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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8화 (18/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18화>

“···어딥니까? 여기.”

힘들게 눈을 뜬 신준호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몸을 움직이려 해도 온몸이 굳어있어 쉽지가 않았다.

“일단은 쉬시죠. 지금은 움직이기 힘드실 겁니다.”

“예? ···윽.”

신준호는 휙 고개를 돌렸다가 왼쪽 어깨를 잡고 몸을 움츠렸다.

오랫동안 의식을 잃고 있다가 갑자기 근육을 움직인 반작용이었다.

“선생님은 의식을··· 그러니까, 며칠이었죠?”

“···아, 준호야. 넌 일주일 넘게 의식을 잃고 있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몸을 움직이면 몸이 놀랄 테니, 가만히 누워서 좀 쉬고 있어.”

강태한이 돌아보자 박호연이 뒤늦게 설명했다.

신준호는 놀란 눈으로 둘을 교대로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병원이네? 이게 뭔 일이냐?”

“너는 어디까지 기억하는데.”

“어··· 산이 너무 멋져서 사진을 찍었지. 근데 각도가 조금 아쉬워서 자리를 옮기려다가···”

굴러 떨어졌다.

뒤늦게 기억이 떠오른 신준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것은 신준호 뿐만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박호연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자신의 친구 신준호와 강태한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신준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의식불명의 상태였다.

조금 심각하게 말하자면 식물인간의 상태.

뇌진탕이 그 원인일 것이라 짐작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정도가 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지지리도 운이 없는 경우라고 볼 수밖에.

그렇게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비교적 심각하지 않은 사고로도 식물인간 상태가 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기는 했다.

제수씨에게는 최선을 다할 거라고,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었지만, 솔직히 어떤 대처법이 있는 것도, 언제 의식이 돌아올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랬는데···’

근데 지금 의식이 돌아왔다.

저 청년이 맥을 짚는다고 목 뒤에 손을 한 번 댔더니, 몇 분만에 의식이 되돌아온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가?

강태한이 대충 뭔가를 하고있는 동안, 어쩌다보니 준호가 딱 그때 의식을 되찾았다.

단지 그랬을 뿐인 가능성도 있지만, 순전히 그렇게 보기엔 너무 절묘한 타이밍이다.

‘이분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죠.“

문득 강태한이 방금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땐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이렇게 보니 마치 해결방안을 찾았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호연아, 미안하다. 또 신세를 졌네.”

“어? 뭐가.”

신준호의 말에 박호연이 뒤늦게 반응했다.

“보니까 너희 병원 같은데.”

“아아. 걱정마라. 제수씨가 계산 다 하셨으니까.”

“그런 얘기가 아니라··· 됐다. 근데, 그보다 이 분은 누구시냐?”

신준호가 강태한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분? 인사드려라. 네 은인이시다.”

“은인?”

“계룡산에서 사진 한 장 찍겠답시고 굴러 떨어진 널 손수 구해주셨고, 그리고···”

박호연은 순간 멈칫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준호가 의식을 찾은 데는 강태한의 도움이 있었을 것 같았지만, 한 명의 의사로선 아직도 이 현상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네 의식을 찾는데도 도움을 주셨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공로를 감추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박호연은 한 박자 늦게 덧붙였다.

소개를 마치자 강태한이 한 걸음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강태한입니다.”

“아, 네. 아직 제가 경황이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아주 큰 은혜를 입은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괜찮아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산에서 약초 캐가는 것 정도는 아무 문제없겠군.

때로는 손만 맞잡아도 감정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신준호가 감사의 의미로 내민 악수를 맞잡으며, 강태한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이것 참 신기하네.”

수요일의 안마샵.

가게 안을 둘러보던 한 안마사가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황실장이 고개를 돌렸다.

“뭐가?”

“요즘 사람들이 막 북적거리는데, 수요일이랑 목요일만 되면 거짓말처럼 또 사람이 확 줄잖아.”

“예전에 비하면 엄청 많아진 거지, 성훈 씨.”

“그렇긴 한데, 다른 날들이랑 비교했을 때 유독 줄어든다, 이 말이지.”

성훈이라 불린 남자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김성훈.

그는 이곳에서 일하는 안마사 중 한 명으로, 강태한이 오기 전까지 이 안마샵에서 고정 손님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했던, 나름 실력 좋기로 소문이 난 안마사다.

그 실력이 어디로 간 것은 아니기에 여전히 많은 단골들이 그를 찾고 있었지만, 요 근래 강태한의 임팩트와 비교하면 다소 부족한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요새 수목 드라마 재밌는 거라도 있나?”

다만 본인만 모르고 있을 뿐.

김성훈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니, 진짜 몰라서 묻는 거였어?”

“뭔데. 알려줘.”

“수목에는 태한 씨가 안 나오잖아.”

“태한 씨? ···아아, 나랑 같이 장인 코스 담당하기로 했던 친구였었나?”

“···너무 관심 없는 거 아냐?”

황 실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원래도 어지간하면 남한테 관심을 잘 안 갖는 사람인 건 알았는데, 그래도 이 정도인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친구 대기실에서 만난 적이 별로 없어서. 그때 물 마실 때 서너 번 정도 마주쳤었나?”

“하긴 태한 씨가 일이 많긴 하지··· 대기실에서도 조용히 명상만 하고 있을 때가 꽤 있고.”

“명상?”

“응. 되도록이면 건드리지 말라고 하더라고.”

