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12화>
“으아··· 피곤하다, 피곤해.”
최성현이 자기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마치 의자 위에서 흘러내린 것처럼 축 늘어진 모습에, 강태한이 피식 웃었다.
“야. 사람들 피로 풀어준다는 사람이 정작 본인이 피곤하다고 늘어져 있으면 어떻게 하냐?”
“뭐? 네가 이상한 거야. 너만 쌩쌩하다고, 너만!”
최성현은 어이가 없는 나머지 헛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하게도, 안마라는 일 자체가 체력이 필요한 일이다.
밀가루 반죽만 해도 한 시간을 치대면 땀이 뻘뻘 나는데, 한 시간 동안 집중해서 사람 신체 곳곳을 짚어내고 주물러야하니 오죽하겠는가.
자신뿐만 아니라, 나름 안마일 좀 오래 해봤다는 아저씨들도 손님 좀 받은 날에는 피곤하다고 뻗어있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다.
한데 강태한 저 녀석은 이상할 정도로 쌩쌩하다.
심지어 중간에 쉬는 시간도 딱히 없이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는 많은 손님을 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다~ 요령이 있는 거다, 요령이.”
“요령은 무슨. 경력 한 십 년은 되냐?”
“음··· 원래 이런 건 경력과 별개인 거야.”
거의 육십 년 동안 무공을 익혔다고 말할 순 없었기에 말을 얼버무리는 강태한이다.
최성현은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너 찾는 손님이 그렇게 많은 거 보면, 네가 솜씨가 좋긴 한가보다. 원래 너 오기 전에 제일 잘나갔던 아저씨도 너 정돈 아니었는데.”
“뭣하면 한 번 받아볼래?”
강태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받아. 아, 어깨 풀어준다고?”
“그래. 잠깐 등 좀 이쪽으로 돌려봐.”
“해주면 나야 좋지.”
최성현이 강태한 쪽으로 등을 돌렸다.
보아하니 피곤함을 느낄 정도로 어깨와 등이 꽤 뭉쳐있긴 했지만, 몸을 많이 써서 뭉친 일시적인 증상일 뿐이었다.
이런 걸 푸는 방법이야 단순했다.
“별 것도 아니구만.”
“너, 자기 몸 아니라고··· 윽?”
친우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강태한은 엄지손가락을 최성현의 어깨 근육 사이로 찔러 넣었다.
순간 최성현의 표정에 힘이 풀렸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방법은 단순하다.
근육과 근육 사이가 이어지는 경계의 선.
그리고 그 선들이 모이는 하나의 점.
이 지점을 찾아낸 다음, 이곳을 강하되 부상을 입진 않을 만큼의 힘으로 순간 압박한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뭉쳐있던 근육이 힘을 잃고 느슨해진다.
‘그리고 그냥 주무르기만 하면 그만이지.’
이젠 말랑한 반죽을 주무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방금 전 딱딱하게 굳어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최성현의 양쪽 어깨는 강태한의 손길에 따라 움직였다.
“으어어어···”
어깨부터 퍼져나가는 부드러운 쾌락에 최성현의 눈이 풀어졌다.
노곤하게 축 처진 게 꽤 추한 몰골이었건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모습이었다.
“그 다음엔···”
뭉쳐있는 등 근육을 풀어놓을 차례다.
어깨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단순하다.
애당초 어디가 잘못된 게 아니라, 단순히 뭉쳐있을 뿐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목과 등을 이어주는 대추(大推)혈.
이곳의 혈을 뚫어 열어놓고, 허리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위쪽으로 쓸어 올려, 주변 근육을 다시 정렬시키는 동시에 고여 있던 기운들을 끌어올린다.
“흐어억.”
허리에서부터 올라와 대추혈로 빠져나가는 흐름.
그것만으로도 허리가 곧추세워지고, 뭉쳐있던 근육들도 풀어져서 다시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다 끝났다.”
이것으로 마무리.
팡! 강태한이 끝을 알리는 의미로 최성현의 등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쳤다.
