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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1화 (11/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11화>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간이 부었다고 했네.”

하, 참.

김관호 부장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기껏해야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청년한테 초면부터 간이 부었냐는 말을 들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손님으로 온 것이지 않은가.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이봐 학생. 초면에 말이야. 내가 지금 그런 말이나 들을 사람으로 보여?”

“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으면 평소에 간 좀 신경 써서 관리하지 그랬나. 아직 병이 생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상태가 영 좋지 않군.”

강태한은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반응에 김관호가 순간 멈칫했다.

“어···?”

“이 정도면 슬슬 체감이 됐을 텐데? 피로는 심한데 자고 일어나도 뻐근하고, 식욕도 없고. 술을 마셔도 기분 좋게 취하는 일이 없고··· 그렇지 않은가?”

“아, 네··· 맞습니다.”

김관호는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자기 혼자 오해를 하고 혼자 화를 낸 모양이다.

괜히 머쓱해진 분위기에 김관호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잠깐. 아직 아무것도 안했잖아?’

하지만 뒤늦게 생각이 났다.

아직 저 안마사는 자신과 눈을 마주쳤을 뿐이라는 걸.

그냥 얼굴만 봐서 간이 부었는지 안 부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눈에서 초음파라도 나온단 말인가?

‘그냥 막말 던진 다음에 얼버무린 거 아냐?’

아니면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는 사기꾼이든가.

문득 떠오른 의심에 김관호의 미간이 좁혀졌다.

‘흠. 이건 간에 쌓인 독소부터 빼내야겠군.’

한편,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강태한은 김관호의 몸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간은 몸의 해독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기관.

그렇기에 이곳의 상태가 안 좋을 경우, 몸 전체에 영향이 나타나게 된다.

몸 안에 들어온 독소가 버젓이 체내를 맴돌고, 그 독소가 체내에서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간이 좋지 못하면 내공 또한 탁해지기 마련이지.’

문제는 이런 영향이 굉장히 천천히 나타난다는 것.

더군다나 간은 상태가 안 좋아도 통증이 없는 부위이기에,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 이 사람도 간에 이상이 있을 거라 짐작은 하겠지만, 아직 직접적인 문제도 없고 통증도 없으니 방치해두고 있는 것이리라.

“저기, 학생.”

아직 의심을 거두지 못한 김관호가 말했다.

“내가 간이 안 좋은 건 어떻게 알았나?”

“이 정도 상태라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지. 겉으로도 탁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니까 말이야.”

역시.

강태한의 대답에 김관호는 자신의 의심에 확신을 가졌다.

이런 두리뭉술한 대답.

얼핏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자신 같은 중장년의 회사원 중에 간이 멀쩡한 사람이 있으면 몇이나 있겠는가?

필시 그런 식으로 때려 맞추는 것이리라.

‘하긴. 기껏해야 사우나에 딸려있는 안마실인데, 뭘 기대하겠어?’

탁한 기운은 무슨.

김관호는 침대에 얼굴을 묻은 채로 코웃음을 쳤다.

“예를 들면··· 이곳.”

“억?!”

하지만 다음 순간, 김관호의 생각이 끊어졌다.

오른쪽 등의 한 지점.

그곳을 강태한이 엄지손가락으로 누른 순간, 섬찟한 감각이 온몸을 찌릿하게 관통한 탓이었다.

“쌓이고 쌓인 탁기가 결국 새어나오고 있지.”

반면 강태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좀 더 강하게 압박을 가한다음, 마치 깊이 찔렀다가 뽑아내는 것처럼 거칠게 손가락을 거두었다.

“허어어억···”

그 순간, 김광호는 그곳을 통해 몸 안에서 뭔가가 뿜어져 나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몸 안에 쌓여있던, 아니 오랫동안 고여 있던 뭔가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시원했다.

전에 느껴본 적이 없는,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각.

섬찟할 정도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막혔던 게 뻥 뚫리는 시원한 쾌감이 등줄기를 따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것 보게. 혈도에 살짝 숨통만 터줬을 뿐인데 이렇게 탁한 기운이 터져 나오지 않는가.”

