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9화>
“후우···”
집으로 돌아온 강태한은 침대 위에 몸을 뉘였다.
지금 시간은 오후 8시.
오전 7시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대략 열두 시간 정도를 일하고 이제 돌아온 셈이었다.
이런 생활을 이어온 게 대략 삼 주 정도.
일요일 하루를 빼고는 매주 출근했으니, 나름 열심히 일했다고 볼 수 있으리라.
허나 그렇다고 몸에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처음 이 세계로 돌아왔을 때보다 기운은 더 늘어났다.
안마를 하는 동안 틈틈이 내공을 흡수해온 덕분이었다.
“읏차.”
피곤한 게 아니니 오래 누워있을 필요도 없다.
강태한은 몸을 일으켜 가부좌를 틀고, 잠시 단전에 정신을 집중했다.
‘나쁘지 않은 성과군.’
희미하지만,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텅 빈 공간이었거늘, 지금은 밑바닥에 샘물처럼 고여 있는 내공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무엇을 숨기랴.
거기에 있는 내공은 전부 흡성대법으로 흡수하여 갈무리해놓은 내공이었다.
물론 개인의 욕심을 앞세운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치료의 일환으로서 필요한 만큼만 빼낸 것이었지만, 큰 수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 정도만 되도 큰 수확이지.’
세간에서 고수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1갑자(甲子).
1갑자는 그 이름처럼, 평범한 무림인이 60년 동안 수련했을 때 쌓이는 평균적인 내공의 양을 말한다.
물론 그 속도는 재능과 노력에 따라 천차만별로 갈라지고, 수련과 심법의 효율에 따라 다시 몇 배의 차이가 나게 되지만···
그래도 1갑자라는 내공은 쉽게 쌓이는 것이 아니며, 고수라 인정받는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봤을 때, 지금 강태한에게 모인 내공의 양은 얼추 1년에서 1년 반 정도.
여전히 부족한 양이었지만, 한 달도 안 되는 기한을 생각하면 이것도 엄청난 수확이다.
게다가 무림의 세계보다 기(氣)의 밀도가 훨씬 낮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말도 안 되는 성장속도라 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새삼스럽지만, 이곳은 비만인 사람이 참으로 흔하구나.’
만충생기독(滿充生氣毒).
말 그대로 체내에 가득 찬 생기가 오히려 독처럼 작용하게 되는 증상.
무림에선 정부의 잘나가는 관료(官僚)들이나 권문세족(權門勢族)들에게서 가끔 보이는 현상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상당히 많은 손님들이 이런 증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십중팔구는 비만 체형이었다.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열량이 높은 식사를 하니 필요 이상의 생기가 모이고, 운동량이 부족하니 모인 생기가 순환되지 못해 쌓이고 축적된다.
물론 세부적으로 따지자면 차이점도 많지만, 어쨌거나 두 증상은 서로 공통점이 굉장히 많았다.
‘뭐··· 당장 나한테는 도움이 되는 부분이니.’
어찌됐든 강태한은 덕분에 득을 보는 입장이었다.
넘치고 쌓인 내공은 그만큼 강태한의 내공이 되었으니까.
기간 대비 많은 내공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덕분이다.
“음?”
카톡!
맑은 알람 소리에 강태한은 카오스톡을 확인했다. 확인해보니 황 실장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와있었다.
[ 태한 씨, 혹시 바빠? ]
[ 아뇨.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
[ 혹시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나오기 편한 곳으로 말해주면 내가 거기까지 갈게. ]
‘무슨 일이지.’
그동안 나름 친해지기도 했고 식사도 몇 번 같이 했지만, 그래도 사적인 일로 귀찮게 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업적인 용건이 있다는 것이리라.
[ 지금 어디신데요? ]
[ 이제 퇴근하는 중이지. ]
[ 잠시만요. 적당한 가게가 있나 좀 볼게요. ]
강태한은 지도 어플로 화면을 옮겼다.
* * *
“여기에요.”
신림동에 위치한 한 찻집.
먼저 와있던 강태한이 손을 들어 올리자, 방금 도착한 황 실장이 머쓱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퇴근했는데 불러서 미안해. 많이 피곤할 텐데.”
“괜찮습니다. 오늘은 그리 힘들지도 않았는데요.”
강태한은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게 말이 되나’ 싶어 황 실장은 물끄러미 강태한을 쳐다보았다.
오늘 강태한이 받은 손님을 합치면 두 자리 수를 넘는다.
골병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업무량.
솔직히 말해 강태한 본인이 할 수 있다고 강하게 말하니 맡기는 거지, 원래라면 지명 손님이고 나발이고 지금의 절반은 돌려보냈을 것이다.
‘···진짜 멀쩡하네?’
황 실장은 원래 세신사 출신이다.
마사지도 어깨너머로 좀 배웠고, 덕분에 자세히는 몰라도, 이 사람의 컨디션이 상, 중, 하인지는 대충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보이는 강태한의 상태는 상.
열 시간 넘게 안마를 하고 온 게 아니라 마치 안마를 받고 온 듯한 컨디션이었다.
“그보다, 뭐로 하실래요?”
“나는 달달한 커피면 되는데··· 커피가 없네?”
누가 찻집 아니랄까봐, 메뉴판에는 커피가 없고 차 종류밖에 없었다.
게다가 차마다 찻잎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황 실장님한테는··· 아마 이게 맞으실 겁니다.”
