를 들고서 해맑게 웃고 있는 채은비의 사진이 있었다.

해맑은 표정도 보기 좋았지만, 새하얀 썬캡과 뒤로 묶어 올린 머리, 그리고 배경으로 깔려있는 광활한 잔디밭이 그녀의 이미지와 꽤나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들어 보기가 좋았다.

자기가 원래 있을 곳으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할까.

“실력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

골프에 대해 조예가 깊진 않지만, 그래도 채은비의 재주가 제법 뛰어나다는 건 처음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단지 허리의 통증 때문에 자유롭게 실력을 뽐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함께 보였을 뿐.

애당초 그렇기 때문에 따로 말을 걸어서 오지랖까지 부려가며 그녀의 상태를 봐준 것이기도 했다.

이런 자잘한 문제로 썩혀두기엔 다소 아까운 인재로 보였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빨리 성과를 낼 줄은.”

그 자잘한 문제였던 허리의 통증이 해결되었으니, 금방 다시 본래 실력을 낼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이야.

강태한은 조그맣게 감탄을 터트리면서도 내심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 손을 거쳐 간 사람이 어떤 성과를 내는 것, 그 자체가 안마사로서 꽤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예선이면 그 다음은 본선인가.'

골프 프로계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예선을 통과했다고 하니까 그 다음에는 본선이 있는 구조이리라.

그렇다면 거기에도 나름 도움을 줄 수 있을것이다.

강태한은 '본선에 가기 전에 안마 한번 받으러 와'라는 카톡을 보내고 스마트폰을 옆에 내려놓았다.

“그럼··· 슬슬 됐을라나.”

그러고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냄비를 슬쩍 쳐다봤다.

중간 불로 한 번 끓여줬다가 약한 불로 느긋하게 익혀지고 있는 냄비.

그 냄비 안에서는 본인이 오늘 저녁으로 먹을 밥이 현재진행형으로 취사가 되고 있는 중이었다.

소위 냄비밥이라고 불리는 방식.

밥이 잘 되었는지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확신할 수 없는 게 냄비밥의 묘미이자 단점이었지만,

야지의 모닥불에서도 밥을 지어봤던 경험이 꽤나 많은 강태한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 된 것 같구만.”

강태한은 냄비의 불을 끈 다음, 냉장실에 넣어둔 플라스틱 용기 하나를 꺼내왔다.

그 안에는 붉은 양념으로 버무려 재워둔 더덕들이 담겨있었다.

냄비밥에서 중요한 것은 충분한 뜸을 들여주는 것.

뜸이 들어가는 시간동안 같이 먹을 양념더덕을 구워주면 시간이 딱 맞는다는 게 강태한의 계산이었다.

프라이팬에 살짝 기름을 두르고, 충분히 달궈둔 프라이팬에 더덕을 올린다.

그리고 안쪽까지 열이 닿도록 약한 불로 조곤조곤하게 익혀주면, 그걸로 끝.

구워놓은 더덕을 프라이팬 채로 탁자에 놓인 냄비받침 위에 올려놓고, 강태한은 다시 가스레인지로 돌아와 냄비 앞에 섰다.

이제 결과물을 확인할 차례다.

그렇게 조심스레 뚜껑을 열자.

“···역시, 가을 송이가 향이 참 좋단 말이지.”

살짝 열려있는 틈을 타고 새하얀 김과 함께 짙은 송이버섯의 향이 한가득 배어나왔다.

막지은 냄비밥의 고소한 향과 함께 퍼져나가는 송이의 향.

이미 냄새만으로도 송이밥 한 숟가락은 맛 본 느낌이다.

뚜껑을 마저 열자, 새하얀 쌀밥 사이사이로 결대로 찢겨진 송이버섯들이 눈에 들어왔다.

강태한은 주걱으로 위아래를 골고루 섞어준 다음, 밥공기에다 옮겨 담고 만들어뒀던 양념간장과 함께 탁자로 가져갔다.

“기대가 되는구만."

그동안 산을 돌아다니면서, 강태한은 송이버섯이 자라있는 곳을 몇 개쯤 봐뒀었다.

그러다가 슬슬 적절한 시기가 되었다 싶어 제법 큼직하게 자란 것들로 몇 송이 정도를 따왔던 것.

송이버섯 자체가 자라는 환경이 좀 까다롭다보니 그렇게 많은 양이 나오진 않았지만, 아버지에게 나눠드리고 본인도 챙겨 먹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그럼 어디 먹어볼까.”