강태한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전 있었던 쾌감의 반발로 힘이 빠져 축 늘어져있는 김관호와는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방금 뭐였지···?’

김관호가 안마를 받아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꽤 많은 편에 속했다.

이곳처럼 사우나에 갖춰진 간단한 안마서비스부터 나름 소문이 난 안마원까지, 다양한 곳에서 안마를 받아봤다.

처음 강태한을 미심쩍게 본 것 또한 경험에서 얻은 안목이었던 것이다.

헌데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몸 안에 고여 있던 무언가가··· 방금 전까지 그럴듯한 헛소리로 치부했던 탁한 기운이란 것이, 정말로 몸 안에서 터져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격렬한 감각에 몸이 경직되어있을 땐 몰랐지만, 자극이 사라지고 느슨하게 이완된 지금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전보다 몸이 좀 더 가볍고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그냥 손가락으로 한 번 지압했을 뿐인데···’

마치 무협지와도 같은 솜씨.

이게 말이 되는가?

만약 다른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과장이 심하다고 했을 것이다.

안마사 본인이 말한다면 사기꾼으로 치부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겪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겉으로 보기엔 어려 보였는데··· 생각보다 경력이 많은 분이실지도.’

이러고 다시 보니 왠지 분위기가 달라보였다.

무게가 느껴진다고 할까.

말끔하게 생긴 동안과는 얼핏 어울리지 않는, 관록이 배어나오는 듯한 묵직한 분위기였다.

“저기, 선생님께선 혹시 얼마나··· 으걱!”

넌지시 말을 건네던 김관호.

허나 그의 말은 순간 괴성으로 잘려나갔다.

강태한이 바로 다음 혈을 짚은 것이다.

“조금 아플 수 있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게.”

“그, 그럼 살살해주십니까?”

겨우 숨을 돌린 김관호가 물었다.

그의 말에 강태한이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혈을 짚어줄 수는 있지.”

“···예?”

“농일세.”

“······”

원래라면 대충 넘어갈 시덥잖은 농담.

하지만 이 사람은 그렇게 마음만 먹으면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김관호는 문득 생각했다.

* * *

한편, 원래 예약을 해뒀던 남우현은 대기실에서 김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약된 순번을 양보한 후, 먼저 가기도, 가만히 기다리기도 애매해서 다른 안마사에게 안마를 받고 먼저 나온 참이었다.

‘역시 강 선생님과는 솜씨부터가 다르구만···’

까놓고 말하면,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은 안마였다.

물론 이건 비교대상이 너무 높은 탓도 있었다.

원래 그는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을 예정이었으니까.

객관적으로 본다면 찜질방의 안마샵치고는 꽤 괜찮은 안마솜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양보하지 말고 내가 받을 걸 그랬나···’

순간 머릿속을 지나가는 짧은 생각.

물론 진심은 아니었지만, 생각만으로도 깊은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강태한의 안마는 특별했다.

‘아, 나오셨네.’

그때 안쪽에서 김관호 부장이 걸어 나왔다.

방금 막 안마가 끝난 탓인지 진이 빠져 살짝 쳐져있는 모습.

허나 얼굴은 환한 것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생기가 맴돌고 있었다.

밖으로 나온 김관호는 곧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프론트 쪽으로 먼저 향했다.

“저기, 예약을 잡고 싶은데요.”

그건 다름이 아니라 다음 예약을 잡기 위함.

끝나자마자 다음 방문을 생각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는 직접적인 지표였다.

“네. 원하시는 안마사는 있으신가요?”

“그, 강태한 선생님으로 좀···”

프론트의 직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작은 달력을 꺼냈다.

달력에는 대부분의 날들이 작은 글씨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여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강태한 선생님은 예약이 많이 차있어서요. 원하는 날짜랑 시간에 맞추기가 좀 힘드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아··· 그렇군요.”

직원의 말에 김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납득은 됐다.

방금 받았던 안마의 수준이라면 예약이 밀려있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쪽 시간들은··· 선생님이 안 계시나 보네요?”

“아, 네. 쉬시는 날이거나 담당 시간이 아닙니다.”

