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36화>
당연한 말이지만, 선수들의 신체와 컨디션 상태는 시합의 성적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프로의 세계에선 평소보다 미묘하게 집중력이 떨어진다든가, 왠지 다른 곳에 신경이 쓰인다든가하는, 그런 미묘한 차이마저도 때로 치명적일 수 있다.
몇몇 선수들이 얼핏 사소해 보이는 징크스에 편집적으로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선수에게 부득이한 부상이나 수술의 후유증으로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건 두 말할 것도 없이 치명적이다.
비교적 추상적일 수 있는 정신적인 부분과 달리, 이건 아예 물리적인 영역에서 직접적인 영향이 생기는 거니까.
허나 프로선수와 부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평소의 훈련은 둘째 치더라도, 시합에 나갈 때마다 단시간에 거의 한계까지 피지컬을 끌어올려야하니까.
그럴 때마다 몸에는 무리한 부담이 갈 수밖에 없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몸에 누적되어 쌓여간다.
결국 어느 순간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근육이나 인대가 파열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자칫하면 부상 한 번에 선수인생이 단번에 끝날 수도 있다.
프로선수 생활의 평균 수명이 짧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싹 풀어줄 수 있다면···’
직접적인 사고로 인한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부상들은 그동안 몸에 누적된 피해와 피로 때문에 생기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걸 한 번 초기화 시킬 수 있다면?
부상방지는 물론이거니와, 선수들의 컨디션도 최고의 상태로 끌어올릴 수 있다.
적어도 지금 자기가 직접 체험하고 있는 정도만 되더라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다.
물론 컨디션이 좋아진다고 선수들한테 없던 실력까지 생겨나진 않겠지만, 적어도 본인들이 갖고 있는 실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는 있으리라.
‘효과 좀 볼 놈들이 한둘이 아니지···’
수술의 후유증으로 예전만큼 성적을 뽑아내지 못하고 있는 선수들, 경험은 풍부하지만 이젠 피지컬이 떨어져서 자주 내보내기 힘든 고참들···
곧바로 효과가 나타날만한 선수들이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열 손가락을 가볍게 넘어간다.
이 정도만 되더라도 팀의 전력은 급격하게 두터워진다.
“흐흐··· 그럼 다음 시즌은 사실상 가을 야구 확정 아니냐? 오랜만에 불꽃놀이 한 번 시원하게 할지도? 하하하!”
얇은 주력 선수층과 들쭉날쭉한 시합 포텐셜.
어쩌면 팀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오재윤의 두 입 꼬리가 양쪽 귀로 슬슬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면 좋겠네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훤히 보이는 듯한 말이었기에, 최태준 또한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근데 그럼 일단 섭외부터 하셔야죠.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오셨다면서요.”
“아, 그렇지. 일단··· 저기 카운터 쪽에 가서 물어보면 되려나?”
“아마 그렇겠죠?”
“좋아. 그럼 금방 갔다 오마.”
최태준이 카운터 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바로 그쪽으로 걸어가는 오재윤이다.
십 년은 젊어진 것 같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그 발걸음이 왠지 유독 가벼워보였다.
* * *
“그럼 푹 자고 나오게나.”
“억.”
안마를 마치고 수혈(睡穴)을 짚는 순간, 살짝 고개를 들고 있던 손님이 기절하듯 침대 위로 쓰러졌다.
꿈조차도 꾸지 않는 상태로 빠져드는 깊은 잠.
외부에서 따로 충격이라도 가해지지 않는 한, 이대로 한 시간 동안은 푹 잠에 든 채로 온전히 회복에만 전념하게 될 것이다.
‘수건도 다시 채워놔야겠군.’
높은 확률로 침을 흘릴 것이기에 먼저 베개에 수건을 깔아놓고, 그 위에 손님의 머리를 사뿐히 올린다.
그리고 쓰러지듯 엎어진 손님의 자세를 편안한 자세로 고쳐놓는다.
‘푹 쉬고 나오길.’
그 다음 체온에 맞춰 안마침대의 온도를 조절하고 담요를 덮어준 다음, 마지막으로 방의 불을 끄고 나오면 비로소 한 타임의 마무리다.
깊이 잠든 손님이 회복을 마치고 기분 좋게 깨어나기를 바라며, 강태한은 조심스레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아, 오셨어요?”
