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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38화 (38/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38화>

“고기 어디다가 놔드릴 까요?”

“아, 여기다 놔주세요.”

최성현이 주변 접시를 치워 공간을 마련하자, 그 위로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가 올라왔다.

붉은 살코기와 하얀 비계가 층층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삼겹살.

고기가 야들야들하고 은은한 광택을 머금고 있는 것이, 딱 봐도 품질이 느껴지는 좋은 고기였다.

“이야, 이 집 고기 괜찮네.”

“저번에 한 번 와봤었는데 좋더라고.”

자연스레 고기집게로 손을 뻗는 황 실장.

헌데, 그 이전에 강태한이 먼저 집게를 집어들었다.

“어, 태한 씨. 내가 구울게. 매일 안마하느라 고생하는데 그냥 쉬어.”

“에이. 고기 굽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요. 그리고 원래 고기 사는 사람은 고기 굽는 거 아닙니다.”

오늘 저녁은 황 실장이 사기로 한 자리다.

고기는 원래 얻어먹는 사람이 굽는 것이 바람직한 법.

강태한은 단호한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실장님. 태한이한테 맡기세요.”

“···넌 구우려는 시늉이라도 좀 해라.”

옆에서 손에 깍지를 낀 채 웃고 있는 최성현의 모습.

황 실장이 핀잔을 주자, 최성현은 오히려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시네. 제가 굽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고기는 태한이가 굽는 게 맛있어요.”

“···뭐 얼마나 잘 굽길래?”

“그리 물으면 뭐라 설명할지 모르겠는데··· 게임으로 치면 아이템 랭크 하나가 올라가는 느낌입니다.”

“···그래?”

강태한과 저녁을 먹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같이 고기를 먹으러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고기 굽는 게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겠냐’하겠지만, 왠지 강태한이라면 뭔가 다른 게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뭘 그리 거창하게 말하냐.”

“잘은 몰라도 네가 여기 사장님보다 잘 구울 걸?”

“또 이상한 소리하지.”

강태한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허나 황 실장은 보았다.

강태한이 최성현을 쳐다보며 대화를 나누면서도, 손목 스냅 한 번으로 두툼한 삼겹살을 하나하나 뒤집어가는 모습을.

“근데 실장님, 무림헌터 보신다고 했었죠?”

“그 웹툰? 보지. 매주 챙겨보지는 않지만.”

최성현의 말에 황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헌터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웹툰 플랫폼에 연재를 하고 있는 한 웹툰의 이름이다.

무림에 게이트 사태가 터지면서 무림인들이 헌터가 된다는 내용의 작품.

처음 봤을 땐 이게 뭔 내용인가 싶었지만, 보다보면 은근히 술술 읽히는 맛이 있다.

매주 챙겨보진 않지만 그건 그냥 한 편씩 보면 감질나서 그럴 뿐.

황 실장은 무림헌터라는 작품에 꽤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왜. 뭐 재밌는 에피소드라도 나오냐?”

“아뇨. 그거 장기휴재 들어간대요.”

“뭐?”

히죽 웃던 황 실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안 그래도 휴재가 종종 있던 작품인데, 아예 장기휴재라니.

최신편이 모이길 기다리고 있던 사람의 입장에선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왜?”

“공식으로 나온 말은 없는데··· 그 작가 손목이 예전부터 안 좋았다는 말 많았잖아요. 그래서 수술도 받았었는데, 요새 다시 악화됐나 봐요.”

“아··· 몸 아픈 건 어쩔 수 없지.”

황 실장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딱히 창작이란 걸 해본 적은 없지만, 작가라는 양반들이 건강상태가 매우 안 좋은 편이라는 건 들어봤다.

실제로 직업 평균 수명 자체가 낮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고.

“뭐 작가가 제일 힘들겠죠.”

“그렇겠지 뭐··· 몸 아픈 줄은 몰랐네. 기왕 쉬는 거 푹 쉬고 컨디션 좀 찾아서 오면 좋겠다.”

황 실장은 괜히 파채를 휘적거리며 말했다.

보는 웹툰이라 해봤자 몇 개 없기에 아쉬운 마음은 컸지만, 그래도 아플 때는 쉬는 게 맞지 않겠나.

“이제 먹어도 되겠네요.”

한편, 그동안 고기를 굽고 있던 강태한이 슬쩍 말을 꺼냈다.

순간 불판 위로 고개를 돌린 황 실장의 입이 벌어졌다.

