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16화>
‘나도 한 번 정비해줬으면 좋겠다.’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 카센터에 방문했었던 어느 날, 정비를 마치고 나온 자신의 차를 살피며 이동찬은 문득 생각했다.
문제가 있던 부품은 교체하고, 들른 김에 엔진오일도 새로 넣고, 세차도 손세차로 깔끔하게 싹 마치고.
뽑은 지 벌써 오 년이 다 된 세단이었지만, 그 순간을 기점으로 안쪽도 바깥쪽도 마치 새로 뽑은 차처럼 깔끔해졌었다.
사람도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시의 이동찬은 진심으로 그렇게 소망했다.
그의 직업은 프로그래머.
다니는 직장은 게임 회사.
연봉은 나쁘지 않지만, 매일 같이 초과 근무가 이어지고 서버에 문제라도 생기는 날에는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도시의 꺼지지 않는 불빛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삶이 존재하는 증거라고 했던가.
회사의 꺼지지 않는 불빛 하나하나는 누군가가 야근을 하고 있는 증거다.
매일 밤 불이 꺼지지 않는 회사의 모습은 그야말로 등대.
이젠 집에서 먹은 밥보다 회사에서 먹은 밥이 더 많을 지경이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몸은 망가지고, 몸은 무겁다.
잠을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몸에 좋다는 보양식을 챙겨먹어도 배만 부를 뿐 기운이 나는 일은 없다.
이럴 바엔, 나도 자동차처럼 정비를 받고 싶다.
새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다.
허나 소망이라는 것은 이뤄질 수 없기에 바라는 것.
그렇기에 그건 어디까지나 이동찬의 망상일 뿐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는.
‘이게 가능한 거야?’
그는 지금 침대에 뚫린 구멍에 얼굴을 묻은 채 안마를 받고 있었다.
장인 특별코스라는 수상한 명칭.
와이프가 ‘여기가 그렇게 신통하대’라면서 잡아놓은 예약이었다.
신통하다? 그 말이 안마와 어울리는 단어인가?
그런 의문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끄흐으으읍···”
“아픈가?”
“아니요··· 너무 좋습니다···”
지금 그는 지금 쾌감에 찌든 채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시원함이라는 이름의 쾌감에 말이다.
‘몸이 새로 개조되는 듯한 느낌이야···’
안마를 받아본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 솜씨가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라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 지압되고 있는 등 쪽의 혈.
단지 두 엄지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고 있을 뿐인데도 전신이 움직이지 않는다.
경직되어 있던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느슨하게 이완시킨 근육을.
“끄허어업.”
이번에는 강한 악력(握力)으로, 마치 밀가루 반죽을 치대는 것처럼 두 손으로 강하게 주무른다.
뚜두둑, 뚜둑, 뿌득.
이런 곳에서도 이런 소리가 날 수 있구나, 싶은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몸을 잡아 비트는 고통이 안마사의 손길에 따라 온몸을 휩쓸어간다.
허나 고통은 잠깐.
그 고통이 지나가고 나면.
텅 빈 공간에 바람이 부는 것처럼, 쥐어짜졌던 근육 사이사이에 활력이 스며드는 것이 느껴진다.
땟물을 빼낸 스펀지가 깨끗한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의자에 오래 앉아서 일을 하나보군.”
“예. 오랫동안 컴퓨터를 만지는 일이라서. 혹시 몸 상태가 많이 안 좋나요?”
“아니. 자네 정도면 양호한 편이지. 적어도 몸의 기운은 맑은 편이니까.”
자, 다 됐네.
안마사, 강태한은 그렇게 말하며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신기하게도 등을 두드리는 순간 느슨하게 풀려있던 몸에 힘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어, 삼십분이 벌써 지났나요?”
이동찬은 당황한 표정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체감 상으론 이제 십분 정도 지난 줄 알았는데, 실제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삼십분이 지나있었다.
‘뭔가 아쉬운데···’
그가 알기로 이제 남은 것은 한 시간 동안의 ‘피로회복 숙면.’
아마 찜질 같은 걸 하면서 잠을 자는 것이리라.
