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 안마하신다-40화 (40/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40화>

“태한 씨가 그럴 사람이겠냐고.”

황 실장은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리고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안마샵의 위치는 찜질방 근처.

찾아오는 손님은 당연히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샵의 안마사들이 모두 남자들로 구성되어 있어, 젊은 여성 손님이 찾아오는 일이 비교적 드문 게 사실이긴 하지만··· 강태한의 경우엔 그렇지도 않다.

언제부터였는지,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 몇 번 언급이 되더니, 어느 순간부터 젊은 여성층의 예약이 급증한 것이다.

적어도 이렇게 호들갑 떨 필요는 없는 일.

더군다나 강태한은 공과 사는 구분하고, 끊어야하는 부분에선 확실하게 끊을 줄 아는 사람이다.

물론 그건 최성현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저도 태한이 성격은 잘 알죠. 근데···”

“근데?”

“여성분 쪽에서 약간 관심이 있는 듯한 느낌?”

예전부터 연애 쪽으로는 촉이 좋았던 최성현이다.

신입생 엠티 때 커플 예상 적중률이 무려 89퍼센트!

그런 최성현이 보기에, 강태한은 그런 생각이 조금도 없다고 해도 여성 쪽은 관심이 있어보였다.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직감이라고 해야 되나? 그리고, 여성분이 알게 모르게 화장을 하고 오셨더라고요.”

얼굴에 생기를 더해주되 너무 티는 내지 않는 볼터치와, 입술에 은은한 광택을 더해주는 컬러립밤까지.

간단한 화장이긴 하지만, 세안을 하고 다시 화장을 하는 것 자체가 꽤나 번거로운 일이다.

일행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었으니, 순전히 강태한을 의식해서 새로 한 화장이라는 뜻.

“···그새 그걸 봤다고?”

“그냥 딱 보면 알잖아요.”

“참··· 가끔 보면 이상한 데 재주가 있단 말이지.”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최성현.

황 실장은 그런 그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요.”

안마침대에 앉은 채은비가 매트리스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찜질방에 있는 안마샵이라고 해서 규모가 작을 줄 알았는데, 공간도 넓고 이 정도면 시설도 꽤 깔끔한 편이다.

“어떤 걸 생각했는데요?”

“그냥 뭐··· 동네 찜질방에 안마샵 정도? 헤헤.”

뭐 빈말로도 고급스럽다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꽤 본격적인 느낌이다.

채은비는 머쓱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저번에 허리 쪽이 많이 안 좋으셨죠.”

“맞아요. 기억하시네요?”

“그 정도야 뭐. 일단 한 번 엎드려보시겠어요?”

“네~”

강태한의 말에 채은비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답하며 침대 위에 엎드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비록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큰 기대는 되지 않는다.

안마 정도로 개선될 문제였다면 진즉에 해결이 됐을 테니까.

이건 강태한이 못미더운 것이 아니라, 그냥 단지 이쪽이 현실적인 판단일 뿐이었다.

“그럼··· 집중 좀 하겠습니다.”

허나 강태한의 손이 등 위로 올라오는 순간.

‘···음?’

묵직한 무게감과 동시에, 강태한의 손을 중심으로 온몸에 따스한 기운이 퍼져가기 시작했다.

허나 그 온기는 바깥쪽에서 피부를 타고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안쪽의, 마치 혈관을 따라서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에 느껴본 적이 없는 낯선 감각.

허나 그 느낌이 거슬리지는 않고, 오히려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몸이 스르륵 풀어지는 듯한 평온한 느낌이었다.

한편, 강태한은 등에 올려놓은 손을 통해 일종의 기감을 펼쳐, 그녀의 몸과 혈도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채은비가 느낀 따스한 온기는 강태한의 내공에서 비롯되었던 것.

‘역시 몸 자체는 굉장히 건강하군.’

탄력적이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근육이 잡혀있는 몸.

젊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그렇게 몸을 혹사시켰던 최태준도 혈도만 좀 뚫어놓으니 금방 회복되지 않았는가.

그런 의미에서 채은비는 그 최태준보다도 어린데다, 오래 전부터 꾸준히 운동을 하고 적절히 관리를 겸한 덕분에 꽤나 건강한 편이었다.