1분이 될까 말까하는 짧은 시간이었다.
“···어, 뭐야, 벌써 끝났어?”
“그럼 여기서 뭘 더 해줘?”
“아니··· 좀 짧지 않나 싶어서···”
최성현이 아쉬움이 묻어나오는 얼굴로 말했다.
단순히 몸이 풀어지는 걸 떠나서, 몸이 노곤해지는 그 느낌 자체가 썩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음?”
자리에서 일어나 몇 번 어깨를 돌려본 최성현.
순간 그의 얼굴의 아쉬움이 감탄으로 바뀌었다.
방금 전과 확연히 다른 차이가 느껴진 것이다.
시간도 얼마 지나지 않은 짧은 사이였는데도 말이다.
“어때?”
“···확실히 다르긴 다르네.”
“요령이 느껴져?”
“아니, 요령이라 부를만한 게 아닌 거 같은데?”
최성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요령보단 재능 쪽에 가까운 것 같네.”
“재능이라.”
강태한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림에 있던 시절, 둔재라고 불렸으면 불렸지, 재능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탓이다.
흡성대법의 부작용으로 생사의 고비를 겪었던 게 몇 차례였던가.
하지만 그마저도 없었으면 진즉 변사체가 되었을 것이니, 말 그대로 악으로 깡으로 버텨왔을 뿐이었다.
‘오히려 재능은 이 녀석이 좀 있는 편이지.’
무림 시절의 내공은 사라졌지만, 그 때의 안목은 그대로 남아있다.
무당마냥 뭐든지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무인으로서의 그릇은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성현의 재능은 썩 나쁘지 않았다.
기골도 잡혀있고, 무엇보다 혈의 기운이 맑다.
만약 최성현이 무림에 떨어진다면 구파일방까진 아니어도 나름 괜찮은 문파에 입문할 수 있으리라.
“그건 그렇고··· 아직 어깨가 덜 풀린 것 같은데?”
최성현이 괜히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당연하게도, 거짓말이었다.
강태한이 혹시나 해서 슬쩍 살펴봤지만 뭉쳐있는 부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왜, 더 받고 싶냐?”
“아니 뭐, 해준다면 받지?”
“더 받고 싶으면 돈 내.”
어디가 뭉쳐있으면 모를까, 이미 다 풀어놓은 근육을 또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 * *
‘이 정도면 꽤 많이 모았네.’
강태한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앞에는 스마트폰이, 정확히는 통장 잔고가 나와 있는 화면이 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한가···’
쉬는 시간 없이 계속 일하기도 했고, 황 실장의 제안으로 급여 조건 자체가 좋아진 덕도 있다.
게다가 요즘 들어 팁을 주고 가는 손님들이 부쩍 늘어난 것도 있었다.
그것도 한두 푼이 아니라 삼만 원, 오만 원씩.
다음에도 잘 부탁드린다, 어디 먼데로 가시면 안 된다.
어디 가시게 되면 알려 달라··· 뭐 그런 말들을 남기며 적지 않은 액수를, 그것도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고 가는 것이다.
결국 요 몇 주 사이, 강태한의 계좌에는 아르바이트로 모았다고 하기엔 상당히 많은 액수가 찍혀있었다.
카드에 잔액이 없어 경고 문자가 와있을 지경이었지만, 이제 교통비 걱정은 물론이요, 마음만 먹으면 중고차도 한 대 뽑을만한 돈이었다.
물론 싼 걸로.
“돈이 좋긴 좋구나.”
그렇기에 강태한은 작은 사치를 부렸다.
대전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KTX로 끊은 것이다.
불과 얼마 전에는 고속버스를, 그것도 우등을 타기는 부담스러워 그냥 보내고 다음에 오는 일반버스를 탔던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출세라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소박한 행복!
오랫동안 무림에 있었던 탓일까, 고작 기차를 타는 것뿐인데도 묘한 설렘이 있었다.
마치 기차에 처음 타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그렇게 조금 있었을까.
아직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곧 대전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벌써 도착하다니.’
