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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32화 (32/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32화>

‘그건 그렇고 영 심심하네.’

골프는 하더라도 어색하게 힘 조절을 해야 하니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산책을 하러 가기도 애매하기에, 결국 강태한은 다른 사람들이 연습하는 모습이나 지켜보고 있었다.

골프가 좋아 평일에도 잠깐 짬을 내서 연습하러 온 사람, 업무의 연장선으로 사실상 끌려온 사람, 한가해서 와본 듯한 딱 봐도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

수요일 오후임에도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 둘러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강태한의 시선은 그 중에서도 근처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한 여학생에게 유독 자주 머물렀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 연습장에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바로 저 친구였던 것이다.

나이는 가장 어려보이는 데도 말이다.

물론 강태한이 골프의 전문가는 아니기에 세세한 평가는 내릴 수 없겠지만, 그래도 각 동작에 실린 힘의 균형과 기교 정도는 알아볼 수 있다.

아마 저 나이에 저 정도의 성취를 이뤘다면, 재능도 있을 뿐더러 진지한 마음으로 업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리라.

‘허나··· 그래서 더욱 안타깝군.’

자세도 좋고 호흡과 휘두르는 타이밍도 적절하다.

의식하지 않아도 무의식에서 나오는, 분명 오랜 시간 기초부터 다져온 실력일 것이다.

허나 스윙을 하는 순간, 허리가 돌아가는 시점에서 흠칫 몸이 떨림과 동시에 균형이 무너진다.

얼핏 봐선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찰나의 틈이지만, 그 찰나의 영향은 치명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날아간 공의 궤적을 지켜보는 그녀의 표정이 어두웠다.

몇 번에 한 번씩은 꼭 나오고 있는 실책.

허나 그 원인은 실력과 연습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허리의 부상 때문으로 보였다.

그게 보이는 강태한의 입장에선 안쓰럽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후우우···”

방금 전 스윙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일까, 그녀는 장비를 내려놓고 뒤쪽의 벤치에 앉았다.

벤치가 드문드문 있었기에, 그녀가 앉은 곳은 자연스레 강태한의 옆자리가 되었다.

“잘 치시던데요.”

“···아, 네.”

강태한이 먼저 말을 걸자, 그녀는 적당히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골프연습장에 있다 보면 말 거는 사람은 종종 있지만, 그리 달갑지 않은 게 그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헌데 강태한을 쳐다본 그녀의 얼굴에 순간 흥미로운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어라. 그 이상하게 잘 치던 아저씨.”

“이상하게?”

“근처에 있어서 아까 조금 봤죠. 자세는 야매로 배운 것 같은데 공은 시원시원하게 잘 치더라고요.”

대충 자세를 보면 제대로 배운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헌데 강태한은 슬쩍 본 것만으로는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정석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나름 숙련된 경지에 올라있는··· 그런 묘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제대로 안 배우고 혼자 오래 친 사람이 그런 느낌이 나긴 하는데, 아저씨 정도 되는 수준은 또 처음 봤네요. 그래서 신기했어요.”

“안 배우고 혼자 치는 티가 좀 났나 봐요?”

“꽤 나죠. 근데 뭐··· 야매여도 아저씨 정도로 치면 굳이 배울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어차피 취미로 치시는 거기도 할 테고.”

그녀, 채은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쪽은 취미로 치시는 건 아닌 것 같던데.”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데요?”

“문외한인 제가 봐도 실력이 탄탄한 게 느껴지더라고요.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은 느낌이라고 하나?”

어차피 심심하던 참이다.

나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기도 했었기에, 강태한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하, 은비 씨는 그럼 초등학생 때부터 골프를?”

“네, 뭐. 그때 무슨 대회 나가서 동메달인가 땄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메달을 걸어보니까 머리가 돌아 버린 거죠.”

채은비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쑥스러우면서도 나름 자랑스러운, 자기가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기억이었다.

“저 고등학생 수준에선 나름 유명하기도 했어요. 검색해보시면 나올 걸요?”

“지금 찾아봐도 돼요?”

“아니, 그건 좀 낯간지러운데··· 그래도 찾아보시려면 뭐 찾아보셔도 되고.”

머쓱해하면서도 내심 뿌듯해하는 표정이다.

그렇게 대화를 좀 이어갔을까.

“그럼 이젠 프로로 활동하시는 건가?”

순간 강태한의 질문에 채은비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그녀는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에이, 프로는 뭐 아무나 하나. 골프는 그냥 고등학생 때까지만 한 거고, 이젠 다른 일 알아봐야죠.”

“그렇군요.”

강태한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은 척 봐도 거짓말이었다.

공을 치다 통증으로 실책이 나왔을 때 구겨졌던 표정에는··· 씁쓸함과 미련이 절절하게 묻어 있었던 것이다.

