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 안마하신다-21화 (21/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1화>

젊다는 것은 그 자체로 커다란 메리트다.

단순하게 아직 남은 시간이 많다는 것을 떠나, 몸에 가장 많은 생기가 흐르고 빛을 발하는 시기.

하지만 최태준의 몸은 그 활력이 거의 말라가는 상태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내력과 심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슬럼프라는 정신적인 부담과 거기서 벗어나기 위한 육체적인 혹사.

이 두 족쇄가, 일으키는 악순환은 나름 재능 있는 한 청년을 망가트리기에 충분했다.

‘차라리 요령이 있는 놈이었다면 괜찮았겠지.’

외부에서 쏟아진 기대와 비난들.

기대라는 것은 때로 사람을 성장시키지만, 때로 사람을 망쳐놓기도 한다.

아무리 재능이 많은 인간이라 해도 한계는 존재하지만, 타인의 기대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한계를 넘는 기대에 부응하려 한다면?

운이 좋다면 몇 번은 가능할지 모르나, 결국은 본인이 부서지고 만다.

만에 하나 한계를 뛰어넘는다 하더라도 그건 정상적인 과정이라 할 수 없다.

자기가 부러질 것 같으면, 피하는 요령도 필요하다.

허나 이 남자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좋게 말하면 성실하고 나쁘게 말하면 어리석은, 그런 인간이다.

아마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고된 훈련을 반복했으리라.

결국 이런 지경에 이르렀겠지.

몸의 상태만 살펴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할까.

사실, 앞서 언급했듯이 젊다는 건 그 자체로 커다란 메리트다.

내력이 손상되고 기력이 고갈된 건 사실이지만, 회복력이 되살아나도록 손만 좀 봐주면 금방 다시 생기가 넘쳐흐르게 될 것이다.

지금 최태준의 상태는 말하자면 방전된 자동차.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방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 펼쳐진 전선들까지 살짝 맛이 가버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우선은 전선부터 손을 봐줘야겠지.’

명문(命門)혈부터 대추(大推)혈까지,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십여 개의 혈을 차례대로 지압한다.

척추는 가히 몸의 기둥이라 부를 수 있는 곳.

각종 장기들은 물론 하단전에서부터 상단전까지 잇고 있는, 그야말로 몸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또한 척추를 따라 굵직한 대주혈(大柱穴)이 흐르며, 그 굵은 줄기를 따라 형성되어있는 혈들 또한 하나같이 비중이 큰 주요 혈자리들이 된다.

그곳들을 순서대로 빠르게 자극한 것.

그 충격은 순식간에 온몸 곳곳으로 퍼져나가, 마르고 굳어있던 혈도들을 깨워내기에 충분한 정도였다.

“허윽, 허으으···”

허나 그걸 직접 겪고 있는 최태준의 입장은 달랐다.

꼬리뼈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 터져 나가는 듯한 감각!

허나 그뿐만이 아니다.

척추를 타고 아래에서 위로 흘러갔던 자극은, 곧 좌우로 흩어지며 온몸 곳곳, 손가락의 끝까지 파고들었다.

“이런. 숨은 쉬어야지.”

“케흑, 허억, 헉.”

갑작스러운 자극에 호흡마저 버거웠던 최태준.

그를 지켜보던 강태한은 슬쩍 등을 두드리자, 그제야 짧은 기침을 내뱉곤 벅찬 숨을 몰아쉬었다.

“서, 선생님.”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선생님이란 호칭이 나온다.

최태준은 살짝 몸을 일으키고는 손을 내밀었다.

“잠깐만, 잠깐만요.”

두어 차례 크게 호흡한 후에야 겨우 솜을 고르고는, 최태준은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를 잠시 생각했다.

‘뭐지?’

안마를 받아본 적은 꽤 있다.

안마를 받다가 소리를 냈던 적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건 항상 참기 힘든 고통 때문이었지, 이런 기묘한 감각 때문이 아니었다.

이건 마치··· 맞아본 적은 없지만, 전기 충격기라도 맞은 듯한 느낌이다.

