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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45화 (45/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45화>

원래 흥이라는 것은 분위기의 영향이 큰 것이다.

같은 공연이라 해도 모니터 너머로 지켜보는 것과, 현장에서 주변 관객들과 함께 호응하면서 보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비슷한 의미에서 야구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성현이 가끔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는 걸 같이 봤을 땐 그리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는데, 현장에선 관객들이 터트리는 함성과 환호들이 곁들여지니, 원래 야구에 큰 관심이 없었음에도 제법 보는 맛이 난다.

그러면서도 무리해서 그 함성의 대열에 합류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강태한은 그냥 현장의 그 분위기를 즐기며 조용히 맥주잔을 비우고 있었다.

‘음. 아는 얼굴이 또 나왔군.’

게다가 주변의 다른 관객들과는 다르게 강태한만이 즐기고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 또 하나 있었으니.

본인에게 안마를 받은 선수들이 경기에 나와 활약하고, 그 활약에 관객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뿌듯하고 보람이 느껴지는 것이다.

마치 인연이 닿아 가볍게 가르침을 줬었던 신진기수들이, 훗날 비무대회에 나가 활약하고 있는 걸 멀리서 지켜보던 느낌 같다고나 할까.

공수가 바뀌고 다시 찾아온 한하의 공격 차례.

이번에 타석에 오른 타자는 오늘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은 사람 중 한 명인 장호준 선수였다.

강태한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지만, 내심 기대가 되는지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몸을 앞으로 굽혔다.

딱!

그 기대에 부응하는 듯한 깔끔한 타격음!

하늘로 뻗어져 올라간 공은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외야석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이거 심상치 않은데?”

“와, 또 홈런이다, 홈런!”

“미쳤다 한하! 너무 달아서 이가 썩어버리겠어!”

한 번 더 환호를 터트리는 관중들.

허나 그 와중에 한 명.

날아가는 공의 궤도를 따라 카메라를 돌리고 있던 카메라맨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이거 잘못하면 누구 맞겠는데?”

매일 같이 공 날아가는 것만 찍어 왔기에, 공의 방향과 궤도를 보면 대충 얼마나 날아가서 어디쯤 떨어질지 느낌이 온다.

이번 공은 관중석 위로 떨어지는 공.

근데 방향을 보아하니 하필이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다.

슬슬 공의 각도가 아래로 기울기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도 홈런공을 줍는 것보다 일단 몸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쯤···

“민호야!”

위에서 떨어지는 공을 보고, 불길한 직감을 느낀 아버지가 두 칸 옆에 앉은 아이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아버지를 쳐다보는 아이.

떨어지는 공보단 아버지의 손이 먼저 뻗어져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위치가 맞지 않았다.

공은 아이의 머리를 향해 그대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어?”

하늘에서부터 매섭게 내리꽂히던 공은, 갑자기 스르륵 미세하게 방향을 꺾더니 거짓말처럼 아버지의 손아귀에 쏙하고 들어왔다.

“오오오!”

“왕년에 야구 좀 하셨나보네!”

맨손으로 한 번에 홈런볼을 잡아낸 아버지의 모습에 박수를 치는 주변 사람들.

허나 정작 공을 잡은 아버지는 그대로 멍하니 서 있다가, 손에 쥐어져있는 공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한편, 그쪽을 쳐다보고 있던 강태한은 앞으로 들어 올렸던 손을 테이블 위로 내리고, 덤덤한 표정으로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즐거운 분위기에 불상사가 일어나면 쓰나.’

허공섭물(虛空攝物).

내공을 활용하여 멀리 떨어져있는 물건을 손대지 않고 움직이는 기예.

단순히 물건을 옮기는 것치고는 꽤 난이도가 높으며, 내공소모 또한 극심한 편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거리가 멀다면 필요한 내공 또한 급격히 늘어나지만···

허공에 물건을 멈춰 세우고 조종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살짝 잡아당겨 궤도를 바꿔놓는 정도야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음에는 나도 아버지랑 한 번 와볼까···’

방금 전 공을 잡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앉아있는 아들을 꽉 끌어안는 모습.

카메라가 줌인으로 잡고 있는 장면을 모니터로 쳐다보며, 강태한은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한하로 첫 출장을 다녀왔던 목요일 이후.