갓 지어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송이밥.

첫 술은 다른 것 없이, 고슬고슬한 쌀밥에다가 송이조각 하나만 같이 떠올려서 맛을 먼저 본다.

음.

입에 넣는 순간 확, 하고 퍼져나가는 짙은 송이향.

쌉쌀하면서도 향긋한 향에 고소한 밥알이 어우러지고, 밥물로 사용한 다시마 육수의 감칠맛이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역시, 좋아.”

송이의 향은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것만한 것이 없다.

특히 가을송이는 별미 중의 별미.

다른 걸 곁들일 것 없이, 이렇게 밥을 지을 때 곁들여주기만 해도 훌륭한 특식이 완성된다.

그리고 여기에 스며들어있는 짙은 영기.

송이 자체가 소나무의 뿌리와 토양에 근간을 두고 자라기에 자연스레 그 기운을 머금게 된다.

영산에서 따낸 이 송이에도 자연스레 영기가 담겨 있는 것.

'이게 곧 영약이지.'

심지어 맛도 좋고 향까지 뛰어난 영약이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할 수 있었다.

강태한은 양념간장을 살짝 떠서 윗부분에 살살 비빈 다음, 두 번째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거기에 자작하게 구워낸 더덕구이까지 한입 베어 무니, 강태한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조찬혁이 샵에 다녀가고 며칠 후.

당시 가게에 있었던 손님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 여파는 생각보다도 훨씬 빠르게, 그리고 크게 일어나고 있었다.

[여기 저번 주 지인에게 추천받은 안마맛집인데, 어제 조찬혁 씨 안마 받고 나오는 것도 봤음. ㄹㅇ 레전드였다 #안마맛집 #연예인봤다 #바로예약함]

[장인코스는 가격도 비싸고 예약은 적어도 2주전부터 해야 된다고 해서 굳이 싶었는데, 조찬혁씨 받고 나오는 거 보고 바로 예약 박아버렸자너 ㅋㅋ #안마맛집···]

[여기 샵 자체도 괜찮은데, 특히 강태한 선생님이 미쳤습니다. 힐링도 이런 힐링이 없습니다. 저처럼 맨날 야근하시는 분들에게 완전추천.]

원래도 SNS에서 간간이 언급되긴 했었지만, 조찬혁이란 키워드가 붙으니 화제성의 수준이 달랐다.

거기에 간증이라도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까지 더해지니, 갑자기 언급되는 횟수가 몇 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 것.

그 덕분일까.

안마샵에 찾아오는 손님의 숫자도 두 배 정도로 껑충 뛰어버렸다.

원래도 찜질방에 있는 사우나치고는 손님이 매우 많은 편이었는데, 이젠 아예 로비가 소란스러워지는 지경이었다.

“여기 샵이 침대가 적은 편이 아닌데···.”

슬쩍 로비를 살펴보고 있던 최성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동안 주말이나 퇴근 이후 손님이 몰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침대가 부족해서 손님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없었다.

근데 지금은 오후 4시.

손님이 딱히 몰릴 이유가 없는 시간인데도 침대가 없어서 손님들을 되돌려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강태한 선생님한테 받으려면 예약을 하고 와야 한다고요?”

“예. 장인코스는 예약이 기본입니다.”

“어쩔 수 없네. 그럼 일반 안마로 받을게요.”

“그게, 지금은 일반 안마도 자리가 없어서 30분은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

“네, 안마샵입니다. 장인코스 강태한 선생님 예약이요? 그게 지금 3주 뒤까지 예약이 꽉 차있는데요. 주말이요? 주말은 다음 달까진 보셔야 됩니다.”

손님도 많고, 예약 문의도 폭주하고 있는 상황.

덕분에 평소 한 명이 서있던 카운터에는 두 명이 서서 손님응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이 정도인데, 만약 조찬혁 배우 사인이라도 걸어놨으면 얼마나 더 왔으려나.”

SNS로 소문이 퍼진 지금도 이 정도인데, 아예 가게에도 사인을 걸어놔서 인증을 하고 있었으면 더욱 심해졌으리라.

“생각보다도 반응이 격하네.”

“요즘 SNS로 퍼지는 게 영향이 좀 크긴 하니까.”

특히나 광고나 이벤트 때문에 올리는 홍보성 게시글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올리는 게시글들이라 더욱 효과가 컸다.

그런 건 아무래도 딱 보면 티가 나기 마련이었으니까.