“···태한 씨, 예전에 고기집 알바라도 했었어?”

딱 알맞게 익어 불판 위에서 자글거리는 삼겹살.

고기는 두툼하면서도 한 입에 먹기 적당한 크기로 잘려 불판 위에 삼열 종대로 나란히 정렬해있었다.

게다가 불판 한쪽 구석에는 고기에 곁들여먹기 좋게 구워진 김치와 마늘까지.

‘좋다.’

그냥 쳐다보고만 있어도 좋다.

만약 ‘사람에게 감명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예술의 정의로 잡는다면, 이것 또한 예술이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적어도 황 실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먼저 드시죠.”

그 예술의 한 폭에 고기집게가 들어오더니, 삼겹살 한 점을 집어 황 실장의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황 실장은 조심스레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럼 먹어볼까?”

원래라면 쌈장을 찍어먹지만, 적어도 이 첫 한 점은 그냥 맛봐야 할 것 같다.

황 실장은 젓가락으로 집은 삼겹살을 입 안으로 가져갔다.

‘오.’

탱글탱글한 비계와 잘 익은 살코기의 쫄깃한 식감.

서로 다른 두 부위의 식감이 입 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씹으면 씹을수록 배어나오는 기름진 육즙은 깊은 감칠맛을 자아낸다.

“···이거 맛있다.”

삼겹살은 그 이름처럼 비계와 살코기가 층층이 쌓여있는 고기.

그리고 삼겹살이라는 부위의 매력 또한 비계와 살코기의 적절한 혼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금 먹은 한 점은, 마치 삼겹살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올려놓은 듯한 한 점이었다.

황 실장의 담백하면서도 솔직한 감상에, 최성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 꼬리를 올렸다.

“말했잖아요. 태한이가 고기 잘 굽는다고.”

“···그러게.”

황 실장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손은 이미 다음 한 입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고기가 좋은 거죠, 뭐.”

정작 강태한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빈말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고기에 담겨있는 맛을 효과적으로 끌어낼 뿐이었으니까.

그저··· 그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기를 잘 굽는다고 표현할 뿐이다.

“···태한 씨, 혹시 앞으로 고기 먹을 일 있으면 말 좀 해줘.”

두 번째 고기를 먹고, 그새 쌈까지 야무지게 하나 싸먹은 황 실장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고기는 얼마든지 살 테니까··· 끼워주기만 해.”

이렇게 고기를 구워주는 사람이 있다면, 고기 사는 것 정도는 조금도 아깝지 않다.

황 실장은 반쯤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 * *

“후우우···”

강태한은 들고 있던 역기를 올려놓으며 긴 호흡을 내쉬었다.

잠시 그대로 벤치에 누워있으니, 가볍게 달궈진 근육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제법 기분 좋았다.

‘몸은 꾸준히 단련해줘야지.’

무공을 배제하고 단순히 몸의 근육을 단련하는 방법만 놓고 보면, 무림시절보다 현대의 방식이 훨씬 더 효율이 높다.

갖가지 운동기구들이 종류별로 갖춰져 있고, 학문적으로도 깊은 연구가 이뤄져있으니까.

덕분에 생각해뒀던 것보다 빠르게 몸을 가꿔놓은 강태한이었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근육이란 만들어놓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꾸준히 관리를 해줘야하는 거였으니까.

‘내공의 성장도 예상보다 훨씬 빠르기도 했고.’

그동안 안마를 하면서 흡성대법으로 쌓아둔 양도 꽤 많지만, 무엇보다 영약의 수급처를 확보하면서 내공의 성장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졌다.

그리고 내공과 외공은 서로 균형을 맞춰 함께 단련해야하는 것.

내공이 성장했다는 것은, 그에 맞춰 외공도 그만큼 단련을 해줘야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강태한은 따로 일이 있지 않는 한, 퇴근 후 근처 피트니스 클럽에 들러 몸을 단련하는 일과를 꾸준히 보내고 있었다.

오늘처럼 저녁 약속이 있었던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확실히 운동을 할 때는 속이 든든한 편이 더 좋단 말이지···”

원래는 이후 집에서 영약을 섭취해야하기 때문에 간단한 간식 정도만 먹고 운동을 하지만, 오늘처럼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은 예외다.

평소와 다르게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있는 포만감.

그 때문인지 운동의 효율도 더 올라간 느낌이다.

“저, 선생님.”

그때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키는 강태한보다 작지만 덩치는 좀 더 큼직한 남자.