그 날 경기가 끝나자, 다음 날 인터넷 뉴스에는 한하의 승리를 알리는 기사와 출전 선수들 중 몇 명이 재차 도핑테스트를 받아야했던 작은 헤프닝이 담긴 기사들이 올라왔다.

그 기사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린 것도 잠시···

그 날 강태한의 카오스톡은 한하 선수들의 메시지로 분주하게 울려댔다.

[선생님~~!! 덕분에 회춘한 이광호입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 하나 보내봅니다! 역시 감사는 한우로 표현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

[그건 그렇고 감독님은 안 된다고 했는데, 혹시 다음 주에도 안마 좀 잠깐이라도 받을 수 있는지···]

[선생님, 김태평입니다! 제 홈런 봤습니까? 크흐~ 그 날 경기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전부 선생님 덕분이란 생각이 드네요. 감사의 의미로······]

[근데 혹시 다음 주에 여유가 되시면 저도 좀······]

그날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고 경기에서 활약한 선수들의 카톡들.

다들 감사의 선물을 보내고, 그 뒤에 약간의 흑심이 담긴 메시지를 덧붙여 놨다.

마치 사전에 모의라도 한 것처럼 비슷한 내용들의 메시지다.

구체적인 부분은 조금씩 달랐지만, 하나같이 ‘순서는 이미 지나갔지만 다음 주에도 안마 좀 받을 수 없겠냐’는 메시지였다.

‘한동안은 소고기만 먹어야겠구만···’

선물은 또 왜 다들 한우로 보내는 건지.

벌써 이틀이 지났음에도 또 한 명이 보내온 선물과 카톡을 읽으며, 강태한은 덤덤한 표정으로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선물은 감사히 받겠지만, 안마순서에 관해선 감독님과 협의한 내용이라 안 될 것 같으니, 정 급하시면 예약을 하고 샵에 찾아와달라고.

모든 선수들에게 공통적으로 보낸 답변 내용.

그 뒤에는 안마샵의 연락처를 덧붙여놓고, 강태한은 스마트폰의 화면을 끄고 옆에 내려놓았다.

“태한 씨!”

그때 때맞춰 들어온 유세아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강태한은 싱긋 웃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요!”

“그러게요. 아예 외국에 나갔다 오셔서 더 그렇게 느껴지나 봅니다.”

“그런가 봐요.”

유세아는 미소를 지으며 맞은편 자리에 앉았고, 강태한은 그녀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그녀는 지난번에 마셨던 것과 같은 서호용정 찻잎을 주문했다.

“그건 그렇고, 여행은 어떠셨습니까?”

“나쁘지 않았어요. 근데 태한 씨. 여행이라고 하면 제가 어디 놀러 갔다 온 거 같잖아요.”

유세아는 짐짓 화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으나, 강태한과 눈을 마주치자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이 만난 곳은 저번에도 왔었던 찻집.

꽤 높은 칸막이로 테이블이 나뉘어져 있어 담소를 나누기 좋고, 창가 자리에선 소박하게 꾸며놓은 정원도 볼 수 있는, 나름 운치가 있는 좋은 가게였다.

주문을 마치고 잠시 동안 흐르는 정적.

하지만 머지않아 둘 사이에 자연스레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유세아는 태국에서 겪었던 일과 촬영 중에 있었던 일들을.

강태한은 카톡으로 굳이 말하지 않았던 일들과 자잘한 에피소드들을.

“어, 그럼 한하에서 태한 씨를 스카웃한 거네요?”

“스카웃···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죠. 제가 한하에 소속된 건 아니니까요.”

유세아의 감탄에 강태한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두 사람이 주문한 차가 각자의 앞에 놓였다.

“제가 야구는 잘 모르지만, 한하는 몇 번 들어본 적이 있거든요. 아는 언니가 한하 팬이라서.”

“그래요?”

“팬이라고 하기엔 악감정이 너무 큰 거 같긴 하지만··· 뭐 어쨌거나 본인은 팬이라고 하니까.”

유세아는 대화를 이어나가며, 손으로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첫잔을 우리기 시작했다.

저번에 여기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젠 잘 하시네요.”

“네? 아. 후후. 태한 씨가 마음대로 하면 된다고 했잖아요. 편하게 생각하니 어려울 것도 없더라고요.”

유세아는 괜히 수줍은 듯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시선을 찻잔으로 향한 채 대답했다.

그러다 문득, 전에 이야기하려고 생각해뒀던 내용이 떠올랐다.

