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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46화 (46/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46화>

“짠! 현지 특산물 같은 건 뭔가 그럴 듯한 게 딱히 없어서, 면세점에서 하나 사와 봤어요!”

유세아는 미소를 지으며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크기는 조그맣지만 딱 봐도 고급스럽게 꾸며진 고가품이었다.

'선물이라.’

아까 유세아 본인이 말했듯 놀러간 것도 아니었는데 굳이 선물까지 챙겨온 건가.

새삼스레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강태한은 테이블 위에 놓인 상자를 집어 들었다.

“혹시 열어봐도 되나요?”

“네. 저는 누구한테 선물했을 때 같이 열어보고 반응 보는 게 더 좋더라고요.”

강태한은 유세아의 말에 눈웃음으로 답한 다음, 천천히 상자의 포장을 열었다.

안에서 나온 건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유리병.

그 안에는 연푸른빛의 투명한 액체가 담겨있었다.

“이건··· 향수군요.”’

향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지식이 없지만, 그런 강태한도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는 유명 브랜드의 상품이다.

손목에 살짝 뿌려 냄새를 맡아보니, 산뜻하면서도 가볍고 깔끔한 향이 났다.

강태한이 유세아를 슬쩍 쳐다보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태한 씨는 중후한 분위기도 잘 어울리고 매력적··· 아니, 멋있지만. 흠흠.”

유세아는 굳이 매력적이라는 말을 삼키고는 괜스레 헛기침을 터트렸다.

“어쨌거나 가끔 외모랑 잘 어울리지 않을 때가 있어서요. 그래서 향수로 좀 산뜻한 느낌을 주면 어울리지 않을까··· 해서 골라봤는데.”

그녀는 넌지시 강태한의 눈치를 살폈다.

향수는 좀 그랬나?

그냥 찬혁 선배 말대로 호랑이 연고나 사올 걸 그랬나?

그런 고민에 빠져있을 찰나.

“좋네요. 마음에 들어요.”

강태한은 싱긋 웃으며 순수한 감사를 표했다.

앞서 말했듯 향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자신과 묘하게 어울리는 게 느껴지는 향이었다.

분명 그만큼 많이 고민해서 고른 선물이리라.

“이거, 선물을 받았으면 보답을 해야 하는데···."

“아, 괜찮아요! 그런 부담 드리려고 사온 게 아니고, 그냥 순전히 제가 주고 싶어서 준비한거니까.”

강태한의 말에 유세아가 양손을 저으며 말했다.

허나 강태한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옆에서 종이가방 하나를 들어올렸다.

이곳에 올 때 미리 들고 와서 옆자리에 내려놨던 물건이다.

“어? 그게 뭐에요?”

“별건 아니고, 저도 순전히 세아씨 주고 싶어서 준비한 선물이에요.”

강태한은 방금 전 유세아의 말을 인용하며 미소를 지었고, 유세아의 표정은 당황으로 물들었다.

본인이야 해외에 갔다 왔으니 선물을 사올법도 한 상황이었지만 강태한은 그런 것도 아니다.

자기가 선물을 사왔다고 말한 적도 없으니 답례품을 미리 준비한 것도 아닐 터였다.

“잘 됐네요. 마침 보답할 선물이 있어서.”

강태한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선물을 앞으로 내밀었다.

유세아는 선물을 받아든 채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뒤늦게 안에 든 상자를 꺼내들었다.

“아, 어. 저도 확인해 봐도 괜찮죠?”

“물론이죠.”

손을 타고 전해지는 약간 묵직한 무게감.

강태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세아는 잠시 뜸을 들이다 조심스레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곧이어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예쁘다."

두 개의 찻잔과 차 주전자, 그리고 물그릇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그마한 다기세트.

다기들은 백자처럼 새하얀 빛을 띠고 있었으며, 그 위에는 소박하지만 세련된 푸른 무늬들이 그려져 있어 한층 멋을 더하고 있었다.

유세아는 상자의 뚜껑을 손에 든 채, 한동안 그윽한 눈빛으로 찻잔들을 바라보았다.

“제가 차에 관심이 생겼다 해서 사온 거예요?”