그 다음 강태한이 향하는 곳은 각종 비품들과 손님들의 음료가 구비되어있는 준비실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참 비품을 정리하고 있던 담당직원이 강태한에게 인사를 건넸다.
“방금 나왔습니다. 그보다 3번방에 수건이 다 떨어져가더라고요. 이따가 채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인코스 3번방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리고 차는 칡차로 평소처럼 내주시면 됩니다.”
“3번방, 칡차··· 알겠습니다.”
강태한의 말에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시간짜리 진동 타이머의 버튼을 눌렀다.
평소처럼 내주시면 된다는 말은, 앞으로 한 시간 뒤에 손님이 일어날 거라는 말이었다.
사실 이상한 소리다.
사람이 언제 자고 일어날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거짓말 같게도, 저 선생님이 말하는 시간에 다과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면 방금 막 일어나있는 손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말로 미리 말해둔 시간에 맞춰 손님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슨 침대에 진동알림 기능이라도 달아놓은 건가, 아니면 방에 초음파 알람시계라도 있는 건가.
혹시나 하는 호기심에 온방을 뒤져본 적도 있지만, 그냥 헛수고일 뿐이었다.
지금은 그냥 사람이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그러려니 넘어갈 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실장님이 찾으셨어요.”
방을 나가려던 강태한을 직원이 불러세웠다.
“황 실장님이요? 무슨 일이었는데요?”
“잘 모르겠는데··· 이따가 선생님 나오시면 대기실 가기 전에 사무실 좀 들르라고 하셨었네요.”
사무실이라고 하면 컴퓨터랑 접대용 테이블만 놓여있는, 황 실장이 업무 관련 문서를 처리하거나 가끔 접객을 해야 할 때 쓰는 방이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무슨 일일까.
이런 일은 얼마 전에 성과금 비율을 추가로 올렸을 때 이후로 두 번째였다.
강태한은 몇 개의 가능성을 떠올리며 복도를 걸었다.
똑똑.
“실장님, 강태한입니다.”
“태한 씨 왔구나! 들어와.”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쇼파와 테이블, 화분 몇 개를 구비해둔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태한을 반기는 황 실장.
그 맞은편에서는··· 두 시간 정도 전에 만났던 손님, 한하의 오재윤 감독이 목례를 건네고 있었다.
* *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한하 호크스의 감독을 맡고 있는 오재윤이라고 합니다.”
“예. 만나서 반갑습니다, 감독님. 이곳에서 안마사를 하고 있는 강태한이라고 합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오재윤 쪽에서 먼저 자신을 소개하며 악수를 권했다.
강태한은 그의 손을 잡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가 그새 바뀌어있네.’
안마를 할 때에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연륜을 떠나 묘한 위압감마저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은 사라지고 중후한 분위기만 남아있었다.
좀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라고 할까.
‘일종의 루틴이나 마음가짐 같은 건가.’
야구선수들 중에도 시합에만 들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지는 녀석들이 많다.
눈빛부터가 달라진다든가, 갑자기 안 쓰던 고향의 사투리를 막 쓴다든가.
그 외에도 타석에 오르기 전에 헬멧을 고쳐 쓰고 방망이를 두어 번 돌린다든가, 풍선껌을 씹는다든가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지만, 그것들에는 모두 ‘시합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강태한의 이런 분위기 변화가 루틴의 일종이라면··· 더욱 신용이 가게 되는 부분이다.
그만큼 안마를 할 때 최선을 다해 집중을 한다는 뜻이니까.
“저는 그럼 볼 일 보러 가보겠습니다.”
그때 옆에 서있던 황 실장이 문 쪽으로 한 발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오재윤이 의문스레 물었다.
“실장님도 같이 계셔야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이 자리에 제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태한 씨 일은 태한 씨가 마음대로 하는 거죠.”
어찌 보면 이쪽의 인력을 스카웃해가는 그림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황 실장도 같이 남아 조율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었으나···
‘좋은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가야지.’
강태한의 길을 막거나 무리하게 붙잡을 생각은 없다.
더 좋은 대접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고, 자기가 붙잡을 사람도 아니다.
적어도 황 실장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기에 이런 일에 간섭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오늘 당장 여길 그만두겠다고 하면 굉장히 난감할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그가 알고 지낸 강태한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 태한 씨! 그래도 다음 손님은 받아야 된다?”