그 중에 강태한이 한 찻잎을 가리켰다.
무슨 사자성어 같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찻잎이었다.
“육안과편(六安瓜片)? 이게 뭔데?”
“중국에서 나오는 녹차인데, 아마 입맛에도 좀 맞고 체질에도 잘 받으실 겁니다.”
“···그래?”
아무렴 어떠냐.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지 차를 마시러 온 건 아니기에, 황 실장은 아무렇게나 강태한이 권하는 찻잎으로 주문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세요?”
“아니 뭐. 나쁜 이야기는 아니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강태한의 말에 황 실장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태한 씨 실력에 비해 페이가 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어서 말이야.”
“으음···”
황 실장의 말에 강태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현재 강태한의 시급은 8,800원.
여기에 한 시간짜리 손님을 받았다고 하면 성과금으로 18,000원이 추가된다.
굳이 따져보자면 한 시간에 최소 8,800원, 최대 26,800원을 가져가는 것.
강태한 같은 경우에는 사실상 시급 3만 원 정도를 받아가고, 거기에 추가적인 이득으로 내공도 챙겨가는 셈이었다.
지금 당장 이것보다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나?
없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조금 부족한 감은 있죠.”
하지만 돈이라는 것은 다다익선!
저쪽에서 페이가 약한 것 같다고 말하는데, 굳이 그걸 정정할 필요는 없었다.
“역시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황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태한은 그저 희미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오늘 태한 씨를 찾아온 손님이 엄청 많았잖아. 근데 그거 몇 명 돌려보낸 거야.”
“아까 보니 그런 것 같더라고요.”
“태한 씨가 온 게 이제 삼 주 지났는데 이 정도면··· 앞으로는 더 많이 오겠지. 소문이라는 게 원래 점점 가속도가 붙는 거니까.”
황 실장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오늘 온 손님중에는 웃돈을 얹어줄 테니 순번을 앞으로 당겨 달라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이대로라면 하루에 강태한을 찾아오는 사람만 수십 명이 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태한의 몸은 하나.
그렇다면.
“그래서 태한 씨 페이도 올릴 겸, 따로 코스를 하나 만들어볼까 하는데. 어때?”
“코스라. 어떤 코스인데요?”
“그냥 쉽게 말해서 프리미엄이지 뭐. 일단은 사장님도 긍정적으로 말하셨거든?”
이름하야 프리미엄 집중 관리 코스.
말은 일단 그렇게 해놨지만, 강태한을 지정해서 안마를 받을 수 있는 코스다.
가격은 한 시간을 기준으로, 원래 가격에서 3만 원을 올린 9만 원.
“그럼··· 성과금이 27,000원으로 오르겠네요.”
“아니지. 그런 거였으면 이렇게 생색도 안 내지.”
황 실장이 좌우로 고개를 젓더니,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이며 말했다.
“깔끔하게, 딱 5할.”
“···비율 자체를 올려주신다, 이 말인가요?”
그러면 실제 금액은 45,000원.
단순하게 성과금만 놓고 본다면 지금 받는 돈의 거의 2배를 받는 셈이었다.
“그래. 시급을 올릴까도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이쪽을 올리는 게 사장님 납득시키기도 편하거든. 태한 씨한테도 이게 더 낫지?”
황 실장도 결국은 중간 관리자다.
페이를 올려주고 싶어도 자기 마음대로 올릴 수가 없기에 사장과 따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시급은 매출이 없어도 나가는 고정 지출.
반면, 성과금은 매출이 없으면 나가지 않는 돈이다.
사장을 설득할 때는 시급을 올리는 방향보단 성과금을 올리는 방향이 더 좋은 조건을 받기 쉽다.
물론 매출이 안 나온다면 헛짓거리가 되겠지만, 황 실장에게는 강태한이라면 반드시 매출이 올라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기왕 하는 거 좀 더 효율적으로 하자, 그만큼 그쪽도 가능한 만큼은 챙겨주겠다··· 이 말이군.’
일단 강태한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말대로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가져갈 수 있게 될 테니까.
사실상 임금인상이나 마찬가지다.
“제 업무가 바뀌는 부분이 있습니까?”
“없어. 그냥 프리미엄용으로 공간 하나 크게 내고··· 태한 씨 복장이 바뀌는 것 정도? 아, 계약서도 다시 쓰긴 해야 할 거야.”
강태한은 조용히 황 실장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렇지 않게 마주하고 있는 시선.
한참 말을 하고 있을 때에도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뒤로 뭘 감추거나 켕기는 구석은 없다는 뜻.
“뭐 나쁠 건 없어 보이는 이야기네요.”
“그렇지? 아마 태한 씨한테 안 좋은 일은 없을 거야. 솔직히 태한 씨 좀 오래 붙잡고 싶어서 추진한 일이거든.”
강태한의 말에 황 실장이 솔직하게 말했다.
단골이 늘어난다는 건 안마샵의 인지도도 늘어난다는 것.
실제로 강태한이 온 이후로 일매출이 꾸준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래서··· 어때. 생각 있어?”
“자세한 건 계약서까지 봐야겠고, 시간 조율도 좀 해야겠죠. 개강하면 졸업반이긴 해도 학업도 마무리해야 하고요.”
“그야 물론이지. 시간은 되도록 태한 씨한테 맞출 생각이니까 걱정하지 마. 예약제이기도 하고.”
“그렇다면야.”
나야 고맙다, 라고 강태한은 생각했다.