솔직히 이 부분은 큰 기대가 되지 않았기에 더욱 짙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 얼마나 잘 텐가?”
“···네?”
이동찬은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강태한의 말투가 마치 자기가 얼마나 잘 건지 설정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도중에 약속이 있어 나가야한다든가, 급하게 받아야 할 연락이 있다든가, 그럴 수도 있으니 말이야.”
“음··· 그런 건 없습니다.”
“잘 됐군.”
그 순간, 강태한의 손이 휙, 하고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양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쿡 찔리는 듯한 강렬한 감각.
온몸의 힘이 순간 훅 빠지는 감각.
“그럼 푹 쉬게.”
이동찬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 * *
“태한 씨, 고생했어.”
강태한이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 카운터에 있던 황 실장이 커피 한 캔을 내밀며 반겼다.
“손님은?”
“주무시고 계세요.”
강태한은 가벼운 목소리로 답하며 커피의 캔 뚜껑을 열었다.
칵, 하는 경쾌한 소리가 짧게 울렸다.
장인 특별코스가 시작된 지 대략 사흘.
약간의 우려도 있었지만, 새로운 서비스의 도입은 거짓말처럼 성공을 거두었다.
하긴 시작하기 전부터 예약이 가득 채워질 정도였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손님들 반응은 어떤 것 같아요?”
캔 커피를 입가로 가져가며 강태한이 물었다.
“태한 씨가 더 잘 알지 않아?”
“음. 그냥 평소랑 비슷한 거 같긴 한데, 왠지 손님들은 절 어려워하는 느낌이 있어서요.”
특히 안마를 마치고 난 후에는 손님들의 말투부터 존대로 바뀐다.
약간 불만이 있더라도 순순히 말해줄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뭐라 딱 말하긴 애매한데··· 예전보다 더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나빠진 느낌은 없는데? 솔직히 나도 좀 걱정했었는데, 의외더라고.”
장인 특별코스는 삼십 분과 한 시간 코스로 나뉘지만, 강태한은 오직 삼십 분짜리 코스만 하는 걸로 결정되었다.
‘그 이상은 오히려 과하다’는, 강태한 본인의 강한 주장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최대 한 시간의 수면 시간을 둬서 회복기를 좀 가지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제안.
솔직히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짧은 삼십 분보단 길게 한 시간 받는 것을 선호하기도 하고, 실제로 강태한을 찾는 손님들 대다수도 한 시간짜리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다만 이 특별코스 기획 자체가 강태한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이기에 적극적으로 수용했을 뿐.
헌데 지금에 와서는 그 모든 우려가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다행이네요.”
강태한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로서는 이번에 바뀐 특별코스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사실, 그동안 한 시간이란 시간은 좀 낭비가 있다고 생각해왔었다.
문제가 있는 부분들을 풀어주는 건 짧으면 십 분, 길어도 이십 분이면 충분하고, 그 이후엔 평범한 안마로 시간을 채울 뿐이었으니까.
안마 시간은 삼십 분 코스보다 한 시간 코스가 두 배 더 길지만, 실질적인 효능은 엇비슷했던 것이다.
그럴 바엔 빡세게 집중해서 삼십 분 코스만 하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게 강태한의 생각이었고, 다행히 손님들도 여기에 만족한 모양이었다.
“특히 다들 잠을 푹 잤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요?”
“감사하다고 꼭 전해달라던데?”
황 실장의 말에 강태한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마라는 것은 결국 신체에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
아무리 능숙한 안마라 해도 결국 어느 정도의 충격은 가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강태한처럼 근육의 안쪽부터 혈까지 건드리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안마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선, 일정시간의 회복기간이 필요하다.
몸 곳곳에 생긴 손상들을 회복하고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건 역시 깊은 숙면.
그리고 강태한은 여기에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상대를 잠들게 하는 수혈(睡穴).
이걸 조금 응용하면, 곧바로 꿈조차도 꾸지 않는 숙면 상태에 들어가도록 만들 수 있다.
가볍게 짚을 뿐이니 잠드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딱 한 시간 동안의 숙면.