그녀가 넌지시 묻자, 강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백화점에 갈 일이 있었는데, 다예(茶禮)를 테마로 기획 코너 하나를 만들어 놨더라고요. 순간 세아씨 생각이 나서 그때 사뒀었죠.”

저번에 이곳에서 차를 마셨을 때,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 하며 깊은 관심을 보였었던 유세아다.

강태한이 백화점에 간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지만, 마침 열려있는 기획 코너를 보니 그때 일도 생각이 나고 괜찮은 물건도 있기에 하나 구매해 뒀던 것.

“···어떡하죠.”

계속 들고 있었던 상자 뚜껑을 그제야 다시 닫아놓으며, 유세아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음. 별로인가요?”

“아뇨. 너무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그녀는 수줍은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흔히 선물이란 건 정성의 표현이라고들 하지만, 그만큼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선물은 강태한이 다른 용건을 보던 와중에도 자신을 떠올렸고, 자신이 좋아하기를 바라며 잠시라도 고민했다는 증거.. 유세아는 다시 상자를 집어넣은 종이가방을 소중히 끌어안았다..

“저 태한씨 때문에 차가 너무 좋아질 것 같은데.”

그녀는 아이처럼 맑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강태한도 덩달아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근데, 제가 지금 마시고 있는 이 찻잎 이름이 서호용정이었나? 이런 찻잎들은 어디서 구해야 해요?”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유세아가 물었다.

차를 끓이려면 찻잎이 필요한데, 그녀가 이전에 알고 있던 녹차들은 마트에서 파는 티백들이 전부였던 것이다.

“백화점에서 구하셔도 되고, 인터넷으로 주문하셔도 되는데··· 제가 찻잎도 함께 준비했으면 좋았겠네요.”

강태한은 뒤늦게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백화점의 기획 코너가 다예를 테마로 했었던 만큼, 다기뿐만 아니라 녹차, 홍차 가리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찻잎들도 함께 진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태한의 말을 들은 유세아의 표정이 순간 밝아졌다가, 뭔가 쑥스러워하는 기색으로 물들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럼··· 다음에 같이 사러갈까요?”

“아, 좋은 생각이네요. 그때 봤었던 기획코너가 생각보다 잘 되어 있었거든요.”

강태한은 찻잔에 녹차를 따라내며 답했다.

자연스러운 다음 만남의 성립!

강태한의 대답에, 유세아는 소소하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야, 요즘 한하 왜 저래?”

야구팀 대성 웨일즈의 감독, 심태윤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하자 옆에 있던 수석코치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딱히 짚이는 부분은 없는데.”

모니터에는 오늘 한하와 치룬 경기의 스코어와 각종 지표들이 나와 있었다.

그 결과는 대성의 패배.

초반에 삼 점을 앞서갔지만, 5회 때 동점이 나오더니 후반에 역전을 당한 것이다.

“시즌 말에 반짝하는 게 아닐까요? 원래 한하가 가끔 잘할 때가 있잖아요.”

타격코치의 말에 감독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운이 좋아서 반짝거리는 거면 그런 티가나지. 저건 그냥 운이 좋은 게 아니라, 몇몇 선수들 기량이 대폭 상승한거야. 특히 이 양반들.”

감독은 한하의 몇몇 선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광호, 김태평, 장호준 등.

한때 한하의 주력으로 활약했지만 나이를 먹고 폼이 많이 죽었던 선수들이다.

헌데, 저번 주를 기점으로 그들의 성적이 급격하게 향상되어 있었다.

“이번 경기 때 보니, 이 양반들이 전체적으로 신체능력이 좋아졌어. 원래대로 돌아갔다고 해야 되나?”

본래 프로선수라는 게 젊을 땐 체력과 힘으로 밀어붙이고,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 경험과 노련함으로 승부를 보는 것인데, 저들은 오늘마치 젊었을 적의 체력이 되돌아 온 것 같은 피지컬을 보였다.

“그럼 뭐 회춘이라도 한 건가?”

“하지만 최태준 선수도 그렇고, 확실히 요즘 한하 선수들 상태가 좋긴 합니다. 단순히 컨디션이 좋다, 이런 수준을 넘어서서··· 회춘이라도 한 것처럼.”

