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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57화 (57/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57화>

두통이라는 것은 대체적으로 상단전에 문제가 있을 때 생기는 통증이다.

그리고 상단전의 문제는 대부분 목에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고···

목의 문제는 어깨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게 대부분이다.

머리와 목, 그리고 어깨.

이 세 부위는 육체적으로도, 그리고 혈도 상으로도 굉장히 밀접한 관계로 이어져있으니까.

'흐음.’

그렇기에 강태한은 조찬혁의 어깨에서부터 지압을 시작했다.

어깨의 근육을 먼저 풀어내고, 그 다음엔 목의 근육을 풀어놓는다.

그렇게 되면 상단전까지 이어지는 혈도에 공간이 확보되면서, 혈류의 순환이 원활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안마의 효율도 단박에 뛰어오르는 것이다.

저번에 조찬혁과 만났을 땐 시간을 오래 쓸 수도 없었고, 애당초 길거리 한복판이었기에 목의 혈도에다 숨구멍을 살짝 틔워놓는 수준에 그쳤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헉, 끄흐으읍!”

허나 그게 좋은 일이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지금의 조찬혁은 단호한 목소리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게 안마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다.

선생님이 무슨 송곳으로 찌르거나 절구로 찧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엄지손가락으로 어깨를 지그시 누르고 있을 뿐이라는 걸.

그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건 이성에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

그의 양 어깨는 뼈까지 닿고 있는 듯한 통각을 외치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아, 뭔가··· 뭔가 영감 같은 게 오는 것 같기도.'

점점 새하얗게 물들어가는 머릿속.

그러는 와중에, 괜히 국민배우가 아니라는건지 머릿속에 연기에 대한 생각이 아른아른 떠오른다.

지금의 이 느낌을 고통 받는 연기의 심상(心狀)으로 활용한다면, 연기가 좀 더 생생해지지 않을까···

“끅!”

라는 생각도 잠시, 강태한의 지압이 새로운 곳을 누르는 순간 조찬혁은 더 이상 생각조차 이어나가지 못하고 등을 구부렸다.

“아픈가?”

“예!”

“이렇게 뭉쳐있으니 좀 아프긴 할 걸세.”

혹시 강도를 좀 줄여주시려나?

조찬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지만, 강태한은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곤 생각지도 못했던 해답을 내놓았다.

“그럼 움직이지 않도록 내가 도와주지.”

강태한은 엄지로 계속 지압을 하고 있는 도중에, 중지를 움직여 안쪽 어깨에 위치한 혈을 가볍게 눌렀다.

그러자, 조찬혁의 상반신에 꽉 들어가 있던 힘과 긴장이 스르륵 풀어졌다.

허나 그렇다고 통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단지 안마를 하는 게 좀 더 편해졌을 뿐!

몸을 움직이지 못하자, 이젠 그 반작용으로 얼굴 근육이 한껏 꿈틀거리고 있는 조찬혁이다.

'근육은 얼추 정리가 됐나.'

어깨에서부터 시작해 목덜미까지 주무르고 난 후, 강태한은 등 가운데쯤에 위치한 신주(身柱)혈에 손을 올리고 상단전으로 극소량의 기를 흘려보내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선, 뒷덜미와 허리 부근의 등에 각각 손을 올린 다음, 구부러진 철사 끈을 펴내듯 양쪽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우두두둑.

“억.”

뼈에서 연주되는 맑은 울림소리.

방금 전과 비교하면 고통은 하나도 없고 시원하기만 한 수준이었으나, 그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리는 탓에 조찬혁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새어나왔다.

허나 이건 단지 길을 닦아놓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의 짧은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태한의 두 손이 아래쪽 허리춤으로 내려가더니, 양쪽 엄지손가락이 척추를 타고 오르며 사정없이 혈들을 지압했다.

“오··· 오오오옷!”

마치 짜먹는 요구르트처럼 아래에서부터 척추를 쭉 압박하며 올라오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와 동시에, 전기충격처럼 찌릿한 뭔가가 척추를 타고 위로 올라오더니, 기어코 머릿속까지 닿고는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전신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감각의 폭발.