그 정도면 회복을 마치고 활력이 채워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덕분에 강태한도 보다 적극적인 안마가 가능하다.
회복기간이 있으니, 평소보다 다소 과격하게 근육을 풀어놓더라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장점도 있었으니.
“이야, 태한 씨 덕분에 매출이 확 뛰었다니까?”
당연히 금전적인 부분도 껑충 뛰었다.
모니터 화면 쪽을 힐긋 쳐다본 황 실장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특별코스로 바뀌었지만 손님은 줄지 않았기에 이미 매출이 껑충 올랐는데, 삼십 분 코스를 기준으로 돌아가니 실질적 매출은 한 번 더 뛴 셈이다.
안마의 효율도, 매출의 효율도 올린 최고의 선택.
매출까진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강태한으로선 나쁠 것이 없다.
황 실장의 입장에선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흐흐, 정말 굴러들어온 복이다, 진짜.”
“제가 일 잘할 거라고 했죠? 제 말 안 듣고 안 받았으면 어쩔 뻔했어요.”
마침 지나가고 있던 최성현이 한 마디 끼어들었다.
요 근래 찾아오는 손님의 숫자 자체가 늘어났기에, 다른 안마사들도 예전보다 훨씬 바빠졌다.
과장을 좀 보태면 거의 두 배에 가까울 정도.
“그래, 임마. 네 덕분도 있다, 성현아.”
“그럼 이따 중식에 탕수육 어때요.”
“탕수육? 내가 언제는 안 시켜줬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시켜!”
기분 좋은 목소리의 두 사람.
강태한은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다 슬쩍 대기실로 들어갔다.
* * *
“···헉!”
이동찬은 자리에 누운 채로 눈을 떴다.
기이한 꿈이었다.
안마사 선생님이 어깨를 푹, 찌르니 스르륵, 의식을 잃는, 그런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연출의 꿈이었던 것이다.
“꿈이 아닌가··· 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이동찬.
헌데, 느낌이 뭔가 다르다.
차고 있던 모래주머니를 벗은 듯한, 뼈 사이사이에 엔진오일이라도 발라준 듯한, 그런 느낌.
자기가 생각해놓고도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비유는 이것뿐이었다.
‘몸이 엄청 가벼워.’
그 뿐인가. 정신도 맑다.
하드에 한참 쌓여있던 디스크 조각모음이라도 한 듯한 느낌이다.
정신이 혼탁하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는데,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다.
“리셋 버튼이라도 누른 거 같네··· 어?”
아직 놀랄 것은 하나 더 남아있었다.
스마트폰을 꺼낸 이동찬은 순간 멈칫했다.
잠깐 잠들은 줄 알았는데, 벌써 한 시간이 지나있었던 것이다.
꿈도 없이 죽은 듯이 깊이 빠져든 잠.
이동찬이 체감 상 느낀 시간은 기껏해야 십 분이다.
이 정도로 밀도 높은 단잠은 군대에서도 겪어본 적이 없다.
이동찬은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일어나셨어요?”
그 때 누군가가 쟁반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안마샵의 직원이었다.
“네, 방금.”
“여기 차 한 잔 마시면서 쉬고 나오세요.”
그는 테이블에 쟁반을 두고 다시 나갔다.
쟁반 위에는 따뜻한 차 한 잔과 과자 두 조각.
이동찬은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찻잔을 들어올렸다.
“···!”
입 안에 머금은 따뜻한 수분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자고 있는 동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보다 많은 땀을 흘린 탓이다.
온몸에 퍼지는 따뜻한 수분 한 모금이 그야말로 각별한 느낌이었다.
‘이건··· 최고구만.’
스며드는 따뜻한 온기.
온몸에 넘쳐나는 활력.
가벼워진 근육과 부드럽게 움직이는 관절.
그야말로 대만족.
어떻게 여기서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아쉬움조차 없을 정도의 극한의 만족이다.
후우우.
이동찬은 넘쳐나는 만족감이 실린 숨을 깊게 내쉬었다.
사람도 정비할 수가 있구나.
적어도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얼마 전 정비 받은 자동차를 부러워했던 일을 떠올리며, 이동찬은 소소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