허나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허리의 통증도 없었으리라.

예상하고 있던 위치를 확인한 순간,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요안(腰眼)혈에 문제가 있군.’

허리의 눈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혈자리.

척추와 골반이 서로 만나는 위치에 양옆으로 위치해있는 두 개의 혈이며, 신체적으로는 척추의 균형을 잡아주고 혈도에선 척추의 대주혈(大柱穴)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당연히 이곳이 척추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할 수밖에 없고, 특히 그 이름처럼 허리 부근에 위치한 혈도 중에선 명문(命門)혈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헌데 이 요안혈의 기운이 다소 불안정하고, 주변 혈도가 복잡하게 얽혀 혈류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흐르지 못한 혈류는 어딘가에 고이거나 정체되고, 자칫하면 탁기로 변질되는 것은 물론, 이게 다시 혈도를 가로막아 더욱 상태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상황을 보아하니, 태생적으로 이 부근이 약하다.’

선천적으로 특정 혈자리나 혈도에 문제를 갖고 태어나는 일은, 무협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도 꽤 흔한 일이다.

단지 그 때문에 신체에 문제가 생길만큼 정도가 심한 경우는 드물고, 그대로 살아도 별 이상은 없는 경우가 많으며, 그마저도 대부분은 자라는 과정에서 회복되거나 제자리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채은비의 경우도 마찬가지.

원래라면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고, 날 때부터 얽혀있던 혈도들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 위치로 되돌아갔겠지만··· 그녀가 하고 있는 골프가 화근이 되었다.

골프라는 운동은 기본적으로 허리에 큰 부담을 주는 운동.

보다 정확히는, 골프채를 휘두를 때 중심축이 되는 척추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다.

물론 프로를 지망하던 사람이 이런 상식을 모를 리가 없고, 평소에도 충분히 대비를 해뒀을 것이다.

탄탄하면서도 유연하게 단련되어있는 허리근육만 봐도 얼추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본래 갖고 있던 혈도의 문제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고, 알지도 못하고 있었을 뿐.

결국 골프를 하면서 누적된 충격으로 혈도의 상태가 악화되면서 이런 증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리라.

‘사실 문제 자체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만.’

단지 혈류가 고여 부풀어 오른 혈도가 하필 척추의 신경과 맞닿아 있어, 골프채를 휘두를 때마다 일종의 디스크 같은 증상을 일으키고 있을 뿐.

만약 그녀가 일반적인 대학생이었다면 지금 이 상태로도 일상생활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을 것이다.

여러 모로 운이 없는 케이스라 할 수 있으리라.

“어떻게 해야 될지 알겠군.”

강태한은 올려놨던 손을 천천히 때어냈다.

문제를 파악했으면 이젠 해결할 차례.

그리고 그 방법은 적어도 강태한에게 있어선 꽤 간단한 일이었다.

“···네?”

노곤한 느낌이 좋아 얌전히 침대 위에 누워있던 채은비.

문득 달라진 강태한의 분위기와 말투에, 살짝 고개를 들고 뒤쪽을 보려던 그녀였으나.

“으히익?!”

다음 순간 현악기의 줄이 끊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그녀의 몸이 가볍게 움찔 튕겨 올랐다.

* * *

우선은 꼬리뼈 위쪽에 위치한 명문(命門)혈.

이곳을 지압하여 체내의 원기를 이끌어내고, 척추를 따라 이어진 십여 개의 혈들을 차례대로 자극하여 하단전부터 중단전까지 이어지는 혈도를 단숨에 활성화시킨다.

척추는 몸의 기둥이자 수많은 혈도와 신경들이 연결되어있는, 감각이 아주 예민한 부위.

강태한으로선 단지 필요한 과정을 되도록 빠르게 끝마쳤을 뿐이지만, 갑자기 짧은 시간에 강렬한 자극을 연속으로 받아낸 채은비는···

“으하아아아···”

기운이 빠진 숨을 내뱉으며, 몸에 힘이 풀린 것처럼 침대 위에 녹아내리듯이 엎어져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등 위에 손을 올리는 강태한.