무림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속도다.
경공으로 이 정도 속도를, 그것도 꾸준히 낼 수 있겠는가?
한다면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 경공이 되겠는가?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떠올리며, 강태한은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거리가 있기는 했지만, 집까지는 충분히 걸어갈 만한 거리였다.
“아버지, 저 왔어요.”
강태한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아버지의 가게.
원래는 곧장 집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혹시나 해서 들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불이 켜져 있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가게를 정리하고 있던 그의 아버지, 강호연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반겼다.
“어, 네가 연락도 없이 웬일이냐?”
“왜요. 연락 없이 오면 쫓아내시게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
강호연이 의자 하나를 빼내며 말했다.
구태여 말은 없었지만 여기 앉아서 이야기하라는 의미였다.
“그건 그렇고··· 가게 분위기가 좀 달라졌네요?”
자리에 앉은 강태한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시간은 꽤 늦은 저녁.
가게는 이미 영업을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럼에도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
“알겠냐? 가구 몇 개 바꾸고 벽지도 새로 발랐다.”
“아뇨,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말에 강태한은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물질적이고 시각적인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손길이 자주 닿은 느낌이라고 할까.
얼마 전에 왔을 땐 누가 봐도 장사가 안 되는 동네 중국집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꽤 손님이 오고가는 가게의 느낌이 들었다.
‘가게의 기운부터가 달라.’
본래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에는 스산한 음기가, 자주 오가는 곳에는 생동적인 양기가 흐르는 법이다.
소위 활기라고 부르는 기운.
지금 이곳은 예전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다른 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활기가 채워져 있었다.
가게뿐만이 아니었다.
수심이 가득했던 강호연의 얼굴에도 활기가 흐르고 있었다.
“요즘 손님이 좀 많이 늘었나보네요.”
“꽤 늘었다. 수타면 치는 것 때문인지 옛날 단골들도 다시 돌아오고··· 인스타그램이랬나? 그걸 봤다나, 아무튼 젊은 손님들도 좀 늘고 뭐 그렇다.”
강호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표정은 내심 뿌듯해하는 표정이었다.
그걸 본 강태한의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다행이네요, 아버지.”
“···뭘, 다 네 덕분이지.”
강태한의 말에 강호연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아직도 믿기 힘들고, 우연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강태한이 어깨를 주무르고 난 이후 수술 후유증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흠흠, 그보다, 오늘도 조금 있다 다시 올라 가냐?”
다만 아직 이런 대화는 낯이 좀 간지러웠는지, 강호연은 헛기침을 내뱉고선 말을 돌렸다.
강태한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아뇨. 저 이제 수요일이랑 목요일은 쉬어요.”
얼마 전 황 실장과 함께 결정한 내용이다.
주말에 일을 하는 대신 평일 중간에 쉬기로 한 것.
주말에 손님이 많은 이유도 있지만, 나중에 학교가 개강하면 수업을 들을 시간이 필요한 탓도 있었다.
강태한은 남은 학점도 얼마 안 되는 4학년이었지만, 어쨌든 남은 학점을 듣긴 들어야했고, 준비하고 있던 자격증도 마무리를 해야 했다.
“그래? 그럼 좀 오래 있겠구나.”
“예. 할 일도 좀 있어서.”
“할 일? 뭐 말이냐.”
가게 일이라도 도와주려는 건가?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하라고 하지도 않겠지만, 생각만 해도 괜히 흐뭇해지는 강호연이다.
하지만 강태한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산에 좀 다녀오려고요.”
“···산?”
“네. 왜요. 이상해요?”
“···이상하긴 하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소풍갔다왔다는 거 빼면 산에 올라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강호연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가 말한 대로, 자기 아들이 자발적으로 등산을 하러 간다는 말은 너무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산으로 소풍을 갈 때도 한참 툴툴거렸었다.
“그냥··· 갑자기 생각날 때가 있잖아요?”
강태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 때가 있긴 하지만, 무림인에겐 특히 산이 그리울 때가 종종 있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