흡성대법을 사용하면 되도록 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가는 강태한이다. 한편 명상이란 말을 들은 김성훈은 감명 받은 표정을 지었다.

“이야··· 뭔가 까리하네. 이제 이십대 중반 정도 되어보였는데, 직업의식이 투철한 느낌이구만.”

명상을 한다는 건 휴식을 취할 시간에도 다음 손님을 위해 집중을 한다는 것.

김성훈도 나름 이 일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해보지 못했었다.

“투철한 정도가 아니지. 실력도 장난 아니야.”

“어, 그래?”

황 실장은 그다지 과언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과장스러운 억양에 김성훈이 반응했다.

“저번에 목에 담이 한 번 들었었는데, 슥─하고 잠깐 봐주니까 거짓말처럼 사라지더라고.”

“···거짓말 같은데?”

“그래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고 했잖아.”

황 실장이 실소를 터트렸다.

“솔직히 여기 오래 있을 것 같진 않은 사람이야.”

“왜. 여기가 어때서.”

“우리 안마샵이 별로라는 게 아니라, 그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란 거지. 젊기도 하고.”

지금이야 여러 조건이 맞으니 머무르고 있을 뿐, 아마 때가 되면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다.

뭘 하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될 청년으로 보였으니까.

“···그럼, 나보다 손님도 많냐?”

김성훈은 은근 신경 쓰이는 주제를 슬쩍 물어보았다.

그러자 황 실장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여기서 장인 코스 맡은 사람이 딱 두 명인데, 이렇게까지 관심이 없을 줄은 몰랐네.”

“아니, 물어본 거나 대답해줘.”

“이거 한 번 봐봐.”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황 실장은 두 사람의 예약표를 모니터에 띄워놓았다.

김성훈도 앞의 며칠 동안은 빈 공간을 찾기 힘들 정도로 예약이 많았지만, 강태한은 예약을 잡으려면 아예 일주일 뒤, 그것도 비선호 시간에나 예약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 이 정도라고···?”

“내가 괜히 오버하는 게 아니라니까.”

김성훈은 놀란 얼굴로 모니터를 봤다.

허나 놀라움은 곧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대체 어떻기에.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나 잘하는 지 한 번 봐야겠네.”

“봐서 뭐, 어떻게 하려고.”

“글쎄··· 진짜로 잘하면, 스승님으로 모실까?”

네가 퍽이나 그러겠다.

김성훈의 장난스러운 말에, 황 실장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가볍게 대꾸했다.

* * *

“그럼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박호연의 말에 신준호가 강태한 쪽을 쳐다봤다.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기차로 오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것도 생판 모르는 남을 도와주려고 내려온 건데요.”

“제 고향이 대전이라 겸사겸사 온 거기도 하고··· 그리고 생판 모르는 남이라기엔 제가 한 번 도와드린 분이라, 계속 마음에 남더라고요.”

그리고 좀 더 당당하게 영약을 얻고 싶었다.

사실 이쪽이 가장 핵심이 되는 이유였지만, 강태한은 굳이 그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한편 강태한의 말에 신준호는 깊은 감명을 얻은 반응이었다.

허, 하고 벌어진 입이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거··· 정말로 은인이시군요. 어떻게든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데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때 태한 씨가 네 산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그때 옆에서 진단 결과를 살펴보고 있던 박호연이 문득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직접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본론을 꺼내는 것.

참 이상적인 그림이다.

강태한으로서는 실로 만족스러운 전개였다.

“어제 문자도 보냈었고 말이야.”

“산이면··· 어떤 산 말입니까?”

어떤 산이라.

갖고 있는 산이 하나가 아닌 건가.

강태한은 속으로 감탄했다.

“이 녀석이 땅 부자라서요.”

“야, 땅 부자는 무슨. 땅이 서울에 있어야 땅 부자지. 이것 참 쑥스럽지만, 하나는 선산이고 나머지 땅들도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신준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언제 한 번 비슷한 일로 큰 오해라도 산 적이 있는 듯한 반응이었다.

“크흠, 그래서, 어딜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때 계룡산에서 일이 있었을 때, 조원호 씨한테 도라지주 한 병을 선물 받았었는데···”

강태한은 자초지종을 말했다.

도라지주 맛이 너무 좋았다는 것과, 아버지도 담금주를 좋아하셔서 관심이 간다는 것, 괜찮다면 자기도 거기서 약초를 좀 캐보고 싶다는 것.

“은인이 부탁하는데 당연히 괜찮죠. 태한 씨라면 저희 축사에서 소 몇 마리 업어간다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강태한이 말을 마치자 신준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주머니를 더듬거리다 자기가 입고 있는 게 환자복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호연아, 내 폰 어디다 놨냐?”

“그거 제수씨 드렸는데?”

“···그럼 네 거라도 잠깐 줘봐.”

신준호는 건네받은 스마트폰으로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켰다.

잠시 지도를 뒤적이던 그는 화면을 확대해서 강태한에게 보여줬다.

“아마 원호가 말하는 산이 이 산일 겁니다.”

“···음. 확실히, 터가 좋은 산이군요.”

화면을 살펴본 강태한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슬쩍 보기만 해도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산줄기는 계룡산에서부터 맥이 이어져있고, 앞에는 금강이 흐르며, 강 건너편에는 백제의 성산(聖山), 칠갑산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계룡산과 칠갑산, 두 영산의 기운이 어우러지고 임수(臨水)의 조건까지 갖추고 있는 지세.

간단하게 말하자면.

‘가히 명당이라 부를만하군.’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기대치.

강태한은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속으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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