“이렇게 된 거, 네가 더 바쁘게 움직여야겠는 걸."

“여기서 더 바쁘게 움직일 순 없다고.”

강태한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가 손님이 없어서 쉬고 있었던 건 처음 이곳에 왔었던 이주일 남짓 정도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빨리 실력을 키워야지.”

“내가?”

“그래.”

강태한이 피식 웃으면서 말하고는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로비에는 여전히 많은 손님들이 앉아 순서를 기다리거나 카운터에 줄을 서서 예약을 잡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소화를 시킬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찜질방에 붙어있는 안마샵에는 결국 한계가 있다.

그건 당연한 일이고 강태한 본인도 알고 있었다.

‘슬슬 다음 단계를 생각해둘 때가 됐나.'

황 실장이 간간이 우려했듯이, 그동안 강태한에게 왔던 스카웃 제안은 많았다.

조건을 더 주겠다는 둥, 보장월급을 챙겨주겠다는 둥.

다만 제안을 하는 곳은 반드시 제약이 붙었다.

2년에서 3년, 최소 1년 이상은 여기서만 일을 해줘야한다는 식으로.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다른 사람 밑에 묶여있는 것.

그런 건 별로 내키지 않았다.

만약 강태한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때가 온다면 그건 본인이 가게를 차려 독립할 때라고 생각해뒀었다.

‘그때 성현이가 따라와 준다면 도움이 되겠지.’

안 따라온다고 하면 또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그동안 알고 지낸 최성현의 성격상 반드시 따라와 줄 것을 알고 있다.

강태한이 그에게 안마의 기술과 요령들을 가르쳐준 건 그저 호의 때문에 한 게 아니라 그런 나중의 일까지 염두에 둔 일이었던 것이다.

“뭐냐?”

그러다 슬쩍 최성현을 쳐다봤더니, 눈이 마주치자마자 언짢은 말투로 그렇게 물었다.

“뭐가?”

“방금 눈빛이 약간 좀 꿍꿍이가 있는 느낌이었는데. 약간 성실한 직원을 쳐다보는듯한?”

예전부터 이상한 쪽으로 예감이 좋은 최성현이다.

하지만 강태한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덤덤한 목소리로 대꾸할 뿐이었다.

“기분 탓이겠지.”

“아닌 거 같은데.”

강태한은 자신을 쳐다보는 최성현을 내버려둔 채, 다시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

그때 강태한의 스마트폰에 진동이 울렸다.

'···박호연 원장?’

예전에 조원호 아저씨와 처음 만날 때 같이 있었던 사람이자, 신준호가 입원해있던 병원의 병원장이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 날 이후로는 딱히 연락을 한 적이 없었는데··· 그런 사람이 연락을 했다는 건, 뭔가 중요한 용건이 있다는 것.

본래 업무 시간에 카톡은 하더라도 통화는 되도록 하지 않는 강태한이었지만, 일단은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기로 했다.

“여보세요?”

[아, 태한 씨. 일하는 중일 텐데 미안해. 혹시 내가 누군지 기억하나?]

“물론이죠, 박 원장님.”

[하하. 기억하고 있다니 다행이군.]

박호연은 조그맣게 웃음소리를 냈지만, 그 웃음소리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건 그렇고, 혹시 대전에 내려올 예정은 없는가?]

“대전이라··· 내일 내려갈 예정이네요.”

오늘은 화요일.

딱히 내일 대전에서 약속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버지한테 도라지청도 다시 갖다드릴 겸 이번 주도 대전에 내려갈 예정이었다.

[저, 그럼 혹시··· 미안한 부탁인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말이야.]

“예, 말씀하시죠.” "

[혹시, 오늘 저녁에 잠깐 우리 병원으로 좀와줄 수 있겠다. 사례는 반드시, 꼭 하겠네.]

강태한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저녁에 와줄 수 있겠냐.

그 자체가 미안한 부탁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 뒤의 용건이다.

그냥 와주는 것 자체에는 아무 의미가 없을 테니까.

“혹시 왜 그러시는 지 여쭤 봐도 됩니까?”

그렇기에 강태한은 예, 아니오를 말하기 전에 질문을 먼저 던졌다.

그러자 박호연이 잠시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부모님 두 분에 관련하여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네. 물론 자네한테도 불가능한 부탁일 수 있겠지만, 자식 된 입장으로서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어떻게든 들어주고 싶을 뿐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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