그는 마치 전신의 신경들이 동시에 깨어나는 듯한 격렬한 인상을 받았다.

지금 느끼고있는 감각만으로도 행위예술 두세 개는 가볍게 낼 수 있을 정도다.

‘느낌이 확 올 수밖에 없겠지.'

그런 조찬혁의 반응에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척추의 대주혈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곳곳에 채워져 있던 탁기들이 빠져나가고 있었으니, 지금 그는 감각이 얼추 두 배쯤은 강해지고 예민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몸이 다시 깨어나는 느낌.

물론 그건 그의 감각이 정말로 두 배쯤 예민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원래 일반인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건강하고, 관리도 잘되어있는 몸 같았지만··· 그 내부는, 감각조차도 한참 둔해져 있었을 정도로 좋지 못했던것이다.

그러니 목만 좀 풀어줬음에도 컨디션이 한참 좋아졌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선생님, 어떻게 이런···.”

전신을 맴돌던 자극이 가라앉자, 조찬혁은 상체를 살짝 들어 올린 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팔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치 십 년 넘게 쌓여있던 피로가 깨끗이 씻겨 내려간 듯한 느낌.

그의 얼굴에는 연기 따위가 아닌,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미소가 나타났다.

“정말 신통합니다. 실력이 비범하실 줄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이야···.”

자신의 몸이 이렇게까지 가볍게 느껴질 수 있을 줄이야.

물론 강태한은 단지 탁기에 찌들어있던 몸을 정상적으로 만들었을 뿐이지만, 조찬혁으로서는 무슨 신체강화라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안마가 마음에 들었는가?”

“예! 솔직히 처음엔 너무 아프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온몸이 시원하고 가벼운 게. 마음 같아선 당장 동네 한 바퀴라도 뛰고 싶은 심정이네요.”

그의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초콜릿 하나를 통째로 먹은 일곱 살 아이처럼 쉬지 않고 뛰어다닐 자신이 있었다.

“다행이군. 하지만, 안마는 다 받고 가야지.”

한편, 그러는 와중에 강태한은 슬쩍 그의 머리 뒤로 걸어갔다.

그리고 엄지를 그의 뒷덜미 위에 올린 채로 그의 머리를 붙잡았다.

“···예?”

“편두통도 손을 좀 봐 둬야하지 않겠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조찬혁이 슬쩍 시계를 보니, 확실히 얼추 6분 정도 되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왜 일까.

순간적으로 그의 머릿속에 불안한 직감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부터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것 같은, 그런 직감이.

'···어라?'

조찬혁은 강태한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 했다.

헌데, 고개가 고정이라도 된 것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세게 잡은 것 같지 않은데도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 이번엔 좀 많이 아플 걸세.”

강태한의 말에 조찬혁은 방금 전 기억을 떠올렸다.

아까 어깨를 지압하고 있을 때, 강태한은, '이렇게 뭉쳐 있으니 좀 아프긴 할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좀 아플 거라고 한 게 그 정도인데, 좀 많이 아프다면 얼마나 아프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그아아아아악!”

그 아픔의 정도를 상상해보기도 전에, 조찬혁은 자신의 머리로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머리를 고정시킨 채, 새끼손가락을 제외한 네 손가락 모두가 각각의 혈들을 지압하고 있는 상황.

조찬혁은 '머리가 쪼개질 것 같다'라는 흔한 표현이 과연 어떤 느낌을 말하는 건지, 생생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 * *

“···후우우.”

잠에서 깨어난 조찬혁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두 눈을 끔뻑거리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고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맑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조찬혁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

말 그대로 머릿속이 환하게 갠 하늘처럼 맑았다.

아니, 맑게 갠 것은 머릿속뿐만이 아니었다.

조찬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듯이 몸을 움직여보았다.

자기 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몸이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몸뿐이겠는가.

항상 더부룩했던 속도 편안하다.

이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속 곳곳에 끼어있던 노폐물들이 싹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었다.