아니, 전기 충격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

전기 충격기에 맞는다면 온몸이 고통스럽겠지만, 이건 고통과는 다른 감각이다.

이 말이 어울릴 진 모르겠지만··· 고통보단 쾌감에 가까운, 그런 느낌이다.

‘···어라?’

문득 느껴지는 시원한 감각에 손바닥을 쳐다봤다.

어렸을 적 전기놀이랍시고 오랫동안 팔뚝을 묶었다가 풀었을 때와 같은, 막혔던 피가 다시 통하는 것 같은 그런 감각.

처음엔 손바닥 안에서 맴돌던 그 감각이, 머지않아 온몸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몸 안에 차갑고 맑은 물이 이곳저곳 흘러 다니는 듯한 감각이다.

그 때문일까.

단순히 기분만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처져있던 몸에 활기가 차오르는 듯하다.

“선생님, 이것 참 신통한··· 흐으억!”

허나 그의 감탄어린 찬사는 도중에 끊어졌다.

강태한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혈도를 타고 자극이 퍼질 때까지 잠깐 뜸을 들였을 뿐, 그가 기다려달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슬슬 시작해도 되겠군.’

방금 전에는 그렇게까지 힘을 주지 않았었다.

애당초 혈도에 자극을 흘려보내 깨우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으니까.

굳어있던 혈도에 갑자기 너무 강한 자극이 가해지면 오히려 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필요한, 말하자면 준비운동 같은 과정인 것이다.

이젠 세밀한 미소혈(微小穴)들 사이까지 충분히 자극이 전달되었을 터.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할 준비가 된 셈이다.

“허억, 헉, 흐으···”

물론 최태준 본인도 준비가 되었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강태한의 손길은 아무렇지 않게 각 혈들을 지압하기 시작했다.

“흠. 숨은 좀 쉬게나.”

“커흑, 후우, 후우우.”

중간마다 호흡이 불규칙하다 싶으면 친절하게 적절하게 조치까지 취해주는 강태한이었다.

* * *

“진짜요? 최태준 선수가 왔다고요?”

“그렇다니까, 임마.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냐?”

“실장님이 거짓말하는 건 못 봤지만, 여기에 유명인이 오는 걸 본 적도 없잖아요. 그럼 둘 중에는 실장님이 거짓말할 확률이 더 높다고 보는데?”

최성현의 말에 황 실장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말만 놓고 보면 꽤 타당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듣···고 보니 그렇긴 한데, 진짜라니까? 아까 태한 씨한테 안마 받고, 지금 저 안에서 자고 있다고.”

“진짜면··· 와, 야구선수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네.”

설렘이 밖으로 새어나오는 최성현.

그 모습에 황 실장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너 얼마 전에 최태준 선수 욕하지 않았냐?”

“에이, 그건 그냥 하는 소리죠. 프로데뷔하고 이렇게 빨리 주력으로 올라온 선수가 얼마나 있다고.”

최성현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툴툴거렸다.

평소 말로는 뭐라 했지만 속으로는 그를 응원하던 최성현이다.

한 번은 기사 댓글 창에서 악플 단 놈이랑 한참동안 싸운 적도 있을 정도다.

“근데 마음고생 좀 많이 하긴 하나보더라.”

“그래요? 왜요?”

“그냥··· 내가 봐도 알 정도로 안색이 안 좋더라고.”

황 실장이 안쓰러운 목소리를 냈다.

사우나 찜질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가,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몸도 왠지 살짝 처져 있는 느낌이었다.

“태한 씨가 알아서 했겠지만··· 엇.”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온다더니, 때마침 문이 열리고는 최태준 선수가 밖으로 나왔다.

최성현과 황 실장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자세를 고쳤다.

“안마는 잘 받으셨습니까?”

“예. 굉장히 좋았습니다.”

방금 전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와 완전히 다른 톤을 내는 황 실장의 목소리.

한편, 대답하는 최태준의 목소리가 유독 맑았다.

‘···마음고생 좀 한 것 같다더니.’