“그렇군요.”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은 예약을 잡고 나오는 김관호였다.

뒤로 돌아 나오는 그의 표정이 밝았다.

“김 부장님, 나오셨어요?”

“아, 남 대리!”

남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관호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처음 봤었던 인상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밝은 표정이었다.

“설마 여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아뇨, 저도 다른 분한테 받고 나왔습니다.”

남우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고, 안마는 잘 받으셨습니까?”

“크흠···”

사실,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자기가 안마는 꽤 많이 받아봤다고, 기준이 나름 높다고 말했었던 김관호다.

그는 머쓱하게 헛기침을 뱉었다.

“그··· 확실히, 선생님 솜씨가 훌륭하시더군.”

김관호가 슬쩍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체면 때문에 아닌 척 하기에는 너무 만족스러운 안마였다.

격한 안마로 조금 지치긴 했지만, 몸의 컨디션이 확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몸의 기운이 맑아졌다’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이 딱 어울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단순히 걷는 것조차도 가벼운 모시옷만 입고 걷는 것처럼 사뿐하고 가볍다.

안마를 받은 게 아니라 무슨 위험한 약이라도 투여한 게 아닌 가 싶을 정도의 변화.

본인이 겪었으면서도 믿지 못할 정도의 효과였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이네요.”

“정말 좋았다네. 양보해준 자네한테 미안할 정도로 말이야.”

그냥 추천을 해준 게 아니라 자기가 해뒀던 예약까지 양보한 것이지 않은가.

방금 예약을 잡으면서 보건데,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기다린 것으로 보였다.

“에이, 아닙니다. 부장님 안색이 너무 안 좋아보이셔서, 이렇게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허허··· 이 사람, 말을 그럴 듯하게 잘 하는구만.”

“진짜입니다. 제가 듣기로 원래 술을 그렇게 좋아하셨다는데, 술도 마다하시니 제가 걱정을 안 할 수 있겠습니까?”

남우현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김관호의 컨디션이 좋아진 덕일까,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보다 대화의 분위기가 훨씬 유해졌다.

대화도 자연스레 오고가고 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안마 받으시는 동안 땀 좀 나셨을 텐데, 탕이라도 한 번 다녀오시겠어요?”

“음··· 아니, 그러지 말고 우리 밖으로 나가지.”

“밖으로 말입니까?”

남우현이 되묻자, 김관호 부장은 머쓱하게 콧잔등을 매만지며 살짝 뜸을 들였다.

“그··· 배가 좀 고파져서 말이야. 허허.”

김관호가 처음 남우현의 식사제안을 거절했던 건 빈말이 아니었다.

요 근래 식욕이 없고 술맛도 없어진 건 사실이었으니까.

뭘 먹어도 맛이 없고, 먹고 싶은 게 없으니 메뉴 정하기도 힘들고.

그러다보니 아예 끼니를 거르는 일도 종종 있을 정도였다.

“안마를 받고 나니 귀신같이 허기가 져서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당장 식사할 생각만 해도 입 안에 군침이 고일 정도다.

지금이라면 고슬고슬한 흰밥에 겉절이만 있어도 한 끼 뚝딱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하지만 지금 가장 입맛이 당기는 건 따로 있었다.

“이 주변에 뼈해장국 잘하는 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 가서 한 그릇씩 하자구. 어때?”

뚝배기에서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뼈해장국.

오톨도톨 붙어있는 살코기를 발라내고, 얼큰한 국물에다 밥 한 술 딱 뜨면··· 생각만 해도 든든해지는 기분이다.

“아유, 저야 좋죠!”

그 말에 남우현 대리의 표정도 눈에 띄게 밝아졌다.

어쨌거나 그는 김관호 부장에게 영업을 하고 있는 입장.

불과 방금 전에 식사도 술도 싫다고 쳐냈던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뜨끈한 국물이 당기던 참이었습니다.”

“하하. 좋아. 그럼 바로 나가자고. 자네가 좋은 선생님을 소개해줬으니, 내가 좋은 뼈해장국집 하나 알려주도록 하지.”

김관호가 털털하게 웃으며 앞장섰고, 남우현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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