“한참 젊었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혹사 때문에 몸에 온갖 이상들이 생겼었던, 그때 이전에 생생하고 활기찼던 자신으로 되돌아온 것 같다.

온갖 후유증에 시달리고 항상 피로에 찌들어있던 몸.

그걸 치료한 게 아니라, 아예 예전의 몸과 맞바꿔온 듯한 느낌인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단지 자신의 몸 상태가 그만큼 좋지 못했고, 그런 만큼 안마의 효과가 다이내믹하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조찬혁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자기 몸을 둘러보다, 이내 헛웃음을 터트렸다.

'선생님이 비범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길거리에서 발작적으로 일어난 편두통과 공황장애를, 그 어떤 장비나 약도 없이 일 분도 안 되는 시간에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

그 자체로 이미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나름 큰 기대를 걸고 이곳에 왔지만, 그럼에도 기대 이상의 효과라고 할 수 있었다.

“깨어나셨습니까?”

그때 닫혀있던 방문이 열리더니, 어두웠던 방에 주황빛의 조명등이 켜졌다.

조찬혁이 살짝 조명을 가리고 문쪽을 쳐다보니, 거기에 강태한이 서있었다.

“정신 좀 차리시면 차라도 한 잔 드시죠.”

강태한은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 들고 있던 쟁반을 내려놓았다.

거기엔 따뜻한 차 한 잔과 같이 곁들일 두어 개의 비스킷이 놓여있었다.

“혹시 무슨 차입니까?”

번져오는 향이 제법 흥미롭다.

달달하면서도 쌉쌀함이 섞여있는 향.

조찬혁은 쟁반의 찻잔을 손에 쥐면서 넌지시 물었다.

“제가 직접 담근 청으로 낸 칡차입니다.”

“아하··· 이 향이 칡향이었군요.”

답을 들은 조찬혁이 조심스레 차 한 모금을 마셨다.

안마를 받아 몸이 노곤해진 상태라 그런가, 따스한 온기와 수분이 몸 안에 곧장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좋구나.'

잡념 하나 없이 맑은 머리와, 생기가 넘치면서도 차분하고 편안한 몸.

여기에 따스하고 맛도 좋은 차 한 잔까지 곁들여지니, 그야말로 안락한 기분이었다.

올해 느껴본 가장 휴식다운 휴식이라고 할까.

적지 않은 돈을 써서 호화 리조트에 갔을 때보다, 말 그대로 안마용 침대 하나에 작은 테이블 하나 놓여있는 이 작은 방이 더 편안했으니 왠지 묘한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그 모든 건 강태한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와 만나게 된 계기도 강태한이 자신에게 베푼 선행이었으니까.

“약속한 걸 지켰을 뿐입니다.”

“···저, 그래도 뭔가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데.”

그 말과 함께 조찬혁은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던 장지갑을 들었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지금 보답이라고 할 만한 게 금전적인 부분밖에 없었다.

“그럼 대신에 사인 한 장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헌데 조찬혁이 지갑을 열기 전, 강태한이 먼저 말을 꺼냈다.

처음부터 챙겨왔는지, 그의 손에는 사인펜과 사인지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얼마 전 아버지와 함께 집에 있을 때, 조찬혁을 만났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꺼내자 다소 격한 반응을 보이셨던 것이다.

예전에 드라마로 봤을 때부터 팬이었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나중에 만나게 될 일이 있다면 사인이라도 꼭 좀 받아달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었던 것이다.

“사인이요?”

강태한의 말에 조찬혁이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조찬혁이 느끼고 있던 강태한의 인상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신비로운 느낌이었는데, 주변에서 종종 듣는 친숙한 부탁이 나온 탓이었다.

“찬혁 씨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했더니, 저희 아버지가 따로 부탁을 좀 하셔서.”

“아하. 그러셨군요.”

게다가 그 이유마저 인간미가 넘친다.

강태한의 말에 조찬혁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제가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죠.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강, 그리고 호자, 연자 되십니다.”

조찬혁은 곧바로 사인펜의 뚜껑을 열고 사인을 시작했다.

머지않아, 정성들여 멋들어지게 나온 사인 한 장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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