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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7화 (27/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7화>

“오, 꽤 시원한데? 느낌 있어.”

최성현의 지압에 황 실장이 감탄을 터트렸다.

바로 직전의 시도와 비교해도 확 달라진 손맛이었다.

“잘 된 건가?”

“이건 이제 잘 하네. 손님한테 해도 되겠다.

강태한은 인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확실히 최성현은 나름 재능이 있는 편이다.

물론 내공이나 혈도와는 관계없는 기본적인 기술일 뿐이지만, 그래도 알려준 걸 곧장 따라오는 속도가 제법 뛰어나다.

“후우. 시간 들여 연습한 보람이 있구만.”

“물론 태한 씨랑 비교하면 차이가 나긴 하지만.”

“에이··· 어떻게 첫 술에 배불러요.”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최성현의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아보였다.

강태한에게 ‘손님한테 해도 되겠다’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라 꽤 듣기 힘든 인정의 기준이었다.

“그럼 전 손님 받을 준비하러 가볼게요.”

“그래, 태한 씨. 고생했어.”

“에이. 실장님이 가운데에서 제일 고생하셨죠.”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는 강태한.

그가 자리에서 떠나고, 잠시 뒤에 황 실장이 최성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근데 성현이 너, 갑자기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

“예? 전 원래 열심히 살았는데요?”

“그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되나? 태한 씨한테 안마를 알려달라고 하질 않나.”

원래도 싹싹하고 일머리가 좋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적극적이진 않았다.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은 잠시 뜸을 들이다 머리를 긁적였다.

직접 말하기엔 조금 쑥스러운 이야기였다.

“···사실 태한이가 온 뒤로 이곳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잖아요? 눈에 띄게.”

“그렇긴 하지.”

다른 곳에 비해 규모가 크고 시설도 깔끔해 원래부터 단골들이 꽤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사우나와 찜질방이 메인이지, 안마샵은 온 김에 겸사겸사 들렀다가 가는 것에 불과했다.

허나 요즘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찜질방은 한가한데 안마샵엔 사람이 붐비는, 원래는 한 번도 없었던 경우가 종종 생겼을 정도다.

아예 안마를 주된 목적으로 찜질방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손님이 늘어나니 당연히 매출이 오르고, 매출이 오르니 안마사들의 수입도 늘어나고···

이 모든 선순환의 기점이 된 것이 바로 강태한이다.

“그래서, 그게 왜?”

“그냥··· 그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성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강태한에게 이곳을 소개해준 건 자신이었지만, 사실 이 일에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임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용돈이나 벌다가 떠나는, 딱 그 정도.

이곳이 일하기 나쁜 곳은 아니었지만, 까놓고 말해 사우나에 딸린 안마샵이다.

자기 혼자 뭘 한다고 해서 바뀌면 얼마나 바뀌겠는가.

헌데 강태한은 달랐다.

사실상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이곳의 분위기를 바꿔놓았고, 지금은 예전에 생각도 못했을 정도로 많은 손님들이 이곳에 찾아온다.

이렇게 한 사람의 영향력이, 그것도 자기가 알고 지내던 친구가 주변을 바꿔나가는 모습은···

최성현에게 그 자체로 하나의 큰 자극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차피 기왕 일하는 거··· 나도 한 번 제대로 해보자. 그런 거죠, 뭐.”

최성현은 손가락으로 코끝을 문질렀다.

물어보니까 대답은 했지만 새삼 머쓱한 이야기였다.

“···자식, 멋진 놈이네, 이거.”

반면 황 실장은 다시 봤다는 듯, 자세를 고쳐 앉으며 최성현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자기보다 앞질러가는 누군가를 보았을 때, 그 사람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건 쉬운 일이다.

감탄을 터트리거나 축하를 해주는 것도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허나 거기서 자극을 받고, 그 뒤를 쫓아갈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지금의 최성현처럼 생각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물론 그렇게 뒤를 쫓아간다고 해서 그 사람처럼 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게 되기는커녕, 뒤를 쫓다가 어설프게 넘어져버릴 지도 모른다.

허나 그렇다하더라도 무슨 상관인가.

설령 도중에 엎어져 멈춰버린다고 해도, 최소한 몇 발자국은 앞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에 변함은 없다.

그런 시도를 한 시점에서 이미 성장을 한 셈이다.

“몰랐어요? 저 멋있는 거.”