찡긋.
황 실장은 윙크와 함께 그 말을 남기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밖으로 나갔다.
잘은 몰라도 그를 응원하는 의미였으리라.
‘역시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진 않았지.’
황 실장이 무슨 생각으로 자리를 비워줬을지, 강태한은 모두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좀 더 욕심을 낼 수 있고 그럴 명분도 나름 있을 터인데, 그저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그 근간에는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깔려있고 말이다.
그 마음을 헤아린 강태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혹시 저 기억하십니까?”
황 실장이 나간 직후 흐르는 잠깐의 정적.
그 정적 속에서 먼저 말을 꺼낸 건 오재윤이었다.
“물론이죠. 3시쯤에 손님으로 오셨잖습니까. 그땐 선글라스를 끼고 계셨죠.”
강태한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오재윤이 머쓱하게 목을 긁적였다.
보아하니 이미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하··· 그건 그렇고 많이 놀랐습니다. 과장이 좀 섞여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받아보니 오히려 그 이상이었으니까요.”
오재윤이 가볍게 허리를 좌우로 비틀며 말했다.
마치 누가 안쪽에 기름칠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허리근육 하나하나가 매끄럽게 움직였다.
“그런데, 보아하니 시간을 그렇게 많이 내주시긴 힘든 상황인 것 같네요.”
“예. 조금 뒤에 다음 손님이 오실 예정이라.”
강태한은 정중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받은 손님이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주일 전부터 예약을 하고 온 손님이다.
개인사정으로 멋대로 취소를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럴 생각도 없다.
어쨌거나 이것 또한 약속이니까.
“그렇군요. 그럼 바로 본론을 꺼내겠습니다.”
크흠, 흠.
오재윤이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저는 선생님께서 저희 팀 선수들을 한 번씩 봐주셨으면 합니다. 안마를 부탁드리고 싶다는 말이죠.”
“그렇군요···”
강태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곳에서 오재윤을 봤을 때부터 대충 짐작하고 있던 내용이다.
이것 말고는 이렇게 따로 불러낼 용건이 없었으니까.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이미 받아두신 예약을 취소하실 수는 없으신 거죠?”
“예. 제가 이곳에서 일을 하는 날에는 따로 시간을 내기가 힘들 것 같네요.”
강태한의 대답에 오재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저희 구단 센터에 방문해주셨으면 하는데··· 실장님 말에 따르면 수요일이랑 목요일이 휴일이라고 하시더군요. 맞습니까?”
“네. 그렇게 이틀을 쉬고 있죠.”
“그럼··· 목요일에 와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매주 와주시면 좋겠지만, 달에 두세 번 와주시기만 해도 좋습니다.”
수요일은 구단 쪽의 일정 때문에 아무래도 힘들다.
제안을 건네고 넌지시 반응을 살펴보는 오재윤.
허나 일정이 있는 것은 강태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고개가 좌우로 움직였다.
“죄송하지만, 목요일은 힘들 것 같습니다.”
“어··· 혹시 다른 일이 있으십니까?”
“그 날은 제가 수업을 들어야 해서.”
“···네?”
수업? 생각하지 못한 단어의 등장에 오재윤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떠오른 가능성 중 하나를 넌지시 입에 담았다.
“호, 혹시 대학생이십니까?”
“예. 아직 한 학기가 남아있어서. 수요일은 몰라도 목요일은 아무래도 힘들겠네요.”
“아··· 학업은··· 중요하죠, 예.”
당황한 오재윤이 말을 더듬거렸다.
수요일은 괜찮다고 했지만, 수요일은 이쪽에서 안 된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선수들 예약을 다 잡아놔야 하나?
번거롭긴 하겠지만, 정 안 되면 이거라도 해야지 뭘 어쩌겠는가.
순간 당황한 오재윤이 다른 대안들을 떠올리느라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
“하지만 프로 구단에 출장을 나가는 정도라면··· 교수님께서 출석 인정을 해주실 지도 모르겠군요.”
강태한이 넌지시, 새로운 제안을 내밀었다.
출장도 나가고, 돈도 벌고, 수업에 안 나가도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방안을 말이다.
“근데 저희 교수님이 출결문제는 좀 엄격하신지라, 제가 말씀드린다고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학교랑 교수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희 쪽에서 다 진행해놓겠습니다.”
그리고 오재윤은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