그는 좌우에 아령 하나씩을 들고서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짐짓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강태한은 벤치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종종 있는 일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저번에 도움을 좀 받았었는데··· 죄송하지만, 자세 한 번만 더 봐주시면 안 됩니까?”

“안 될 거 없죠. 봐주는 것 정도야.”

강태한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하자, 남자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는 아령을 위아래로 서너 차례 움직였다.

“잘하고 계시는데요. 저번보다 훨씬 안정적이네요.”

“그렇습니까? 이게 혼자 하다 보니 가끔 잘하고 있나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강태한의 말에 남자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운동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한 2주 전부터였을까.

강태한이 한 달 만에 삼대 백 몇에서 오백까지 올렸다는 소문이 퍼지고, 그가 운동하는 걸 직접 본 회원들이 늘어나자, 어느 날부터 이런 식으로 강태한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즘 좀 많아진 느낌이지.’

처음엔 한 명, 두 명··· 근데 그 조언들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세 명, 다섯 명.

지금에 와선 그냥 누가 다가오면 그러려니 하는 강태한이다.

사실 뭐 어려울 것도 없다.

무슨 초식을 봐달라고 하거나 깨달음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런 식으로 자세를 봐달라거나 어떤 운동이 좋겠냐고 물어보는 정도니까.

“저, 선생님. 저도 한 번 좀···”

“저도 한 번만 봐주십쇼. 요즘 들어 계속 제자리걸음 중인데, 어디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 명이 조언을 받아가자,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다들 각자 운동을 하는 척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 거다.

“일단 저 하던 운동 좀 마저 하겠습니다.”

“이런,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강태한이 다시 운동을 시작하거나 눈치를 주면 알아서 흩어진다.

본래 근육은 근육을 알아보는 법.

강태한에게 조언을 구하는 시점에서 이미 그를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었기에, 그의 말에는 깍듯하게 따르는 근육청년들이다.

* * *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서울의 아침은 바쁘다.

차는 막히고, 길거리는 붐비고, 지하철은 사람으로 꽉 틀어 막혀 손으로 잡을 곳도 마땅치 않고.

보행자가 많은 곳이라면, 큰 길의 넓은 횡단보도조차도 사람들에 가려 신호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아이구···”

초록불이 켜지자마자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바쁜 시간인 만큼, 그들은 발걸음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뒤쳐지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

걷던 도중에 허리를 삐끗하신 걸까, 한 할머니가 허리를 부여잡은 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초록불은 이미 전부터 깜빡이고 있는 상황.

하지만 할머니는 아직 중앙선도 넘지 못했다.

노파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떠오르고, 발걸음도 다급해졌지만, 그런다고 큰 변화가 일어나진 않는다.

“할머니. 어깨 좀 빌려드릴까요?”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다가와 할머니의 옆에 서더니, 어깨의 높이를 맞추며 말을 걸었다.

“으, 응?”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출근을 하고 있던 강태한.

그는 할머니의 기울어진 어깨 쪽을 받쳐 세우더니, 허리를 감싸 안고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단지 그뿐인데, 자세가 묘하게 편안하다.

처음엔 당황한 듯 어리둥절했지만, 할머니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어느새 초록불이 꺼지기 전에 이미 건너편에 도달해있었다.

“고··· 고마워, 학생. 정말 고마워.”

“별 말씀을요.”

어깨를 풀고 나온 강태한이 미소를 지었다.

키를 맞추느라 허리를 굽히고 있을 땐 몰랐는데, 허리를 피고 나니 거의 두 배는 커진 듯한 훤칠한 인상이다.

“허리가 원래 좀 안 좋으신가 봐요.”

“늙으면 다 그렇지 뭐··· 근데, 학생이 도와줘서 그런가 지금은 멀쩡해진 기분이여!”

할머니가 강태한의 팔을 토닥이며 말했다.

“후후. 기분만 그러신 건 아니실 겁니다.”

“그려?”

“예. 제 손이 원래 약손이거든요.”

강태한은 두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얼핏 헛소리처럼 들렸지만 그 마음은 전해진 걸까, 할머니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디보자, 너무 고마워서 뭐라도 사주고 싶은디···”

“괜찮습니다. 제가 출근을 해야 돼서요.”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강태한은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경험상 이럴 땐 빨리 자리를 피하는 쪽이 더 깔끔한 편이다.

‘탕에 몸 담글 시간도 필요하고.’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웬만하면 업무시작 전 목욕은 포기할 수 없는 강태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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