“쯧. 방금 걸로 재수 없는 놈으로 바뀌었다.”

황 실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실장님. 저도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뭔데? 말해봐.”

“저는 맨날 반말로 부르면서 태한이는 왜 태한 씨라고 부르는 거에요?”

말투는 반말이지만, 호칭만큼은 무조건 태한 씨다.

예전엔 어색해서 그렇겠거니 했었는데 이젠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은 상황.

최성현이 이런 거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좀 이상했다.

“뭐라 해야 되나··· 태한 씨는 왠지 좀 그냥 이름으로 부르기가 힘들어.”

황 실장은 꽤 오랫동안 찜질방에서 일을 하면서 붙은 안목이 있다.

얼굴을 보거나 대화를 좀 나눠보면, 이 사람의 나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어떤 종류의 일을 하며 살아왔는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강태한에겐 뭐라 딱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마치 몇 십 살은 더 먹은 듯한···

물론 그의 나이가 몇 인지도, 그냥 대학생활을 하다 온 학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느껴지는 인상과 분위기가 전혀 딴판인 것이다.

‘손님들이 괜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아닌 거지.’

황 실장은 혼자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럼 어디···”

퇴근 후 운동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강태한.

산에 다녀온 이후로, 강태한에게는 짤막한 일과 하나가 추가되어 있었다.

그는 얼마 전에 구비해둔 커다란 서랍장으로 걸어갔다.

말하자면 강태한의 영약보관소라고 할까.

산에서 배낭 가득히 캐왔던 약재와 약초들을, 각각의 방식으로 손질하고 가공하여 보관해두고 있는 서랍장이었다.

생식이 가능한 건 가볍게 손질만 해두고, 성질이 억센 것들은 중화를 시키기 위해 꿀에 절이거나 술에 담가뒀다.

아래 서랍에는 직접 빚어서 은박에 감싸둔 환(丸)약도 있었다.

덕분에 방 한 구석에서 약재 특유의 쿰쿰쌉쌀한 향이 퍼지고 있었지만, 강태한에겐 나름 향기로운 냄새라 할 수 있었다.

“오늘도 시작해볼까.”

가장 큰 수확이었던 산삼은 당일에 먹어치웠지만, 그 외에도 먹을 영약들은 잔뜩 남아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약이 많다고 해서 한 번에 그걸 전부 먹어치우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행동이다.

안 그래도 체내의 내공과 영약의 기운이 반발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데, 다른 영약의 기운까지 얽히면 그야말로 개차반이 나버릴 수 있기 때문.

단순히 내상을 입을 위험을 떠나서, 영약의 흡수율도 떨어지고 기껏 흡수한 영기가 탁기로 변질되어 혈도가 혼탁해지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기껏 구한 영약이 안 먹은 것만 못한 꼴이 되는 것.

때문에 강태한은 매일 밤 퇴근한 뒤, 건강식이라도 먹는 것처럼 하루에 한 번씩 일정량의 영약을 꾸준히 섭취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동안 간단한 요깃거리만 하고 저녁은 한참 뒤에나 먹는 강태한이다.

몇몇 한약이 그러하듯, 영약 또한 공복에 섭취하는 편이 훨씬 좋았으니까.

“···도라지랑 더덕은 벌써 다 먹었나.”

서랍장을 둘러본 강태한이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도라지와 더덕은 산삼과 성질이 유사한 만큼 효능도 좋았지만, 효과적인 부분을 떠나 식감과 맛이 좋아 마음에 들었었다.

생채로 썰어서 고추장에 버무려 먹어도 좋고, 그냥 꿀을 찍어먹어도 먹을 만하고···

조리과정에서 영기가 소모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하지만, 구워서 먹으면 이게 또 별미다.

기왕이면 맛도 괜찮은 쪽으로 손이 먼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허나 그러다보니 도라지와 더덕이 벌써 바닥을 드러냈다.

다른 약재들은 아직 꽤나 여유분이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편식을 한 내 잘못이지, 뭐.’

별 수 있나. 남은 걸 먹을 수밖에.

꿀에 절여둔 거나 술에 담가둔 것들은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그다지 없다.

강태한은 환약 한 알을 집어 입 안으로 가져갔다.

영기를 품고 있지만 단독으로 섭식하기엔 그 정도가 미약하거나, 다른 약재와 기운이 서로 맞물려 상승효과가 있는 것들을 모아 따로 빚어낸 물건.