최성현이 곁눈질로 황 실장을 쳐다봤다.

밖으로 나온 최태준의 모습은 황 실장이 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안색이 안 좋기는커녕 청량감과 산뜻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허나 당황한 것은 황 실장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사람 인상이 이렇게 휙 바뀐단 말인가?

사람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기라도 한 것 같은 변화였다.

아니면 자기 기억이 잘못되었던가.

“혹시 선생님 명함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아, 예. 물론입니다.”

황 실장은 곧바로 명함을 집어 그에게 건넸다.

강태한의 손님이 안마를 받고 나와서 명함을 찾는 건 이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강태한 선생님이라···’

최태준은 그 명함을 감명 깊게 쳐다봤다.

이 극적인 변화에 놀란 것은 최태준 본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신없이 안마를 받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캄캄한 방에 누워 자고 있었다.

베개에 침을 질질 흘려놓은 채로 말이다.

마치 영화 속의 수면가스라도 마신 듯한 느낌.

하지만 몸에 이상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몸이 너무 개운해.’

의식을 잃기 전과 후.

그 차이는 같은 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극명했다.

팔다리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가볍고, 온몸에 활력이 넘실거리는 것이 스스로도 느껴졌다.

피부의 광택마저도 달라 보일 정도다.

그리고 또 하나.

어깨에 느껴지던 이물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열 곳이 넘는 병원들을 돌아다녀도 사라지지 않던 그 느낌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이다.

“어깨는 어떻습니까?”

최태준이 명함을 넣고 안마샵 밖으로 나왔을 때.

뒤쪽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말투는 다르지만 익숙한 목소리에 최태준이 고개를 돌렸다.

“강 선생님.”

그는 다름 아닌 강태한.

안 그래도 따로 감사를 표하고 싶었었기에 최태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깨는 좀 어떠세요. 나아졌나요?”

“예. 나아진 수준이 아니라 씻은 듯이 사라졌네요. 어떻게 하신 겁니까?”

“나름 신경 좀 썼죠.”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나 강태한이 딱히 특별한 조치를 취했던 건 아니었다.

단지 체내의 혈도를 다시 깨워 활성화시키고, 약간의 생기를 불어넣어 재생력을 끌어올렸을 뿐.

사실 최태준의 이물감의 원인은 사소했다.

수술로 칼을 댄 곳에 혈도의 손상이 있긴 했지만,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레 회복될 정도로 작은 상처였을 뿐이다.

단지 몸이 축나고 혈도가 굳어있어 그동안 회복이 되지 않고 남아있었을 뿐.

결국 이것도 최태준이 본인을 혹사시켜 생긴 문제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몸을 혹사시킨다면 금방 원 상태로 돌아갈 겁니다. 그러니까 충분히 휴식을 취하시길.”

그렇기에 강태한은 시간에 맞춰 나와 구태여 조언을 건넸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십중팔구 다시 혹사와 자책의 악순환에 빠질 테니까.

“그런가요··· 하지만 그러기가 힘듭니다.”

그 말에 최태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제가 프로선수를 하고 있습니다만··· 성적이 좋지 못해요. 저에 대한 팬들의 기대와 실망을 생각하면, 쉬고 있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팬들에 대한 마음가짐으로는 훌륭하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다.

그걸로 본인의 컨디션이 망가질 정도라면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강태한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제가 좋은 처방 하나를 해드리죠.

“···좋은 처방이요?”

최태준의 귀가 쫑긋거렸다.

이미 신기에 가까운 안마솜씨를 체험하지 않았는가.

이번에도 신비롭고 특별한 뭔가가 있을 것이란 기대가 생겼다.

“인터넷 뉴스를 보지 말 것.”

“···예?”

허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극히 현대적인 말.

약간 벙 쪄있는 최태준에게 강태한이 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보단 가까운 사람의 말에 좀 더 집중할 것. 두 가지만 지키십쇼.”

그럼 조심히 가시길.

강태한은 그 말을 남기곤 다시 안으로 되돌아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