애당초 정말로 골프를 그만두고 깔끔하게 포기했다면, 이렇게 골프연습장에 나와서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부상 때문에 젊은 나이부터 꿈을 포기한다···’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별로 없다.

이것도 인연이고 조금은 도와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여기서 갑자기 허리를 좀 봐줄 테니 엎드려보라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꼴이다.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안했네요.”

강태한은 안쪽 주머니에서 얇은 명함 지갑을 꺼냈다.

장인 코스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황 실장이 갖고 다니라고 선물해줬던 물건이다.

“···안마사요?”

“네.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실력이 나름 괜찮은 편입니다. 그러니까.”

강태한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라도 몸에 불편하신 곳이 있다면 찾아와보세요. 그럴 때 도와드리는 게 제 일이니까.”

“뭐야, 지금 영업하시는 거에요?”

“그런 셈이죠, 뭐.”

강태한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태도는 장난스러웠지만···

미묘하게 달라진 중후한 분위기가, 그의 목소리에 뭐라 설명하기 힘든 신뢰감을 실어주고 있었다.

“따로 연락주시고 7시 이후에만 오시면 됩니다.”

“···왜 7시 이후예요?”

“원래는 예약하고 와야 되는데, 시간 빼서 따로 특별히 해드리는 거거든요.”

“으··· 그거 영업멘트로는 너무 구린데요.”

그렇게 말하며 미간을 찌푸리지만, 조금 있다 웃음을 터트리며 명함을 챙겨 넣는 채은비였다.

“···이야아, 저 친구, 골프 강습 안 받아도 된다고 했던 이유가 있었네. 골프 치러 온 게 아니었구만?”

“허허, 태한이 저 녀석···”

한편, 언젠가부터 강호연과 조원호가 멀찍이서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새 옆에 없어졌길래 뭐하나 했더니, 저러고 있었던 것이다.

“저 은비 학생이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친구가 아닌데··· 형님 아들이 여러모로 비상한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저런 면까지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물론 강태한은 어디까지나 좋은 뜻으로 다가갔을 뿐이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영락없이 연애사업으로 보일 뿐이었다.

* * *

대전 동구의 한 골목에 위치한 태한반점.

강태한의 제안에 따라 저번 주부터 매주 수요일 날 쉬기로 했었지만···

오늘은 수요일임에도 웬일인지 수타면 뽑는 소리가 한참이었다.

텅, 텅, 텅!

힘차게 면을 뽑고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닌 강호연.

묵직하게 소리가 울려퍼질 때마다, 커다란 밀가루 반죽 덩어리가 서서히 면의 형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조원호가 감탄을 터트렸다.

“수타면 뽑는 걸 얼마 만에 보는 건지. 형님, 이거 예사 솜씨가 아니신데요?”

“에이, 뭘. 예전에는 다 이 정도 했었지.”

“겸손하시기는. 저도 예전 사람입니다?”

강호연은 손사래를 치며 웃어넘겼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이다.

수타면을 치는 손놀림에 미묘하게 더 많은 힘이 들어가 있었다.

골프연습장에 있던 두 사람이 어째서 이곳에 와있는가.

그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강호연의 첫 골프체험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지만, 어떻게 정도 없이 곧바로 헤어지겠는가?

당연히 밥이라도 같이 한 끼 하자는 말이 나왔다.

여기서 조원호는 강호연이 중화요리사라는 말을, 그것도 직접 수타면까지 뽑는다는 말에 흥미를 갖고 있었고···

자연스레 ‘그럼 기왕이면 형님 가게로 갑시다’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수타면까지 뽑아내고 있는 상황이 된 것.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물 흐르듯 이곳까지 오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새삼 당황스러운 강태한이다.

처음엔 골프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조원호에게 연락을 한 것인데, 직접 1:1강습을 해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아예 친구 같은 관계가 되어버렸다.

처음 봤을 때부터 붙임성이 좋은 성격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원호의 친화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니, 이 정도면 그냥 한쪽의 사교성이 좋은 게 아니라 양쪽이 서로 잘 맞는 거다.

‘뭐··· 나쁠 건 없지.’

오랫동안 가게 일에만 몰두하시면서, 아버지의 주변 교우 관계가 서먹해졌다는 건 예전의 강태한도 짐작하고 있었던 내용이다.

그러다 마음에 맞는 친구가 생기셨으니, 좋은 일 아니겠는가.

조원호도 성격 자체가 괜찮은 사람이었고 말이다.

“우오, 형님! 이거 팔아도 되겠는데요?”

갓 볶아져 나와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쟁반짜장.

탱글탱글한 면발의 윤기는 물론이거니와, 짜장의 달큰짭짤한 향과 방금 볶아낸 양파의 알큰한 향이 어우러져, 맛을 보기도 전에 입 안이 촉촉해진다.

그걸 한 젓가락 맛 본 조원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감탄을 터트리자, 강호연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파는 거야. 여기가 누구 가게인데?”

“아하! 어쩐지 돈을 내고 싶어지는 맛이더라니.”