허나 환(丸)이라 해도 소림의 환단(還丹)마냥 거창한 건 아니다.

그냥 말린 약재를 빻아 가루로 만든 다음, 눅진하게 졸인 꿀로 반죽해서 빚어낸, 그야말로 기초적인 형태의 환약이었다.

“···역시 엄청 쓰군.”

순간 강태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만약 이게 소림에서 빚은 대환단이라면,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액체처럼 녹아내려 목구멍으로 저절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다.

허나 이건 강태한이 빚어낸 환약.

그런 거짓말 같은 효과는 당연히 없고, 씹고 삼키는 과정에서 지독할 정도의 쓴 맛이 입 안 가득히 배어나왔다.

허나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다고 했던가.

맛과는 별개로 효과 자체는 충분했다.

위장을 통해 혈도로 스며드는 선명한 영기의 기운.

강태한은 곧바로 자세를 잡고 긴 호흡을 내쉬었다.

“후으으···”

영기는 기의 밀도가 보다 높은 곳으로 끌리는 성질이 있다.

혈도에 들어온 영기는 체내의 내공에 이끌려 자연스레 하단전으로 모여든다.

허나 이대로 하단전으로 보내는 것은 위험하다.

단전에 모여 있는 내공과 맞닥뜨리면 반발이 일어날 것이고, 자칫하면 탁기로 변질되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까.

‘기껏 만든 건데 제대로 써먹어야지.’

우선 체내에 들어온 영기들을 미리 비워둔 중단전으로 끌어 모아 묶어두고, 체내의 내공과 성질을 맞추고 적응시키는 과정이 따로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이고 안전한 방식은 이대로 영기의 기운이 자연스레 흡수되기를 기다리는 것.

허나 보다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하단전의 내공과 중단전의 영기를 따로 끌어올리고, 반발을 억제할 수 있는 선까지 양쪽을 일부러 접촉시키는 것이 강태한의 방식이다.

자칫하면 기의 공정(工程)을 마치기 전에 내력이 먼저 떨어져, 기껏 중단전에 묶어둔 영기가 하단전으로 흘러들어갈 수도 있는 위험한 방식이었지만···

“후우우우···”

강태한의 모습은 지극히 평온할 뿐이다.

들숨과 날숨, 고요한 방 안에 숨소리만 울리고, 어느덧 십 분 정도가 지났을 때, 강태한은 마지막으로 깊은 숨을 내쉬며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하단전 안쪽에서부터 은은하게 느껴지는 열기.

그것이 곧 성공적으로 흡수를 마쳤다는 증거였다.

그 온화한 열기에 강태한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자, 그럼 이제···”

강태한은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내의 내력을 운용하며 땀을 좀 흘린 탓일까, 방금 전보다 조금 더 개운해진 느낌이다.

“치킨이나 시켜볼까.”

허나 내공은 내공이고, 열량은 열량이다.

영약도 좋지만 역시 하루의 마무리에는 고기가 필요한 법.

‘육식은 몸을 무겁게 한다.’ 같은 소리는, 무당과 소림 녀석들이나 하는 소리라는 것이 강태한의 오랜 생각이었다.

* * *

“뭐? 퇴사할 거라고?”

깜짝 놀란 이동찬이 두 눈을 부릅떴다.

잘 지내는 줄 알고 있었던 친구의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그렇게 됐다.”

“왜. 곧 런칭각 잡힌다고 신났던 놈이.”

의문이 가득 실린 이동찬의 말에 어깨가 축 처진 남자, 김민열이 힘없이 웃었다.

안색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빈말로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나도 모르겠다··· 요즘 회사 나갈 생각만하면 너무 힘들더라고. 위에선 허구언 날 정치질이고, 밑에 애들은 나만 믿고 있는데 힘은 없고··· 이런 일에 좀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아니더라.”

김민열은 말을 마치고 웃음을 터트렸지만, 조금도 유쾌해 보이지 않았다.

애매한 중간관리직의 고충.

이동찬은 그런 그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는 원래 동기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친구였다.

입사한 곳도 업계에서 알아주는 대기업이었고, 승진도 가장 빨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랬던 친구의 초라한 모습.

이동찬은 김민열의 비어있는 술잔에 말없이 소주를 채워줬다.

마음은 안타까웠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친구의 말을 들어주는 것과 같이 술잔을 비워주는 것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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