“근데요, 태한 씨. 혹시 안마가 편두통에도 효과가 있나요?”

이번 촬영에서 편두통으로 쓰러졌던 조찬혁 선배.

평소 인망이 좋은 선배인데다 편두통을 앓게 된 안타까운 사정도 알고 있고, 무명배우였던 시절 도움을 받았던 적도 있었기에 뭐라도 도와주고 싶었다.

그녀의 질문에 강태한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자세한 건 직접 봐야 알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사실 아는 선배 배우 중에, 편두통을 심하게 앓는 분이 계시거든요. 혹시 태한 씨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물어봤죠.”

유세아는 첫잔을 따라내며 말했다.

그러던 와중, 문득 장난스런 생각이 하나 떠올라 그녀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럼, 제가 지금 한 번 받아볼까요? 저도 가끔 편두통이 올 때가 있는데.”

“세아 씨요? 여기서 봐드려도 되나?”

“괜찮지 않나요? 지인한테 소개를 하려면, 아무래도 제가 먼저 받아보고 소개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

이렇게 하면 강태한이 당황하는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

유세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강태한 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 목덜미를 드러냈다.

“뭐··· 그럴까요.”

허나 그녀의 예상과 반대로 강태한은 덤덤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지도 않고요.”

“에?”

갑작스런 상황에 정작 당황한 표정을 드러낸 건 유세아였다.

허나 그녀가 미처 반응을 하기 전에, 어느새 다가온 강태한이 부드럽게 그녀의 뒷목을 잡았다.

‘역시 근육이 꽤나 뭉쳐있군.’

목은 생각보다 피로해지기 쉬운 부위 중 하나다.

단순히 놓고 봐도 머리와 몸을 연결해주는 곳이며, 상단전과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하기에 굉장히 많은 혈도들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근육이 피로해져서 뭉치면 혈도가 좁아지고, 혈도가 좁아지면 상단전의 흐름이 불안정해지고. 결국은 탁기가 쌓이게 되어,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편두통.

다행히 유세아 같은 경우는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고, 단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두통이 찾아오는 정도였다.

이 정도야 간단한 일이다.

강태한은 엄지와 검지로 뒷목 양 옆에 위치한 풍지(風地)혈을 꾸욱 누른 채, 천천히 목덜미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흐으으···?”

순간 긴장으로 유세아의 몸이 움츠러들었으나, 강태한의 손아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움츠러들었던 몸이 녹아내리듯 자연스럽게 풀어졌다.

‘목만 주무르는데··· 왜 몸이 시원해지는 거지?’

뒷목 양옆에 하나씩 위치해있는 풍지혈.

이곳은 각각 좌뇌 쪽 혈도와 우뇌 쪽 혈도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이자 상단전 쪽 혈류의 순환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혈이다.

그렇기에 풍지혈과 그 주변 근육들을 풀어놓으면, 그것만으로도 주변 일대의 혈도들을 함께 풀어주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

그리고 혈도라는 것이 손바닥만 자극해도 온몸 곳곳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어느 한 부위에서만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혈들과도 유기적인 관계로 이어져있는 개념이다.

게다가 목 부근의 혈도는 상단전과 맞닿아있는 주요 혈자리.

이곳이 풀렸다면, 당연히 그 영향은 몸 전체에 미치게 된다.

처음에는 목과 바로 연결되어있는 어깨.

그 다음에는 가슴, 하복부까지.

뒷목 언저리에서 수도꼭지로 차가운 물을 틀어놓은 듯, 시원한 감각이 혈류를 타고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 느낌이 점점 강해지고, 어느 선을 넘어가려고 할 즈음···

“그만! 조, 좋네요!”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질 무렵, 유세아는 갑자기 몸을 빼내며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이대로라면 뭔가 부끄러운 행동을 할 것 같다는, 그런 직감이 들었던 것이다.

“음? 아직 마무리가 덜 됐는데요?”

“하하··· 이번에는 체험하는 게 목적이었으니까요! 이 정도면 아무 문제없겠는 걸요?”

의아한 표정을 짓지만 일단 자리로 돌아가는 강태한.

한편, 유세아는 소름이 돋은 팔뚝을 감추기 위해 괜스레 옷소매를 끌어내렸다.

“아, 맞다! 그보다 저, 태한 씨 선물 사왔어요.”

그러다 화제도 돌릴 겸, 갑자기 기억났다는 듯이 손뼉을 치고는 핸드백을 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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