수석코치는 잠시 뜸을 들이며 뭔가 다른 표현이 없나 생각해봤지만, 이것만한 게 없었는지 결국 회춘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비결이라도 있나?”

“훈련 프로그램에 뭔가 있는 게 아닐까요?”

“합숙이라면 몰라도 시즌 중에 갑자기?”

“아니면 설마 도핑인가?”

“에이, 그럼 도핑테스트는 어떻게 넘어가고.”

이런저런 의견들이 나오지만 하나같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뿐이다.

별다른 성과도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와중.

“저, 제가 한하 스탭 쪽에 지인이 한 명 있는데.”

이야기가 오고가는 와중 계속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던, 트레이닝 코치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얼마 전에 안마사 선생님 한 분이 오시더니, 선수들 반응이 그렇게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그 영향이 있는 게 아닌지···."

순간 테이블 위로 정적이 흘렀다.

거기서 그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심태윤 감독이었다.

“푸핫.”

참지 못하고 새어나온 웃음.

그는 손등으로 입가를 한 차례 닦은 다음,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미안, 송 코치. 내가 자네를 무시한 건 아닌데, 그래도 그건 아니지. 차라리 아까 나온 신종 도핑 이야기가 더 그럴듯 하겠어."

심태윤이 안마의 효과를 무시한 건 아니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저번 경기에서 쌓인 피로와 긴장 상태를 이완시켜주고, 선수들의 휴식과 컨디션 관리에 안마는 상당히 효과적이다.

하지만 단지 그뿐일 뿐.

적어도 심태윤이 알고 있는 상식적인 수준의 안마에, 이런 식으로 선수들의 피지컬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효과는 없었다.

“하긴, 그것도 그렇죠?”

그걸 알고 있는 건 말을 꺼낸 본인도 마찬가지.

트레이닝 코치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자, 주변 사람들도 뒤늦게 웃음을 터트렸다.

* * *

아직 해도 다 뜨지 않은 월요일 오전.

“하아아아···."

아무도 없는 온탕에 혼자 몸을 담그며, 이병호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잠시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다가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살살 주물렀다.

“되게 오랜만이긴 하네, 목욕탕.”

유명 플랫폼에 연재되는 웹툰 ‘무림헌터'의 작가.

원래는 하루하루 연재에 급급하여 목욕탕 같은 건 아예 잊고 살았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작품이 장기휴재에 들어가 있었다.

휴재를 했음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렇다고 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가 저번에 담당 피디의 소개로 알게 된 안마샵의 예약날이 되어 찾아오게 된 것.

다만 집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예약을 해뒀으니 어쩔 수 없이 온다.'라는 마인드였는데, 막상 이렇게 와서 탕에다 몸을 담그고 있으니 생각보다 괜찮은 기분이었다.

'가끔은 이런 기분전환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한 월요일 아침의 목욕탕.

나오지도 않는 플롯을 붙잡고 계속 방구석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이렇게 멍하니 앉아있는 편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기분은 좋아질 테니까.

실제로 이렇게 있다 보니 막혀있던 머릿속이 좀 개운해지는 기분이다.

거기에 더불어 작품에 사용할만한 몇몇 에피소드들도.

‘온천에 가는 것도 단발성 에피소드로는 나쁘지 않겠네. 일단 설산에 게이트가 열려서 그곳에 갔다가, 반로환동을 한 기인에게 도움을 받는 거지.’

반로환동(反老還童)이란, 무협에서 나이를 먹은 정점의 무인이 내공은 고스란히 간직한 채 젊었을 때의 육체로 되돌아오는 현상이다.

그럼 반로환동을 겪은 캐릭터는 어떻게 그려야할까.

외모는 젊지만 분위기는 나이에 맞지 않게 묵직하고 중후한 그런 느낌을 잘 살려야 할 것이다.

생각의 방향이 플롯을 지나 캐릭터 디자인으로 넘어가고 있는 그 때.

"······."

한 청년이 목욕탕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라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시선을 피했겠지만, 이병호의 시선은 계속 그의 뒤를 쫓았다.

그를 본 순간 캐릭터의 영감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딱 저런 느낌이면 괜찮겠어.'

그 청년의 이름은 강태한.

실제로 반로환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과 가장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 할 수 있는 모델이 그의 눈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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