우선은 처음 명문혈에서 끌어올렸던 원기를 활용하여, 하단전과 중단전 사이에 위치한 혈도를 계속해서 순환시키고 자극하게 한다.

명문(命門)혈은 ‘목숨의 문’이라는 이름답게 본래부터 타고난 생기와 원기를 주관하는 혈자리다.

그렇기에 이곳에 담긴 기운은 본인의 체질과 가장 잘 맞는 순수한 성질을 갖고 있으며, 때문에 내력으로서 운용할 때 가장 거부반응이 적게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

물론 그 양은 일반적인 내공과 달리 지극히 한정적이고,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지만···

외부로 발산하는 것도 아니고, 체내 혈도를 순환하다 다시 집어넣는 정도라면 별 문제가 일어나지도 않는다.

‘이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고.’

탁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주요 혈자리들을 뚫어놓고, 혈도에선 계속해서 원기를 빠르게 순환시킨다.

혈도가 끊어졌거나 내상을 입었다면 별개의 문제지만, 이런 식으로 단지 혈도가 엉키거나 꼬여있을 뿐이라면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니나 다를까, 미세하지만 바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도꼭지를 열면 돌돌 말려있던 호스가 펴지듯, 엉켜있던 혈도들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중간마다 풀리지 않고 오히려 엉키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부분은 따로 풀어주면 그만.

집중을 풀지 않은 채 곁에서 지켜보다가, 문제가 생기는 부분은 그때마다 지압을 통해 풀어주고 있는 강태한이다.

“으흐으, 하아.”

한편, 그 모든 과정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채은비로선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갑자기 몸이 점점 뜨거워지더니, 지금은 상반신 전체에서 땀이 흠뻑 배어나오는 중이었다.

‘그렇게 격한 안마도 아닌데?’

한 손은 아까처럼 등에 올리고 있을 뿐이고, 나머지 손은 간간히 몸을 지압해주지만 단지 그 뿐이다.

헌데 곳곳에 막혀있던 혈관들이 뻥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감각에, 온몸에 기운이 서서히 차오르는 느낌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후으, 후우우···”

평소 잠들어있던 혈도들을 순환시키고 활성화시킨 영향.

채은비는 안마침대에 몸을 뉘인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힘차게 조깅이라도 몇 바퀴 뛰고 온 것 같은 묘한 탈력감과 개운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얼추 끝났군.’

흐트러졌던 혈도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따로 풀어줘야 할 정도로 혈도가 엉키는 일도 거의 사라졌을 쯤, 강태한은 끄집어냈던 원기를 다시 명문혈로 돌려보내고 등에 올려뒀던 손을 뗐다.

이제 남은 건 스스로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 뿐.

고여 있던 탁기들도 빼냈고, 척추의 신경과 가깝게 닿아있던 혈도도 멀찍이 떨어졌다.

채은비가 지금 당장 일어나서 골프채라도 휘두르지 않는 이상,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일은 없었다.

‘시간도 얼추 맞았고.’

시계를 쳐다보니 30분까지 십초 단위만 남아있는 상태.

강태한은 마지막으로 채은비의 상태를 가볍게 살펴본 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 벌써, 끝났나요?”

아직 가쁜 숨을 몰아쉬는 채은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에 강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마 한 숨 주무시고 나면···”

“혹시··· 더 해주면 안 되나요?”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와 동시에 짙은 아쉬움도 함께 담겨있는 목소리다.

채은비는 땀에 젖어있는 머리칼을 가볍게 정리하며 그렇게 말했다.

분명 신기하지만 낯선 경험이었고, 몸이 지쳐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강태한의 손이 떨어지고 달아올랐던 몸이 서서히 식기 시작하자, 묘한 아쉬움이 남은 것이다.

“···안 돼요?”

재촉하듯이 한 번 더 물어보는 채은비.

그녀의 말에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얼핏 부드러워 보이지만 단호한 인상이 담긴 미소였다.

“지금은 잘 시간입니다.”

이젠 회복에 집중해야할 시간.

그리고 회복에 집중하기 위해선 잠을 자는 것이 최선이다.

강태한의 손이 슥, 하고 움직이는 순간, 살짝 일으켜져 있던 채은비의 상반신이 힘없이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