그러고 조원호는 맛있다는 것을 표현할 때 가장 활동적인 표현을 취했다.

말없이 먹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람, 그래도 안주 먹을 배는 남겨놓으라고.”

뒤이어 짬뽕탕과 유산슬을 내온 강호연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짬뽕탕에 들어간 푸짐한 건더기와 유산슬에 원래 들어가지 않는 전복이 그의 기분을 반영하고 있는 듯했다.

“으하, 이거··· 술을 안 마실 수가 없네요.”

맛깔나는 쟁반짜장에다가 얼큰한 짬뽕탕 국물, 여기에 짭짤하면서 은근히 담백한 맛을 내는 유산슬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푸짐한 안주상이었다.

“그건 그렇고, 진짜로 형님 배우는 속도가 장난 아닙니다. 조만간 라운딩도 나가실 수 있겠는데요?”

“라운딩이 뭔데?”

“진짜 골프장 가서 치는 겁니다. 사실 오늘 한 건 공 날리기고 필드를 나가야 진짜 골프거든요. 아, 한 잔 더 받으시죠.”

맛있는 식사와 자연스럽게 오가는 대화.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주고받는 술잔.

그야말로 휴일의 마무리로 적절한 저녁 식사다.

그렇게 늘어가는 술병이 한 병, 두 병···

어느덧 다섯 병을 막 비워냈을 쯤, 조원호가 강태한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태한 학생이 술이 되게 세구나?”

조원호는 남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만큼, 술자리도 자주 다니고 주량도 꽤 되는 편이었다.

적어도 어디 가서 술 약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보기에, 강태한은 주량이 된다, 술을 잘한다의 범주를 넘어선 느낌이었다.

아무리 술을 잘한다고 해도 그건 리미트가 높다는 것이지 아예 취기도 오르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지금 셋이서 비운 소주가 다섯 병.

결코 적지 않은 양이다만, 강태한의 얼굴은 붉은 기운이 맴돌기는커녕 그냥 맨 정신인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좀 센 편이긴 하죠.”

강태한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가 취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 앞에서 취할 순 없으니까.’

심법은 내부의 기운과 혈도를 다루는 무공.

기의 흐름조차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강태한에게, 몸 안으로 스며든 알코올 정도는 간에 도달하기도 전에 정화시켜버릴 수 있다.

그에게 취기라는 것은 선택의 영역인 것이다.

오늘은 단지 취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자리일 뿐.

“우리 태한이가 날 닮아서 술이 센가보네.”

“그런 것치고 형님은 얼굴이 빨개지셨는데요?”

“그래서 더 안마시고 있잖아.”

오랜만에 기분도 좋겠다, 마음 같아선 좀 더 마시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내일 가게도 열어야 하기에 여기서 조절을 하는 강호연이다.

“말이 이상한 것 같지 않습니까?”

“젊을 때 그랬다는 거지, 뭐. 그보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술도 깰 겸 잠시 자리를 비우는 강호연.

그렇게 잠깐 정적이 흐르는 와중에··· 강태한이 조원호에게 나지막이 말을 걸었다.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조 사장님.”

“음? 에이, 뭘. 나야말로 오랜만에 기분 좋게 취해서 즐거운데.”

강태한의 말에 조원호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듣자하니, 형님이 아들이랑 오랜만에 놀러 나오신 거 같던데··· 내가 괜히 오지랖 부려서 방해한 게 아닌가 싶어.”

이번에는 강태한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조 사장님 덕분에 아버지가 편하게 골프도 배우셨고··· 조 사장님이 아니었으면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진 못하셨을 것 같네요.”

아버지와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목적은 다소 엇나갔을지 몰라도, 아버지와 즐겁게 휴일을 보낸다는 목적은 완벽하게 달성해냈다.

만약 조원호가 없었더라도 꽤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흥겨운 분위기까지 만들 수는 없었으리라.

가족과 함께 지내며 느끼는 즐거움과, 마음 맞는 친구와 어울리며 느끼는 즐거움은 느낌이 또 다르다.

저번에는 아버지의 전자 쪽 웃음을 볼 수 있었고, 오늘은 조원호 덕분에 후자 쪽의 웃음을 볼 수 있었으니, 강태한으로서도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그러니까 오히려 제가 고맙죠.”

“허허···”

조원호는 잠시 동안 가만히 강태한을 쳐다봤다.

아직 어린아이긴 하지만, 조원호도 자식이 있는 아버지다.

그렇기에, 강태한의 그 말이 너무 속이 깊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우리 자식도 저런 말을 할 수 있게 될까···

강호연에게 부러운 마음마저 느끼며, 조원호는 반쯤 남아있는 술잔을 마저 비워냈다.

“그건 그렇고, 조 사장님.”

“사장은 무슨.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

“···예?”

갑작스러운 관계의 진척에, 자기도 모르게 되묻는 강태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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